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트 노동자들은 기뻐서 울었고, 콜텍 노동자들은 분노로 울었다.
23일 오전 10시경, 서초동 대법원 앞. 21년간 콜트악기에서 근무했던 임춘자(56)씨는 울음을 터뜨렸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가 콜트악기에서 중앙노동위원장을 상대로 낸 부당해고 구제 재심판정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한 후다.
법원은 사측이 한 해를 제외하고는 지속적으로 큰 흑자를 내 온 만큼, 정리해고 요건인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해고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노동자들을 해고해야 할 정도의 긴박한 경영상 필요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는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며 “콜트가 부평공장을 폐쇄했더라도 이는 해고 이후의 사정이어서 해고의 정당성을 판단함에 있어 고려할 것은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반면 같은 날 오후 2시, 대법원은 콜텍 노동자들의 정리해고가 ‘경영상 어려움으로 인한 정리해고’라는 상이한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 1부(주신 안대희 대법관)는 콜텍지회 조합원 24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해고무효확인 등 소송에 대한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콜텍이 매년 당기순이익을 내기는 했지만 대전공장은 2004년 사업연도부터 매년 상당액의 영업손실을 냈고 생산량도 지속적으로 감소 추세를 보였다”며 “원심은 긴박한 경영상 필요에 관한 법리를 오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아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설명했다.
같은 자본과 사용자 하에서 비슷한 업무를 수행하다 같은 이유로 해고된 콜트, 콜텍 노동자들은 대법원 1부와 2부의 상이한 판결을 받아들고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오전까지만 해도 “이제 해고자라는 주홍글씨를 벗어버리고 싶다”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던 임춘자 씨는, 콜텍 판결 후 또 다시 손에 피켓을 들었다.
적자 발생한적 없는 ‘콜텍’이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판결”
이 같은 판결에 대해 김차곤 변호사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김 변호사는 “콜트와 콜텍의 경영상황을 비교해 보면, 차라리 콜텍의 경영상태가 낫다”며 “콜트는 1, 2년 적자가 발생해 온 기업이지만, 콜텍은 적자가 발생한 적이 없으며 부채비율이 20% 이하인 안정적인 재무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그는 “콜트보다 흑자도 많이 나는 상황에서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가 인정됐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고, 판결문조차 납득할 수 없는 내용 뿐”이라고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대법원이 비슷한 정리해고 과정을 거친 콜트와 콜텍 악기에 대해 각각 다른 판결을 내린 것이, 콜텍 정리해고 과정에서의 상징성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김 변호사는 “이제까지의 정리해고는 회사가 어려울 때 진행되는 것이었지만, 콜텍에서부터는 물량을 해외고 돌리고 공장을 폐업하면서 공장 전체의 노동자를 해고하는 방식의 정리해고가 시작됐다”며 “콜텍은 이 같은 정리해고 방식의 최초의 상징으로서, 만약 부당 정리해고 판결이 내려질 경우 시그네틱스를 비롯한 비슷한 유형의 정리해고 사업장들이 모두 불법화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 같은 판결이 내려진 것이라고 추측한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금속노조와 콜트, 콜텍지회는 판결이 끝난 후인 오후 2시 30분 경,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의 판결을 규탄하고 나섰다.
이인근 콜텍 지회장은 “동일 자본인 콜트, 콜텍에 대한 판단이 대법 2부와 1부에 따라 어떻게 이리 다를 수 있나”며 “이번 대법 판결에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방종운 콜트악기지회장은 “이번 대법원 판결은 멀쩡한 회사가 해외 공장을 돌리면서 국내 공장 문을 닫고 노동자를 해고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내용”이라며 “회사가 마음만 먹으면 한 달 이내에 공장을 재가동시킬 수 있는 만큼, 정상 가동되도록 콜텍 동지들과 함께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 2007년 8월 30일, 사측은 경영위기와 노사갈등을 이유로 부평의 콜트공장과 대전의 콜텍공장을 폐업하고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해고된 노동자 46명은 ‘위장폐업과 부당한 정리해고’라고 주장하며 1848일간의 투쟁을 이어왔다. 그 과정에서 해고자들은 회사측이 고용한 용역직원에 의한 폭력, 천막 탈취, 고소고발에 시달렸다.
또한 이인근 콜텍노조 지회장은 지난 2008년 10월 15일, 한강 망원지구에 위치한 15만KW의 전기가 흐르는 송전탑에서 30일간의 고공, 단식농성을 진행 했다. 2007년 12월 11일에는 이동호 콜트콜텍노조 사무장이 분신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지난한 싸움만큼 법원 판결도 더뎠다. 서울고등법원은 2009년 11월, 콜텍악기가 정리해고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며 부당해고 판결을 내렸지만, 같은 해 12월 회사가 상고하면서 2년 5개월 동안 대법원에 계류됐다. 콜트악기 역시 2007년 4월 정리해고 발생 후 서울고등법원은 2009년 8월, 부당 정리해고 판결을 내렸지만 3년간 대법원에 계류 돼 있었다.
이번 콜트 해고자에 대한 대법원 판결로, 해고자들은 또 다시 긴 법정싸움을 이어가게 됐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23일 논평을 발표하고 “콜텍 노동자들이 법원의 판단을 받기 위해서는 다시 상당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점에서 오랜 실직으로 인한 노동자들의 생활고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