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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답(禪問答) 과 도마복음 제25장》
음..
오늘은 선문답(禪問答) 이야기를 좀 하고 본문 내용으로 들어가 보려고 하는데요.^^
결론부터 말씀들이면 선문답은 선(禪)에 대한 공부 정도를 알아보는 것이지 깨닫고 못 깨닫고 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서로 선문답을 하면서 서로 말꼬리를 잡으면서 다투거나 하면 더더욱 안 되는 것이고요.
오늘은 그래서 제 선문답 경험담도 간단히 섞어서 이야기해 보려고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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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글을 쓰다 보니까 너무 길어서 글이 다 안 들어가서 절반 이상은 편집을 했는데요.
이 법을 깨닫게 되면 여러 가지로 이상한 일들이 생기는데요?
그중에 하나가 입이 터지는 것이랍니다.
마치 무당이 신내림을 받으면 입이 터지듯이 이것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는데요.
이상하게 법 이야기만 하면 발동이 걸려서 한 시간이고 두세 시간이고 끊임없이 입에서는 줄줄줄 법문이 나가는 그런 경우랍니다.
본래 저는 그런 놈은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법 이야기만 하면 열성이 뻗쳐서 저도 감당이 안 될 정도로 입이 터지는 그런 경우인데요?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랍니다?
제 경우는 본래 글을 쓰는 놈이 아니랍니다.
저는 본래 사채업과 함께 변호사업을 할 때에는 법원에 제출할 소장은 엄청 많이 써봤어도 장문의 글을 써본 적은 없었는데요.
이 법을 깨닫고부터는 이상하게 글도 줄줄줄 쓰게 된답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그냥 저는 제 마음(본성/불성/성령)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보고 쓰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인데요.
선문답도 마찬가지랍니다.
선문답도 큰 스님들과 문답을 나누다 보면 전혀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입이 터지게 되는 것인데요.
처음에는 저도 되게 신기했답니다?
왜냐하면 저는 불교 공부를 전혀 안 한 상태에서도 그랬으니까요.
지금은 구담 스님이 선물해 주신 [선문염송] 덕분에 더욱 거시기해진 것인데요.
아무튼 저는 옛날 고서(古書)들이나 시(詩)를 좋아했었기 때문에 가끔은 시도 써서 문단에 여러 번 제출을 해서 인기상 정도는 탄 적은 있었어도 장문의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제 성격과는 맞지를 않는 경우인데 제가 이러고 있다는 것이 저도 참 이상할 노릇인데요?
그런데 입이 한번 터지면 줄줄줄 터지듯이 글도 이상하게 한번 글을 쓰기 시작하면 최소한 여섯 일곱 시간은 앉은 자리에서 줄줄이 글을 쓰게 된답니다?
그리고 더욱 이상한 것은 전혀 피곤하질 않는 겁니다?
저라는 놈은 본래 의자에 30분 이상을 앉아 있는 것을 매우 싫어하는 경우인데요?
다른 글을 쓸 때에는 10분도 너무 길고요.
그런데 이상하게 법에 관한 글을 쓰거나 말을 하게 되면 여섯 일곱 시간은 기본적으로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갑니다?
그래서 저는 저녁 일곱시 이후에는 절대로 글을 쓰지 않는데요.
왜냐하면 정신이 말똥말똥해서 잠이 안 오기 때문입니다.(진실)
왜냐하면 한번 발동이 걸리면 본성(불성/성령) 자리에서 계속해서 이야깃거리가 스스로 올라오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그래서 문제는 쓰다 보면 나중에는 너무 많이 써서 편집을 절반 이상을 하게 되는데요.
그래서 오늘도 절반 이상은 편집을 하고 중요한 것만 골라서 올려보는 것인데요.
그럼 시작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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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마음은 부처님이나 예수님 법은 참으로 진리 중에 진리이니 꼭 잘 따라 하셔서 소중한 성취를 이루시길 진정으로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있는데요.(진실)
선문답 이야기를 하자면 제 경우는 참으로 별의별 일들이 많았답니다.
이런 글을 쓰다 보니까 구독자분들이 "우리 큰 스님이 좀 보자고 하시는데요.". 하는 경우도 많았고
또 어느 어른은 직접 한번 차나 한잔하러 오라고 하시는 분들도 여럿 있었고
또는 도반들이 이 큰스님을 한번 가서 찾아뵈라,
저 큰 스님을 한번 찾아가 보라고 해서 다양한 선문답 경험이 저에게는 많은 편인데요.
그중에는 불자라면 누구나 다 아는 최고 어른들도 두세 분 계셨답니다.^^
심지어 제 경우는 중국어가 조금 되는 경우라 페이스북을 통해서 홍콩이나 대만 쪽 스님들과도 여러 번 선문답을 해본 적도 많았는데요.
지금도 그때 나누었던 자료들을 많이 가지고 있고요.
제 경우는 중국어로 하는 선문답이 훨씬 더 쉬웠는데요.
그때 느꼈지만 선문답은 우리 입 소리보다는 한문이 훨씬 더 잘 어울린답니다.
왜냐하면 한문은 뜻글자라 한두 글자면 다 끝나기 때문인데요.
그런데 우리 입소리는 저도 선문답을 많이 해봤지만 자꾸 상대가 말꼬리를 잡고 늘어서면서 질퍽거리면서 시비를 거는 경우가 많은 반면
한문은 뜻이 확실하기 때문에 상대도 바로 인정을 하는 경우라 저는 한문이 선문답에는 잘 어울린다고 보고 있는데요.
그런데 한국이나 중국 스님들이나 공통점은 선문에 막히면 막 성질을 부린다는 것인데요.^^
그런데 신기한 것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중국 스님들 대부분은 말문이 막혀서 성질을 낼 때마다 제가
[看看现在您的心..!]
[님의 현재 마음을 한번 보십시오..!]
그러면 바로 인정을 하면서 [👍🏻]가 올라온답니다.
그런데 한국 스님들은 말이 막히면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면서 성질까지 내면서 지저분하게 질퍽거린답니다.
큰 스님들도 그랬고요.
자기들이 불러서 갔는데도 성질을 냅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 문화에는 선문답이 안 맞는다고 보고 있는데요.
