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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원결의(桃園結義)
도원에서 의형제를 맺다는 뜻으로, 의형제를 맺음 또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사욕을 버리고 목적을 향해 합심할 것을 결의함을 이르는 말이다.
桃 : 복숭아 도(木/6)
園 : 동산 원(囗/10)
結 : 맺을 결(糹/6)
義 : 의리 의(羊/7)
(유의어)
결의형제(結義兄弟)
출전 : 나관중(羅貫中)의 삼국연의(三國演義) 第001回
중국 원(元)과 명(明)의 교체기 때의 사람인 나관중(羅貫中)이 지은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서 유비, 관우, 장비가 도원에서 의형제를 맺었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된 말로, 뜻이 맞은 사람끼리 하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행동을 같이 할 것을 약속한다는 뜻이다.
삼국지연의는 진수(陳壽)의 삼국지에 서술된 위(魏), 촉(蜀), 오(吳) 3국의 역사를 바탕으로 전승되어 온 이야기들을 나관중이 이야기체의 장편소설로 재구성한 것이다.
그는 후한(後漢) 황실의 혈통을 계승했다는 유비(劉備)를 중심으로 삼국의 분립과 대립의 역사를 서술하였는데, 그래서 유비가 관우(關羽), 장비(張飛)와 함께 도원(桃園)에서 결의하여 의형제(義兄弟)를 맺은 내용으로 이야기의 첫 머리로 삼고 있다.
이는 진수(陳壽)의 삼국지(三國志)에는 나타나지 않은 사실로 이야기의 전승(傳乘) 과정에서 허구로 재구성된 것이다.
나관중(羅貫中)이 도원결의(桃園結義)를 이야기의 첫 머리로 삼은 것은 국가와 민족의 정통 회복이라는 대의(大義)를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에는 청(淸) 초기에 모종강(毛宗崗)이 다듬은 모본(毛本)이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의 정본(定本)으로 여겨지는데, 이를 기초로 도원결의(桃園結義)와 관련된 이야기를 간추려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후한(後漢) 말 환관의 발호(跋扈)로 정치가 어지럽자 천하 인심이 날로 흉흉해지고 사방에서 도적들이 벌떼처럼 일어났다.
장각(張角)이 남화노선(南華老仙)에게 세 권의 천서(天瑞)를 얻어 사람들의 병을 고쳐 주면서 스스로를 대현량사(大賢良師)라 했다.
장각(張角)이 두 동생과 함께 난(亂)을 일으키니 사방의 백성들이 모두 누런 헝겊으로 머리를 싸매고 장각을 따라서 일어났다.
장각의 군대가 유주(幽州) 땅까지 범해 들어오자 유주 태수 유언(劉焉)은 교위(校尉) 추정(雛靖)의 말을 들어 의병을 모집하는 방문(榜文)을 내 걸었다. 이 방문이 탁현(涿縣)으로 들어가 마침내 그 고을의 한 영웅을 끌어내게 되었다.
한(漢) 경제(景帝)의 후손인 유비(劉備)는 어려서 부친을 여의고 모친을 지성으로 섬겼는데 집이 가난해서 미투리를 삼고 자리를 치는 것으로 생계를 삼았다. 유언이 방(枋)을 내어 군사를 모집할 때 유비의 나이는 이미 스물여덟이었다.
이 날 유비가 방문(榜文)을 보고 탄식을 하고 있는데 장비가 나타나 대장부가 나라를 위해서 힘을 내려고 하지 않고 어째서 한숨만 쉬고 있느냐고 꾸짖었다.
유비가 도적을 무찔러 백성을 편안히 할 생각은 간절하나 힘이 없어서 장탄식(長歎息)을 한다고 하자, 장비는 자신의 재산을 팔아 고을 안의 용사들을 모아 함께 큰 일을 하자고 했다.
유비가 크게 기뻐하며 장비와 함께 마을 주막에 가서 술을 마시고 있는데, 관우가 주막으로 들어와 군사 모집에 응해 성으로 들어가는 길이라며 술을 독촉했다.
유비가 자리로 불러 마음에 있는 바를 이야기 했더니 관우도 크게 기뻐했고, 세 사람은 함께 장비의 집으로 갔다.
큰 일을 의논하는 자리에서 장비가 집 뒤의 복숭아 동산에 꽃이 한창이니 내일 이 동산에서 천지에 제(祭)를 지내고 셋이 의형제를 맺어 한마음으로 협력하기로 한 뒤에 일을 도모하자고 하였다.
유비와 관우가 동의하여 다음날 도원(桃園)에 검은 소(黑牛)와 흰 말(白馬)과 지전(紙錢) 등 제물을 차려 놓고 제(祭)를 지내며 맹세했다. '유비, 관우, 장비가 비록 성(姓)은 다르오나 이미 의(義)를 맺어 형제가 되었으니, 마음과 힘을 합해 곤란한 사람들을 도와 위로는 나라에 보답하고 아래로는 백성을 편안케 하려 하고, 한해 한달 한날에 태어나지 못했어도 한해 한달 한날에 죽기를 원하니, 하늘과 땅의 신령께서는 굽어 살펴 의리를 저버리고 은혜를 잊는 자가 있다면 하늘과 사람이 함께 죽이소서.'
맹세를 마치고 유비가 형이 되고, 관우가 둘째, 장비가 셋째가 되었다. 제(祭)를 마치고 소를 잡고 술을 내어 고을 안의 용사들을 불러 모으니 300명이었다. 이 날 도원에서 다들 취하도록 술을 마시며 함께 즐겼다.
유비, 관우, 장비가 도원에서 결의를 한 이 이야기에서 도원결의(桃園結義)는 의형제를 맺거나 뜻이 맞는 사람들이 사욕을 버리고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합심할 것을 결의하는 일을 나타내는 말로 널리 쓰이게 되었다.
이후 30여년간, 세 사람은 비바람 속에서 같은 배를 타고, 간담상조(肝膽相照)하면서 마침내 촉한(蜀漢)이라는 나라를 일구어 냈다. 이것이 바로 도원결의(桃園結義)이다.
위 내용은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의 제1회에 나오는 내용이고, 수백년 동안 사람들이 즐겨 읽은 내용이다.
나중에 중국사회에서 성(姓)이 다른 사람들끼리 의형제를 맺는 풍속이 생겨나고, 의결금란(義結金蘭)이라는 맹세어에는 도원결의(桃園結義)에서 했다는 두 마디 말을 절대 빠뜨리지 않았다.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에 태어날 것을 바라지는 않고,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에 죽기를 원할 뿐이다.'
이로써 볼 때, 유비, 관우, 장비가 생사를 같이 하기로 하는 형제의 우의를 맺었다는 것은 중국인의 마음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실제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이야기의 전승(傳承)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지만,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의 영향 때문에 제문(祭文)의 내용이 중국인들 사이에서 서약의 모범으로 널리 쓰이기도 했다.
