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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문학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욥기서는
고난을 주제로 잠언의 수준 높은 지혜를 쏟아내는 현자들의 사망유희,
그 끝장 토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날 욥기서를 일백 번 집중해서 읽었던 시절은
오늘날 욥기서를 묵상하는 청라의 언덕을 가졌습니다.
작자 미상의 욥기서는 시편과 함께 성서 문학의 꽃이요,
성서지대의 기암단애와 주상절리의 협곡을 가진 천혜의 비경요, 그 샹그릴라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욥에 대한 성서의 이해는
욥기서의 인물 욥에 대한 이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인자야 가령 어떤 나라가 불법을 행하여 내게 범죄하므로
내가 손을 그 위에 펴서 그 의지하는 양식을 끊어 기근을 내려 사람과 짐승을 그 나라에서 끊는다 하자
비록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거기에 있을지라도
그들은 자기의 공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겔14:12-14)
☞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약5:10-11)
에스겔의 욥에 대한 이해는 계시적 영감의 이해요,
야고보의 욥에 대한 이해는 욥의 인내와 주께서 주신 결말에 대한 영감적 성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욥기서의 욥을 대적하였던 사단은 다윗을 격동시켜 인구조사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하였고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대적하다가 여호와의 책망을 받았습니다.
구약 시대 사단에 대한 이해는
욥기의 저자와 역대기와 스가랴의 말씀이 전부입니다.
에덴 동산의 하와를 미혹하였던 뱀에 대한 사단의 이해는
요한 계시록의 영감적 이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그들이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계12:7-9)
사단에 대한 구약의 성서적 이해는
요한 계시록 12장에 기록된 하늘의 전쟁, 이전의 상황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구약 시대 우상 숭배나 율법에 대한 범죄나 인간의 타락은
악한 영의 역사라는 개념은 전혀 없습니다.
심지어 아합시대 거짓 선지자 시드기야에게 임한 영은 "악한 영"의 개념이 아니라
시드기야에게 거짓 예언을 하게 하였던 천상의 한 영이었습니다.
☞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가 이스라엘 왕 아합을 꾀어 그에게 길르앗 라못에 올라가서 죽게 할까 하시니
하나는 이렇게 하겠다 하고 하나는 저렇게 하겠다 하였는데
한 영이 나와서 여호와 앞에 서서 말하되 내가 그를 꾀겠나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어떻게 하겠느냐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나가서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그의 모든 선지자들의 입에 있겠나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꾀겠고 또 이루리라 나가서 그리하라 하셨은즉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거짓말하는 영을 왕의 이 모든 선지자들의 입에 넣으셨고
또 여호와께서 왕에게 대하여 재앙을 말씀하셨나이다 하니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가 가까이 와서 미가야의 뺨을 치며 이르되
여호와의 영이 나를 떠나 어디로 가서 네게 말씀하더냐 하는지라(대하18:19-23)
시드기야는 자기에게 임한 거짓 영의 역사가
여호와의 영인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사단에 대한 바울의 이해는
종말론적인 사단의 역사에 대한 구원의 경륜을 이루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그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살후2:8-12)
☞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그러나 나는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나는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는 줄로 생각하노라(고후11:2-5)
☞ 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고후11:13-15)
아무튼 욥기서는
하나님 여호와의 역할과 사단의 역할과 욥과 그의 친구들의 역할이 뚜렷이 구별되며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주권의식의 정체성을 가졌습니다.
욥기서에 대한 적확한 이해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 뜻에 대한 올바른 지력을 갖게 할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하나님의 뜻에 대한 미신적 이해는
범신론적 기독교 신앙의 타락으로 샤마니즘의 굿당이 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강단의 미생은
교단과 신학교와 교회와 교인의 수 많큼 많은 범신론적 다신교의 하나님을 양산하였습니다.
욥기서의 역할 분담에 대한 영감적 성찰은
하나님의 말씀과 욥과 그의 친구들의 식견을 명확하게 구별하였습니다.
욥을 대적하는 사단의 농간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고난 신학의 주상절리는 성서지대의 종말론적인 대장관의 서사시가 되었습니다.
욥을 둘러싼 고난의 화로는
하늘의 뜻을 이루는 잠언을 쏟아내는 현자들의 해학으로 넘쳤습니다.
