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페이크(Deepfake)'로 전 세계가 들썩이고 있다.
'딥페이크가 성 착취물을 만드는 데 사용되고, 엄청난 피해 실태마저 수면 위에 떠오르면서
그 심각성과 위험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딥페이크는 명백한 범죄행위'라며 '뿌리 뽑아 달라'고 촉구하자
정부 관계부처, 경찰과 사법 당국이 앞다퉈 대책을 내놨다.
심우정 검찰총장 후보자도 '취임하면 디지털 성범죄 검사를 확대하고 경찰과 협조해 엄정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사실 딥페이크의 위험성은 그동안 수없이 제기됐다.
수년 전 4차 산업혁명의 도래와 함께 장밋빛 전망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딥페이크가 악용될 것을 걱정하는목소리가 컸다.
당시 통신은 딥페이크 기술이 향후 1~2년 안에 정치와 외교관을 뒤흔들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보도했고,
세계적인 빅테크 기업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는 '인공지능(AI)이 핵보다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딥페이크가 처음부터 '절대악' 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딥러닝을 활용한 영상과 이미지, 음성 기술은 큰 영향을 받았다.
영화 제작에서 사망한 배우를 다시 등장시키거나, 특정 배우의 젊은 시절을 재현하는 데 사용돼 호평받았다.
디즈니+의 '카지노'(2022)에서 60대의 최민식은 딥페이크 기술에 힘입어 자신의 30대 시절까지 직접 소화했다.
딥페이크와 음성 기술을 접목해 고 김현식과 김광석의 목소리를 부활시켰을 때는 많은 팬들이 감격했다.
영화나 음악뿐 아니다.
교육에서도 딥페이크 기술은 가상현실(VJ) 콘텐츠를 만들거나, 새로운 방식의 교육 자료를 제공하는데 효과적으로 쓰였다.
그러나 연예인들의 얼굴을 합성해 사기나 도박에 이용하고, 심지어 이런 가짜 이미지가 일반인들의 일상까지 파고들어
범죄에 악용되자 새삼 문제로 지적된 것이다.
그동안 딥페이크의 폐해를 적절히 제어할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유튜버들은 죄의식 없이 불법 콘텐츠를 제작했고, 유통 플랫폼은 이게 마구 퍼지는 데도 짭짤한 수익 앞에서 방조했다.
경찰과 사법 당국도 적극적이지 못했다.
진영 다툼에 빠진 국회마저 시급한 현안을 도외시하면서 결국 한국은 딥페이크 최약국 세계 1위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기에 이르렀다.
때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대통령부터 관련 기관까지 일제히 딥페이크 엄단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밝히고
실행에 착수한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관련 법률의 제정이다.
유럽은 지난 2월부터 플랫폼 기업에 불법 콘텐츠의 확산 방지 책임을 부과한 '디지털 서비스법'을 시행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 침해를 우려해 오던 미국도 최근엔 빅테크 기업의 무책임을 비판하고 있다.
그런데 국내 성폭력처벌법과 정보통신망법 등에는 아직도 허위 영상물의 소지.구입.저장.시청 등을 처벌하는 규정이 없다.
뒤늦게 국회가 딥페이크 처벌을 강화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법안을 쏟아내고 있다
이게 하루빨리 입법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그래서 적어도 규정이 없어서 처벌하지 못한다는 일은 없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딥페이크 자체는 죄가 없다.
이를 악용하고, 방조하고, 책임지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있다. 김인구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