그러나, 역사상 정말로 도원결의(桃園結義)가 있었던가?
삼국지연의에는 관우가 유비를 찾아가는 것을 '형을 찾아간다'고 하였고, 이는 도원삼결의(桃園三結義)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소설가에게 있어서 반드시 역사적 사실만을 근거로 쓰지는 않는다. 하물며 70만자에 이르는 삼국지연의는 '70%는 사실이고, 30%는 허구이다(七實三虛)'는 말이 있는데, 도원결의는 사실에 속하는가? 허구에 속하는가?
첫째, 어떤 사람이 관우의 생몰연대에 대하여 고증한 바가 있다. 그리고, 관우의 나이가 유비보다 많으므로, 만일 진짜 도원결의가 있었고 나이순으로 의형제를 정했다면, 관우가 큰형이 되었어야 할 것이라는 것이다.
사료(史料)의 기재에 의하면 관우는 건안 24년(219년)에 사망하였고, 언제 태어났는지는 불명확하다. 원(元)나라 때의 호기(胡琦)라는 학자가 관우가 언제 태어났는지를 고증한 바 있는데, 관우는 개략 한나라 연희 2년(159년)에 태어났다는 것이고, 유비보다 2살이 많았다는 것이다.
청(淸)나라 강희제(康熙帝)때, 어떤 사람이 관우의 고향인 해주(解州; 지금의 산서성 운성시)에서 우물을 파다가, 관우 할아버지의 묘비를 발견했는데, 그곳에 관우의 집안내력이 기재되어 있었다. 당시 주단(朱旦)이라는 관리가 이를 근거로 관후조묘비기(關侯祖墓碑記)를 썼다.
이 글에 의하면 관우는 한(漢)나라 연희 3년(160년)에 태어났다는 것이다. 위의 두 가지중 어느 설(說)에 의하더라도 관우는 유비보다 나이가 많다. 삼국지연의의 도원결의에 관한 내용과는 서로 부합하지 않는다.
둘째, 삼국지(三國志) 관우전(關羽傳)의 기록에 의하면, 유비의 고향에서 무리를 끌어 모을 때, 관우와 장비는 이미 그의 수하로 들어가 있었다.
유비는 나중에 평원상(平原相)이 되는데, 두 사람과 '잠을 잘 대는 같은 침대에서 자고, 가깝기가 형제와 같았다(寢則同床, 恩若兄弟). 여러 사람이 모여 있을 때에는 시립하여 하루종일 있었다(稠人廣坐侍立終日)'는 내용이 나오는데,
여기서 '잠을 잘 대는 같은 침대에서 자고, 가깝기가 형제와 같았다(寢則同床, 恩若兄弟)'는 내용은 세 사람의 관계가 밀접했다는 것을 표현해 주고 아마도 도원결의를 유추해 낸 근거가 될지 모르겠지만 형제와 같다는 것은 형제는 아니라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관우와 장비는 더 많은 시간을 '여러 사람이 모여 있을 때에는 시립하여 하루종일 있었다(稠人廣坐侍立終日)'는 내용으로 봐서는 오히려 군신(君臣) 관계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서주를 잃고, 관우가 붙잡혔을 때, 조조(曹操)는 사람을 보내서 그에게 투항을 권유했다. 이때 관우는 이렇게 만한다. '나는 유장군(劉將軍)의 두터운 은혜를 받아서 함께 죽기로 맹세했다. 그러므로 그를 배신할 수 없다.'
이 내용으로 보더라도 관우는 그가 의형(義兄)인 유비를 위하여 동생으로서 의리를 지킨다는 것이 아니라, 주군과 신하의 관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나중에 관우가 동오에 의하여 피살된 후, 위문제(魏文帝) 조비(曹丕)가 여러 신하들에게, '유비가 병사를 일으켜 오를 칠 것인가? 관우를 위하여 복수를 해줄 것인가?'고 하였을 때,
시중인 유엽(劉曄)은, '유비와 관우는 의리상으로는 군신이나, 은혜상으로는 부자와 같습니다. 관우가 살해되었는데, 유비가 만일 그를 위해 복수해 주지 않는다면, 관우의 은의(恩義)에 대하여 시종일관 하지 못하는 것이 됩니다'고 하였다. 삼국지(三國志) 유엽전(劉曄傳)에 내용이 나온다.
여기에서도 관우와 유비는 의리상은 군신, 은혜상은 부자(父子)관계로 묘사하였고, 의형제로 묘사되어 있지는 않다.
이상의 점에 비추어 보면, 도원결의(桃園結義)는 역사적인 근거가 그다지 있는 것은 아니므로 전부 믿을 수 없다. 민간에서 도원결의의 전설이 있게 된 것은 아마도 사료에서 은약형제(隱約兄弟)라는 문구가 있었기 때문이고, 나중의 농민반란의 경우에 대비해서 상상을 통하여 도출해 낸 것일 것이다.
⏹ 도원결의(桃園結義)
뜻이 맞은 사람끼리 하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행동을 같이 할 것을 약속한다는 뜻으로, 유비(劉備), 관우(關羽), 장비(張飛)가 도원(桃園)에서 의형제를 맺었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된 말이다.
한(漢)나라 말기 영제(靈帝)는 소위 말하는 환관(宦官) 십상시(十常侍)에 둘러 싸여 나라가 혼란해지고, 인심(人心)은 반란을 일으켜야 한다고 했으며 각지에서 도적이 벌떼처럼 일어났다.
이때 거룩군(鉅鹿郡)에 장각(張角), 장보(張寶), 장량(張梁)의 3인이 도교(道敎)의 책을 읽고 세력을 모았다. 거사를 모의하다가 발각이 나자 장각은 천공장군(天公將軍), 장보는 지공장군(地公將軍), 장량은 인공장군(人公將軍)이라 칭하고 황기(黃旗)를 들고 거병을 했다.
이에 호응하여 머리에 황건(黃巾)을 매고 가담한 자가 40~50만에 이르렀다. 이를 세상에서는 황건적(黃巾賊)이라 불렀다.
장각(張角)의 일군이 유주(幽州)경계를 침범하자 유주태수 유언(劉焉)이 의병을 모집(榜文)했다. 방문((榜文)이 탁현(涿縣)에 이르렀고, 이를 보고 길게 탄식하는 사람이 있었다.
신장은 칠척오촌이요(身長七尺五寸)
두 귓불은 어깨에 닿으며(兩耳垂肩)
두 손은 무릎 밑까지 내려오며(雙手過膝)
눈은 자신의 귀를 돌아보며( 目自顧耳)
얼굴은 관옥과 같고(面如冠玉)
입술은 연지를 바른 것 같았다(唇如塗脂).
중산정왕(中山靖王) 유승(劉勝)의 후예로서 한(漢)나라 경제각하(景帝閣下)의 현손(玄孫)인 유비(劉備)로 자(字)는 현덕(玄德)이다.