예전에 지혜 제일이라고 소문난 북쪽에 어느 큰 스님도 녹음테이프를 들어보면 용담 스님인가 하는 분과 평소에 선문답을 나누다가 서로가 마음이 상해서 오셨다는 법문도 대중들 앞에서 하는 것을 저는 듣기도 했는데요.
그러려면 뭐 하러 선문답을 하겠습니까?
서로가 마음만 상할 일인데요?
그래서 저는 그때
"아... 이 북쪽에 큰 스님도 아직 아니구나.."
왜냐하면 이름만 드높았지 마음 자체는 아직 덜 여물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선문답을 하고 끝난 자리에서도 안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그 감정을 자기 절에 와서 법회 때 대중들 앞에서 드러내다니요?
이런 마음을 어떻게 선지식인의 마음이라고 하겠습니까?
왜냐하면 본성(불성/성령)의 마음에는 그 어떠한 것도 붙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잠시 붙었다 하더라도 오래 머물러 있지를 않는답니다.(진실)
그래서 선문답을 통해 마음 상태는 확인해 볼 수는 있어도 깨닫고 하는 것은 알 수가 없다는 것인데요.
그래서 옛 어른들도 "내가 속았다" 하는 말도 나오는 것입니다.
선문답으로 얼마든지 속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상대가 진짜로 깨달았는지 아닌지를 가장 확실하게 비교해 볼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도성제] 안에 나와있는 내용들이나[성문사과]에 나와 있는 내용들이나 [1지 보살부터 10지 보살까지] 같은 내용들을 보면 아주 자세하게 나와있는데요.
저도 그런 기준으로 상대의 도력을 판단하고 있답니다.
제 말은 아무리 선문답을 잘하고 법문을 잘해도 마음 상태가 개판이면 그 어른들은 아직 개라는 것입니다.
선종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증상만자] 라고도 하고 [들여우]라 하는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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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경우는 어느 분을 만나든 그동안 단 한 번도 선문답에 막혀 본 적은 없는데요.
그럴 수 있는 것은 제 경우는 그동안 고서(古書)를 아주 좋아했던 경우라 옛날 언어에 익숙해 있는 것도 있고 무엇보다 시(詩)도 좋아했던 경우라 선문답의 흐름을 본성(불성/성령) 자리와 잘 융화 시킬 줄 아는 경우라 유리한 것인데요.
이 말은 곧 깨닫지 않은 사람들도 얼마든지 선문답의 흐름만 알면 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마 모르긴 해도 봉이 김선달에게 본성(불성/성령) 자리의 특징인 공(空)과 무(無)에 관한 설명만 잘 알려주고 선문답을 해보라고 하면 천하무적일 것으로 저는 보고 있는데요.(진실)
그래서 충 국사도 들여우(野狐精) 얘기까지 하신 것이고요.
여우라는 동물은 사람들을 홀려서 잡아먹잖아요.
마찬가지로 이것도 얼마든지 속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가짜 어른들이 판을 치고 있는 것이고요.
그래서 먼저 여러분들이 아셔야 할 것은 본성(불성/성령)을 깨닫고 못 깨닫고는 마음이지 말이나 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한번 생각을 해보십시오?
어떻게 말이나 글로 상대방의 마음을 확인할 수가 있겠습니까?
예를 들면
"나는 마음씨가 좋은 사람입니다"
하면 여러분들은 이 말을 믿겠습니까?
선문답도 이런 말과 같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잘 아시겠지요?
그러니 앞으로는 선문답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 상태를 보시라는 것입니다.
저 큰 스님은 부처님 마음을 쓰고 계시는지 아니면 중생들 마음을 쓰고 계시는지를 보시면 정확하다는 것입니다.
저도 선문답을 잘하는 쪽에 속하지만 제 스스로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선문답을 아무리 잘해도 마음이 쓰레기통이면 그 사람 마음도 그냥 쓰레기통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처님이나 예수님 법은 마음 법이기 때문에 그렇답니다.
이런 점을 아시고 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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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답 얘기만 나오면 구담 스님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는데요.
왜냐하면 이분은 딱 한 번에 선문을 내시고 그 자리에서 잘 왔다 하시면서 차를 내주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셨는데요.
그런데 다른 큰 스님들도 그런 줄 알고 자기들이 먼저 차나 한잔하러 한번 오라고 해서 가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저를 선문답으로 찍어 누르려고 선문을 서너 번씩 내시는 분들이 많았는데요.
그리고 하나같이 말문이 막히면 고함을 지르면서 성질을 내거나 심지어는 주장자를 들고 문밖에까지 끌려 나오시는 분도 있었고요.
특히 이분은 얼마 전에 한국 최고에 방장에 오르신 분이기도 한데요.
아무튼 선문답 같은 것은 한국 스님들이 하기에는 아직 마음 그릇이 안 되어 있다고 저는 보고 있답니다.(진실)
왜냐하면 너무 질퍽거리면서 말꼬리를 물고 늘어지기가 일쑤이고
무엇보다 선문답 좀 막혔다고 하나같이 성질을 내면서 그것도 제자들이 있는 앞에서 추태를 부리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요즘은 선문답을 피하고 있고 그 대신 선문답을 하고 싶은 어른들이 계시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선문염송 밑에 있는 선문답에 먼저 답을 주시고 수준이 되면 그때 정식으로 인사를 가려고 하는 것인데요.
그렇지 않습니까?
큰 스님이라고 해서 그 먼 길을 찾아갔는데 그것도 자기들이 오라고 해서 찾아갔는데 차도 한잔 안 내어 주시면서 선문답 좀 막혔다고 버럭버럭 소리만 지르면서 성질을 부리면 저로서는 어떡하겠습니까?
저로서도 혼을 내줄 수 박에요?
평생을 20년 넘게 사채업으로 단련된 제 기질을 그분들이 어떻게 당해내겠습니까?
괜히 제자들 앞에서 망신만 더 당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한국 스님들은 선문답을 할 자격이 없다는 것인데요.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새끼 중들까지 어른들을 따라 하면서
"들서가도 30방 나가도 30방 하면서 여기에 답해보라.!"
하면서 지랄 연병들을 떠는 댓글들이 올라오고 있으니 이런 것들이 다 누구 책임이겠습니까?
