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간단한 병원 수속을 마치고 바퀴달린 시트에 의료진들에게 둘러 쌓인 채 끌려 들어간 수술실 앞 간의 넋이 나간 멀건 얼굴로 걸터 져 있던 성훈을 바라보면서 복부에서부터 복 받혀 오르던 분노에 병원 복도 가벽을 주먹으로 가격했다.
응급실에 들어서 있던 순간 성훈의 머릿속을 지배했던 것은 시간마다 규칙적으로 들려오던 바이탈 싸인을 체크 하는 기계의 신호음과 다급한 간호사들의 외침, 그리고 의사들의 입 밖으로 난무 하는 알아들을 수 없는 의학용어들 뿐이었다.
온통 흰색으로 둘러싸여진 이 어지러운 생과 사의 나눔이 교차되고 있는 공간은 성훈으로 하여금 오래전의 기억을 다시금 생생하게 떠올렸다.
모든 것이 시간마저도 정지되어 흐르지 않는 것만 같다.
태양이 뜨기 전의 미명이 가장 어둡다고 했던 가.
미명의 시간 새벽까지 이어졌던 공부에 한두 시간 밖에 눈 붙이지 못하고 병원의 응급실 문 밖의 엠블런스 의 요란한 사이렌이 빗발치고 있었고
이윽고 바퀴가 내려진 시트 위에는 온통 피범벅이 되어 있던 한 남자가 오롯이 간호사의 손으로 눌려지는 수동형 산소 호흡기에 의지한 채 간간이 호흡이 이어진 듯 했고 그의 가슴이 오르락내리락 할 때마다 그의 옆구리에 둘려진 붕대가 붉게 젖어 오고 있었다.
수많은 총격전과 격투 가운데 죽어 가고, 칼에 찔려 죽는 장면을 보아왔지만 이건 허구 속의 설정이 아닌 실제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자 왠지 모를 어지러움과 어지러움이 한꺼번에 일어 나 잠시 휘청 였다.
온갖 어지러운 소리를 한꺼번에 뭉쳐 놓은 듯 그가 실려 간 응급실의 문이 진동으로 열리고 닫힘을 닫힐 때마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소음이 비집고 나왔다 이내 감춰졌다.
성훈은 그 문이 닫히기 전 붙잡아 그 끔찍한 소리 가운데 자신을 애써 밀어 넣었다.
아까의 그 남자 주위에는 여러 사람들이 꺼져 가던 작은 생의 불씨를 지피기 위해 우왕좌와 하며 움직이고 있었지만 그건 산자의 특권 일뿐 생이 떠난 자에게 남겨진 건 온기 하나 남아 있지 않은 것만 같은 한기가 느껴지는 병원의 가장 음산 하고도 많은 흐느낌이 오가는 자리 뿐 이었다.
“이제 시체보관실로 옮길 겁니다. 마지막으로 염을 하기 전에 한번 보시겠습니까?”
성훈이 죽음을 맞이한 건 처음이었지만 본능적으로 이제 그곳으로 보내지면 영원히 어머니를 보지 못한 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보실래요? 갈까요?”
성훈은 잠시망설이며 머리끝까지 흰 가운에 덮인 어머니의 시신을 내려다 보다 고개를 끄덕이고 슬며시 머리 쪽의 천을 들춰 보려 집어 올리다 갑자기 제지 하는 이모의 손에 의해 금방 천을 다시 내려 두었지만 그 사이 내려다보았던 어머니의 얼굴을 뇌리에 사진을 박아 놓은 듯 똑똑히 기억 하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금 병원에 비치되어 있는 혈액이 부족해서 그러는 데 혹시 가족 분들 중에 O형 혈액 가지신 분계시면 빨리 이 옆 간호사 따라가 준비 해주세요.”
수술실을 급하게 드나들던 간호사가 묻는 말에 누군가 대꾸하기도 전 먼저 벌떡 의자에서 일어섰다.
“내가 O형이오.”
성훈 자신 바로 옆 같은 수술 침대 위에 누운 채 여전히 의식 없이 눈 감고 있는 성진의 모습과 검 붉은색을 띄우며 자신에게서 성진에게 까지 이어진 가느다란 수혈관을 바라보곤 고개를 반듯이 했다.
성훈의 눈은 새하얀 병원의 천장을 향해 있었지만 그의 마음은 성진과 이어진 그 피로 이어진 끈에 머물러 있었다.
형제 인건가?
너무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너와 내가 이렇듯 하나의 핏줄로 이어져 있었다는 사실을
널 이렇게 보낼 순 없다.
너! 약한 척 쓰러져 있지 말고 일어나.
그냥 이대로 허무하게 무너질 수는 없는 거 아닌가!
일어서 일어나라
난 아직 네게 해줄 말이 있단 말이다.
내가 네 존재의 무거움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 차 있었을 때 난 잊고 싶었는지 모르지.
