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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야고보의 순교와 베드로의 구출
사도행전 12:1~25
새해 첫 주일 예배를 드리게 되어서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려 드립니다. 새해를 맞아 하나님 앞에서 우리 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새해 표어를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시기를 바랍니다. 함께 새해 교회 표어를 불러봅시다.
“가만히 있어/하나님의 일하심을 보라”
“가만히 있어/하나님의 일하심을 보라”
하나님을 사랑과 신뢰함으로 바라보면서 기도하며 기다립시다. 하나님께서 올해 우리의 교회와 가정과 직장과 학교의 삶의 자리에서 은혜를 베푸시고 능력있게 우리를 도우시며 우리를 위하여 힘써 싸우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오늘 우리가 살펴볼 사도행전 12장 부분은 신약 교회가 세워진 지 약 10년이 지난 주후 44년경의 일입니다. 그 동안 교회는 주님 승천 후 사도들의 담대한 믿음과 성도들의 헌신으로 예루살렘과 갈릴리 지역뿐 아니라 유다와 사마리아와 지중해 연안의 시돈과 두로 지역과 시리아 북쪽 안디옥 성읍에까지 교세를 확장하고 있었습니다. 가이사랴의 고넬료 집에서 베드로가 복음을 전하고 성령이 강림함으로써 이방인들에게도 구원의 은혜의 은혜의 문이 활짝 열렸으며, 핍박하던 바리새인 사울도 부활의 주님을 만나 회심하여 안디옥 교회에 교사로 봉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신약 교회가 십 년만에 이처럼 넓은 지역으로 빠르게 교세가 확산되었는데, 이는 주님의 크신 능력과 사도들과 성도님들의 뜨거운 믿음의 열정 때문임이 분명합니다.
이런 활기찬 신약 교회 상황 가운데 또 다시 시험의 때가 닥쳐왔습니다. 이는 당시 유다와 갈릴리의 분봉왕인 헤롯 아그립바 1세가 교회를 핍박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헤롯 아그립바 1세는 당시 로마 황제였던 글라우디오가 로마 황제로 계승할 수 있도록 로마의 원로원에서 중재한 일로 글라우디오 황제의 신임을 받았기 때문에 그 권력이 막강했습니다. 나이 오십 세에 팔레스타인의 넓은 지역을 다스리는 강력한 권력을 쥔 아그립바 1세는 자기가 다스리는 유대인들의 환심을 살 것이 무엇인가 살폈습니다. 그리하여 당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기독교회에 대한 다수 유대인들의 미움과 시기심을 발견하고 교회를 핍박하는 종교 정책을 시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핵심 지도자들을 처형함으로 유대인들의 환심을 살 계획을 세우고 먼저 사도들 중에 사도 야고보를 체포하여 그를 칼로 죽였습니다. 아마도 공개적인 처형이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이는 그가 유대인들의 반응을 유도하여 자기의 정치적 지지를 얻어내려는 계산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유대인들이 이 일을 매우 기뻐하여 환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헤롯 아그립바 1세는 군인들과 경찰들을 풀어 사도 베드로까지도 체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베드로도 곧 처형당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사도 베드로가 체포될 당시가 유대인들의 최대 종교 명절인 유월절과 무교절 기간이었습니다. 유월절 후 7일 동안 무교절을 지키는 동안에 유대인들은 사는 곳에서 올라와서 예루살렘 성전 주변에 머물면서 예배를 드리곤 했는데, 이 때에는 사람을 죽여서 피 흘리는 일들은 삼가야 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의 공개 처형은 그 무교절 기간인 7일 동안 실행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무교절이 지날 때까지 예루살렘의 한 감옥에 갇혀서 처형을 기다리게 된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를 잃은 슬픔도 큰데 이제 사도 베드로까지 교회는 잃어버릴 큰 위기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신약 교회는 중대한 시련의 때를 만난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듯 헤롯 아그립바 1세가 하나님의 종 야고보를 죽이고 베드로를 체포하여 죽이려 드는 이러한 일들은 과거 역사를 보면 종종 일어나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고 주의 종들을 죽이고 성도들을 해치는 자들의 운명은 한결같이 좋지 않았음을 성경을 통하여 한결같이 보게 됩니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은 소년 다윗이 블레셋의 적장 골리앗을 물맷돌로 죽이고 대승리를 거둔 후에 백성들의 사랑을 많이 받자 시기와 질투가 폭발하여 다윗을 죽이려고 들었습니다. 