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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다 회장 담화 발표 1·26 ‘SGI의 날’에 맹세한다
2024년 1월 26일
이케다 선생님의 평화의 행동을 가슴에 새기고
민중의 스크럼을 힘차게 확대
1975년 1월 26일, 괌의 땅에서 결성된 SGI(창가학회 인터내셔널).
당시 그 자리에 모인 것은 51개국·지역의 멤버들이었지만 불법(佛法)을 기조(基調)로 한 창가(創價)의 민중운동(民衆運動)의 연대(連帶)는 지금, 세계 192개국·지역으로 크게 넓혀지고 있다.
이케다 다이사쿠(池田大作) 선생님은 SGI 회장으로서 세계평화나 유엔 강화를 위한 행동을 계속하는 가운데, 1983년부터, 1·26 ‘SGI의 날’에 전하는 형식으로 평화제언(平和提言) 발표를 40회에 걸쳐 계속해 왔다.
또 SGI도, 유엔 NGO로서 군축(軍縮)·인권(人權)·환경(環境)·인도(人道) 등의 분야(分野)에서 적극적(積極的)으로 활동을 계속하는 한편, 멤버 한사람 한사람이 세계 각지에서 신뢰(信賴)와 우정(友情)의 유대(輪)를 쌓아 올려 왔다.
이러한 의의(意義) 깊은 원점(原點)의 날을 맞이함에 있어서, 하라다(原田) 회장은 「1·26 ‘SGI의 날’에 맹세한다」라는 제목으로 담화(談話)를 발표했다.
그 속에서 하라다 회장은, 이케다(池田) 선생님이 제3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게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신념에 근거해, 동서(東西)의 냉전대립(冷戰對立) 등이 격화(激化)하고 있던 1970년대에 중국, 소련, 미국을 잇달아 방문한 역사를 언급.
이케다 선생님의 이러한 평화행동의 한가운데서 결성된 것이 SGI나 다름없다고 역설함과 동시에, 매년의 평화제언에서 선생님이 일관되게 중점을 두어 온 테마가, 핵무기를 둘러싼 문제였음을 강조.
선생님이 반복해 호소해 온 「핵무기금지조약(核武器禁止條約)」이, 도다(戶田) 선생님의 「원수폭금지선언(原水爆禁止宣言)」 60주년에 해당하는 2017년에 채택된 의의를 말하면서, 마지막 평화제언(2022년)의 맺음말에 담긴 ‘핵무기가 없는 세계’를 향한 마음을 계승해, 그 실현을 맹세로서 함께 완수할 것을 호소했다.
또, SGI의 금후의 대처로서 이케다 선생님의 정신을 가슴에 새기면서, 지구적(地球的)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具體的)인 제안(提案)을 계속적으로 발신(發信)해 나갈 것을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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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다 회장의 담화〉
1·26 ‘SGI의 날’에 맹세한다
2024년 1월 26일
핵무기 없는 세계를 구축하여 인류의 미래를 연다
40회에 이르는 제언을 거듭해 온 이케다 선생님
오늘 1월 26일로, SGI(창가학회 인터내셔널)가 결성된 지 50년째의 날을 맞이했다.
그날 그때, 이케다 선생님께서는 스피치를 맺으시면서 “여러분은 자기 자신이 꽃을 피우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전 세계에 묘법(妙法)의 씨앗을 뿌리고 이 존귀(尊貴)한 일생을 마쳐주십시오. 저도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호소하셨다.
이후, 선생님께서는 선두(先頭)에 서서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과 같은 참극(慘劇)을 다시는 일으키지 않기 위해 각국의 지도자나 식자와 대화를 거듭하여 세계의 분단(分斷)이나 대립(對立)의 심화(深化)에 대해 ‘방비지악(防非止惡: 비행을 막고 악행을 그치게 한다)’의 제동(制動)을 거는 도전을 계속하는 한편, 민중(民衆)이 연대(連帶)하여 ‘평화(平和)의 문화(文化)’를 만들기 위한 조류(潮流)를 넓혀 오신 것이다.