너도 나와 같은 아픔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너도 나와 같이 어머니를 잃었다는 사실을 난 애써 외면하고 싶었을 거야 언제라도 내 모든 증오를 불태워버릴 대속물이 필요했으니까
원망과 독선으로 가득 찬 채 방황하던 나를 유학 보냈던 아버지를 원망 했고, 내게 어머니를 앗아간 너와 네 어미를 증오했지.
단돈 몇 백 달러를 쥐고 시작한 고된 유학 생활 중 가장 힘들 때 생각나던 게 왜 하필 네 녀석인지.
유학 시절 내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다시 새롭게 정리 하며 알게 된 내 어머니의 사랑을 느끼며 난 네 녀석도 나와 같은 아픔을 겪고 있다는 걸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어머니 사건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모든 진실에 접근하면 할수록 왜 네 녀석이 그렇게 생각이 나던지 내게 영원히 풀 수 없는 아이러니 이고 역설이겠지만 내게는 네 녀석을 살려내 꼭 해야 할 말이 있다.
....................................
후~
긴장이 한꺼번에 풀려 발끝부터 온몸이 사시나무 떨 듯 떨려 와 힘없이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시안은 그 밤을 꼬박 병원에서 보내고 성진이 무사히 회복실로 옮겨지는 것 까지 보고 태형의 권유로 집에 돌아 왔지만 그 떨림이 점차 잦아들자 방으로 들어가 주섬주섬 다시 병원으로 갖고 갈 생활용품
가방에 챙겨 넣어가지고 다시 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다 아무래도 며칠 걸릴지도 모르겠다 싶어 제인의 방문 앞에서 제인을 불렀다.
“제인아, 언니”
“뭐! 정말?!”
제인은 대답 대신 비명과 비슷 떨림이 섞인 고함소릴 내고 있었다.
“야 너 왜 말귀를 못 알아들어.”
제인은 통화중이었던 모양이었다. 문이 가볍게 닫혀있던 방에서 제인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만약 그때 우리가 그 쌍판때기 길쭉하고 왜, 덩치가 산만한 놈들한테 먼저 가서 성진이 어디가야 족칠 수 있는지 정보 찔러 줬다는 게 밝혀지면 어떡할래?”
“그래, 살인미수죄 그런 것도 있잖아. 이러다 우리 그런 거에 걸리는 거 아니야?”
쾅
“그게 무슨 소리야!”
갑자기 벌컥 젖혀진 문보다 언니의 그 말에 더 심장이 덜컥 내려앉은 제인은 무척이나 당황한 목소리로 시안에게 더듬더듬 설명과 변명을 섞어가며 말하기 시작했다.
“언니, 언니 그게 말이야.”
“너 어서 아까 그 얘기 다시 해봐. 누구한테 뭘 어떻게 했다고?”
“그 녀석이 전에 성적표 나왔을 때 내가 엄마 몰래 빼돌리려한 걸 알고 먼저 엄마에게 불어 버린 바람에 내가 여름 내내 엄마한테 붙잡혀서 하루 종일 시장에서 회 뜨고 있었던 게 억울해 하고 있는데 정운이가 김성진 한태 확실하게 대신 복수 해줄 녀석들이 있다고 하 길래 홧김에 가서 불어버린 거지 뭐.”
“그럼 그게 다 너 때문이었단 말이야?”
“아니, 아냐 ! 다 내가 그런 건 아니지. 난 그냥 여름 방학 때 녀석 뺨 한대 갈긴 것 밖에 없어. 이건 정말이야!”
“뭐!”
“날 먼저 차버린 대가라고 생각했어. 결코 용서 할 수 없었거든. 녀석들한테 정보 찔러 준 대신 나에게도 복수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약조가 있었거든.
“그럼 그때 엘리베이터에서의 손자국이 네 것이었단 말이야!”
“그래.”
“그럼 성진이는 그 모든 일을 혼자당하면서도 니가 내 동생이라는 이유하나에 혼자 다 감내하려 한 것이란 말이야?”
“그래도 먼저 원인제공은 성진이가 한 거잖아. 그러 길래 누가 그 성질 더러운 녀석들을 누가 먼저 건드리려 후환을 사래?”
“그거 모두 나 때문이었단 말이야.”
“뭐? 언니 그게 무슨 말이야?”
“그날 영화도 내가 먼저 불러내서 보게 됐던 거고, 정희 당하려고 하는 것 저지하려고 내가 먼저 끼어들어서 일 커지게 만든 거고, 내가 , 내가.”
시안은 어슴푸레하게 커져 간간히 어두운 거리를 비추는 도로 위를 내달리고 있었다.
어디로 향해야 하는 건지 어디로 가야 이 모든 걸 되돌려 받을 수 있을지 머릿속은 온통 뒤엉켜 있었지만 오로지 명징하게 떠오른 것은 성진에게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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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글을 읽어 주시는 분들께 넘넘 감사하단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요새 감기로 시달려서 정신이 없네요.........
감기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