어른들 책임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선문답 이야기는 그런 이야기인데요.
이것은 제가 그동안 어른들과 선문답을 직접 하면서 느낀 것들이랍니다.
제 경우는 위에서도 잠깐 말씀드렸지만 처음으로 제게 선문을 주신 분이 오산에 있는 일물선원에 선원 장님이신 구담 스님이었는데요.
그리고 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스님과 대화를 나눈 남양주 선재사에 청운 스님 다음으로 두 번째로 만난 분이 구담 스님이었고요.
그때는 불교의 불자도 모를 때라 절에만 가면 어리벙벙할 때랍니다.
선문답은 고사하고 절하는 방법도 모르는 사람이 뭐를 알겠습니까?
아무튼 이때에 처음으로 선문을 주신 분이 구담 스님이었는데요.
그리고 답변을 드렸더니
"이것을 어떻게 알았느냐?" 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제 마음이 그렇습니다."
했더니 잘 왔다 하시면서 오늘은 늦었으니 차나 한잔하고 일요일에 다시 한번 오라고 하셨는데요.
저는 그때는 몰랐지만 나중에 여러 큰 스님들과 선문답을 나눠보니까 구담 스님 외에는 전부 다 선문을 또 내고 답을 하면 또 내고했다는 것인데요?
마치 저를 선문답으로 찍어 누르려는 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저도
"큰 스님 하나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해서 저도 선문을 내면 단 한 스님도 답변을 못했다는 것인데요.
법명은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불자라면 누구나 다 아는 어느 큰 스님은 저에게 선문 좀 막혔다고 역정을 내면서 주장자를 들고 문밖에까지 끄달려서 나오시는 분도 계셨다는 것인데요.
그런 마음을 어디에 쓰겠느냐 이겁니다?
저는 솔직히 스님들은 다 청운 스님이나 구담 스님 같은 줄 알고 기쁜 마음으로 큰 스님들을 찾아간 것이거든요.
거기다가 중간에 어떤 최고 어른은 사주 관상으로 알아차림을 하고 있으니 저로서는 속으로 대성통곡을 할 수 박에요?
거기다가 친견비에 천도재에 미쳐서 돈벌이에만 눈이 시뻘건 그런 스님들이 무슨 선지식인이고 무슨 큰스님들이겠습니까?
대한민국 최고 무당들도 친견비가 5만 원 박에 안 하는데 기껏 사주 관상이나 보는 큰스님들 친견비가 20~50만 원씩 달라고 하니 저로서는 이런 어른들을 뭐라고 글을 써야겠습니까?
저는 뭐라도 하나 더 배우기 위해서 찾아간 것인데 배우기는커녕 오히려 가르쳐 주고 와야 할 판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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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답이란 그런 것이 아니랍니다.
여러분들은 선문답이 어디서 유래했는지 혹시 아시나요?
당태종 이세민 때부터랍니다.
왜냐하면 이때부터 과거 시험이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그대로 불교 쪽으로도 전수된 것이고요.
그리고 이 당시부터 조선 때까지는 학문을 배부고 익힐 때에는 종이가 귀할 때라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가르치고 배우던 시기랍니다.
그리고 과거시험도 주관식이라 시제(試製)만 걸어놓고 답을 했었고요.
불교 쪽으로는 육조 혜능이 글을 모르다 보니까 선답을 다른 스님에게 써달라고 해서 낸 것이 대표적이고요.
선문답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스승과 제자가 서로 묻고 답하면서 가르치고 배우고 하던 시기라 선문답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일반 학문도 그랬고요.
이제 이해가 가시나요?
선문답을 통해 배우고 익히는 것이지 서로가 경쟁을 하면서 이기고 지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말싸움까지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고요.
그리고 이세민(598~649) 이 죽을 때에 육조 혜능(638~713 ) 나이는 열한 살 이였는데요.
이것은 무엇을 뜻하느냐 하면 학문(學文/學問)이 가장 꽃피울 때에 선종(禪宗)도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불교에서도 불법을 가르칠 때에 문답(問答) 형식으로 가리켰고요.
그래서 시험 또한 문답(問答) 형식으로 치렀던 거랍니다.
쉽게 말해 당시에는 학문이든 불문이든 스승과 제자 사이에는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가르쳤고 제자가 얼마나 공부가 됐었는지 또한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제자의 공부됨을 알아보았다는 것입니다.
당시의 불교도 이런 제도를 따랐다는 것이고요.
왜냐하면 당시에 당나라 문화는 스승과 제자가 가르치고 배울 때에는 묻고 답하는 문화였니까요.
학문에도 학문(學問)이 있고 학문(學文)이 있듯이
그래서 불교 쪽도 선문(禪門)이 있고 선문(禪問)이 있는 것이랍니다.
무식하게 이기고 지는 그런 것이 아니고요.
지난주에도 말씀드렸지만 한국 스님들은 입소리에 익숙하다 보니까 무조건 입소리로만 한문을 해석하려고 하는데요?
그러다 보니까 불교 가르침이 엉망진창이 되는 거랍니다.
쉽게 말해 선문(禪門)은 스승이 제자에게 염송으로 가 가르치는 것이라면 선문(禪問)은 제자가 얼마나 알고 있는지 스승이 묻고 답하는 거라는 것입니다.
깨닫고 못 깨닫고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고요.
더군다나 자기들끼리 싸우는 것은 더더욱 아니고요.
염송이란 저도 어렸을 때 어머니도 그러셨고 외가 집이나 이모 집에 가면 이모부가 곰방대를 입에 물고 책이나 신문을 읽을 때에도 음을 넣어서 노래 부르듯 글을 읽던 문화가 예전 문화랍니다.
게송도 마찬가지이고요.
요즘도 공부할 때 가사를 바꾸어서 노래 부르듯 외우면 잘 외워지잖아요?
그래서 불법도 게송으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것이고요.
뭐를 좀 알고 선문답이든 뭐든 하셔야 하는데 무식하게 선문만 드리 밀면 이런 어른들을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여러분들은 몰라서 그렇지 이쪽 일을 하다 보면 별의별 넘들이 다 올라와 집적 거리는 데요.^^
그래도 기독교 쪽 사람들은 기본적인 예의가 있는 상태에서 성경 구절 등을 들이미는 쪽인데요.
