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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18일 토요일 새벽기도회 ♣
성경:전도서9:1-3(구956P)
제목:진실한 삶의 지혜
1.이 모든 것을 내가 마음에 두고 이 모든 것을 살펴 본즉 의인들이나 지혜자들이나 그들의 행위나 모두 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으니 사랑을 받을는지 미움을 받을는지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은 모두 그들의 미래의 일들임이니라/
2.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그 모든 것이 일반이라 의인과 악인, 선한 자와 깨끗한 자와 깨끗하지 아니한 자, 제사를 드리는 자와 제사를 드리지 아니하는 자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 일반이니 선인과 죄인, 맹세하는 자와 맹세하기를 무서워하는 자가 일반이로다/
3.모든 사람의 결국은 일반이라 이것은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모든 일 중의 악한 것이니 곧 인생의 마음에는 악이 가득하여 그들의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고 있다가 후에는 죽은 자들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
할렐루야!오늘도 말씀을 묵상하시는 여러분에게 하늘의 신령한 은혜를 내려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제목}“진실한 삶의 지혜”
악인과 의인의 결국이 무엇입니까?
1. 악인이 악을 행하기에 담대합니다.
성도가 죄를 지으면 어떻게 됩니까?
①. 양심의 가책이 찾아옵니다.
②. 그래도 돌이키지 않으면 징계하십니다.
2. 악인의 결국은 그림자와 같습니다.
3. 의인의 결국은 복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복입니다. 하나님은 환난날에 산성이 되어 주시고 우리의 진정한 상급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악인이 잘되는 것처럼 보이나 결국은 패망이며 의인이 안되는 것처럼 보이나 결국은 복입니다. 악인이 잘 되는 것은 망해 가는 과정이며, 의인이 어려운 것은 흥해 가는 과정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고 계십니까?
오늘 여러분은 의인의 삶을 살고 계십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인의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진실한 삶의 지혜”(전도서9:1-3)
오늘 본문에 나타난 전도자의 자세는 자못 진지합니다.
"내가 마음에 두고 이 모든 것을 살펴본즉........(1절) "
①. 마음을 두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②. 모든 일을 세밀히 연구해 보았습니다.
③. 그리고 자세히 살펴보기도 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과 이웃들의 삶을 마음을 두고 생각해 보았습니까? 이렇게 살면 어떤 결과가 돌아올 것인가? 연구해 보셨습니까? 그리고 나보다 먼저 그 길을 걸어간 사람들의 결과가 어떠했는지 자세히 살펴보셨습니까?
우리는 절대적으로 이렇게 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오직 한번밖에 없는 일생입니다. 돌아가서 다시 살 수 없는 시간입니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삶을 허비하고 하나님 앞에 두렵고 떨리는 심정으로 서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마음을 다하고 연구하고 자세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본문에서 전도자는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고 연구하고 살펴본 결과를 말하고 있습니다.
전도자가 살핀 간접적인 결과이지만 내것으로 받아들이면 우리에게 중대한 교훈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전도자가 깨달은 진리를 살펴서 얻은 진리는 무엇입니까? 전도자는 어떻게 하는 것이 지혜라는 것을 깨달았습니까?
1. 하나님의 주권을 보는 지혜입니다.
"이 모든 것을 내가 마음에 두고을 이 모든 것을 살펴 본즉 의인들이나 지혜자들이나 그들의 행위나 모두 다 하나님의 손안에 있으니 사랑을 받을는지 미움을 받을는지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은 모두 그들의 미래의 일들임이니라"(전도서9:1)
모든 인생들의 생사화복은 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악인들이나 의인들의 삶이 다 주님께 달렸습니다.
이 사실을 확실하게 믿는 사람들은 범사에 담대합니다. 요셉이 말하는 꿈 이야기를 듣고 형들은 심히 불쾌했습니다.
요셉이 오만방자하여 그런 말을 하는 것으로 알고 미워하여 죽이고자 했습니다. 결국 르우벤이 막아서 죽이지는 못하고 애굽에 종으로 팔았습니다.
요셉은 하루아침에 아버지의 사랑받는 아들에서 종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보디발의 집에서는 순전하게 믿음을 지키다가 이번에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감옥에서 바로 왕의 술빚는 관원장의 꿈을 해석주었지만 그는 까맣게 요셉을 잊었습니다. 그 세월이 장장 13년이었습니다.