유비(劉備)가 방문(榜文)을 보고 탄식할 때 뒤에서 한 사람이 큰 소리로 물었다. '대장부가 국가를 위해 힘쓰려 하지 않고 무슨 일로 탄식만 합니까(大丈夫不與國家出力, 何故長嘆)?'
현덕이 그를 돌아보았다. 신장은 팔척이요(身長八尺), 표범머리에 고리눈이고(豹頭環眼), 제비턱에 범의 수염이며(燕頷虎鬚), 목소리는 우레 같고(聲若巨雷), 기세는 달리는 말과 같았다(勢如奔馬).
유비는 그가 범상한 모습이 아니어서 이름을 묻자 대답했다. '나는 장비(張飛)라고 하는데 자는 익덕(翼德)이고 대대로 탁군(涿郡)에 살았소. 장원(莊院)과 전답도 제법 있지만, 술과 돼지고기를 팔면서 오로지 천하의 호걸과 사귀기를 좋아합니다. 마침 공(公)이 방문을 보며 탄식하고 있어 이유를 물어본 것이오.'
유비가 말했다. '나는 근본이 한실(漢室; 한나라 황실) 종친으로 유비라고 합니다. 지금 황건적이 난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고 적을 격파하여 백성을 편안하게 살게 하고 싶은 뜻이 있으나 능력이 없음을 한탄하고 있었소.'
장비가 말했다. '나한데 자금이 좀 있는데 향리(鄕里)의 용사를 모집하여 공과 같이 대사를 일으키면 어떻겠습니까?'
유비는 몹시 기뻐하며 장비와 이야기를 더하려고 주막으로 함께 갔다. 장비와 한참 술을 마시며 이야기 하는데, 한 사람의 대한(大漢)이 주막으로 들어와 앉으며 말했다. '빨리 술 가져 오너라. 마시고 나서 군사를 모집하는 성으로 들어갈 것이다.'
유비가 이 사람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신장은 구척이요(身長九尺), 수염은 2척이며(髯長二尺), 얼굴은 잘 익은 대추 빛이고(面如重棗), 입술은 연지를 바른 듯하며(唇如塗脂), 봉황새의 눈에(丹鳳眼), 누에 눈썹으로(臥蠶眉), 모습이 당당하며(相貌堂堂), 위풍이 늠름했다(威風凜凜).
유비가 동석하고자 청해 성명을 묻자 대답했다. '나는 관우(關羽)라 하며 자는 장생(長生)으로 했다가 후에 운장(雲長)으로 고친 하동(河東) 해량(解良) 사람입니다. 고향에서 호족(豪族)이 세력을 믿고 사람을 능멸하기에 그를 죽이고 도망하여 어렵게 강호를 떠 돈지 5~6년 되었습니다. 지금 군사를 모집하여 황건적을 친다는 말을 듣고 일부러 응모하러 갑니다.'
장비가 제안했다. '내 장원 뒤에 도원(桃園)이 있는데 복사꽃이 한창 만발했습니다. 내일 도원에서 제사를 지내고 천지에 고한 후, 우리 세 사람이 형제결의를 하고 한마음으로 협력하여 대사를 도모합니다.' 유비와 관우가 일제히 '좋다'고 했다.
다음 날 도원에서 흑우(黑牛)와 백마(白馬)등 제물을 준비하여 세 사람이 향을 피우고 두 번 절한 뒤 맹세했다. '유비, 관우, 장비는 비록 성이 다를지라도 이미 결의하여 형제가 되었습니다.
한마음으로 힘을 합쳐(同心協力), 곤란한 사람을 구하고 위급한 사람을 도우며(救困扶危), 위로는 국가에 보답하고(上報國家), 아래로는 백성을 편안히 하겠습니다(下安黎庶).
한 날 한 시에 태어났기를 바라지 않고 오로지 한 날 한 시에 죽기를 원합니다. 하늘이여 땅이여 이 마음을 진실히 살피시어 배은망덕한 자는 하늘과 사람이 같이 그를 주살하소서!'
不求同年同月同日生,
只願同年同月同日死.
皇天后土, 實鑒此心.
背義忘恩, 天人共戮.
맹세가 끝난 뒤 서로 절하며 현덕을 형으로 하고 다음은 관우, 장비는 동생이 되었다.
⏹ 도원결의(桃園結義)
뜻이 맞는 사람끼리 같은 목적을 위해 행동할 것을 약속함
후한 영제 때 10명의 환관들이 황제를 등에 업고 권력을 마음대로 휘둘렀습니다. 그들은 권력에 방해가 되는 사람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죄를 뒤집어 씌워 죽였습니다.
그러자 누구하나 바른 말을 하는 사람이 없었고 대항하는 사람이 없게 되자 그들의 세력은 더욱 막강해졌고 횡포는 날로 심해졌습니다.
나라는 어지러워지고 거기다가 흉년이 들어 굶어죽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았습니다. 먹고 살기 힘든 백성들은 어쩔 수 없이 저마다 손에 무기를 쥐고 도적이 되었습니다.
그중 황건적의 세력이 가장 막강하여 그 수가 무려 50만 명에 달했습니다. 황건적의 군대가 유주까지 쳐들어 오자 태수는 이를 진압하기 위해 의용군을 모집하는 방문을 내걸었습니다.
격문을 본 유비는 발길을 멈추고 나라 일을 걱정하며 길게 한숨을 쉬었습니다. 유비는 평소 넓은 세상으로 나가서 큰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마음만 앞설 뿐 가진 것도 따르는 군사도 없었습니다.
그때 유비 곁으로 건장한 사람이 다가와 말했습니다. '왜 나라를 위해 싸울 생각은 하시지 않고 한숨만 내 쉬고 계십니까?' 고 뒤쪽에서 외쳤습니다.
유비가 돌아보니 키가 건장한 사내가 눈을 두리번거리며 자기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도적을 무찔러 백성을 편안하게 할 생각은 간절하나 힘이 없어 분하고 원통합니다.'
유비가 자신을 한탄하며 세상일을 말하자 두 사람은 서로가 큰 뜻이 있음을 알아차리고 인사를 교환했습니다. 그때 유비의 나이 24살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주막으로 들러 나라 일을 걱정하고 있는데 범상치 않은 한 사나이가 주막 안으로 들어 왔습니다. 기골이 장대한 모습으로 인물이 남달리 보이는 지라 자리를 같이 하기를 청하고 서로 인사를 나누었는데 그가 바로 운장 관우였습니다.
이들이 서로 술을 마시며 이야기 하는 동안 모두가 마음이 같음을 알고 천하를 위해 함께 손잡고 뜻을 펼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하여 장비가 자기 집 뒤에 복숭아 동산에 꽃이 한창 피어있으니 내일 만나 제를 지내고 의형제를 맺어 한 마음으로 천하를 위해 일을 하자고 하니 모두 기뻐했습니다.