그런데 불교 쪽 스님은 욕을 하는 스님들이 있지를 않나 젊은 스님들이 어른들 흉내를 내면서 "들어가도 30방 나가도 30방" 그러고 있지를 않나?
이런 것들이 모두 어른들이 잘 못 가르쳐서 승복을 입혀놓아서 그런 거랍니다.
예를 들면 지난주에도 어떤 새끼 중으로 보이는 사람이 보내온 댓글인데요.
오랜만에 이런 댓글이 올라와서 마침 선문답 이야기를 하는 김에 올려보려고 하는데요.
예전에는 선문답을 하자고 시비를 거는 스님들이 많았었거든요.^^
그런데 수준이 맞아야 선문답을 하든 법담을 나누든지 하지요?
그래서 일부러 (3) 선문답(禪問答)란 도 만든 것이고요.
나와 선문답을 나누려면 먼저 이것부터 풀고 오라는 뜻으로 말이지요.
요즘 한국 불교의 젊은 스님들이 이런 수준이라고 보시면 되는데요.
오늘은 처음으로 공개해 보는 건데요.
지금 한국 불교는 스승이 제대로 된 스승이 없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거랍니다.
그래도 이 스님은 보내오는 댓글들 중에 가장 양호하다고 보시면 되는데요.
일단 욕 같은 것이 없답니다.
그 외에는 스님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별의별 욕들을 하고 있고요.
물론 훌륭한 스님들도 많지만 그것은 극히 일부라는 것입니다.
같이 감상해 보시지요.^^
(질문)
긴 글 잘 읽었습니다.
님께서는 불성과 성령이 같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기독교에서는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이 같다는 삼위일체 교리를 말합니다.
구약성경을 읽어보면 하느님은 스스로를 창조주라고 합니다.
그런데 스스로를 '질투하는' 존재라고 합니다.
하느님이 창조주라면 사탄도 창조했겠군요?
왜 사탄을 창조했나요? 사사건건 자기를 훼방하는 존재인데요?
그래놓고 사탄을 숭배한다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여버립니다.
구약성경 전체가 피바다입니다.
하느님의 설계라구요? 왜 창조해놓고 죽입니까?
전지전능하다면 사탄을 왜 그대로 둡니까?
불성은 하느님에게도 있고, 사탄에게도 있습니다. 모든 생명체들에게도 동일하게 있습니다.
혹시 아시나요? 눈이 겨자씨를 보면 마음도 겨자씨가 되고, 우주를 보면 마음도 우주처럼 됩니다. 이런 작용들의 근본이 바로 불성입니다. 거룩한 영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답변)
음. .
제가 먼저 님에게 궁금한 것은 님께서는 불교든 기독교든 책이나 말을 듣고 이 공부를 하시는 분인지?
아니면 수행을 통해서 공부를 하시는 분인지 궁금하군요?^^
어느 쪽이든 질문을 주셨으니 간단히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먼저 아셔야 할 것은 불경이든 성경이든 2000년 전에 언어로 전해진 책이랍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대부분 상형문자가 많이 남아 있던 시기랍니다.
그리고 그 당시 사람들은 문맹률도 거의 다였답니다.
우리도 문맹률을 완전히 벗어난 것이 불과 2~30년도 안된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산에 가면 산신령이 있고, 변소에 가면 달걀귀신이 있다고 하면 믿던 그런 시대가 우리도 바로 얼마 전 일인데 2000년 전 사람들에게 이런 것을 전하려니 어떻겠습니까?
지금 사람도 잘 못 알아듣는 이런 내용들을 그 당시 사람들에게 전하려니 어떻겠느냐 이 말입니다?
마치 어린아이에게 설명을 하듯 극락이니, 천국이니, 악마니, 마구니니, 사탄이니 하는 비유로 설명을 해줘야 그나마 알아듣지 않겠어요?
그런 내용들을 아직도 지금 님께서는 믿고 계시면 어떡하십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님께서 보내주신 내용들을 한번 보십시오?
창조주니? 사탄이니? 숭배니? 겨자 씨니? 영혼이니?
하는 내용들이 모두 그 당시에 어린아이들에게 설명하듯 했던 내용들을 아직도 그렇게 알아듣고 있으시면 어쩌자는 것입니다?
(??)이라는 닉네임을 쓰시는 것으로 보아선 불교 쪽 분인 것은 맞는데 혹 출가자라면 지금이라도 정신 바짝 차리셔야 한답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창조주니? 사탄이니? 숭배니? 겨자 씨니? 영혼이니? 하는 것에 의식이 가 있다면 그 사람을 어떻게 고귀한 출가자라 할 수가 있겠느냐? 이 말입니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그런 것에 연연하지 마시고 선방으로 들어가셔야 한답니다.
괜히 지금처럼 쓸데없는 알음알이 들만 잔뜩 들고 있지 마시고요.
그리고 혹 재가자 시라면 선방을 구하기가 어려울 것이니 필요하시면 단 몇 달이라도 먹고 자면서 오산이나 문경 쪽으로 수행을 전문으로 하시는 훈륭한 스님을 소개해 드릴 수도 있고요.
필요하시면 저도 옆에서 적극적으로 돕겠습니다.
저의 이런 답변에 너무 기분 나빠하지 마시고 꼭 선방으로 들어가시면 다시 문자를 주십시오.
왜냐하면 이것은 그렇게 책으로 알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 말이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
감사합니다.😁🙏🏻
.
.
.
♡
(재 질문)
기독교인의 전형적인 대응이군요.
그럼 묻겠습니다.
영혼이 최초에 작동할 때 어떻게 작동합니까?
(재 답변)
네 알겠습니다.^^
여기에 대한 답변은 이번 주 월요일 선문염송 편에서 답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재 질문)
지금 답도 못하시는 분이 무슨...
(재 답변)
좀 기다리세요.^^
아주 자세하게 님이 현재 처한 것이 어떤 것인지 알려드릴 것이니..^^
아 그리고 이 시간에 문자를 주는 것으로 보아 스님인 것 같은데 맞습니까?^^
맞는다면 솔직히 법명을 밝혀보시지요?