그 때에 다윗이 자기를 죽이려는 사울을 피하여 도망치던 중에 들렀던 베냐민 땅 놉에 살던 제사장 아히멜렉과 85명의 아론의 후손 제사장들과 제사장들의 남녀 가족들과 아이들과 젖먹이들과 소와 나귀와 양들까지 사울 왕이 보낸 군인들에 의하여 다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무서운 줄 모르는 악을 행한 사울과 그의 집안과 그의 정권은 결국 처참하게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종들을 그처럼 무섭게 박해한 대가로 사울 왕과 그 아들 셋은 블레셋과 전쟁하는 한 자리에서 칼에 죽었고 그의 아들 이스보셋은 부하에게 배신당하여 대낮에 잠자다가 목베임을 받아 죽고 훗날 사울의 자손들 일곱은 기브아 성읍 곧 사울의 고향 땅에서 목 매달아 죽게 되는 비참한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종 미가야를 조롱하고 감옥에 쳐넣었던 아합 왕은 선지자가 예고한 대로 전쟁터에서 죽었습니다. 선지자의 책망을 듣기 싫어서 감옥에 가두었던 유다의 아사 왕도 말년에 발병이 걸려서 2년 동안 고생하다가 죽었습니다. 유다 왕국 말기에 왕위에 올랐던 여호야김 왕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경고하던 선지자 우리야를 애굽까지 사람을 보내 끌고 온 후에 자기 앞에서 칼로 죽이고 선지자의 시체를 평민의 묘지에 던져버리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의 종을 잔인하게 죽이고 그 시체를 함부로 훼손한 여호야김 왕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도 그대로 보복하셨으니, 여호야김 왕을 심판하사 그가 죽을 때 그 시체가 버림을 당하여 낮에는 더위, 밤에는 추위를 당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종들을 존중하고 하나님의 책망과 경고의 말씀까지도 순종하였던 자들이 있습니다. 자기의 죄를 지적하며 날카롭게 책망하며 하나님의 무서운 징계를 전달한 나단 선지자 앞에서 겸손히 그 말을 듣고 회개하였던 다윗 왕이 그러했습니다. 악한 왕과 연합하여 전쟁에 나섰다가 간신히 살아 돌아왔는데 갑자기 자기 앞에 나타나 책망의 말을 한 선지자 예후의 말을 듣고도 말없이 고개를 숙인 여호사밧 왕도 그러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나라가 강성해지니까 교만해진 왕에 나타나 나라가 망하게 될 것이며 모든 보물들이 먼 나라로 옮겨지고 왕의 자손들 중 일부가 내시가 될 것이라는 충격적인 예언을 한 이사야 선지자 앞에서 겸손하게 하나님의 말씀이 선하시다고 인정하였던 히스기야 왕도 그러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하나님의 종들 앞에 겸손하며 그 책망의 말씀까지 순종하여 들었던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도 그들에게 자비와 용서를 베풀어주시고 재기의 은혜를 베풀어주시곤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위임 권위자들에게 항상 존중의 마음을 가집시다. 그들이 비록 보잘것없이 보이고 가난하고 민중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초라한 주의 종일지라도 하나님의 진실한 종일진대 우리는 그들을 존중합시다. 겸손하게 그들의 권면과 책망의 말씀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받아서 겸손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됩시다. 그러할진대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존중하며 그의 말씀을 두려워하여 순종하는 마음을 보시고 긍휼히 여겨주시고 복을 주시며 혹 큰 허물과 잘못이 있을지라도 다시금 용서해주시고 재기의 은혜를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사실 본문 말씀에 나오는 헤롯 아그립바 1세는 야고보 사도를 죽인 일로 그의 정치적 목적을 이루었으니, 여기서 그만 멈췄어도 그나마 나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헤롯 왕은 베드로 사도까지 잡아 죽이면 자기의 정치적 인기가 한층 더 높아질 것이라고 계산하고서 이러한 무리한 악행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만왕의 왕이신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 우편에 만왕의 왕으로서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고 계신 것을 알지 못하므로 세상의 권력을 점점 더 많이 쥐게 되니까 헤롯 아그립바가 그처럼 기고만장하게 되어 주님의 왕권에 감히 도전하게 된 것입니다.