이 정도면 보통 사람이라면 이를 가는 게 당연합니다. 이 모두가 형들 때문이었고, 억울하게 자신을 모함한 보디발의 아내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총리가 되었을 때 보디발과 그의 아내에게 복수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야곱이 죽었을 때 형들에게도 복수하지 않았습니다. 두려워 떨고 있는 형들에게 오히려 어떻게 말합니까?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창50:19-21)
요셉은 자신이 고생한 모든 일들을 형들이 한 일로 보지 않았고 하나님이 하신 일로 받아들였습니다. 사실 꿈을 주신 이도 하나님이시요, 형들이 팔지 않았더라면 요셉은 총리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꿈도 성취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요셉은 큰 고생을 했지만 모든 것은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이루어진 일이요,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우리의 삶이 불신자들보다 편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믿음의 연단을 더 받을 수도 있습니다. 저들이 당하는 일들을 우리도 다 겪게 되지만 주님의 보호의 손길 안에서 만나는 일이기에 안심할 수 있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성도도 죽습니다. 그러나 믿는 자에게는 죽음도 축복입니다.
"그의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로다"(시116:15)
죽음도 축복이라는 말씀의 의미를 아시겠습니까? 죽을 때까지, 아니 죽음 이후의 일들까지 성도에게 벌어지는 일은 다 하나님의 보호의 손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요, 결과적으로는 모두가 다 축복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자에게 보장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①. 하나님의 손에 있는 자는 영생을 보장받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요10:28-30)
②. 하나님의 손은 승리의 삶을 보장합니다.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시37:24)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인간의 생사화복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은 악인에게는 두려운 심판이나 의인에게는 보호의 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의뢰하고 그의 뜻을 따르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범사에 담대함을 얻으며 승리할 수 있습니다.
2. 죽음이 확실하다는 것을 보는 지혜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그 모든 것이 일반이라 의인과 악인, 선한 자와 깨끗한 자와 깨끗하지 아니한 자, 제사를 드리는 자와 제사를 드리지 아니하는 자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 일반이니 선인과 죄인,맹세하는 자와 맹세하기를 무서워하는 자가 일반이로다/모든 사람의 결국은 일반이라 이것은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모든 일 중의 악한것이니 곧 인생의 마음에는 악이 가득하여 그들의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고 있다가 후에는 죽은 자들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전9:2-3)
세상에는 의인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죄를 범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죄값으로 모든 사람은 다 죽습니다. 육신적으로는 의인도 죽고 악인도 죽습니다. 모든 인생들은 반드시 다 죽는다는 사실을 언정해야 합니다.
창세기 5장을 보면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아담부터 노아홍수 이전까지의 사람들은 무려 1000년 가까운 세월을 살았습니다. 아담은 930세를 살았고, 무드셀라는 969세를 살았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그렇게 장수할 수 있었을까 놀라지만 성경의 초점은 그들이 그렇게 오래 살았다는데 있지않고 마지막이 죽음이라는데 있습니다.
"그가 구백 삼십세를 살고 죽었더라"(창5:5)
태어난 사람은 다 죽게 되어 있습니다. "몇세를 살고 죽었더라." 낳고 죽었더라는 말 속에 어떻게?라는 삶의 내용이 포함될 뿐입니다. 왜 사람이 죽음이라는 것을 늘 인정하고 인식하고 살아야 합니까?
죽음을 생각하고 살아갈 때 삶이 진실해지기 때문입니다. 죽음 앞에 서면 사람은 누구나 숙연해지고 엄숙해집니다. 주님 앞에 서게 되는 날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늘 긴장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죽음을 준비하고 살고 있습니까? 오늘이 저와 여러분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은 죽음을 준비하셨습니까? 죽음이 두렵지 않고,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죽음에 이르게 되면 인간은 모든 것을 포기하게 됩니다.
일생 동안 돈만 모으며 한푼도 쓸줄 모르던 수전노가 불치의 병을 얻어 죽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돈에 급급했던 사람이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누구라도 나를 살려주면 내 재산의 절반이라도 주겠습니다!"
처음에 내놓은 것이 재산의 절반이었습니다. 나중에는 점점 그 양이 늘어났습니다. 마지막에는 전재산을 다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돈이 아무리 많아도 그 돈을 생명을 살리거나 연장할 수는 없습니다.
죽음 앞에 이르면 땅에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사람은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살았느냐? 누구 안에서 살았느냐? 죽음을 준비했느냐?가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삶을 살고 있습니까? 누구 안에 있습니까? 그리고 과연 죽음을 준비하셨습니까?
2000년 전 갈보리 언덕 위에는 세 개의 십자가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세 사람 모두 십자가 위에서 죽었지만 세 사람의 죽음의 의미는 모두 달랐습니다. 예수님 좌편에 있던 강도는 자기의 죄값으로 죽었습니다. 예수님 우편의 강도는 육신은 죄로 말미암아 죽었지만 영혼은 예수님을 통해 구원받고 낙원으로 옮겨가는 죽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아무런 죄없이 인류의 죄를 대신함으로 온세상을 구원하는 죽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흘려주신 보혈을 자신을 위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영생을 약속하셨습니다.
죽음이 확실한 만큼 죽음에 대한 준비도 철저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으셨습니까? 여러분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죽음이라는 시점으로 끌고와 평가해보십시오.