그래야 그 수준에 맞게 서로 대화가..?(새벽 4시 40분 쯤)
(재 질문)
뭘 기다리겠습니까? 님의 밑천은 다 드러났는데.
그리고 님같은 분들은 대면해 토론하자고 하면 절대 안하죠.
그저 숨어서 키보드만 두드릴 뿐...
(재 답변)
그래그래 알았습니다.^^
지금이라도 님이 말하는 영혼을 알고 싶다면 어제든..^^
아무튼 이번 주를 기대해 보십시오.^^🙏🏻
(재 질문)
Al에게 열심히 물어 보세요.
참... 고생하십니다.
사는게 뭔지...
(답장을 안 해 주니까 하는 말임)
그럼 지금 답해 보십시요.
(그래도 대꾸를 안 하니까 몸이 달아서 하는 말임^^)
대반열반경에서 부처님께서 예언하신 것이 하니도 틀리지 않습니다.
마지막 댓글이니 열심히 하시기 바랍니다.
"나모 바아바뎨 사르바 불타 송아다야 타타아다야 아르하뎨 샴막삼못다야"
(그래서 할 수 없이 이런 문자를 제가 해주었는데요.)
(재 답변)
어허..
그곳에는 마지막은 없느니. .
,
라는 내용의 댓글을 소개하는 것인데요.
지금 불교 쪽 젊은 승려들이 이런 수준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누구 잘못이겠습니까?
이렇게 가르치고 있는 스승들 잘못이 크지 않겠습니까?
내용을 한번 보시면?
"사탄을 숭배한다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여버립니다."
라는 문구나?
"구약성경 전체가 피바다입니다."
라는 문구나?
"왜 창조해놓고 죽입니까?
전지전능하다면 사탄을 왜 그대로 둡니까?"
라는 문구나?
"눈이 겨자씨를 보면 마음도 겨자씨가 되고, 우주를 보면 마음도 우주처럼 됩니다." 이런 작용들의 근본이 바로 불성입니다. 거룩한 영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라는 문구나?
특히
"영혼이 최초에 작동할 때 어떻게 작동합니까?"
라는 내용은 불교를 공부하시는 분들 쪽에서는 배꼽을 잡고 웃을 일인데요.
내용으로 보아 기독교 쪽에서 불교 쪽으로 건너 온 스님처럼 안 보이십니까?
그리고 기독교 쪽도 딱 한 종단만 빼고는 일반 장로교회나 감리교회나 또는 침례교나 순복음 교회 같은 곳에서는 이런 용어들은 잘 안 쓴답니다.
불교 쪽 수형자분들에게 여러분들이 스승이라고 가정하고 한번 묻겠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어느 제자가 와서?
"영혼이 최초에 작동할 때 어떻게 작동합니까?"
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답변을 하시겠습니까?
주장자부터 날아가지 않겠습니까?
물론 훌륭한 젊은 스님들도 적게는 더러 있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공부를 안 하기 때문에 이런 스님들이 있는 것인데요.
이렇게 된 이유는 이 스님 잘못이 아니라 이렇게 가르치고 있는 스승들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이 스님은 욕은 없어서 처음으로 이런 내용을 올려본 것인데요?
기독교와 비교해 보면 한국 불교는 아직 인격 수준이 멀었답니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그래도 성경 구절들을 가지고 와서 들이밀면서 저에게 따지는 경우이지만
그런데 불교 쪽 스님들은 이 스님처럼 불경 구절도 아니고 선문 구절도 아니고 자기 머리에서 나오는 이야기만 하고 있는 스님이 대부분이라는 것인데요.
그동안 얼마나 공부를 안 했으면 이 정도 수준이겠습니까?
불교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분별심이라고 하는데요.
제가 봐도 지금 스님들은 공부를 안 해도 너무 안 한답니다.
제 경우는 절에 가면 가장 먼저 보는 것이 습관적으로 책장부터 보는 편인데요.
그리고 이 책 저 책들을 펼쳐 보면 책갈피로 쓰는 끈을 보게 되고요.
그러면 책이 나올 때 그대로인 책들이 너무 많았답니다.
단 한 번도 펼쳐보지 않은 책들이 거의 다였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선문염송 책만 해도 1994년 8 월에 발행된 책인데요.
이 책을 저에게 구담스님이 사찰에서 구해다 주신것은 2018년도 였고요.
그런데 24년 동안 그 누구도 단 한 번도 책을 열어본 흔적이 없는 책이었답니다.
선종인데도 말이지요?
선종의 스님들은 최소한 선문염송 정도는 교회 목사들처럼 도사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교회 목사들은 성경 구절들을 달달 달 꾀고 있는데?
스님들은 수행도 안 해? 경전 공부도 안 해?
아침저녁으로 고철 덩어리인 부처님만 앞에 놓고 먹지도 않는 밥을 올려놓고 목탁치고 염불만 하고 앉아 있으니 이런 것들이 다 누구 탓이겠습니까?
이렇게 가르치고 있는 큰 스님들 탓이지요.
출가를 했으면 기독교 목사들처럼 어느 경전에 어느 구절은 어떤 말씀이 있다는 것 정도는 꾀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 이겁니다?
그러니 저 같은 애송이에게 큰 스님들이 제자들 앞에서 그런 창피를 당하는 것이고요.
그렇지 않겠어요?
선문염송을 봐야 저처럼 선문답도 잘 하지 않겠느냐 이 말입니다?
아니 어떻게 24년 전에 발행된 책이 그 많은 스님들 중에 단 한 번도 열어보는 스님들이 없느냐 이 말입니다?
저는 지금 스님들을 보면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데요?
그렇지 않습니까?
자기들은 선종이라면서요?
그러면 선문염송 정도는 꾀고 있어야지요?
그래야 선문답을 하든 말든 하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리고 제가 그동안 많은 사람들과 상당을 나누어 보면서 느낀 점은 스님들보다 일반 재가자들이 훨씬 더 수행에 대한 열정도 강했고 수준들이 높았다는 것인데요?