다음날 유비, 관우, 장비는 검은 소와 흰말과 제수용품을 차려 놓고 복숭아 동산에서 제를 지내며 형제의 결의를 하였습니다(桃園結義).
세 사람이 향을 피우며 두 번 절하면서 천지신명에게 고하였습니다. '유비와 관우, 장비가 비록 성은 다르나 의를 맺어 형제가 되었습니다. 마음을 하나로 하고 서로 힘을 합하여 어려운 사람을 돕고 위로는 나라에 보답하며 아래로는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자 합니다.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에 태어나지는 못했지만 같은 달, 같은 날에 죽기를 원합니다. 의리를 저버리고 은혜를 잊는 자가 있다면 하늘과 사람이 대신하여 죽여주소서.'
그후 세 사람은 친형제 보다 진한 우정으로 고장의 젊은이 300명을 이끌고 황건적 토벌을 시작으로 제갈공명을 맞아들인 유비는 촉나라를 세우고 위나라의 조조, 오나라의 손권과 함께 천하를 삼분하여 삼국시대를 이루었습니다.
그로부터 의형제를 맺거나 어떤 큰 일을 이루어 내기 위해서 의리로 뭉치는 것을 가리킬 때 '도원결의(桃園結義)'라는 말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명심보감에 '의리 없는 친구는 사귀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의리는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로 친구 사이의 깊은 우정을 말합니다.
진정한 우정은 친구 간에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며 믿음으로 이루어집니다. 친구의 잘못이 있을 때 일깨워 주고 바른 길로 나 갈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합니다.
공자는 친구를 사귐에 정직한 친구, 성실한 친구, 견문이 넓은 친구는 유익한 친구이고, 마음이 바르지 못한 친구, 아첨하는 친구, 말만 앞세우는 친구는 손해되는 벗이라고 했습니다.
정직한 친구는 옳고 그름을 잘 판단하는 친구를 말하며, 성실한 친구는 신뢰를 주는 친구이고, 견문이 넓은 친구는 보고 들은 것이 많아 알지 못하는 것을 가르쳐 주는 친구를 말합니다. 그러나 욕심이 많고 의리에 맞지 않게 행동하는 사람은 멀리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뜻이 맞는 친구를 얻는 것은 세상의 어떤 것보다 소중하고 행복한 일입니다. '도원결의'와 같은 진정한 친구를 사귀어 보세요.
도원결의(桃園結義)
복숭아밭에서 형제의 의를 맺다.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고 선비의 지조를 지키며 평생을 절의와 도학을 겸비한 학자로 강의(剛毅)와 직언(直言)으로 일관된 삶을 살았던 조헌(趙憲 1544년, 중종)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나라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다. 1592년 5월, 곳곳에 격문을 띄우고 의병을 모았다. 조헌의 인품과 격문에 감동한 수많은 의병이 집결하여 차령 전투에서 왜군을 크게 물리쳤다.
그는 계속 격문을 통해 의병을 모아 8월 1일에는 승병장 영규가 이끄는 승군 500여 명과 같이 청주성을 탈환했다. 이어 왜군이 충청도와 전라도를 점령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금산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들의 전공을 시기하는 충청도 순찰사 윤국형과 관군의 방해로 의병의 상당수가 흩어지고 700여 명만 남게 되었다. 1592년 8월 18일 조헌은 승장 영규와 함께 금산에서 70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왜장 고바야가와 군대와 전투를 벌였으나, 모두 전사했다. 이처럼 평소에는 다른 길을 걸었지만, 난세에 정의를 위해 분연히 일어서 의기투합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권력과 공명에 눈이 멀어 그들을 방해한 자들도 있었다.
그렇다. 역사의 현장에는 항상 도적과 의인, 역적과 충신이 공존한다. 특히 세상이 어지러울 때는 교묘한 수단으로 권력을 얻고 이권을 챙기려는 사람이 많은가 하면, 그것들에 분개하여 온몸을 불사르는 의인도 많았다. 평소에는 고고하게 지조를 지키며 칩거하다가도 어지러운 세상을 구하기 위해 분연히 몸을 불사르는 선비도 많았다. 임진왜란 때 자기만 살겠다고 피난 가는 관리와 왕이 있었던가 하면 백성과 나라를 지키겠다고 의병으로 일어선 분들도 많았다. 구한말 나라가 어지러울 때 매국을 하여 자기만 호의 호식한 역적이 있는가 하면 수많은 열사와 의사들이 있었다. 오늘의 우리가 그래도 지금처럼 평화롭게 살 수 있음은 혼돈의 시기에 의롭게 일어난 분들이 많았기에 가능했던 것 아닌가? 그런데 지금은 이 난세에 의인들이 얼마나 될까?
강성했던 중국의 한나라는 말기에 이르러 십상시(十常侍)들이 득세하여 나라가 어지러웠다. 특히 주색에 빠져 있던 환제는 환관들만 두둔하고 어진 신하들을 옥에 가두고 처형하는 바람에 나라는 대혼란에 빠졌다. 관리들은 수탈을 일삼고 백성의 삶은 도탄에 빠졌다. 세상이 혼란스러울 때는 주술이 판을 치고 요술이 세상을 더 어지럽게 만든다.
십상시들의 득세로 나라가 도탄에 빠져 있을 때 거룩군(鋸鹿郡)에 장각(張角), 장보(張寶) 장량(張梁) 삼형제가 살았다. 그 맏형인 장각은 매우 뛰어난 수재였다. 그러나 과거에 늘 낙방하였다. 과거에 합격하려면 재물과 연줄로 손을 써야 하는데 그럴 길이 없으니 낙방할 수밖에 없었다. 하여 그는 세상을 비관하며 산에 들어가 약초를 캐면서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신선 같은 노인을 만나 책 한 권을 얻었는데 그것이 바로 태평 요술(太平要術)이었다. 노인은 장각에게 태평 요술을 건네며 말했다. “너는 이 책을 읽고 하늘의 뜻을 받들어 세상을 바꾸고 널리 세상 사람들을 구하여라. 그러나 사악한 마음으로 세상에 나아가 이 책을 통해 얻은 지식을 활용한다면 너에게 큰 재앙이 닥치리라.”
그러나 장각은 그 책을 읽고 나서 그 신묘한 술책에 감동하면서 천하를 거머쥘 생각에 빠졌다. 그는 스스로 도인의 행세를 하면서 세상을 기만해 갔다. 기원전 184년(영제 원년) 백성들의 삶이 도탄에 빠졌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국에 전염병이 돌았다. 장각은 부적을 태운 재를 탄 물을 병을 고치는 신묘한 물이라고 하면서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상하게도 백성들은 그 요술에 빠지기 시작했다.