자, 그러면 베드로의 운명은 어떻게 어떻게 될까요? 야고보 사도처럼 동일하게 칼에 목베여 죽게 될까요? 인간적으로 계산해보면 베드로는 꼼짝없이 무교절 명절 기간만 지나면 잡혀 공개 처형을 당해 죽을 운명입니다. 며칠의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서 이제 하룻밤만 지나면 감옥에 갇힌 베드로는 군인들의 손에 끌려나가 환호하는 유대인들 앞에서 맥없이 칼에 목베임을 당하고 죽을 판입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죽임당하기로 예정된 그 전날 밤이었습니다. 베드로가 감옥에서 지키는 두 군인들 틈에 쇠사슬로 꼼짝없이 매여 자고 있었고 옥문 밖에도 파수꾼들이 지키고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이제 내일이면 주님 뵐 수 있겠구나 생각하며 쿨쿨 잠을 자던 중이었습니다. 갑자기 주의 사자 천사가 나타나니 옥중이 환하게 광채가 빛나는 중에 천사가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우고 이르기를 급히 일어나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랬더니 손에 있던 쇠사슬이 스르르 풀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천사가 지시하여 허리를 띠고 신을 신고 겉옷을 입고 따라오라 하니 순종하여 천사를 따라 나서는데, 베드로는 아직도 환상을 보는 줄로만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첫째 보초, 둘째 보초가 지키는 곳을 그냥 무사 통과하여 시내로 통하는 감옥의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저절로 열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나가서 한 거리를 지내니 곧 천사가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서야 베드로는 정신이 들어 환상이 아니라 현실임을 깨닫고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자기를 감옥에서 구출해주신 것을 알았습니다. 할렐루야.
이처럼 만왕의 왕 되신 우리 구주의 군대 중 한 천사가 와서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인 베드로의 시중을 드니 헤롯 아그립바 왕의 여러 명의 군인들과 칼과 창과 쇠사슬과 철창살과 쇠문으로 철통같이 베드로를 가둬두었지만 이 모든 수고가 다 헛수고가 되었습니다. 그 군인들은 눈을 떴으나 보지 못하였고 쇠사슬과 커다란 자물통과 쇠빗장으로 막아놓았지만 스르르 다 풀러졌고 문이 활짝 열려서 베드로가 아무런 말 한마디 하지 않고 힘 한번 주지 않고 마침 집에서 잠을 깨서 집을 나서 동네 마실을 나가듯 그렇게 한밤중에 소리 없이 자유롭게 감옥에서 나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누가 대적할 수 있겠으며, 누가 하나님의 말씀을 결박하여 매여놓을 수 있으며, 누가 하나님의 진리의 빛을 어둠으로 꺼뜨려놓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매이지 아니하며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세상 권세는 반드시 깨뜨려지고 그 결박은 풀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잡힌 바 되고 우리가 주님과 그의 복음을 사랑하여 힘써 헌신할 때에 우리 주님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우리를 해칠 수 없고 아무도 우리를 가둘 수 없고 아무도 우리를 가로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로마서 8:34 이하의 말씀에 사도 바울이 담대하게 외친 이 말씀이 우리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당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로마서 8:34.36)