왜 그럴까요?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 주에 이어서 해 보겠습니다.🤗🙏🏻
,
그러면 본문 내용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ㅡ♡
«1» 불교 쪽
[선문염송] 중에서.. (198편) 20260727
제목 : 풍성(風性)
마곡이 어느날 부채질을 하는데 어떤 중이 묻되 "바람의 성품이 항상 있어서 두루하지 않은 곳이 없거늘 화상은 어째서 부채를 흔드십니까?" 하니, 선가가 대답호대 "그대는 바람의 성품이 항상 있는 줄만 알았고, 두루하지 않은 곳이 없는 줄로 몰랐구나" 중이 다시 묻되 "무엇이 두루하지 않은 곳이 없는 도리입니까?"하니, 선사는 다시 부채를 흔들었다. 이에 중이 절을 하니, 선사가 말호대 “쓸모 없는 중을 천 명 붙혀 둔 들, 무슨 이익이 있으랴?" 하였다.
,
(한문 원본)
風性
麻谷一日使扇次有僧 問風性 常住 無處不周 和尙 甚麼却搖扇 師云 儞只知風性常住 且不知無處不周 云作麼生是無處不周底道理 師却搖扇 儈 作禮 師云 無用處師僧 着得一千箇 有什麼益
♥~~♥
«2» 기독교 쪽
제목 : 도마복음 제25장
(아래 하단 숫자 : 15:15/54:36)
https://m.youtube.com/watch?v=8fLKlrmCvGI&pp=iggCQAE%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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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형제를 네 영혼과 같이 사랑하라.
2. 그 사람을 네 눈의 동자처럼 보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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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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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뭣고]의 곁가지 김태현입니다. 😄🙏
한 주일 잘 보내셨지요..^^
오늘은 지면 공간이 적어서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ㅡ♡
(본문 해설)
여기서 말하는
"두루하지 않다"
라는 뜻은 한문으로 하면 무처불주(無處不周)라는 뜻으로
본성(불성/성령) 자리는 없는 곳이 없고 두루두루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는 뜻입니다.
쉽게 말해 본성(불성/성령) 자리는 전 우주에 어디든 꽉 차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본문 내용을 살펴보면 어느날 한 중이 마곡에게 찾아와서 마곡이 부채질을 하고 있는데 하는 말이?
"바람에는 성품이 항상 있어서 두루 하지 않은 곳이 없거늘 화상은 어째해서 부채를 흔들고 계십니까?"
했다는 것인데요.^^
이 말은 바람은 어디에든 있는데 왜 부채질을 하고 있느냐는 뜻입니다.
말이야 맞지요.
바람은 어디에든 있지만 내게 시원한 바람이 스스로 불어 주지는 않잖아요?
이해가 가시나요?
이쯤 되면 오래도록 수행을 해오신 분들은 이해가 가실 줄 아는데요?^^
아직 이해가 안 가신다고요?^^
그러면 뒷이야기를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그래서 마조가 다시 대답하기를..
"그대는 바람의 성품이 항상 있는 줄만 알았고, 두루하지 않은 곳이 없는 줄은 몰랐구나"
했디는 것인데요.
이 말은 너는 바람의 성품은 어디든 있는 줄은 알고 있지만 본성(불성/성령)의 성품은 어디든 있는 줄은 아직 모르고 있구나?
라는 뜻이랍니다.
그랬더니 이 중이 하는 말이?
"무엇이 두루하지 않은 곳이 없는 도리입니까?"
라고 아직도 감을 못 잡고 이런 질문을 했다는 것인데요.^^
그랬더니 마곡이 다시 부채를 흔들었다는 것인데요.
이 뜻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십니까?
이것이 바로 [몸(오온)과 마음]을 관찰하면서 수행을 하는 [조견오온]을 하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랍니다.
왜냐하면 불교에서 표현하는 바람은 외부에서 불어오는 여러 가지의 괴로움과 고통들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비유가 바람이 흔들리는 것이냐 깃발이 흔들리는 것이냐?라는 비유이고요?
깃발도 외부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흔들리고 살랑살랑 펄럭이잖아요?
마치 우리들 마음처럼 말입니다.
우리들 마음도 [안이비설신]을 통해 외부에서 인연 따라 들어오는 정보들 때문에 내 마음도 [의/뜻]가 일어나서 흔들리잖아요?
이것은 좋다 나쁘다 하면서 말입니다.[의/뜻]
부채와 바람도 그런 비유라는 것입니다.
아무튼 그랬더니 이 중이 절을 하니까 마곡이 말하기를..
“쓸모 없는 중을 천 명 붙혀 둔 들, 무슨 이익이 있으랴?"
했다는 것인데요.
이 말은 그대로 지금의 한국 불교와도 적용이 된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스님들이 천명 아니라 만명 또는 십만 명이면 뭐 하겠습니까?
수행은 고사하고 경전 공부도 안 하는데요?
그래도 기독교인들은 성경 구절이라도 들고 와서 저에게 따지는 경우가 대부분인데요.
그런데 불교 쪽에서 공부하시는 분들은 경전 구절이나 선문 구절 등을 가지고 와서 따지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댓글로 보내온 스님인듯한 사람처럼 자기 머리에서 나오는 분별심으로 오늘 어떤 중처럼 건방지게 따진다는 것인데요.
제가 왜 이런 소리를 하느냐하면 여러분들도 한번 보십시오?
불교 쪽에서 공부를 했다는 사람이?
[그럼 묻겠습니다.
영혼이 최초에 작동할 때 어떻게 작동합니까?]
가 뭡니까?
지금 스님들이 이러고 있다는 것인데요.
그래도 이 스님은 그중에서도 나은 쪽에 속한다는 것이고요.
그래도 어떡하겠습니까?
그렇다고 야단을 쳐서 보낼 수는 없잖아요.
잘 타일러서 다시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해야지요.
그러나 이름 있는 큰 스님들은 다르다는 것인데요.
왜냐하면 수많은 사람들을 골(죽음)로 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지금 스님들은 왜 이런 스님들이 늘어나고 있는지 다음 주에 이어서 해보겠다는 것인데요.^^
이 내용은 기독교 쪽도 크게 다르지 않답니다.
아무튼 이 내용은 지면 관계상 다음 주로 미루기로 하고요.
도마복음 이야기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오늘 도마복음 제 25장 내용은
[1.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형제를 네 영혼과 같이 사랑하라.
2. 그 사람을 네 눈의 동자처럼 보호하라."]