욥을 웃음거리로 만든 현자들의 해학은
학자의 붓과 그 혀를 가진 잠언의 경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언어의 연금술사들이 펼치는 현자의 돌, 그 옥석을 가리는 격론장은
하나님과 사단이 지켜보는 진실의 광장이 되었습니다.
욥의 가정에 불어닥친 환난의 쓰나미는
순식간에 일어난 재난이었습니다.
하루는 욥의 자녀들이 그 맏아들의 집에서 음식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실 때에
사환이 욥에게 와서 아뢰되 소는 밭을 갈고 나귀는 그 곁에서 풀을 먹는데
스바 사람이 갑자기 이르러 그것들을 빼앗고 칼로 종들을 죽였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하나님의 불이 하늘에서 떨어져서 양과 종들을 살라 버렸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갈대아 사람이 세 무리를 지어 갑자기 낙타에게 달려들어 그것을 빼앗으며 칼로 종들을 죽였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주인의 자녀들이 그들의 맏아들의 집에서 음식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시는데
거친 들에서 큰 바람이 와서 집 네 모퉁이를 치매 그 청년들 위에 무너지므로 그들이 죽었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한지라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욥1:13-22)
욥의 환경, 곧 그의 재산과 자녀는
환난의 쓰나미에 모두 휩쓸렸습니다.
욥의 1차 시련은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는
욥기 저자의 판정으로 욥의 승리였습니다.
욥기 자자는 하나님꼐서 인정하는 욥의 승리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록하였습니다.
☞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네가 나를 충동하여 까닭 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여전히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켰느니라(욥2:3)
이에 욥을 대적하는 사단의 농간은
욥의 환경이 아닌 욥의 몸을 쳐서 죽음의 고통을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욥의 병든 몸과 그의 아내요
욥의 아내마저 저주의 말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가죽으로 가죽을 바꾸오니
사람이 그의 모든 소유물로 자기의 생명을 바꾸올지라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뼈와 살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를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지니라
사탄이 이에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서 욥을 쳐서
그의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종기가 나게 한지라
욥이 재 가운데 앉아서 질그릇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고 있더니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라(욥2:3-10)
욥의 2차 시련은 저주의 말을 남긴 욥의 아내를 향한 답변으로 입술로 범죄하지 않는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는
욥의 말로 완전 승리하였습니다.
욥의 아내는 욥의 고난을 감당하지 못하고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하였고
욥은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고 하였습니다.
욥은 극한 고난 가운데서도 아내의 하나님을욕하고 죽으라는 저주의 말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는 말로 아내의 저주를 담아냈습니다.
욥과 그의 아내는
고난과 환난을 대하는 자세가 완전 달랐습니다.
고난과 환난에 대한 가장 낮은 단계의 이해는 욥의 아내요,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는 저주의 말입니다.
욥의 아내는 감당할 수 없는 환난과 고난으로
하나님과 욥의 은혜와 복을 배반하는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욥은 영혼을 파괴하는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는 폭언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는 말로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아내의 폭언을 감당할 수 있는 세상의 남편은 아무도 없을 것이며
욥의 환난과 고난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욕되게 하지 않았습니다.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는 고난에 대한 욥의 이해는
영적 노화순청의 경지에 올랐습니다.
욥의 친구들은 잠언의 지혜를 말하는 현자요,
필객의 붓과 학자의 혀를 가진 하늘의 뜻을 훈계하는 지식으로 가득합니다.
참으로 욥기의 저자는 욥과 그의 친구들은 물론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전지적 작가로서의 영감적 지혜로 충만하였습니다.
욥은 생일을 저주할 정도로
고난의 깊이를 죽음의 고통으로 느꼈습니다.
고난의 고통, 그 무게가 너무 커서
생일을 저주하였던 사람은 욥을 비롯하여 예레미야 선지자였습니다.
고난에 대한 욥과 그의 친구들의 이해는
세상에서 고난 당하는 모든 사람과 그 상황에 대한 완전한 분석이요, 또한 영적 처방이 될 것입니다.
