브랜드 역사상 최초의 콤팩트 SUV를 내놓은 볼보와 재규어. 각기 다른 매력과 개성을 뽐내지만 그들의 목표는 같다. 새로운 팬을 만들고 놀라운 판매량을 달성하는 것
볼보의 변화를 모르는 이가 없다. 볼보는 더 이상 대체재가 아니라 주류임을 당당히 증명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내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처음에는 단지 신선한 디자인 때문에 시선이 머물렀다면, 90 시리즈와 XC60을 여러 번 경험하면서 그들이 정말 매력적인 차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재규어는? 재규어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브랜드다. 재규어는 언제나 아름답고 빠른 차를 만들었고 뚜렷한 철학으로 스포츠카 라인업을 고수했다. 어떤 형태로든 재규어는 스포츠카처럼 날렵했으며 짜릿한 운전 재미를 선사한다. 반듯한 볼보와 섹시한 재규어, 너무나 다른 두 브랜드가 결국 한곳에서 만났다.
자동차회사라면 너 나 할 것 없이 군침을 흘리는 콤팩트 SUV 시장이다. 그들은 SUV가 팽창하는 흐름에 발맞춰 브랜드 역사상 최초로 콤팩트 SUV를 내놓았다. 스웨디시 미니멀리즘을 표방한 볼보 XC40과 스포츠카 DNA를 품은 재규어 E-페이스가 오늘의 주인공이다. XC40을 만난 건 이번이 세 번째다. 처음은 출시 전에 R 디자인 모델을 이틀간 시승했고 두 번째는 화려한 출시 현장에서 XC40을 만났다. XC40은 만날 때마다 점점 매력적이었다. 이 차를 갖는다는 건, 참으로 합리적인 프리미엄을 누리는 기분이다. 최신 볼보의 럭셔리가 빛을 발했고 훌륭한 안전 장비와 유용한 수납 공간이 마음을 움직였다. 심지어 XC90과 XC60보다 나은 점도 더러 보였다. 이 차는 젊은 세대를 완벽하게 겨냥했으며, 가성비와 가심비를 동시에 관통하는 저력을 보인다.
시승차는 XC40 T4 중 가장 저렴한 모멘텀 트림이다. 모멘텀은 4620만 원이라는 합리적인 가격을 제시한다. 동급의 티구안 4모션보다 130만 원 저렴하다. 그럼에도 빠지는 부분은 없다. 영리한 반자율주행 기술과 풍요로운 안전 장비를 모두 갖췄으며, 여유로운 파워와 4륜구동 시스템으로 출중한 성능을 자랑한다. 게다가 한눈에 봐도 참 멋진 디자인을 갖고 있다. 다부진 자세와 선명한 얼굴의 조합. 그리고 모던한 스타일이 차체 곳곳을 감싸고 있다. XC40을 몰면서 기분이 좋아진 이유는 또 있다. 이 차가 매끈한 가솔린 엔진을 품었기 때문이다. XC40은 조용하고 부드러운 건 물론, 내가 원할 때 세차게 달릴 줄도 안다.
190마력을 내는 XC40은 발걸음부터 가볍다. 신호에 맞춰 경쾌하게 도로 위를 쏘다니며 자동 8단 변속기가 지능적으로 호흡을 맞춘다. 소형차의 뼈대가 되는 CMA 플랫폼은 탄력 있게 반응한다. 잔충격은 고스란히 걸러내고 전자식 스티어링은 일관된 핸들링 성능을 보여줬다. 언제나 여유를 두고 안정적인 주행을 권했던 볼보가 XC40에게 자유를 허락한 느낌이다. 이 차의 주인이 젊은 소비자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며, 이를 반영한 볼보의 전략이 XC40에 녹아 있었다.
사실 그보다 더 매력적인 건, 이미 90과 60 시리즈에서 경험했던 파일럿 어시스트 II가 아닐까? 꼭 장거리를 운전하지 않더라도, 심지어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강변북로 위에서 운전대를 맡겨도 든든한 주행 보조를 약속한다. 이 기술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매력적이다. 심지어 운전을 즐기는 나에게도 매력적이긴 마찬가지다. 스타일로 따지면 E-페이스도 뒤지지 않는다. 날카로운 노즈 위에 사나운 재규어 얼굴을 드러내고 바람을 가르듯이 날렵한 몸매를 뽐낸다.
비율로 따지면 E-페이스가 한 수 위다. 후드는 길고 캐빈룸을 뒤로 당긴, 전통적인 스포츠카 비율로 SUV를 뽑아냈다. 이안 칼럼은 여전히 건재하며 재규어는 언제나 아름다운 차를 사랑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증명한 셈이다. 시승차는 산뜻한 베이지 컬러의 가죽 트림과 시트를 조합해 고급스러운 콕핏을 드러냈다. 그뿐만 아니다. 과감하게 치장한 범퍼와 디퓨저로 멋을 부렸고 19″ 스포크 타입 알로이 휠과 옆구리를 감싸는 스포츠 시트가 올라간 E-페이스는, 탐욕스럽게 당신의 지갑을 노리는 R 다이내믹 SE다. XC40 모멘텀보다 무려 1850만 원 비싸다. 더욱 스포티한 보디 키트와 멋진 휠, 풍부한 편의 장비와 화려하다 못해 사치스러운 인테리어를 뽐내지 않았더라면 정말 혹평을 날릴 뻔했다. 나는 괘씸한 마음을 달래기도 전에 시동을 걸었다. 그렇다. 솔직히 이때까지만 해도 XC40이 훨씬 돋보였다.
