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아마도 태초부터. 물론 남녀 두 사람뿐이었을 때는 그럴 기회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수가 많아지고 경쟁이 시작되면서 인간의 욕심이 남의 것으로 넘어갑니다. 영역을 넓히는 것입니다. 사실 전쟁이란 것이 그래서 생기는 것 아니겠습니까. 내 것을 지키기보다는 남의 것을 뺏기 위해서 발발합니다. 그것이 발전하면 남보다 더 많이, 더 좋은 것으로, 더 누리기를 바라며 주변을 살펴봅니다. 그것을 차지하려니까 빼앗아야 하고 그러자니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처음에는 식량을 채우려고 경쟁하였을 것입니다. 생존본능이기도 합니다. 얻으려, 지키려 그리고 더 가지려고 나아가 더 좋은 것으로 가지려고 싸웁니다.
그 욕심이 욕정으로 넘어갑니다. 한 사람으로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강제로 잡아다 채웁니다. 일단 힘이 약하니 당합니다. 힘으로 당하기 어려우니 복수를 하기도 어렵습니다. 강제로 데려다 아내로 삼기도 합니다. 그나마 다행(?)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일회성으로 그치는 경우도 많습니다. 채우고 버리는 것이지요. 이것이 정당성을 가지고 횡행했던 경우가 바로 전쟁입니다. 적을 멸하고 적의 것들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소위 전리품이지요. 그런데 거기에 여성이 포함됩니다. 당시 포로는 곧 노예가 되고 주인의 소유가 됩니다. 사람다운 인격이란 것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주인에게는 노예에 대한 생사여탈권까지 있습니다. 그러니 대항할 수 없습니다.
근래에 들어 전장에서 이루어지는 성폭력에 대한 경계와 징계가 논의되지만 이전 세기까지도 없던 일입니다. 어쩌면 당연한 권리였습니다. 왜냐하면 ‘전리품’이란 사고방식 때문입니다. 여자도 인간이라는 의식이 먼저 있어야 성폭력이 예방됩니다. 똑같은 인격체로서 그 존귀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단순히 욕망의 대상일 뿐입니다. 그러니 쓰다 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기묘한 것은 자기 가족 안에서는 그런 의식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행태 중에서 가장 이중적인 것이 바로 이 성(性) 문제입니다. 자신과 밀접한 관계를 이루고 있으면 그렇지 않은데 일단 관계를 떠나면 욕정의 대상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힘과 전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여성의 인격이 쟁취되고 인간 의식이 보다 진보하여 사회 체제나 의식 그리고 문화 자체가 바뀝니다. 그래서 남자와 여자 구분을 철폐하고 똑같은 인격체로서 서로 대우해줄 것을 인정합니다. 실제 일이나 운동, 예술, 각종의 분야에서 남녀 구분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인간의 욕정은 변하지 않습니다. 소위 이성으로 다스려야 하는 부분입니다. 여전히 그 욕정에서 헤어나지 못하면 어떻게든 기회를 만들려고 애쓸 것입니다. 옛날처럼 완력으로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닙니다. 보다 지능적인 방법을 개발(?)합니다. 소위 몸으로가 아니라 마음으로 정신으로 심리적으로 상대방을 무력화시켜 복종하도록 만들지요.
권력과 돈. 사람을 움직이는 강력한 도구입니다. 아마도 그래서들 그것에 목매는 사람들이 그리도 많은 듯합니다. 돈, ‘필요악’이라고 말하지만 아무튼 싫어하는 사람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해도 그것 있다고 싫어하는 사람 없습니다. 그리고 돈이 생겼다고 우는 사람 없습니다. 부정한 방법으로 거둔 것이 아니라면 있어서 좋고 많아서 더 좋습니다. 돈이 없어서 걱정을 해도 돈이 많아서 걱정하지는 않습니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성직자도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없으면 불편하고 돈이 있으면 유익하게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성직자 됨도 어쩌면 버는 것과 더불어 사용하는 법에 따라 가늠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가 로빈슨 크루소가 아닌 이상 돈이 없으면 하루도 살기 어렵습니다. 그만큼 필요한 것입니다. 성경대로 표현한다면 하나님 자리에 앉을 수 있는 존재입니다. 돈이 권력이 되고 권력 또한 돈에 집착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돈의 권력에 자기를 내줍니다. 유명 방송국의 회장이 그것을 최대한 이용해서 여성들을 자기 욕망을 채우는 도구로 사용합니다. 긴 시간 맘껏 누렸습니다. 그만큼 희생양도 많습니다. 그러나 누구 하나 대들지 못하였습니다. 그럴 여건이 되지 않았지요. 밥줄이 달려있고 출세 길이 달려있는데 함부로 저항하겠습니까? 혹 반대하는 사람은 그 무리에서 왕따를 시키든지 회사에서 쫓아냅니다. 이미 그 조직 안에서 대부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 하나 말도 꺼내지 못합니다.
때가 되었습니다. 자리를 박차고 회사를 나옵니다. 그리고 정식 소송을 제기합니다. 마치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지만 당당히 맞섭니다. 그만큼 준비도 되었다는 뜻입니다. 내부에서도 하나하나 의식이 깨어난 직원들이 나서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드디어 폭발합니다. 명확한 증거를 대는데 피할 도리가 없습니다. 지금은 삼국지 시대도 아니고 비문명인들의 전쟁 시대도 아닙니다. 더구나 과학과 문명이 얼마나 진화되었는지 모릅니다. 늙은 야수가 시대를 제대로 읽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래도록 맘껏 누렸던 권력의 자리에서 쫓겨납니다. 분연히 일어선 여성들의 승리의 함성이 들려옵니다. 참으로 힘겨운 싸움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주었습니다. 영화 ‘밤쉘 :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Bombshell)을 보았습니다.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복된 한 주를 빕니다. ^&^
잘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다. 행복한 한 주를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