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은 타 교회 성도 가정이 우리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상담을 청했다. 그 가정은 자녀를 어느 기독교 대안학교에 보내놓고 실망감으로 고민이 깊었다. 특히 아버지는 신앙은 없으나 자녀 때문에 그 대안학교가 속해 있는 교회를 할 수 없이 따라 다녀주는 정도의 초신자였다. 그런 그가 예배 중에 눈물을 흘리며 울고 있었다(나이 50이 넘은 경상도 사나이가 사람들 많은 자리에서 눈물을 보이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다).
그가 목양실로 들어와 “저는 장사하는 장사꾼입니다. 그런데 제가 교회 다니고 예배를 드리면서 이렇게 눈물을 흘려보고 말씀에 은혜받고 감동받은 적이 처음입니다”라며 예배와 말씀의 은혜를 고백한 후 자녀의 학교와 관련해 고민을 털어놓는데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났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이겁니다.
저 같은 장사꾼은 장사하고, 교육자는 제대로 가르치고 교육하고, 목사는 목사님처럼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목회를 해야 하는 거죠.
그런데 왜 학교가 장사를 하고 교회가 장사를 하는지 모르겠어요, 장사꾼인 저에게는 장사하는 장사치의 술수가 뻔히 보이거든요.”
너무나도 당연한 말을 듣고 있는 현실이 부끄럽고 정신이 번쩍 나는 경험이었다. 그는 그날 예배에서는 은혜를 받았다며 “목사는 목사님처럼 이렇게 은혜를 끼치고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 목회하는 것이 맞다”라고 했지만 나는 그 말을 듣고 ‘나는 과연 지금까지 정말 본질을 붙잡고 교회를 교회답게 하며 목사답게 살아왔는가? 앞으로 그렇게 살아갈 자신이 있는가?’라고 나 자신에게 질문하며 깊은 고민에 빠졌었다.
그렇다. 학교는 학교 본연의 임무에 집중해야 하고, 교회는 교회답게 교회의 책임과 사명을 다해야 한다. 이 당연한 것이 이뤄지지 않을 때 그 공동체는 존재의 이유를 잃고 사회로부터 외면당하고 권위와 힘을 잃는다.
몇 년 전, 뇌출혈로 쓰러진 60대 남성이 보호자인 80대 노모와 함께 병원으로 이송되었는데 병원 측이 접수비 15,000원을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진료를 거부해 그는 병원 세 곳을 전전하다가 결국 식물인간이 되고 만 사건이 있다.
과연 병원에서는 정말 그 15,000원 때문에 그들을 거부한 것일까? 당장 수술 들어가야 하는데 그분들의 남루한 행색을 보니 접수비가 문제가 아니고 큰 수술비를 감당할 수 없을 거라 판단한 것이 아니겠는가?
병원이 병원의 본질적 사명에 충실하지 못했던 이 사건을 접한 사람들은 다 분노했다. 병원은 돈 낸 만큼 치료받는 것이 아니라 아픔만큼 치료받는 곳이어야 한다.
본질을 지키지 못한 병원이 분노를 샀듯, 교회도 교회의 본질을 붙잡고 지켜내지 못하면 시대로부터, 또 하나님으로부터 분노를 사고 외면당하는 불행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아니, 이미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항상 늘 두려워하며 가슴에 새기는 말씀들이 있다. 사역이 분주하고 복잡해지고 여러 가지로 정신없을 때마다 내 마음을 두렵게 하는 말씀이 바로 마태복음 7장 21절 이하의 이 말씀이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 마 7:21-23
이것이 나와 우리 교회 모습이 될까 두렵다. “주여 주여” 외쳐가며 주님의 이름으로 참 많은 일을 하고, 사람들이 인정할 만한 성과도 많이 냈지만, 정작 그것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지 못해 인정받지 못하고 “이 불법을 행한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라는 하나님의 분노에 찬 외면을 당한다면 어찌 될 것인가.
분주하게 열심히 신앙생활, 종교활동 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정말 나는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마음을 쏟고 있는가, 집중하는가, 그분을 붙들고 있는가, 십자가의 은혜에 감격하고 있는가, 오늘도 그 보혈의 은혜로, 내가 구원 받았음을 인정하며 모든 일을 행하고 있는가를 스스로 점검해야 한다.
사역이 분주하고 선택과 결정의 갈림길에서 생각이 복잡해질 때마다 나는 “장사꾼은 장사하는 게 맞고 교육자는 교육해야 하고 목사는 목회해야 하는데 왜 학교와 교회가 장사를 하고 있습니까”라는 그 분의 말을 기억한다. 그래서 그 복잡했던 고민과 갈등들을 교회의 역할, 학교의 역할로 집중시켜 단순화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택을 하려고 몸부림을 친다.
-포커스 온: 집중하라, 안호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