이후부터 그는 자신을 대현랑사(大賢良師: 위대한 스승)라 칭하며 제자를 모았다. 모여진 5백여 명의 제자들을 사방으로 보내 주문을 외우게 하고 부적을 나누어 주게 했다. 따르는 무리는 점점 늘어났다. 그는 관할 구역을 대방과 소방으로 구분하여 36방으로 나누었다. 대방에는 1만 명이 넘었고 소방에는 7천 명이나 되었다. 그리고 각 방에는 두목을 두어 그들을 장군이라 칭하며 우대하였다.
장각은 꿈에 부풀었다. 장각은 “푸른 하늘은 이미 죽고 누런 하늘이 마땅히 서리라(蒼天已死 黃 天격當立). 갑자년에 천하가 대길하리라(歲在甲子 天下大吉)”라는 격문을 각지에 붙이도록 하고 백성의 봉기를 조장했다. 푸른 하늘은 천자의 상징이다. 정상적인 해는 푸른 하늘에 떠 있게 마련이다. 그게 죽었으니 세상이 뒤집힌 것이다. 누런 하늘은 민중의 봉기 즉 반란이다. 그리고 그 누런 하늘을 상징하는 누군가 왕이 된다, 그가 바로 장각이다.
그들은 머리에 누런 두건을 두르고 곳곳에서 봉기했다. 이른바 황건적의 난이다. 그 반란 세력은 날이 갈수록 세력이 강해져서 황제의 군대로는 진압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곳곳에서 장수들이 나타나 난을 진압하기 위해 의기투합했다. 그들은 초기에는 난의 진압에 몰두하였으나 날이 갈수록 천하를 놓고 다투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한나라는 망하고 삼국시대가 열렸다.
삼국시대의 최종 맹주는 유비와 조조였다. 그리고 최종 승자는 유비였다. 유비는 한나라 중산정왕(中山靖王) 유승(劉勝)의 후손이다. 그는 한나라 황제인 경제의 먼 손자로 이름은 비(備)였고 자(字)는 현덕(玄德)이었다. 유승의 아들 유정은 한무제 때 탁록(涿鹿) 지방의 말직을 얻었으나 황제의 사당에 올릴 제주를 마련하지 않은 죄로 관직을 박탈당하고 봉지를 빼앗겨 대대로 가난하게 살았다.
유비의 아버지 유홍(劉弘)은 간신히 말단 관직을 얻었으나 일찍 죽는 바람에 유비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가난하게 살았다. 그는 짚신과 돗자리를 만들어 팔아 생계를 꾸렸다. 그는 열다섯이 되어서야 겨우 공부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정현과 노식 등 대학자 밑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고 그 바람에 공손찬과 어울려 벗이 되었다. 그러던 차에 황건적의 난이 일어났다.
스물여덟 살이나 된 유비는 황건적의 난을 평정할 의병을 모집한다는 방문(榜文) 앞에서 한숨을 쉬고 있었다. 그때 등 뒤에서 유비를 향해 “사나이로 태어나 어찌 나라를 위해 일어설 생각은 하지 않고 탄식만 하고 있소”하고 소리치는 사람이 있었다. 놀라 뒤를 돌아보니 기골이 장대한 사나이가 험상궂은 얼굴로 서 있었다. 대뜸 보아도 비범한 인물이었다.
유비는 속으로 ‘호걸이로다’하고 중얼거리며 그 사나이에게 이름을 물었다. “나는 장비(張飛)라는 사람이오. 자는 익덕(翼德)이지요. 조상 대대로 탁현에 살아왔으며 집과 땅도 조금 있소. 비록 돼지를 잡고 술을 팔며 살고 있지만, 천하의 호걸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오.”
유비가 말했다. “나는 유비라 하오. 본래 한(漢)나라 종친인데 황건적이 난을 진압하여 나라를 안정시키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자 하나 내 능력이 그에 미치지 못해 탄식만 하고 있었소.”
둘은 의기투합하여 사람을 모으기로 하고 주막에 자리를 잡았는데 아주 건장하고 기골이 장대한 사내가 수레를 밀고 오다가 멈추고 주막에 들면서 주모에게 ‘의병을 모집한다는데 빨리 가야 한다며 술 한잔을 달라’고 소리쳤다. 유비가 그를 바라보니 9척의 키에 수염이 2척은 되었다. 마치 봉황의 눈에 누에 눈썹을 가진 것처럼 위풍당당했다.
유비는 그 모습에 매료되어 이름을 물었다. “나는 관우(關羽)라 하오. 자는 원래 장생(長生)이었지만, 지금은 운장(雲長)이라 하오. 하동(河東)의 해량(海良)이 고향이지요. 그곳에 세도가 한 사람이 너무나 사람들을 능멸하여 내가 그를 죽였지요. 그 후로 강호를 떠돌며 6년째 피해 다녔는데 마침 이곳에서 도적을 치기 위해 의병을 모집한다기에 달려왔소.”
유비가 자기의 뜻을 관우에게 들려주니 관우도 매우 기뻐했다. 세 사람은 뜻이 맞아 의기투합했다. 이때 장비가 기뻐하며 말했다. “우리 집 뒤에 복숭아밭(桃園)이 있는데 지금 복숭아꽃이 만발했습니다. 내일 그곳에서 천지신명께 제사를 올리고 우리 셋이 형제의 의를 맺는다면 가히 천하를 도모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비와 관우도 매우 기뻐하며 동의했다. 다음날 세 사람은 장비의 집 뒤 도원에 모여 검은 소와 백마를 잡아 제물로 올리고 분향하며 두 번 절하고 맹세문을 낭독했다. “가슴 깊이 유념 하나이다. 우리 유비, 관우, 장비는 비록 같은 성을 가진 형제는 아닐지라도 형제의 의를 맺어 마음과 힘을 합쳐 백성을 곤고함에서 건지고 위기를 물리쳐 위로는 나라에 보답하고 아래로는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자 합니다. 저희는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에 태어날 것을 바라지는 않았으나, 부디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에 죽게 하옵소서. 천지신명께서는 저희의 뜻을 살피시어 만약 저희가 서로 간에 의리와 은혜를 저버리는 일이 있다면, 하늘과 백성이 우리를 죽이게 하소서(念劉備關羽張飛 雖然異姓 旣結爲兄弟 則同心協力 救困扶危 上報國家 下安黎庶 不求同年同月同日生 但願同年同月同日死 皇天后土 實鑒此心 背義忘恩 天人共戮).” (三國志演義)
제사를 끝내고 이 삼총사는 유비를 장형, 관우를 중형, 장비는 막내로 하기로 하고 피의 잔을 나눠마셨다. 그리고 소를 잡고 술을 장만하여 모인 용사들을 대접하였더니 금새 삼백 명이 넘었다. 처음에는 무기와 말조차 없었으나 의기투합하고 쇠와 말을 기증하는 사람이 있고 대장장이까지 자진하여 참여해와 유비에게 쌍고검(雙股劍)을 관우에게는 청룡언월도(靑龍偃月刀)를 장비에게는 장팔사모(丈八蛇矛)를 만들어 주었다. 그리하여 세 사람은 천하를 평정하고 백성을 구제하기 위해 의리를 목숨과 같이 여기며 종횡무진 황건적을 무찌르고 적벽대전에서 조조의 군대를 격파하고 삼국을 통일하였다. 그 과정에서 유비는 삼고초려로 제갈량을 얻어 그에게 많은 의지를 하였으나 죽는 순간까지 관우와 장비와 맺은 의리를 지켰다.
