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 마직막강의를 마치면서

[하늘2]

나무 상자에 들어 있는 키 큰 괘종시계 (longcase clock)를 할아버지 시계 (grandfather clock) 라고 합니다. 영국이나 미국에서 보면 이런 할아버지 시계엔 보통 라틴어로 “Tempus Fugit”이란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시간은 날아간다 (Time Flies)”란 뜻이지요. 또 한번 주어진 시간은 그렇게 날아서 우리로 하여금 이제 한 학기를 온전히 마무리 하는 자리에 서게 하였습니다.

  대학교육은 지식을 완성해 가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주어진 과정을 애써 견뎌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달아도 입에 대지 않아야 하고 써도 삼켜야 할 때가 있습니다. 원론적인 얘기지만 교수가 학점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학점을 따는 것입니다. 교수는 학교가 정한 큰 테두리 안에서 작은 규칙들을 정하고 수업을 진행하며 학생들의 여러 상황들을 점검하고 기록하여 그대로 학점을 주는 것뿐입니다. 또한 여러분들이 정성껏 적어 준 수업평가서는 잘 읽어 보았습니다. 교수로서 나의 수업 목표는 여러분들이 자신의 문제를 깨닫고, 하면 된다는 자신감으로 작은 출발의 계기를 마련하고, 이에 더해 바람직한 학습의 습관을 갖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런 부분에서 다만 몇 명에게라도 작은 도움이 됐기를 바랍니다. 부족한 교수를 믿고 따라 준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Alice in Wonderland)”라는 동화에 보면 아무리 달려도 제자리에 있게 되는 러닝머신 (treadmill) 위를 달리는 것 같은 장면이 나옵니다. 부지런히 움직여야 지금의 상황을 유지할 수 있으며, 이보다 더 열심히 달려야만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여러분들과 내가 처해 있는 이른바 세계화 시대의 현실입니다. 무릇 인생에서 변하지 않는 한가지는 모든 것은 변한다는 사실입니다. 변화는 불안의 조건이면서 희망의 단서입니다. 특별히 중간고사 지나서 석차가 바뀐 경우들이 꽤 있었습니다. 스스로 어디에 해당하는 지 잘 알겠지만, 역전에 성공한 사람들이나 역전 당한 사람들 모두 좋은 교훈을 얻기 바랍니다.

  특별히 이번 학기 동안 수업 따라가는 게 힘들었고 받은 학점도 만족스럽지 못해 작은 좌절을 맛본 학생들에게는 안타까운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성서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시험을 주실 때엔 이겨 낼 수 있는 시험만 주며, 또한 시험을 줄 그 즈음에 헤쳐 나갈 길을 함께 보여 준다고 했습니다. 지금의 경험이 좌절이란 이름으로 찾아온 기회, 좌절로 “위장한 축복” (blessing in disguise)이 될 줄 믿습니다.

  긴 방학을 시작하면서 꼭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새로운 결단과 준비를 하기 바랍니다. 우리가 고난을 당한다든지 과도한 수고를 하게 될 때, 그 이유를 잘 깨닫지는 못하지만 분명히 어떤 의미가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그저 사서 고난에 처했다거나 어리석게 헛수고를 했다면, 더구나 그런 줄도 모르고 어제와 같은 오늘을, 시간 위에 쌓이는 시간을 그저 흘려 보내고 있다면 우리의 삶은 동물적 생존 이상의 아무런 의미도 없는 삶일 겝니다. 의미 없는 삶은 잔인합니다. 이제 작은 매듭을 묶는 마음으로 정신 없이 달려온 지난 시간의 의미를 새겨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현상학에서 주로 쓰는 말이지만 희랍어로 “에포케” (epoché)란 단어가 있습니다. 우리말로는 판단정지 (bracketing) 라고 합니다. 무시로 판단하며 판단되는 일상을 잠시 뒤로하고 이제 잠시 멈춰 숨을 고르며 스스로의 영혼을 돌아보는 (soul-searching) 시간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늘 감사함으로 최선을 다하는 우리가 됩시다. 우리 속담에도 盡人事待天命이란 게 있지요? (First deserve, and then desire.) 이제 우리가 수업을 통해서건 다른 일을 통해서건 다시는 못 만나게 될지도 모르지만 어디서 무엇을 하더라도 꼭 필요한 사람으로, 사랑을 베푸는 사람으로 살아 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세상 안에 있으되 세상에 속하지 않는 (in the world, not of the world) 이웃을 섬기며 세상을 아름답게 바꿔나가는 귀한 일꾼으로 살아가길 바랍니다. 큰 성공의 이름으로 많은 것들을 유보하며 거칠게 살지 말고 작은 성공을 꾸준히 이어가는 경험이 있기 바랍니다. 많이 사랑하고 또 그렇게 사랑하며 살기 위해 현명함을 연습하는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이제 모든 학생들의 얼굴과 이름을 하나하나 떠올려 보면서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격려와 사랑을 보냅니다.  2년동안의  인제학우들과의 만남  나에게는 너무나  행복했었습니다 또한 사랑 했습니다  학생들의 격려에 많은 힘이 되었습니다 너무나 살같이 흐르는 세월 앞에서 바른 일로 늘 분주하기 바랍니다. 2009년 인제대학에서   학기 마직막강의를 마치면서 

[담허당]

학기말 강의를 마치면서 학생들에게 보내는 교수님의 감동적인 편지로군요. 좋은 말씀 많이 새기고 갑니다. 막내 아이에게도 읽히겠어요.....^^*

[따오기]

대학교수로써 전공과목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인생공부까지 폭 넓은 경험을 바탕으로 제자들에게 당부를 하신 하늘2 님... 학기 마지막 강의를 아주 뜻있게 마무리 하셨네요. 학우들의 기억 속에 오래 기억될 격려와 사랑의 명강의입니다. 늘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소리.]

학기말 이군요~~아마 학생들이 이 내용을 읽고 하늘2님을 더 좋아할거예요~~~좋은글 감사 드립니다~~

[현아]

제자를 사랑하는 선생님의 사랑이 담긴 사랑의 편지 잘 읽고 갑니다...

[나라면]

훌류한 스승을 모시고 배우는 인제대학 학생들은 행복하겠네요
교수님의 당부의말씀도 귀 담아들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아이들에게도 읽어보라 할 셈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