라는 내용인데요.
여기서 말하는 형제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을 이르는 말인데요.
불교 식으로 말하면 도반(道伴)을 말한답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같이 말씀을 공부하고 수도(수행)를 하는 형제들을 뜻하는 것이랍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성령(불성)을 영접하기 위해 예수님 가르침을 같이 공부하고 수행하는 형제들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고 아껴주라는 것입니다.
불교 쪽에서 오래도록 공부해 오신 분들은 지금 이 내용을 보시고 어떤 느낌이 드셨나요?^^
부처님 말씀과 똑같은 말씀 아닌가요?
왜냐하면 불교 식으로 말하면 도반에 관한 내용이니까요.
부처님도 같이 공부하고 수행하는 도반들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라고 하지 않던가요?
예수님은 한술 더 떠서 도반을 네 눈의 동자처럼 보호하라고 하십니다.
눈동자는 신체 부위 중 오복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부분 아닌가요?
그만큼 같이 공부하고 수도(수행) 하는 형제들을 위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하서는 불교 쪽은 기독교를 쫓아가려면 아직 멀었다고 보시면 되는데요.
왜냐하면 불교 쪽 도반(형제)들은 서로 시기하고 다투는 일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스님들끼리도 치고받고 하는 경우도 많고요.
제 경우만 해도 태어나서 줄 곳 성당에 다니고 교회에 다녔지만 단 한 번도 기독교 형제들과 다투거나 한 적은 없었는데요.
제가 불교 쪽 공부를 하니까 중국에서 같이 활동하던 교회 쪽 형제들이 저보고 사탄의 소굴에서 저를 건져달라는 기도는 했었어도 저를 욕하거나 시기하거나 하지는 않았답니다.
그런데 불교 쪽 도반들은 자기들끼리 툭하면 다투고 싸운답니다?
여러분들이 몰라서 그렇지 같은 핏줄들보다도 같이 이법을 증득(영접) 하기 위해서 공부하고 수행(수도) 하는 도반 형제들이 얼마나 중요하고 고귀한지 아십니까?
같은 핏줄들이야 현생에서 죽으면 끝이지만 같이 이법을 증득(영접) 하기 위해서 공부하고 수행(수도) 하는 도반 형제들은 세세토록 다생 겁을 같이 하게 될 형제들이기 때문에 소중한 것이랍니다.
저도 그래서 같이 공부하고 있는 도반들을 꿈찍히 여기고 있는 것이고요.
그러나 기독교 쪽은 성령을 영접하기 위한 노력들은 전혀 안 하고 있다는 것이 큰 문제인데요.
기왕 말이 나온 김에 성령을 영접하는데 제가 앞장설 것이니 기독교 형제들은 저와 함께 형제의 의를 맺는 것이 어떻겠습니까?(진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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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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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법에 대한 내용, 질문이 있는 경우 질문 내용
이 란은 우리들의 란인데요.
질문이나 세상살이 이야기 등을 자유롭게 나누는 란이랍니다.
그리고 내용 끝에 (진실)이라는 표시는 제가 체험한 내용들과 마음에 느끼고 있는 것들에 대한 [동의] 표시랍니다.
ㅡ♡
지면이 작아서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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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나누었던 질문답 내용들이 많이 밀려있는데요.^^
너무 많아서 다 올리지 못해 좀 송구하지만 가급적이면 여러분들에게 유익한 내용부터 골라서 올려드리고 있답니다.^^
이번에도 앞전에 질문을 주신 도반 분의 내용인데요.
이분은 한 카페를 통해 지금은 저와 카톡 도반이 된 분이신데요.^^
참으로 열심히 하고 계시는 분이시랍니다.😁👍🏻
같이 감상해 보시겠습니다.^^
(질문)
알아차림을
실생활에서 어떻게 하는지
쉽게 예를들어 설명
해주실수 있나요?
(답변)
네 안녕하시지요?^^
녹음 내용에도 나와 있듯이 사람에 따라 알아듣는 척도가 모두 다르답니다.
어떤 사람은 의식이 깨어서 알아차림을 하면서 생활을 하라고 하면 잘 알아듣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나를 알아차림을 하면서 생활을 하라고 하면 잘 알아듣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현재 이 순간을 알아차림을 하면서 생활을 하라고 하면 잘 알아듣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나를 보면서 알아차림을 하면서 생활을 하라고 하면 잘 알아듣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지금 보고 있는 그 자리를 알아차림 하면서 생활을 하라고 하면 잘 알아듣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상담을 받아보면 근기 즉 전생부터 해오던 방법들이 다 다르다 보니까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있기 마련인데요.
잘 알아듣는 쪽으로 알아차림을 하시면 된답니다.^^
중요한 포인트는 나가 나를 알아차리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또 [안이비설신의]
즉 쉽게 말해?
어떤 사람들은 눈을 통해 알아차림을 잘 하는 사람이 있는가 반면..
또 어떤 사람들은 귀를을
통해 알아차림을 잘 하는 사람이 있는가 반면..
또 어떤 사람들은 코를 통해 알아차림을 잘 하는 사람이 있는가 반면..
또 어떤 사람들은 입을 통해 알아차림을 잘 하는 사람이 있는가 반면..
또 어떤 사람들은 몸(피부/감촉)을 통해 알아차림을 잘 하는 사람이 있는가 반면..
또 어떤 사람들은 마음을 통해 알아차림을 잘 하는 사람이 있는가 반면 그 종류도 가지각색이랍니다.
제 경우는 눈을 통해 알아차림이 잘 되는 쪽이고요.
이렇게 자신에게 맞는 알아차림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답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지겹지 않게 꾸준히 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뭐든지 잘 안되면 쉽게 포기를 하게 되잖아요?
수행 방법도 마찬가지랍니다.
그래서 잘 되는 쪽으로 하시라는 것이고요.😁👍🏻
단 처음에는 이것이 잘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박에요?
평생을 의식을 밖으로만 두고 살다가 갑자기 내 쪽으로 돌리려니 잘될 수가 없지요?^^
그래서 옛 어른들은 도를 "닦는다" 그런 표현을 썼던 거랍니다.