그렇습니다. 비록 이 땅에서 우리가 혼자인 것 같고 우리를 돕는 자가 아무도 없는 것 같고, 우리가 외로운 싸움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우리와 함께 한 자가 저들보다 더 많고, 우리와 함께 한 군대가 저들의 강한 군대와 칼창과 핵무기보다 더 강합니다. 저들의 권력자가 대단한 것 같고 마귀가 아무리 강한 권세를 가진 것 같지만 역사의 주관자이시고 만유의 대주재이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왕의 왕이시므로 능히 우리를 지키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경우에 처하더라도 절대로 두려워하지 말고 평안하고 담대합시다. 베드로가 그 날 밤 쿨쿨 잠을 잤던 것처럼 평안함을 우리도 가집시다. 자기의 오랜 동료이자 절친한 사도였던 사도 야고보가 얼마 전에 칼로 목베임을 받아 첫 순교자가 되어 주님 곁에 올라간 것처럼 자기도 내일이면 사랑하는 주님 곁에 영광스럽게 올라갈 것이라 생각하며 저녁 일찍부터 푹 잠을 잤던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평안함을 가집시다.
그런데 베드로 사도가 체포되어 다음 날이면 감옥에서 끌려나가 공개 처형을 당할 것을 알고 있는 초대 교회 성도들이 그 동안 어떻게 행했는가를 오늘 본문 말씀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한 자리에 모여서 주님께 사도 베드로의 구출을 위하여 간절히 간구했던 것입니다. 12절에 보니,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
이 마가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은 통상적으로 오순절 성령 강림이 이루어진 다락방 집이라고 말해지기도 합니다. 이 집 주인 마리아의 아들 마가를 향하여 사도 베드로가 그 편지 베드로전서 5:13 말씀에, ‘내 아들 마가’라고 부를 만큼 사도 베드로에게 매우 친숙한 가정이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마가복음에 보면, 예수님이 잡히시는 날 밤에 베 홑 이불을 뒤집어 쓴 청년이 잡혀가시는 예수님의 뒤를 몰래 따르다가 발각되어 군인들에게 잡히게 되니까 홑이불을 내던지고 도망쳤다는 은밀한 기록을 유일하게 남겼는데(마가복음 14:51,52), 그것을 보면 그 당사자가 마가 본인인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렇다면 마가네 집은 일찍부터 예수님을 믿는 신앙의 가정이었고 그 집을 일찍부터 주님의 일에 자주 내어주었던 것으로 보겠습니다. 그래서 성찬식을 제정할 때에도 마가네 집 다락방에서 행한 것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그 집은 베드로 사도가 감옥에 갇혀 죽게 될 위기 때에 성도들이 함께 모여 사도 베드로의 구출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는 기도의 장소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이 도저히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절대 절망의 상황일지라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가장 강력한 위기 극복의 복된 무기가 있으니 곧 주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철옹성처럼 가둬진 사람처럼 아무런 희망이 없고 다시 일어날 아무런 힘이 없는 사람에게도 솟아날 구멍을 만드는 놀라운 기적의 통로입니다. 세상은 다 끝났다고 말할 때에 우리는 여전히 역전의 때가 남았노라고 소망하며, 우리는 하나님께 피하여 숨고서 내 대신 하나님께서 일어나 우리 대신 일하시도록 맡기는 위대한 역전의 원동력이 기도인 것입니다. 우리로서는 계산조차 할 엄두도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무한한 자원과 무한한 지혜와 무한한 권세가 있으므로 얼마든지 새 길을 열어놓을 수 있기에, 우리가 기도하기로 결단하는 순간 우리의 문제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됩니다. 