제3차 세계대전을 일으키지 못하게
그러한 와중에 이케다 선생님께서 각국 지도자나 식자들과 거듭해 오신 대화(對話)는 1600회 이상이며 대담집(對談集)은 80점에 이른다. 이 제1호가 된 것이, 1972년에 발간된, ‘유럽 통합의 아버지’ 리하르트 쿠덴호베 칼레르기(Richard Nikolaus Eijiro Graf von Coudenhove-Kalergi, 1894~1972) 백작과의 대담집이었다.
베트남전쟁이 격화되고 있던 1967년에 만나신 이래, 선생님과 몇 차례나 회담한 쿠덴호베 칼레르기 백작이 “세계의 분단(分斷)이 이대로 진행되면, 제3차 세계대전에 의해서 전(全) 문명(文明)의 결정적(決定的)인 붕괴(崩壞)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라고 경종(警鐘)을 울리면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새로운 종교파동(宗敎波動)만이 이 추세(趨勢)를 멈추고 인류(人類)를 구할 수 있다. 창가학회(創價學會)는 그런고로 위대(偉大)한 희망(希望)이다.”
이 말은, “지구상(地球上)에서 비참(悲慘)의 두 글자를 없애고 싶다.”라는 도다(戶田) 선생님의 열원(熱願)을 완수하기 위해, 동분서주(東奔西走)를 계속하시는 이케다 선생님의 열렬한 기백(氣魄)을, 강하게 느꼈기 때문에 발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선생님의 그 신념(信念)의 골격(骨格)을 말해주는 에피소드가 『법화경(法華經)의 지혜(智慧)』에 소개되어 있다. 제3대 회장 취임 이듬해(1961년)에 일어난 베를린 위기에 이어 쿠바 위기가 1962년에 발발(勃發)하는 등, 그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가운데 선생님께서 「선시초(撰時抄)」 강의(講義)(1964년 발간)를 집필(執筆)하시던 때의 이야기다.
- 어문(御文)의 일문일구(一文一句)에서 현대의 세계가 돌아봐야 할 니치렌 대성인(日蓮大聖人)의 정신을 이해하기(헤아리기) 위해 전력을 쏟는 가운데 집필 작업이 “전대(前代) 미문(未聞)의 대투쟁(大鬪諍)이 일염부제(一閻浮提)에 일어나리라.”(어서신판165·전집259)라는 부분(個所: 어느 한 곳)에 접어들었다.
이 일절(一節)에 대해 교학부(敎學部) 사이에서는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는 의미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품는 멤버도 있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만약 정말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 원수폭(原水爆) 등으로 인류(人類)는 멸망(滅亡)하고 만다. 과거의 대전(大戰) 이상의 비참(悲慘)과 고뇌(苦惱)를 인류는 다시 맛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가. 그렇다면 불법자(佛法者)로서 너무나 무자비(無慈悲)하지 않은가. 우리는 제2차 세계대전을 가지고 ‘전대미문의 대투쟁’이라고 결정하자. 어떤 일이 있어도, 제3차 세계대전은 일으키지 않게 하겠다.” “광선유포(廣宣流布)라고 하는 세계의 항구평화(恒久平和), 인류의 행복(幸福)을, 반드시 달성하지 않겠는가.”라고.
이 신념대로 이케다 선생님께서는 냉전대립 등이 격화하는 가운데, SGI가 결성되기 전해(1974년)에, 중국과 소련을 연이어 처음 방문하셨다. 6월, 첫 방중(訪中)을 마치고 시간을 두지 않고 첫 방소(訪蘇)를 준비(準備)에 임하셨지만 공산주의국가로 계속 발걸음을 옮기시는 것에 대해 우려의 소리나 무심한 비난(非難)의 소리도 있었다. 그래도 선생님의 신념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소련에 가는 것인가. 그것은 어떻게든 제3차 세계대전을 막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중국에 이어 소련에 가고 그리고 미국에도 갑니다. 니치렌 대성인(日蓮大聖人)의 심부름꾼〈사자(使者)〉으로서, 생명(生命)의 존엄(尊嚴)과 평화(平和)의 철학(哲學)을 가지고, 세계평화의 막(幕)을 열기 위해 가는 것입니다.”라고 호소하셨던 것이다.