왜냐하면 여기서 말하는 "닦는다"란 반복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주리반다가 처럼 빗자루도 반복을 하면서 쓸어내는 비유이고
걸래 질도 앞뒤로 반복을 하면서 방을 닦지 않던가요?
유리창도 좌우로 반복을 하면서 닦고요.
그래서 알아차림도 계속해서 반복 또 반복을 하셔야 완전히 내 것이 된답니다.
부처님은 이것을 [알아차림의 확립]이라 표현하신 것이고요.
이렇게 수행은 [알아차림의 확립(고성제)]이 안 되어 있으면 그 뒤에 것들 즉 집성제와 멸성제는 할 수가 없답니다.
이것을 뛰어넘지 못하면 도성제는 꿈도 꿀 수가 없는 것이고요.
내가 나를 알아차리지 못하는데 무엇인들 할 수가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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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선문답(禪問答)
중국 글은 뜻글자랍니다.
선문답에서는 본성(성령)을 뜻하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키포인트랍니다.
모든 선문답은 그동안 공부한 내용들을 알아보는 것이랍니다.
깨닫고 증득한 것과는 크게 상관은 없답니다.
왜냐하면 우주보다 크고 넓은 불성(성령)의 세계를 몇 글자의 글과 말로서 가늠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깨닫고 증득한 기준점은 글이나 언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불성(성령)의 마음에서 오는 언행(言行)이 그 기준점이랍니다.
아무리 선문답을 잘 풀고 경전에 막힘이 없다 하더라도 불성(성령)의 마음이 드러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선문답 같은 곳에 너무 집착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에게 중요한 것은 선문답을 통해 자신의 마음과 비교를 해보는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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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선문(禪問)입니다.
忠國師因肅宗帝請看戱 師云 有什麽身心看戱 帝再請 師云 幸自好戱
(충 국사에게 숙종황제가 광대놀이 구경을 가자고 하니, 국사가 대답호대 "어느 몸과 어느 마음으로 구경을 하리까?" 하였다. 황제가 거듭 청하니, 국사가 말호대 "몹시도 구경을 좋아 하시는군요" 하였다.) 41
ㅡ
(선답)
오늘 내용도 본성(불성/성령/마음)을 표현한 내용인데요.^^
여기서 말하는 어떻게 [구경을 하리까?]라는 뜻은?
"어떤 관법(觀法)으로 하리까?"
라는 뜻인데요.
쉽게 말해 어떤 방법으로 알아차림 수행을 해야 할지를 묻는 거랍니다.
만약에 숙종황제가 저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해 온다면 저는 바로
"부처님이 하셨던 조견오온을 해 보십시오."
라고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일반 중생들이 하기에는 가장 쉽고 정확하기 때문입니다.
~♡~
다음 주 선문(禪問)입니다.
忠國師問僧 近離什麽處 云 南方 師云 南方知識以何法示人 云 南方知識只道 一朝風火散後 如虵*退皮 如龍換骨 本爾眞性 宛然不壞 師云 苦哉苦哉 南方知識說法 半生半滅 半不生滅 僧云 南方知識卽如是 未審和尙此閒說何法 師云 我此閒身心*一如 身外無餘 云 和尙何得將泡幻之身 同於*法體 師云 你爲什麽入於邪道 云 什麽處是某甲入於邪道處 師云 不見敎中道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충 국사가 어떤 중에게 묻되 "요즘 어디서 떠났는가?" 하니, 중이 대답호대 "난방에서 떠나왔습니다." 국사가 다시 묻되 "난방의 선지식이 어떤 법으로 사람들을 가르치는가?" 하니, "남방의 선지식들은 한결같이 말하기를 "하루아침에 바람과 불길이 흩어진 뒤에야 뱀이 허물을 벗은 것 같고, 용이 뼈를 바꾼 것 같이 되나, 본래의 참 성품은 뚜렷해서 무너지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이에 국사가 "애닳구나 남방 선지식의 설법은 반은 생멸하고, 반은 생멸치 않는구나" 하니, 중이 다시 "남방의 선지식은 그렇거니와 화상은 여기서 어떤 설법을 하십니까?" 하니, 국사가 대답호대 "나는 여기에서 몸과 마음은 한결같아서 몸 밖에 딴 것이 없다 하노라" 중이 다시 묻되 " 화상께서는 어찌 허망한 몸을 법신과 같다고 하십니까?" 하니, 국사가 "너는 어째서 사뙨 길에 드는가?" 하였다. 중이 묻되 "어째서 제가 사뙨 길에 들었다 하십니까?" 하니, 국사가 대답호대 "보지 못했는가. 경에서 말씀하시기를 "만일 형상으로써 나를 보려거나 소리로써 나를 찾는다면 이 사람은 사뙨 길을 걷는 사람이다. 여래를 보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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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이 내용에 맞는 합당한 답변을 해주시면 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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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다음 주 선문염송
[선문염송] 중에서.. (199편) 20260816
제목 : 서우(犀牛)
염관제안 선사가 어느날 시자를 불러 말호대 "내 물소 부채를 가져오너라" 하니, 시자가 대답호대 "부채가 망가졌습니다" 선사가 다시 말호대 "부채가 망가졌거든 나의 물소나 돌려 다오" 하니, 시자가 대답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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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 원본)
犀牛
鹽官齊安禪師一日喚侍者 與我將犀牛扇子來 侍者云 扇子破也 師云 扇子旣破 還我犀牛兒來 侍者無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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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자신의 마음자리를 비추어보시고 답을 주시면 되겠습니다.
혹시 개인별로 답을 주시거나 질문이 있으시면 메일로 주셔도 됩니다.^^
e-mail : 119e@daum.net
또는
다음 검색 창
[119 수행 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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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법문 동영상
오늘 내용은 쉽게 말해 제아무리 머리로만 공부를 해봐야 실천하지 않으면 모두가 꽝이라는 내용이랍니다.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youtu.be/wOmiUjS0PVk?si=4tcScGYcj6kpO-_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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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음악과 함께 수행을.. 》
"지금 음악을 듣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
하면서 안으로 의식을 돌려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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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ANGIE GOLD - EAT YOU UP ( V.J ANDRES FABIAN C.R AUDIO HQ )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youtu.be/oxqG5sme1P4?si=V2lK3tUJ1l568o9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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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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