우리가 기도하고자 무릎을 꿇고 눈물과 간구로 주님의 보좌로 나아갈 때에는 우리를 집어 삼키려고 덤벼드는 마귀와 세상과 운명의 힘은 두려워 벌벌 떨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도 베드로가 천사의 손길로 그 철옹성 감옥에서 무사히 빠져나와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 집에 찾아와 대문을 두드렸을 때에 그 집에 모인 성도들은 여전히 기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하는 중에 귀가 밝은 어린 종 로데가 대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나와 베드로의 음성을 듣고 늘 듣던 베드로님의 목소리임을 알고 너무 기뻐서 대문도 안 열고 달려 들어서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더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자 성도들은 “네가 미쳤다”라고 말했습니다. 성도들도 믿기 어려운 기적이라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 여종 로데가 “참 말이라”고 계속 말하는 것을 듣고 “그러면 그의 천사라”고 대답하고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서 내려가서 보니 그 여종 말대로 사도 베드로가 찾아온 것을 확인하고 크게 놀랍니다. 놀란 그들에게 사도 베드로는 조용히 하라고 말하고 안에 들어가서 주님이 천사를 보내어 자기를 구출한 일을 얘기하고 주님의 형제 야고보와 다른 여러 형제들에게 전하라고 부탁하고 다른 곳으로 조용히 떠나갔습니다. 할렐루야.
그 당시, 마리아 집에 모인 성도들은 하나님께 기도를 하면서도 현실이 너무나 엄혹하여 어떤 변화가 일어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하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그러한 성도들의 연약한 믿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놀라운 큰 역사로 넘치게 응답해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우리 믿음이 부족할지라도 주님은 믿음의 부족한 중에 드린 연약한 기도라도 어여삐 여기시고 우리의 기도를 넘치게 응답해주신다는 점을 기억하고 기도하는 용기를 갖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 중에 누구도 “나는 너무나 믿음이 없고, 나는 기도할 염치도 없고, 나는 기도를 시작하여도 작심삼일이라 응답받을 만큼 충분히 기도할 수도 없다.”라면서 처음부터 아예 기도를 시도조차 하지 말자고 스스로 포기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바랍니다. 수학 포기자를 ‘수포자’라고 부른다고 합니다만 우리 성도님들 중에는 ‘기도를 포기한 자’라는 ‘기포자’가 절대로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은 기도를 잘 하지 못한다고 못 알아들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어린 아이가 응애하고 울기만 해도 지금 아기가 쉬를 해서 울고, 지금 큰 응아를 해서 울고, 지금 아기가 배고파서 울고, 자리가 불편해서 울거나 잘 안아주지 못해서 울고 아기가 사람이 낯설어서 울고 열이 나서 운다고 엄나나 할머니는 아기 울음 소리만 들어도 다 구별해서 알아듣습니다. 아기는 그냥 울기만 할 뿐이요 말을 잘 못해도 능숙한 어머니나 할머니는 본능적으로 아기 울음의 뜻을 잘 알아듣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기도할 때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를 몰라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과 보좌 우편의 우리 주님과 우리 안에 계신 보혜사 성령님은 우리가 하는 기도의 가장 중심 소원이 무엇인지를 금새 잘 알아 듣습니다. 그러므로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겁내지 말고 그냥 있는 모습 그대로 나와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엎드려 기도하기만 하시기 바랍니다. 많은 기도를 해야만 듣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의 마음을 살피시고 우리의 소원과 간구의 내용을 누구보다 다 아시고 가장 좋은 것을 베풀어주시고, 천사와 천군을 보내어 우리를 돕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기도합시다. 할렐루야.