「핵무기금지조약」의 실현에 건 신념
온갖 비판의 폭풍을 뚫고 이케다 선생님께서는 첫 소련 방문(1974년 9월)을 마치시고 중국을 재방문(1974년 12월)하신 뒤, 새해 연초 1월 6일부터 미국으로 향하시어 청년부가 모은 「핵폐절(核廢絶) 1000만 서명부(署名簿)」를 유엔본부에 전하셨다.
그리고 1월 26일, 태평양 전쟁의 격전지이기도 했던 괌에서 SGI를 결성하는 회합에 임하신 것이다. 이 1975년, SGI의 결성을 계기로 선생님께서는 더한층 힘차게 평화의 메시지를 세계에 발신(發信)하게 되셨다.
같은 해 11월에 히로시마(広島)에서 열린 본부총회(本部總會) 강연(講演)에서, 핵전폐(核全廢)를 실현하기 위한 우선 과제의 하나로서 ‘핵무기의 선제(先制) 불사용(不使用)’의 필요성을 호소하신 것을 시작으로, 1978년 5월에는, 제1회 유엔군축특별총회에 보내는 제언을 실시해, “모든 나라의 핵무기의 제조(製造), 실험(實驗), 저장(貯藏), 사용(使用)을 금지해, 최종적으로는 지상(地上)에서 모든 핵무기를 절멸(絶滅)한다.”라는 연래(年來)의 주장(主張)을 호소하셨다.
이케다 선생님의 외침은 시간을 거쳐 2021년 1월, 발효(發效)된 「핵무기금지조약」의 주안(主眼)과 정확히 맞물리는(서로 겹치는) 것이었다.
선생님께서는 1982년 6월 제2회 유엔군축특별총회에도 제언을 보내셨다.
그리고 1983년 1월, ‘SGI의 날’에 즈음하는 형식으로 최초의 평화제언을 발표하신, 이후 2022년까지 매년, 총 40회에 이르는 제언을 거듭해 오신 것이다.
1회 째 제언의 기둥이 되고 있는 것은 바로 핵무기의 문제이며, 40회째의 제언에 이르기까지 분쟁(紛爭) 방지(防止)와 인권, 환경이나 인도 문제 등 다방면에 걸친 지구적(地球的) 과제를 논하시는 가운데 매년 반복적으로 거론해 오신 테마 또한 핵무기의 금지(禁止)와 폐절(廢絶)을 향한 길을 열어주시기 위한 제안뿐이었다.
이케다 선생님께서 매년의 제언을 비롯해, 모든 기회를 통해서, 「핵무기금지조약」의 제정(制定)을 강하게 호소하시는 가운데, 드디어 2017년 7월 7일, 조약은 유엔에서 채택되었다.
그 채택된 다음 달, 이케다 선생님께서는 도다 선생님과 만나 지 70주년이 되는 날(8월 14일)에 집필하신 일문(一文)에, 조약의 채택이 실현된 것에 대한 진정(眞情)을, 이렇게 적으셨다.
“내가, 구체적(具體的)인 제안(提案)을 호소함에 있어서, 특히 중시(重視)해 온 것이, 다음의 네 가지 점이다.
① 시민사회(市民社會)가 연대(連帶)하여 목소리를 높인다
② 핵무기(核武器)의 비인도성(非人道性)을 논의(論議)의 중축(中軸)에 둔다
③ 유엔을 무대(舞臺)로 조약(條約) 만들기를 추진한다
④ 피폭자(被爆者)의 마음을 조약의 기본(基本) 정신(精神)에 새긴다
2007년부터 SGI는 ‘핵무기 폐절을 향한 민중행동의 10년’이라는 대처를 진행, ‘핵무기 폐절 국제 캠페인’ 등 많은 단체와 협력하여 연대를 넓혀 왔다.
