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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언론을 뒤덮은 '언택트.' 엉터리 한국식 영어로, 국립국어연구원에서도 이해하기 쉽도록 '비대면 서비스'를 쓸 것을 제안하고 있다. 하지만 이 국적불명의 단어는 한국언론의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 강인규
코로나 이후의 삶은 '언택트'? 우리가 모르는 진실
나는 소통을 연구하는 커뮤니케이션학자다. 비록 모국이 아닌 미국의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지만, 지역과 언어를 떠나 소통의 목적은 동일하다. 정확한 정보 전달을 통해 세상의 이해를 돕고 사람들의 유대를 강화하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말하고 쓰라'고 가르치는 것은 소통을 위한 교육의 첫 단계다. 정확한 정보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폭넓고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하지만, 이를 제대로 전달할 능력을 갖추지 못하면 소통 자체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나는 소통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 예컨대 기자나 교수들이 어렵고 부정확한 말을 즐겨 쓸 때 매우 의아하다. 한국에서 유행어로 부상한 '언택트'라는 말이 그렇고, 수년간 언론을 도배해온 '블랙컨슈머'라는 말이 그렇다.
우선 이것들이 모두 국적 불명의 엉터리 영어라는 점부터 지적하자. '비대면'의 의미로 사용되는 '언택트'는 오직 한국에서만 쓰이는 기괴한 말이다. '비대면'이나 '비접촉'이라는 한국어 표현이 있는데 굳이 어려운 외국어를 찾아 쓰려는 욕망도 기이하지만, 꼭 쓰고 싶다면 이미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노컨택트(no-contact)', '논컨택트(non-contact)', '터치리스(touchless)' 등 더 알아듣기 쉽고 정확한 표현들이 있다.
물론, 필요하다면 한국에서도 새 어휘를 만들 수 있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현상이나 개념을 지칭해야 할 때가 있고, 그 개념을 세계적으로 공유하기 위해 영어식 조어가 필요할 수도 있을 터이다. 하지만 '비대면' 서비스나 산업은 한국에서 고안된 개념도 아니고, 이름 없던 낯선 현상도 아니다.
'언택트'라는 말은 내국인은 알아듣기 어렵고, 대외적으로는 이해 자체가 불가능한 표현이다. 언어는 소통을 목적으로 한다. 그런 면에서 '언택트'는 소통을 방해하는 최악의 조어인 셈이다.
흥미롭게도, 이 표현을 만들어낸 것은 국립대학의 연구팀이다. 이런 '반소통 언어'를 교육기관이 만들어내고 언론이 유통시키고 있는 것이다.
소통을 거부하는 한국산 영어
▲ 서울시는 '블랙컨슈머 삼진아웃' 캠페인을 벌였다. '진상회사'를 '블랙컴파니'라고 부른다고 잘못된 설명을 하면서 영어까지 표기해 놓았다. ⓒ 서울시
'블랙컨슈머'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언택트'는 그저 소통을 거부하며 뽐낼 뿐이지만, '블랙컨슈머'는 의미를 왜곡하기 때문이다. 이 말 역시 기자들이 무차별적으로 쓰면서 '불량 소비자'나 '진상 고객'이라는 생생한 모국어를 밀어낼 정도로 널리 쓰이게 됐다. 하지만 이 말은 '흑인 소비자'라는 뜻이다.
나는 한국 언론이 이 표현을 쓸 때마다 마음을 졸이곤 한다. 자칫 인종주의로 몰릴 심각한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한국의 한 신문사가 영어판 기사를 내면서 이 표현을 사용했을 때, 이 우려가 결코 기우가 아님을 깨달았다.
이것만으로 충분히 한심한데, 한국의 학계와 언론은 여기에 '화이트컨슈머'라는 말까지 추가했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화이트컨슈머는 악성 소비자를 뜻하는 '블랙컨슈머'에 반대되는 개념"이란다. 하지만 쉽게 짐작할 수 있듯, 이 말은 '백인소비자'라는 뜻이다.