얼마나 그것이 가치있는 것입니까? 예수 믿을 때 죽음에 대한 공포가 사라집니다. 하나님이 그를 믿는 자에게 영생을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죽음에 대한 최고의 준비요, 유일한 준비입니다.
3. 인간의 전적인 부패를 보는 지혜입니다.
"모든 사람의 결국은 일반이라 이것은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모든 일 중의 악한 것이니 곧 인생의 마음에는 악이 가득하여 그들의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고 있다가 후에는 죽은 자들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전9:3)
여러분! TV나 신문 인터넷의 뉴스를 보면 밝고 긍정적인 소식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사회의 어두운 면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교회가 하는 사역 중에 얼마나 세상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교회의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매스컴은 이런 소식 전합니까? 저의 안전합니다.
대형 교회 목회자들의 잘못된 행위들과 교회내 성도들이 분쟁하고 싸우는 이런 소식들만을 전하는 것입니다.
꼭 어두운 부분만을 꼬집어 밝히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행위가 악함으로 밝고 아름다운 사건들이 그만큼 드문 것입니다. 사람 사는 곳 어디든지 다 그렇습니다.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인간의 일들이 다 악합니다. 나름대로 선한 일을 한다고 하는 사람들도 그 목적은 자기를 위함에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받으셔야 할 영광을 도적질하는 악한 행위입니다.
양로원이나 고아원 정신질환 환자들을 돕고 나이드신 분들을 요양하는 요양병원 등에서 헌신적인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바로 이러한 시설에서 부정적인 사건들이 많이 발행하는 뉴스를 접하게 됩니다.
이런곳의 원장님들은 대부분 목사님이나 장로님들과 직분자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곳의 원장님들이 잘못을 저질렀다는 소식들이 들여올 때 슬픈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6:5)
노아 당시에 세상에는 죄악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마음에 품은 생각과 계획도 항상 악할 뿐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범죄는 노아의 때 이상입니다. 이 말이 과장된 말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사람의 마음입니다.
선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더럽기는 일반입니다. 워낙 세상에 악한 일이 많음으로 웬만한 일을 가지고는 놀라지도 않습니다. 그만큼 죄악에 대하여 많이 면역이 되어 있습니다.
너나 할것없이 악해져 있습니다. 더러는 큰 기대와 신뢰감을 가졌던 사람들의 죄악된 실상이 드러나면서 크게 실망할 때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실망할 것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인간의 본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옛날 시골에 가면 구정물통이 수도가에 놓여 있었습니다. 평상시에 구정물은 음식 찌꺼기가 다 밑으로 가라앉아 있습니다. 막대기를 가지고 휘적으면 온갖 지저분한 것들이 다 올라옵니다. 그게 바로 인간의 마음입니다.
나쁜 일, 나쁜 사람을 볼 때마다 이렇게 악할 수가 있을까? 놀라지 말고 그게 인간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자신의 자화상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너는 이럴 줄 몰랐는데....” 가까운 사람을 보고 놀라고 실망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게 인간입니다. 처음부터 인간이 그런 존재임을 알고 사는 것이 지혜입니다.
본문에는 일평생 미친 마음을 품고 사는 것이 인간이라고 했습니다. 마음 속에 있는 악이 발동할 때 인간은 미친 마음을 갖게 됩니다.
우리 속에 옛 성품이 발동할 때 미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사람에게는 나름대로 양심에 대한 욕구가 있습니다. 바르게 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안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게 가능할까요?
성령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내 힘으로도 나를 어쩔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붙잡아줘야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 믿음의 거장인 사도 바울이 어떻게 말했습니까?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7:24)
내 힘으로는 안된다고 했습니다. 내가 할 수 없는 그것을 성령이 내 마음에 오시면 할 수 있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8:14)
매일 매순간 성령의 충만을 받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술취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쳐도 안됩니다. 나도 나를 바꿀 수 없습니다. 남도 자신을 바꿀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바꿀 수 있습니까?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면 됩니다.
나 자신에 대하여 포기하면 할수록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와 그가 주님 안에서 변화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결론}***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전도자는 어떻게 하는 것이 진실한 삶의 지혜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1. 하나님의 주권을 보는 지혜입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자에게 보장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①. 하나님의 손에 있는 자는 영생을 보장받습니다.
②. 하나님의 손은 승리의 삶을 보장합니다.
2. 죽음이 확실하다는 것을 보는 지혜입니다.
3. 인간의 전적인 부패를 보는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손을 깨닫고 죽음의 필연성을 알고 준비하며 인간의 전적 부패를 알고 성령충만을 받고 살 때 우리는 진실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이 죄악된 세상에서 성령님께서 께닫게 하시는대로 하나님의 주권을 보시고,죽음이 확실함을 보시고,인간의 전적인 부패를 볼 수 있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묵상:전도서9:1-3절입니다.오늘도 말씀을 깊게 묵상하시고 묵상하신 말씀을 실천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내일 주일예배 준비를 위하여 더 많은 기도로 준비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