이러한 핵폐절로 가는(을 향한) 4개의 조류(潮流)를 국제사회에서 밀어 올리는 노력을 계속하는 가운데, 「핵무기금지조약」이 12개국의 찬성을 얻어, 마침내 채택(採擇)된 것이다.
그날, 미쓰자와(三ツ沢)의 경기장에서 맹세한 선생님과의 약속을, 크게 완수해 가는 역사가 새겨진 것은, 제자(弟子)로서 무상(無上)의 영예다. 「핵무기금지조약」에 대한 각국의 서명(署名)은 기이하게도 「원수폭금지선언(原水爆禁止宣言)」 60주년과 때를 같이해, 9월의 유엔총회 개막을 계기로 시작되었다.”라고.
삼대회장의 정신을 계승해
지구적 과제에 맞서는 도전을
도다 선생님의 「원수폭금지선언」 이래, 이케다 선생님께서 사제공전(師弟共戰)의 행동을 거듭해 오신 신조(信條)는, 마지막 평화제언이 된 2022년의 제언의 맺음 말씀에도 응축되어 있다.
우리는, 이하의 맺음 말씀을, 창가학회(創價學會)의 사회적(社會的) 사명(使命)의 근간(根幹)을 이루는 것으로서 계승(繼承)해, 힘을 합쳐 완수해 나가야 할 이케다 선생님과의 맹세로서 행동을 넓혀 나아가고 싶다.
“핵무기(核武器)의 비인도성(非人道性)은 그 공격(攻擊)이 초래하는 괴멸적(壞滅的)인 피해(被害)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회나 세계를 좋게 만들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오랜 세월과 노력을 소비했어도, 일단 핵 공격의 응수(應酬)가 일어나면, 모두 한순간에 무(無)로 돌아가 버린다. - 너무나 불합리(不合理)한 최악(最惡)의 위협(威脅)과 항상 이웃해 살아야 한다는 것이 핵시대의 실상(實相)입니다.
우리가 추진(진행)해 온 핵폐절운동(核廢絶運動)의 원점(原點)은 도다(戶田) 제2대 회장이 1957년 9월에 실시한 「원수폭금지선언(原水爆禁止宣言)」에 있습니다.
핵보유국에 의한 군확(軍擴) 경쟁(競爭)이 격화(激化)되는 가운데 그 전 달에 소련이 대륙간탄도탄(ICBM)의 실험에 처음으로 성공해 지구상(地球上)의 어느 장소에도 핵공격(核攻擊)이 가능한 상황이 세계의 ‘새로운 현실’로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습니다.
이 냉혹한 현실 앞에서 도다 회장은 어떤 나라도 핵무기의 사용은 절대 용납되지 않는다고 강조하며 핵 보유의 정당화를 도모하려는 논리에 대해 “그 내면에 숨어있는 발톱을 뽑아버리고 싶다.”(『도다 조세이 전집』 제4권)이라고 강한 어조로 호소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살아 있는 의미와 존엄의 무게를 사회의 영위로부터 빼앗아 버린다고 하는, 비인도성의 극치에 대한 도다 회장의 분노를, 불이(不二)의 제자(弟子)로서 몸에 새겼던 일이, 어제의 일처럼 생각납니다.
제 자신, 1983년 이래 ‘SGI의 날’에 즈음해 제언을 40회에 걸쳐 계속하는 가운데 핵문제를 일관되게 다루며 「핵무기금지조약(核武器禁止條約)」의 실현(實現)을 모든 각도에서 뒷받침해온 것도 핵문제라는 ‘현대문명의 일흉(一凶)’을 해결(解決)하지 않고서는 인류(人類)의 숙명전환(宿命轉換)을 이룰 수 없다고 확신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지금, 도다 회장의 「원수폭금지선언」 의 정신과도 서로 울리는 「핵무기금지조약」이 발효(發效)되어 제1회 체약국(締約國: 당사국)회합이 드디어 개최되기까지에 이르렀습니다.