☞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죽어 나오지 아니하였던가
어찌하여 내 어머니가 해산할 때에 내가 숨지지 아니하였던가
어찌하여 무릎이 나를 받았던가 어찌하여 내가 젖을 빨았던가 (욥3:11-12)
☞ 이러한 자는 죽기를 바라도 오지 아니하니
땅을 파고 숨긴 보배를 찾음보다 죽음을 구하는 것을 더하다가
무덤을 찾아 얻으면 심히 기뻐하고 즐거워하나니
하나님에게 둘러 싸여 길이 아득한 사람에게 어찌하여 빛을 주셨는고 (욥3:21-23)
데만 사람 엘리바스는 욥에게
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
내가 보건대 악을 밭 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나니
다 하나님의 입 기운에 멸망하고 그의 콧김에 사라지느니라고 하였습니다.(욥4:7-9 )
또한 사람이 어찌 하나님보다 의롭겠느냐
사람이 어찌 그 창조하신 이보다 깨끗하겠느냐
하나님은 그의 종이라도 그대로 믿지 아니하시며
그의 천사라도 미련하다 하시나니
하물며 흙 집에 살며 티끌로 터를 삼고
하루살이 앞에서라도 무너질 자이겠느냐고 하였습니다.(욥4:17-19)
뿐만 아니라 볼지어다 하나님께 징계 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징계를 업신여기지 말지니라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의 손으로 고치시나니
여섯 가지 환난에서 너를 구원하시며
일곱 가지 환난이라도 그 재앙이 네게 미치지 않게 하시며
기근 때에 죽음에서, 전쟁 때에 칼의 위협에서 너를 구원하실 터인즉
네가 혀의 채찍을 피하여 숨을 수가 있고 멸망이 올 때에도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욥5:17-21)
데만 사람 엘리바스의 말에 대해 욥은 대답하기를
나의 괴로움을 달아보며 나의 파멸을 저울 위에 모두 놓을 수 있다면
바다의 모래보다도 무거울 것이라
그러므로 나의 말이 경솔하였구나
전능자의 화살이 내게 박히매 나의 영이 그 독을 마셨나니
하나님의 두려움이 나를 엄습하여 치는구나고 하였습니다.(욥6:2-4)
욥은 엘리바스의 말을
전능자의 독화살로 받고 자신의 고통스런 말이 경솔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언제 너희에게 무엇을 달라고 말했더냐
나를 위하여 너희 재물을 선물로 달라고 하더냐
내가 언제 말하기를 원수의 손에서 나를 구원하라 하더냐
폭군의 손에서 나를 구원하라 하더냐
내게 가르쳐서 나의 허물된 것을 깨닫게 하라
내가 잠잠하리라
옳은 말이 어찌 그리 고통스러운고,
너희의 책망은 무엇을 책망함이냐
너희가 남의 말을 꾸짖을 생각을 하나
실망한 자의 말은 바람에 날아가느니라(욥6:22-26)
욥의 한 마디......
옳은 말이 어찌 그리 고통스러운고, 너희의 책망은 무엇을 책망함이냐는 말은
허물을 깨닫게 하는 채찍의 말씀이라도 번지가 틀렸다는 말입니다.
잠언서는 너는 이웃과 다투거든 변론만 하고 남의 은밀한 일은 누설하지 말라
듣는 자가 너를 꾸짖을 터이요 또 네게 대한 악평이 네게서 떠나지 아니할까 두려우니라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
슬기로운 자의 책망은 청종하는 귀에 금 고리와 정금 장식이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잠25:9-12)
데만 사람 엘리바스의 말은 옳은 말이지만
고아를 제비 뽑으며 너희 친구를 팔아 넘기는 말이요, 경우에 합당한 말이 아니라는 욥의 지적이었습니다.