▲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경제용어'라며 자신들이 운영하는 소셜미디어에 소개한 '블랙컨슈머'와 '화이트컨슈머.' ⓒ KDI
한국은 외부 세계와 밀접히 소통하고 싶어 한다. 이 나라가 '흑인소비자'를 '불량소비자'라는 뜻으로, '백인소비자'를 '착한 소비자'라는 뜻으로 쓸 때 발생할 수 있는 사태를 생각해 보라. 하지만 이 말은 언론의 사랑을 받았고, '화이트컨슈머 캠페인'이라는 사회운동까지 등장했으며, 대한민국 정부가 운영하는 국민방송(KTV)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언택트'는 서울대 소비자학과의 김난도 교수 팀이 만든 조어로, 그가 매년 발간하는 "트렌드 코리아" 2018년 판에 실려 있다. 그는 얼마 전 <조선일보>와 한 인터뷰에서, 한 연구원이 비대면 기술과 산업을 통칭해 '언택트'로 부르자고 제안했으며, "연구팀 전원이 이 용어가 매우 적절하다고 생각해" 채택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 "언택트"가 수록된 <트렌드 코리아> 2018년 호. 매년 발간되는 이 책은 불필요한 유사영어 표현을 남발하곤 한다. 여기에는 '블랙컨슈머'나 '화이트불편러' 처럼 피해야 할 표현들이 다수 담겨있다. ⓒ 미래의창
'블랙컨슈머'라는 말을 누가 처음 썼는지는 알 수 없지만, <트렌드 코리아>가 이 그릇된 용어의 확산에 기여한 것은 분명하다. <트렌드 코리아>는 2011년부터 2019년 호까지 이 표현을 지속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지난 호에는 '화이트불편러'라는 용어까지 제안했다. 해당 부분을 인용해 보자.
"'화이트 불편러'는 '블랙컨슈머'와 달리 자신의 이익을 넘어 공공의 이익을 위한 불만을 제기한 정의로운 소비자를 지칭한다." 김난도 외 <트렌드 코리아 2019: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의 2019 전망>
김난도 팀은 유행어 창조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 왔다. 그들이 '트렌드'를 찾는 촉수만큼 섬세한 감수성까지 갖췄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비대면 산업 강조, 어떻게 '대면의 현실'을 왜곡하나
문제는 표현만이 아니다. 코로나 사태에 대한 단편적 인식이 고통 받는 이들의 현실을 가리고 있다. '비대면 산업 강화'나 '원격의료 허용 검토' 같은 정책 또한 예외가 아니다.
나는 비대면 산업의 경제효과나 일자리 창출 능력에 매우 회의적 시각을 갖고 있다(이에 대해서는 이후 자세히 다룰 계획이다). 하지만 일자리 확충에 대한 정부의 선의를 모르지 않고, 비대면 산업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믿지도 않는다. 문제는 '비대면 서비스'를 가능케 해주는 '대면 노동자'의 현실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는 바이러스와의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해 스마트폰 앱이나 전화로 음식, 식료품, 일상용품을 주문하고는 이것을 '비대면'이라고 부른다. 주문이 끝난 이후의 과정은 지극히 '대면'적인데도 말이다.
침방울이 끝없이 순환하는 좁은 공간에서 주문을 받고 소비자 불만을 해소해야 하는 콜센터 직원들을 생각해 보라. 여기에 사회적 거리두기는커녕, 마스크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한 채 붙어 서서 물건을 담고 (운이 좋다면) 밥을 먹어야 하는 포장 노동자가 있으며, 음식이 식는 것을 막고 '총알배송'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정신없이 트럭과 오토바이를 모는 배송 노동자들이 있다.
아무리 디지털 세계에서 '비트'를 매개로 소통한다 해도, 종착지는 결국 물리적 '원자'의 세계다. 우리 몸이 물질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0'과 '1'의 이진수로 만들어진 음식을 먹고 동축케이블로 이동하지 않는 한, 음식과 물건을 만들고, 배달하고, 우리 몸을 날라주는 노동자의 존재는 필수불가결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여기서 '배달로봇'이니 '자율주행차'니 하는 이야기를 꺼내고 싶다면, 그 공상은 잠시 접어두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지금 이 시간 펼쳐지는 노동의 현실을 말하고 있다.
원격의료의 허상을 보여주는 미국
▲ 한 병원의 홍보영상에 소개된 원격진료. 스마트폰에 앱 하나만 깔면 의사를 만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 UPMC
정부가 추진해온 원격의료도 마찬가지다. 오지나 군부대 등 '의료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며 (이제 '비상상황'에 대비해) 밀어붙이긴 했으나, 원격진료에는 오진이나 의료영리화의 문제 이외의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운 좋게 비대면 기술을 통해 정확한 진단을 했다 하더라도, 치료나 수술을 위해서는 병원에 옮겨와 의사의 손을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자동차든, 헬리콥터든 (아니면 대형 드론이나 '비행 자동차'라도 ) 너무 늦지 않게 의료진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멀지 않은 곳에 물리적 의료시설이 들어서야 한다. 결국 대안은 공공병원을 더 짓고 공공의료 인력을 확충하는 것이다(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민간의료업체는 이런 일을 하지 않는다).