히로시마(広島)와 나가사키(長崎)의 피폭자(被爆者)와 핵실험과 핵개발에 따른 세계의 히바쿠샤(피폭자)를 비롯해 많은 민중(民衆)이 절실하게 요구하는 핵무기의 폐절(廢絶)을 향하여, 드디어 지금부터가 중대 고비가 됩니다.
우리는 그 도전을 완결 짓는 것이 미래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길이라는 신념(信念)에 서서, 청년을 중심으로 시민사회(市民社會)의 연대(連帶)를 넓히면서 누구나 평화적으로 살아갈 권리를 누릴 수 있는 ‘평화(平和)의 문화(文化)’의 건설을 목표로 하여, 어디까지나 전진(前進)을 계속해 갈 결의입니다.”
구체적인 제안을 SGI로서 발신
우리는, SGI의 결성을 맞이해 이케다(池田) 선생님께서 호소하신 말씀과 함께, 이 마지막 제언의 일절(一節)을, ‘인도적(人道的) 경쟁(競爭)’을 제창하신 마키구치(牧口) 선생님의 사상(思想)이나, 「원수폭금지선언」에 맥박(脈搏)치는 도다(戶田) 선생님의 정신과 함께, 창가학회(創價學會)의 평화운동(平和運動)의 주춧돌로 삼아,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나 단체와 연대(連帶)해, ‘핵무기 없는 세계’와 ‘전쟁 없는 세계’의 실현을 목표로 해 가고 싶다.
그리고 핵폐절(核廢絶)과 전쟁(戰爭)의 방지(防止)는 물론, 환경(環境)과 인권(人權), 기후위기(氣候危機)와 인도적(人道的) 문제(問題) 등 인류가 직면한 다양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언을 SGI로서 지속적으로 발신해 나갈 것을 여기에서 맹세한다.
일찍이 이케다 선생님께서는 평화제언 발표를 끊임없이 계속해 온 신념의 버팀목이 되어 온 것으로서, 다음과 같은 도다 선생님의 말씀을 언급하신 적이 있었다.
“인류의 평화를 위해서는 ‘구체적(具體的)’인 제안(提案)을 하고, 그 실현(實現)을 향해 자신이 선두(先頭)에 서서 ‘행동(行動)’하는 것이 중요하다."
“비록 당장은 실현되지 못하더라도 그것이 ‘불씨(火種)’가 되어 평화의 불꽃이 퍼져나간다. 공리공론(空理空論)은 어디까지나 허무하지만, 구체적인 제안은, 실현을 향한 ‘기둥(柱)’이 되어, 인류를 지키는 ‘지붕’이 되어 간다.”
우리도, 이케다 선생님의 제자로서, 삼대회장(三代會長)의 ‘평화(平和)와 인도(人道)의 투쟁(鬪爭)’에 일분(一分)이라도 이어질 수 있도록, 각자의 사명(使命)의 무대(舞臺)에서 ‘평화의 문화’의 담당자로서 행동하며, 인류의 비참(悲慘)한 유전사(流轉史)를 변혁(變革)하기 위한 ‘민중의 스크럼’을 어디까지나 힘차게 펼쳐가고(넓혀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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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문헌(引用文獻)]
쿠덴호베 칼레르기의 말은 사이토 코이치(齋藤康一) 저(著) 『사진(寫眞) 이케다 다이사쿠(池田大作)를 쫓는다』 (講談社) 수록
2017년 8월의 이케다 선생님의 말은, 창가학회 가나가와 청년부 편(編) 『계승(繼承)되는 평화의 마음』 (潮出版社)에 수록된 특별기고(特別寄稿)에서.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매일매일 의노고에 진심으로 깊이 깊이 감사드립니다 노고많으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