수아 사람 빌닷이 대답하며 이르되
네가 어느 때까지 이런 말을 하겠으며 어느 때까지 네 입의 말이 거센 바람과 같겠는가
하나님이 어찌 정의를 굽게 하시겠으며
전능하신 이가 어찌 공의를 굽게 하시겠는가
네 자녀들이 주께 죄를 지었으므로 주께서 그들을 그 죄에 버려두셨나니
네가 만일 하나님을 찾으며 전능하신 이에게 간구하고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반드시 너를 돌보시고 네 의로운 처소를 평안하게 하실 것이라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8:1-7)
그러나 욥은 대답하기를
그가 폭풍으로 나를 치시고 까닭 없이 내 상처를 깊게 하시며
나를 숨쉬지 못하게 하시며 괴로움을 내게 채우시는구나
힘으로 말하면 그가 강하시고 심판으로 말하면 누가 그를 소환하겠느냐
가령 내가 의로울지라도 내 입이 나를 정죄하리니 가령 내가 온전할지라도 나를 정죄하시리라
나는 온전하다마는 내가 나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내 생명을 천히 여기는구나
일이 다 같은 것이라 그러므로 나는 말하기를 하나님이 온전한 자나 악한 자나 멸망시키신다 하나니
갑자기 재난이 닥쳐 죽을지라도 무죄한 자의 절망도 그가 비웃으시리라고 하였습니다.(욥9:17-23)
욥은 자신의 고난에 비추어 볼 때
하나님은 무죄한 자의 절망도 비웃으시고 온전한 자나 악한 자나 멸망시키시는 분이요
그렇다고 누가 하나님보다 더 힘이 있어 불공평한 하나님을 소환하겠느냐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욥의 이해는 삐칠대로 삐쳐서
내가 눈 녹은 물로 몸을 씻고 잿물로 손을 깨끗하게 할지라도
주께서 나를 개천에 빠지게 하시리니 내 옷이라도 나를 싫어하리이다고 하였습니다.(욥9:30-31)
하나님에 대한 욥의 최종 이해는
하나님은 나처럼 사람이 아니신즉 내가 그에게 대답할 수 없으며 함께 들어가 재판을 할 수도 없고
우리 사이에 손을 얹을 판결자도 없구나고 하였습니다.(욥9:32-33)
할수만 있으면 선한자에게 고난을 주시는 하나님을 소환이라도 해서
재판을 하고 싶다는 욥의 섬경을 밝혔습니다.
욥은 기도하면서도
내가 악하면 화가 있을 것이오며 내가 의로울지라도 머리를 들지 못하는 것은
내 속에 부끄러움이 가득하고 내 환난을 내 눈이 보기 때문이니이다고 하였습니다.(욥10:15)
고개를 들면 젊은 사자처럼 사냥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욥의 이해는
환난을 통한 하나님의 독화살을 맞은 고통에 몸부림쳤습니다.
나아마 사람 소발이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말에 의하면 내 도는 정결하고 나는 주께서 보시기에 깨끗하다 하는구나
하나님은 말씀을 내시며 너를 향하여 입을 여시고
지혜의 오묘함으로 네게 보이시기를 원하노니 이는 그의 지식이 광대하심이라
하나님께서 너로 하여금 너의 죄를 잊게 하여 주셨음을 알라
네가 하나님의 오묘함을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완전히 알겠느냐고 하였습니다.(욥11:4-7)
욥은 대답하기를 나도 너희 같이 생각이 있어 너희만 못하지 아니하고
그같은 일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
하나님께 불러 아뢰어 들으심을 입은 내가 이웃에게 웃음거리가 되었으니
의롭고 온전한 자가 조롱거리가 되었구나
평안한 자의 마음은 재앙을 멸시하나
재앙이 실족하는 자를 기다리는구나
강도의 장막은 형통하고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는 자는 평안하니
하나님이 그의 손에 후히 주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욥12:3-6)
참으로 강도의 장막이 형통하고 평안한 것으로 실족한 욥은
시편 73편 기자의 악인의 향통을 보고 실족한 것과 같습니다.
☞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들에게는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없나니
그러므로 교만이 그들의 목걸이요 강포가 그들의 옷이며
살찜으로 그들의 눈이 솟아나며 그들의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많으며
그들은 능욕하며 악하게 말하며 높은 데서 거만하게 말하며
그들의 입은 하늘에 두고 그들의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고 하였습니다.(시73:3-9)
그러면서 시편 73편 기자는
나는 종일 재난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벌을 받았도다
내가 만일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그들처럼 말하리라 하였더라면
나는 주의 아들들의 세대에 대하여 악행을 행하였으리이다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그것이 내게 심한 고통이 되었더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고 하였습니다.(시73:14-17)
욥은 시편 73편 시인의 심정으로 나의 죄악이 얼마나 많으니이까 나의 허물과 죄를 내게 알게 하옵소서
주께서 어찌하여 얼굴을 가리시고 나를 주의 원수로 여기시나이까라고 기도하였습니다.(욥13:2324)
여기까지 욥기서의 서막과 1막 1장, 2장, 3장이었습니다.
욥기서 15장에서 21장까지는 제 2막이요
욥기서 22장에서 37장까지 제 3막이요
욥기서 38장에서 42장까지 제 4막입니다.
욥기서의 깊은 묵상은
고난받는 인생의 가치를 하나님 앞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