유비와 관우, 장비는 역사상 정의를 위해 분연히 일어선 삼총사였으며 그 삼총사의 결의가 도원결의(桃園結義)였다. 그래서 도원결의라는 말에는 정의를 위해 의기투합하여 의형제를 맺는 것을 의미하지, 도적질이나 사리사욕을 위해 결의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삼총사라는 말에도 역시 정의를 위한 의기투합을 말하는 것이지 악을 행하기 위해 서로 협작하는 것에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비록 도원결의는 아닐지라도 삼총사라는 말이 정의로운 일에 의기투합한 것을 의미하는 것은 동양뿐 아니라 서양에서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프랑스의 대문호 알렉산드로 뒤마(Alexandre Dumas)의 동명소설 '삼총사' 역시 정의를 위한 세 사람의 의기투합을 보여준다.
이들은 17세기 프랑스의 루이 13세를 둘러싼 음모를 밝혀내기 위해 의기투합하여 총력을 기울인다. 프랑스 가스코뉴 출신의 촌뜨기인 달타냥은 총사가 되기 위해 파리에 입성하지만 바로 소매치기를 당한다. 그는 소매치기범을 잡으려다 우연히 파리에서 유명한 삼총사 아토스, 아라미스, 포르토스를 만난다. 그리고 달타냥은 그 삼총사와 명예를 건 결투를 약속한다.
마침내 정오의 종소리가 울리고, 달타냥과 삼총사는 결투를 시작하려는데 붉은 망토의 사나이들이 나타나 방해한다. 그들은 파리 최고의 권력가 리슐리외 추기경의 근위병들이다. 삼총사는 이들과 시비가 붙는다. 그리고 결투를 한다.
이때 달타냥은 삼총사와 함께 통쾌하게 승리한다. 그들은 승리를 자축하며 술판을 벌이는데, 달타냥이 갑자기 천사 같은 여인 콘스탄스와 사랑에 빠지지만 콘스탄스가 의문의 납치를 당하게 된다. 달타냥과 삼총사는 납치범이 리슐리외 추기경의 여간첩 밀라디임을 알아낸다. 그들은 힘을 합쳐 리슐리외 추기경의 음모를 밝혀내기 위한 긴 모험을 시작한다. 이 삼총사의 이야기는 뮤지컬로 만들어져 공연되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중단되었다가 4년 만에 다시 공연된다고 한다. 희소식이다.
어쨌든 도원결의나 삼총사의 이야기는 정의를 위한 의기투합을 말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국가나 사회가 어지러운 시기에는 늘 도적 같은 무리가 득세하기도 하지만 정의를 위해 의기투합하는 사람들도 많은 법이다.
그런데 코로나 시국을 지나면서 지금 우리는 어지러운 시기에 서 있다. 그런데 나라를 이끈다는 정치인들이 정의를 위한 의기투합은커녕 당리당략에만 몰입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 아프다. 정치인은 많은데 정의보다는 패싸움에 몰입한다. 세상이 더 혼란해져야 정의를 위해 목숨을 걸고 결의를 다지는 총사들이 나타날 것인가? 당리당략에 목숨을 거는 정치인들이 도원결의와 삼총사의 진정한 의미를 새겨보았으면 좋겠다. 역사를 지켜왔던 수많은 총사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 桃(복숭아 도)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나무 목(木; 나무)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兆(조, 도)로 이루어졌다. ❷형성문자로 桃자는 ‘복숭아’나 ‘복숭아나무’를 뜻하는 글자이다. 桃자는 木(나무 목)자와 兆(조짐 조)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兆자는 거북의 배딱지(復甲)에 나타난 점괘를 그린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조→도’로의 발음역할만을 하고 있다. 복숭아에 대한 고대인들의 인식은 매우 극단적이었다. 설화에서는 장수의 상징인 천도(天桃)복숭아 이야기가 전해져오지만, 도화살(桃花煞)이 있는 여자는 한 집안을 망하게 한다는 민간신앙도 있다. 복숭아는 귀신을 내쫓기 때문에 제사상에는 물론 집안에도 복숭아나무를 심지 않았다. 그래서 어찌 보면 桃자에 쓰인 兆자는 발음역할 외에도 복숭아가 신(神)적인 것과 연관된 과일임을 뜻하기 위해 쓰인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桃(도)는 ①복숭아 ②복숭아나무 ③복숭아(열매) ④대나무의 한 가지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복숭아와 자두를 도리(桃李), 복숭아 나무 숲을 도림(桃林), 복숭아의 털을 도모(桃毛), 복숭아나무의 열매를 도실(桃實), 복숭아 밭을 도원(桃園), 복숭아씨의 알맹이를 도인(桃仁), 복숭아 나무 가지를 도지(桃枝), 복숭아 껍질을 도피(桃皮), 나무에 달린 채 겨울을 나서 저절로 마른 복숭아를 도효(桃梟), 복숭아 빛깔과 같은 빛깔을 도색(桃色), 복숭아 꽃을 도화(桃花), 복숭아 나무의 잎을 도엽(桃葉), 신선 나라에 있다는 복숭아를 선도(仙桃), 선가에서 하늘 위에 있다고 하는 복숭아를 천도(天桃), 3천 년 만에 한 번씩 열매가 열린다는 선도를 반도(蟠桃), 흰 빛깔의 복숭아를 백도(白桃), 복숭아와 오얏이 천하에 가득하다는 도리만천하(桃李滿天下), 복사꽃이 아름답게 피는 때라는 도요시절(桃夭時節), 도원에서 의형제를 맺다는 도원결의(桃園結義), 속계를 떠난 별천지를 도원경(桃源境), 이 세상과 따로 떨어진 별천지라는 도원향(桃園鄕), 도화원이 세상과 따로 떨어진 별천지라는 도화원(桃花源) 등에 쓰인다.