때 이른 장맛비로 흠뻑 젖은 험로에서 재규어를 타는 기분은? 보나 마나 좋을 리 없지 않은가. 하필 XC40에서 E-페이스로 갈아타는 시점에 우리는 진흙탕에 뛰어들었다. 고상한 SUV 둘에게 4×4 자질을 묻기 위해서다. 둘 다 할덱스 4륜구동 시스템을 품었고 XC40은 힘찬 토크를 유지하는 오프로드 모드를, E-페이스는 험로에서 속도를 유지하는 전지형 프로그레스 컨트롤을 갖췄다. 하지만 노면은 질척이고 웅덩이는 제법 깊다. 바퀴는 푹푹 빠지고 물에 흠뻑 젖은 풀이 바나나 껍질처럼 미끈거린다. 앞선 XC40은 뒤뚱거리며 진창에 빠졌지만 침착하게 빠져나왔다. 내리막을 만나면 스스로 속도를 유지하고 둔덕을 박차고 오르는 패기도 보였다. 내가 탄 E-페이스 역시 망설임을 찾아볼 수 없다. 전자제어식 디퍼렌셜이 바쁘게 움직이는 소리가 나기도 했고 트랙션을 찾기 위해 잠시 허둥댔지만 기어코 험로를 빠져나온다. 그럼 둘 중에 누가 더 위기에 강했을까? 사실 별로 의미 없는 경쟁이었다. XC40은 높은 차체로 더 여유가 있었고 E-페이스는 뒷바퀴가 더욱 활발하게 움직였지만, 옆에서 진흙 목욕을 즐기는 랭글러에 비하면 둘 다 소심한 꼬맹이였다.
하지만 아스팔트를 밟자 E-페이스가 돌변했다. 진흙탕 속에서 왕왕거리던 인제니움 엔진이 거침없이 힘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재규어는 바퀴에 엉겨 붙은 진흙을 탈탈 털어내더니 이내 쏜살같이 치고 나간다. 아까 볼보가 왔던 길을 되돌아갈 뿐인데, 달리는 과정은 하늘과 땅 차이다. 재규어의 249마력은 볼보의 190마력을 송두리째 뭉개버렸다. E-페이스는 가속 내내 맹렬한 엔진 사운드로 울부짖는다. 다이내믹 모드는 서스펜션을 바짝 조이고 가속 반응을 날카롭게 매만졌다. 패들 시프트를 당기든 기어 레버를 당기든 빠르게 변속하는 건 변함이 없다. 그런데 나는 기어 레버를 당기는 게 더 마음에 들었다. 그게 더 재규어답다고나 할까?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가파른 코너를 향해 차를 밀어 넣을 때다. E-페이스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코를 박아 넣는다. 갑작스러운 하중 이동과 타이어 마찰음이 새어 나왔지만 개의치 않는다. 더욱 단단해진 서스펜션과 토크 벡터링이 존재감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E-페이스가 언더스티어를 다스리는 비결은 또 있다. 재규어의 4륜구동은 질척거리는 오프로드보다 끈적한 아스팔트 위에서 더 유용했다. AWD 시스템에 더해진 액티브 드라이브라인 기술은 최대 100%의 토크를 각각의 바퀴로 배분할 수 있다. 또한 상황에 따라 리어 클러치를 완전히 잠가 허공으로 사라지는 트랙션을 확보한다. 즉, E-페이스는 쏟아지는 출력을 뒷바퀴에 온전히 몰아넣는다. 안으로 파고드는 노즈, 예리한 궤적, 코너를 탈출하는 활기가 모두 E-페이스의 장기였다. 나는 E-페이스를 믿고 마음껏 가속 페달을 밟았다. E-페이스는 여느 재규어처럼 짜릿한 운전 재미를 선사했고, 언제라도 화끈한 한 방을 날려버릴 수 있었다. E-페이스만의 가속도, 핸들링 그리고 전율은 XC40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영역이다.
둘의 처지는 비슷하다. 둘 모두 브랜드 최초의 콤팩트 SUV이자 판매량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탄생했다. 그러나 맛은 완전히 다르다. 대중적인 소비자 시점으로 바라보면 볼보의 승리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새로운 프리미엄을 누릴 수 있으며 실용적인 구성과 주행 보조 기능이 눈부시다. 그러나 나처럼 운전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E-페이스를 거부하기란 쉽지 않다. 차와 호흡을 맞추며 달리는 과정에서 뜨거운 열정과 정교하게 조율된 기계의 매력에 빠져들 것이다. 게다가 아름다운 스타일은 F-타입을 흠모했던 가장들에게 훌륭한 대체재가 될 것이다. 자, 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