결국 의료사각지대를 해소하는 해법은 공영성을 강화하는 것이지, '원격진료'라는 부실한 체계로 문제를 은폐하고, 더 나아가 기존 의료체계마저 산업시장에 던져 넣는 것일 수 없다. 미국의 상황이 잘 보여주듯 말이다.
▲ 무상의료운동본부 회원들이 27일 청와대 앞 분수대광장에서 원격의료 추진을 중단하고 공공의료 확충을 정부에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0.5.27 ⓒ 연합뉴스
미국에서는 원격진료가 허용돼 있다. 나는 '휴대폰으로 간편히 의사를 만나라'고 권하는 메일과 전단을 받는다. 미국 병원들이 코로나 사태로 한동안 일반 환자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선점'한 원격진료는 코로나라는 비상상황을 타개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됐을까?
이 글을 쓰는 6월 8일 현재, 미국에서 확진자 수는 2백 만 명을 돌파했고, 사망자는 일찍이 11만 명을 넘어섰다. 1백만 명당 사망자가 340명에 달하는데, 이는 5명인 한국의 68배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이 수치가 부정확하다고 입을 모은다. 천문학적인 입원비를 감당하지 못해 자가 치료를 하다 사망한 환자가 많고, 이 수치들은 통계에 누락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코로나 사태를 비교적 잘 지켜온 '케이방역'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바이러스와 대면해 싸워온 의료진의 헌신과 엄격한 관리체계를 시행한 보건당국, 그리고 여기에 잘 따라준 시민들 덕이 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한국 의료체계의 허점이 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국민당 병상 수는 세계적으로 수위를 달릴 정도로 많지만, 공공병상 비율은 세계에서 가장 영리화 된 의료체계를 지닌 미국보다도 낮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정부가 할 일은, 운좋게 재앙으로 번지지 않았던 의료체계 구멍을 메우는 일이지, 어설픈 산업 논의를 꺼내드는 게 아니다.
'비대면 산업'의 참담한 현실
지난 5월 말 부천 쿠팡 물류센터를 중심으로 100여 명의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그동안 숨겨져온 유망 비대면 기업의 이면을 엿볼 수 있었다. 이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직원은 증상이 나타난 뒤에도 일을 쉬지 못한 채 폐쇄적인 공간에서 업무를 계속했고, 이것이 대량 확산으로 이어졌다.
해당 업체에서 근무하는 직원은 총 3673명이었는데, 이들 중 정규직 직원이 98명이고, 계약직이 984명, 일용직이 2591명이었다. 무려 97.3%가 비정규직으로 채워진 것이다. 이는 이른바 '비대면 산업'의 증가가 어떤 형태의 고용을 양산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며, 겉으로 드러난 '비대면' 경제의 수면 아래 얼마나 거대한 대면 노동이 자리하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코로나 증상이 나타난 뒤에도 출근한 노동자를 비난하기는 쉽다. 하지만 계약직은 정규직이 되기 위해 결근하지 못하고, 일용직은 먹고살기 위해 쉬지 못하는 현실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들 가운데는 '코로나바이러스보다 실직이 더 무섭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쿠팡의 대량감염 사태는 안전이 담보되지 않는 노동환경을 드러냈지만, 이 업체는 동종업에서 '꽤 괜찮은' 편에 속했다고 한다. 급여도 상대적으로 높을 뿐 아니라, 하루 일해도 4대 보험 가입 혜택을 줬기 때문이다. '아프면 쉬라'고 요구하기 전에, 아프면 쉴 수 있는 노동환경부터 만들어야 한다.
'비대면'의 미래를 논하는 일은 '대면'의 현실을 개선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언택트'는 없다. 영어 표현만 엉터리가 아니라, 이 말이 그려내는 현실까지도 엉터리다.
(* 다음회에서 계속됩니다.)
▲ 경기도 부천 쿠팡 물류센터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집단으로 발생한 지난 5월 27일 오후 경기도 부천시 오정동 쿠팡 부천 물류센터에 담장에 운영 중단을 알리는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 연합뉴스
첫댓글 오잉? 우리 재혁이가??
언택트는 비대면 서비스로,
블랙컨슈머는 불량소비자로,
화이트컨슈머는 착한소비자로..!!
오잉? 재혁이가~^^
현실도 엉터리다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