▶️ 園(동산 원)은 ❶형성문자로 园(원)의 본자(本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큰입구몸(囗; 에워싼 모양)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袁(원)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口(위)는 에워싸는 모양, 음(音)을 나타내는 袁(원)은 여유(餘裕)가 있는 모양, 즉, '과수원', 또는 '채마밭'을 말한다. ❷회의문자로 園자는 '동산'이나 '뜰'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園자는 囗(에운담 위)자와 袁(옷 길 원)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袁자는 衣(옷 의)자의 옷깃 부분에 원을 그려 넣은 것으로 헐렁한 옷을 뜻한다. 옷깃이 헐렁해서 '여유'가 있다는 뜻이다. 동산이나 뜰은 마음의 여유를 찾기 위해 휴식을 취하는 장소이다. 그러니 園자는 여유를 뜻하는 袁자에 囗자를 결합해 '동산'이나 '뜰'을 뜻하게 된 글자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원리는 '멀다'라는 뜻을 가진 遠(멀 원)자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園(원)은 ①동산(큰 집의 정원에 만들어 놓은 작은 산이나 숲) ②뜰(집 안의 앞뒤나 좌우로 가까이 딸려 있는 빈터) ③밭 ④구역(區域) ⑤능 ⑥원소(苑沼: 동산과 못) ⑦사원 ⑧별장(別莊) ⑨담, 담장(-牆) ⑩울,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채소나 과수나 정원수나 화훼 등을 집약적으로 재배하는 일을 원예(園藝), 정원과 못 또는 정원 안에 있는 못을 원지(園池), 집터에 딸린 수풀 또는 정원과 숲을 원림(園林), 여러 사람들의 보건이나 휴양이나 유락을 위하여 베풀어 놓은 큰 정원이나 동산이나 유원지 등을 공원(公園), 집안에 있는 뜰이나 미관이나 위락 또는 실용을 목적으로 수목을 심거나 그밖에 특별히 설계한 땅을 정원(庭園), 아무런 걱정이나 부족함이 없이 살 수 있는 즐거운 곳을 낙원(樂園), 논밭과 동산 즉 시골을 전원(田園), 언덕과 동산을 구원(丘園), 화초를 심은 동산을 화원(花園), 주로 원예 작물을 심는 농장을 농원(農園), 이름난 동산을 명원(名園), 경작하는 과수원이나 뽕나무 밭 따위를 경원(耕園), 차를 재배하는 밭을 다원(茶園), 복숭아 밭을 도원(桃園), 집 뒤에 있는 작은 동산을 후원(後園), 왕이나 왕비의 무덤인 능과 왕세자 등의 무덤인 원 곧 왕족들의 무덤을 능원(陵園), 학교 및 기타 교육기관의 총칭을 학원(學園), 문학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사회적 분야를 문원(文園), 동산의 풀은 땅속 양분으로 가지가 뻗고 크게 자람을 일컫는 말을 원망추조(園莽抽條), 도원에서 의형제를 맺다는 뜻으로 의형제를 맺음 또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사욕을 버리고 목적을 향해 합심할 것을 결의함을 이르는 말을 도원결의(桃園結義), 논밭과 동산이 황무지가 됨을 이르는 말을 전원장무(田園將蕪), 사람의 손이 가지 않은 그대로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공원을 일컫는 말을 자연공원(自然公園), 인근의 시민들이 쉽게 드나들 수 있는 공원을 일컫는 말을 근린공원(近隣公園), 전원의 정경이나 생활을 소재로 한 문학을 일컫는 말을 전원문학(田園文學), 도시를 떠나 전원에서 농사 짓고 사는 생활을 이르는 말을 전원생활(田園生活) 등에 쓰인다.
▶️ 結(맺을 결, 상투 계)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실 사(糸; 실타래)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吉(길)이 합하여 이루어졌다. 음(音)을 나타내는 吉(길, 결)과 실(糸)이나 끈으로 묶어 맺는다는 뜻이 합하여 맺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結자는 '맺다'나 '모으다', '묶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結자는 糸(가는 실 사)자와 吉(길할 길)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吉자는 신전에 꽂아두던 위목(位目)을 그린 것이다. 結자는 이렇게 상하가 결합하는 형태인 吉자에 糸자를 결합한 것으로 '(실을) 잇는다'라는 뜻을 표현했다. 누에고치에서 뽑은 실은 길이가 한정돼 있다. 그래서 비단을 만들기 위해서는 실을 이어주는 과정이 필요했다. 結자는 그러한 의미를 표현한 글자로 吉(결합하다)에 糸(실)자를 합해 '실이 이어지다'를 뜻하다가 후에 '맺다'나 '모으다', '묶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結(결)은 (1)조세(租稅)를 계산하기 위한 논밭의 면적의 단위. 목 (2)결전(結錢) 등의 뜻으로 ①맺다 ②모으다 ③묶다, 매다 ④꾸미다, 짓다 ⑤다지다, 단단히 하다 ⑥엇걸리게 하다 ⑦굽다, 구부러지다 ⑧굽히다, 구부리다 ⑨막다, 못하게 하다 ⑩엉기다(한 덩어리가 되면서 굳어지다) ⑪늘어 세우다 ⑫마치다 ⑬바로잡다, 책(責)하다 ⑭끝 구(句), 결구(結句) ⑮번뇌(煩惱) ⑯매듭, 그리고 ⓐ상투(장가든 남자가 머리털을 끌어 올려 정수리 위에 틀어 감아 맨 것)(계) ⓑ매다, 연결하다(계)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맺을 계(契), 묶을 속(束) 맺을 유(紐), 맺을 체(締), 맺을 약(約)과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일어날 기(起)이다. 용례로는 문장에서 끝을 맺는 어구를 결구(結句), 잇대어 붙임을 결부(結付), 둘 이상이 서로 관계를 맺고 합치어 하나가 되는 결합(結合), 남녀가 부부 관계를 맺는 결혼(結婚), 일의 끝장 혹은 일의 귀결되는 마당을 뜻함을 결국(結局), 일이 잘 맺어짐을 결실(結實), 단체를 조직하여 이룸을 결성(結成), 어떤 원인으로 인하여 이루어진 결말이라는 결과(結果), 끝장 또는 일을 맺는 끝을 결말(結末), 한 덩어리가 되게 묶음을 결속(結束), 물이 얼어 붙음을 결빙(結氷),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도록 두 팔이나 다리를 묶음을 결박(結縛), 의리로써 남남끼리 친족과 같은 관계를 맺음을 결의(結義), 끝맺는 말이나 설명하는 글을 결론(結論), 한데 모이어 뭉침을 결집(結集), 마음을 결합(結合)하여 서로 의탁함을 결탁(結託), 계약이나 조약 등을 맺음을 체결(締結), 두 편이 서로 좋도록 협의나 절충하여 일을 마무름 또는 그 일을 타결(妥結), 서로 이어 맺음을 연결(連結), 자산이나 자금 등의 사용 및 이동을 한동안 금지함 또는 그 상태를 동결(凍結), 많은 사람이 한데 뭉침을 단결(團結), 끝을 냄을 종결(終結), 끝을 맺음을 귀결(歸結), 아주 완전하게 끝을 맺음을 완결(完結), 교분을 서로 맺어 교제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결교지인(結交之人), 일의 결말을 짓는 데 가장 가까운 원인을 일컫는 말을 결국원인(結局原因), 총각과 처녀끼리 혼인한 부부를 일컫는 말을 결발부부(結髮夫婦), 귀밑머리를 풀어 쪽을 찌고 상투를 튼 부부라는 뜻으로 정식으로 결혼한 부부를 이르는 말을 결발부처(結髮夫妻), 남남끼리 의리로써 형제 관계를 맺음 또는 그런 형제를 이르는 말을 결의형제(結義兄弟), 은혜를 잊지 않고 기필코 보답함을 일컫는 말을 결초함환(結草啣環), 일을 맺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는 뜻으로 일을 저지른 사람이 그 일을 해결해야 한다는 말을 결자해지(結者解之), 풀을 묶어서 은혜를 갚는다는 뜻으로 죽어 혼이 되더라도 입은 은혜를 잊지 않고 갚음 또는 무슨 짓을 하여서든지 잊지 않고 은혜에 보답함을 일컫는 말을 결초보은(結草報恩), 도원에서 의형제를 맺다는 뜻으로 의형제를 맺음 또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사욕을 버리고 목적을 향해 합심할 것을 결의함을 이르는 말을 도원결의(桃園結義), 시문을 짓는 형식의 한 가지로 글의 첫머리를 기起 그 뜻을 이어받아 쓰는 것을 승承 뜻을 한번 부연시키는 것을 전轉 전체를 맺는 것을 결結이라 함을 이르는 말을 기승전결(起承轉結), 지나온 수레바퀴 자국을 따라 그대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뜻으로 무사는 한번 전진에 임하면 발을 돌리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불결철(不結轍) 등에 쓰인다.
▶️ 義(옳을 의)는 ❶회의문자이나 형성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义(의)는 통자(通字), 义(의)는 간자(簡字)이다. 나(我)의 마음 씀을 양(羊)처럼 착하고 의리있게 가진다는 뜻을 합(合)하여 옳다를 뜻한다. 羊(양)은 신에게 바치는 희생의 양으로 양을 바쳐 신에게 비는 의식(儀式)이 나중에 바르다, 의로운 일의 뜻이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義자는 ‘옳다’나 ‘의롭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義자는 羊(양 양)자와 我(나 아)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我자는 삼지창을 그린 것이다. 義자의 갑골문을 보면 창 위에 양 머리를 매달아 놓은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양 머리를 장식으로 한 의장용 창을 그린 것이다. 이러한 창은 권위나 권력을 상징했다. 상서로움을 뜻하는 양 머리를 창에 꽂아 권위의 상징으로 삼은 것이다. 義자는 종족 내부를 결속하기 위한 권력자들의 역할을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옳다’나 ‘의롭다’, ‘바르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義(의)는 (1)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떳떳하고 정당한 도리(道理). 오상(五常)의 하나임 (2)남과 골육(骨肉)과 같은 관계를 맺음 (3)글이나 글자의 뜻. 의미(意味) (4)경서의 뜻을 해석시키던, 과거(科擧)를 보일 때의 문제 종류의 한 가지 등의 뜻으로 ①옳다, 의롭다 ②바르다 ③선량하다, 착하다 ④순응하다 ⑤맺다 ⑥해 넣다 ⑦섞다, 혼합하다 ⑧간사하다(마음이 바르지 않다), 옳지 않다 ⑨의(義), 정의(正義), 올바른 도리(道理) ⑩의리(義理), 우의(友誼) ⑪뜻, 의미(意味), 의의(意義) ⑫거둥(擧動: 임금의 나들이), 예절(禮節), 의식(儀式) ⑬정의에 합당한 행동, 의로운 일 ⑭명분(名分) ⑮법도(法道) ⑯용모(容貌), 행동거지(行動擧止: 몸을 움직여 하는 모든 짓) ⑰의로 맺은 친족 관계, 의리(義理)의 관계 ⑱공적인 것, 공익을 위한 것 ⑲인공적인 것 ⑳가짜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옳을 가(可), 옳을 시(是)이다. 용례로는 의로운 사람을 의인(義人), 義로 맺은 형제를 의형제(義兄弟), 반드시 실행해야 하는 일을 의무(義務), 정의를 위하여 거사함을 의거(義擧), 수양 아버지를 의부(義父), 글이나 학설의 뜻을 설명하여 가르침을 강의(講義), 굳게 지키는 일정한 방침을 주의(主義),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를 정의(正義), 믿음과 의리를 신의(信義), 표의 문자에서 글자의 뜻을 자의(字義), 같은 뜻나 같은 의미를 동의(同義), 사람이 마땅히 행해야 할 도덕 상의 의리를 도의(道義), 갚아야 할 의리와 은혜를 은의(恩義), 의리나 정의에 어긋나는 일을 불의(不義), 어진 것과 의로운 것을 인의(仁義),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는 교훈을 이르는 말을 의방지훈(義方之訓), 의기에 불타 일어나는 용맹을 일컫는 말을 의기지용(義氣之勇),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에 당연함을 이르는 말을 의리당연(義理當然), 의가 있는 사람은 어버이를 거역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의불배친(義不背親), 의로써 이利의 근본을 삼음을 이르는 말을 의이건리(義以建利), 의는 바다와 같고 은혜는 산과 같다는 뜻으로 은의恩義가 대단히 크고 깊음을 이르는 말을 의해은산(義海恩山), 목숨을 버리고 의리를 좇음의 뜻으로 비록 목숨을 버릴지언정 옳은 일을 함을 일컫는 말을 사생취의(捨生取義), 눈앞에 이익을 보거든 먼저 그것을 취함이 의리에 합당한 지를 생각하라는 말을 견리사의(見利思義), 도원에서 의형제를 맺다는 뜻으로 의형제를 맺음 또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사욕을 버리고 목적을 향해 합심할 것을 결의함을 이르는 말을 도원결의(桃園結義), 봉건시대 여자가 지켜야 할 세 가지 도리 곧 어려서는 아버지를 좇고 시집가서는 남편을 좇고 남편이 죽은 뒤에는 아들을 좇음을 이르는 말을 삼종지의(三從之義), 남남끼리 의리로써 형제 관계를 맺음 또는 그런 형제를 일컫는 말을 결의형제(結義兄弟),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네 가지 마음가짐 곧 어짊과 의로움과 예의와 지혜를 이르는 말을 인의예지(仁義禮智), 큰 의리를 위해서는 혈육의 친함도 저버린다는 뜻으로 큰 의리를 위해서는 사사로운 정의를 버림을 일컫는 말을 대의멸친(大義滅親), 임금과 신하 사이에 의리가 있어야 함을 일컫는 말을 군신유의(君臣有義), 눈앞의 이익을 보면 탐내어 의리를 저버림을 일컫는 말을 견리망의(見利忘義), 남의 시문 중에서 전체의 뜻과는 관계없이 자기가 필요한 부분만을 따서 마음대로 해석하여 씀을 일컫는 말을 단장취의(斷章取義), 예절과 의리와 청렴한 마음과 부끄러워하는 태도를 일컫는 말을 예의염치(禮義廉恥)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