결국 다음날 베드로를 죽이려고 했던 헤롯 아그립바 1세가 베드로를 끌어내라고 했을 때 베드로가 없어진 것을 뒤늦게 알고 화가 나서 감옥을 지키던 애꿎은 파수꾼 군인들만 잡아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악하고 교만했던 헤롯 아그립바 1세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의 통치 7년만에 그는 죽임을 당합니다. 그것도 갑작스러운 비참한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그가 가이사랴 왕궁에 거하다가 가이사랴에서 로마 황제를 기리는 축제가 열렸는데, 그곳에 두로와 시돈 사람들이 많이 참석하였습니다. 요세푸스의 역사 기록에 의하면, 헤롯은 사람들 앞에서 연단에 올라 화려한 왕복을 입고 연설을 했는데, 그 때 사람들이 그에게 큰 소리로 외치기를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사실은 그곳에 참석한 시돈과 두로 사람들이 유다 왕국의 들에서 나는 밀과 보리의 양식을 수입하여 살아가는데 당시 글라우디오 황제 때에 일어났던 대기근의 시기가 도래하여 심히 양식이 귀할 때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유다의 권력자 헤롯 아그립바에게 아첨의 말을 해서 양식을 원활하게 얻기를 바랬기에 그런 과대한 아첨의 말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하나님께만 돌려야 할 그 큰 영광을 자기에게 돌려질 때에 이를 제지하지 않고 흐뭇하게 받아들임으로써 하나님의 진노가 연설 도중에 헤롯 왕에게 덮쳤습니다.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그는 갑자기 연설 도중에 배가 찌르는 엄청난 고통이 찾아와 도저히 견딜 수 없게 되어 연설을 마치지 못하고 도망치듯 연단을 내려와서 쓰러졌습니다. 그때로부터 5일 동안 내내 극도의 복부 통증으로 고생하다가 탈진하여 침대 위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23절에서는 이르기를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헤롯 아그립바 왕은 과거 유다 왕국 시절에 자기 동생들을 다 죽이고 우상을 숭배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배에서 창자가 삐져나와 죽는 심판을 받았던 유다 왕 여호람과 같은 가장 고통스럽고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고 만 것입니다.
본래 헤롯 아그립바 1세는 정통 왕가 하스모니아 왕가의 핏줄이 흐르는 사람이었습니다. 말이 달변이고 성량이 크고 미남이었습니다. 사치하길 좋아하고 베풀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할머니와 아버지를 할아버지 헤롯 대왕의 의심 때문에 잃고 어린 시절 어머니와 로마로 도망치듯 가서 살아야 하는 불행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곳 로마에서 로마 황실의 자제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교분을 쌓았습니다. 그 결과 나중에 황제가 된 가이오 칼리쿨라와 글라우디오와 친한 사이가 되고 이것이 나중에 큰 힘이 되어 그처럼 엄청난 권력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는 여러번의 행운이 따르는 운 좋은 사람이었는데, 그러한 외모와 행운들이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종들을 감히 죽이려 들고, 인간의 분수를 넘어 하나님의 영광을 자기가 차지하려 들 만큼 교만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교회를 대적하고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높이는 교만한 자는 필경은 이렇게 스스로 패망의 길을 걷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교만한 자는 낮아지고 하나님 대신에 자기를 높이는 자는 이처럼 패망을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며 우리 자신은 내려놓고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늘 겸손하며 자기를 작게 여기고 우리의 자랑은 십자가 뒤에 감추고 주님이 우리를 인하여 영광을 받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5:9,10 말씀에서 고백한 것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항상 자기의 부족함을 기억하며 다른 이들의 귀한 점을 기억하며 존경하며 주님을 위하여 더 많이 수고할지라도 그렇게 수고할 수 있음조차 다 하나님의 은혜 덕분이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사도 바울처럼 우리도 평생에 오직 하나님의 은혜 덕분이라고 하나님만 자랑하며 하나님의 은혜만을 간증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이렇게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으로써 교회를 파괴하려던 사탄과 불경한 자들의 핍박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2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핍박하던 자들은 이렇게 쇠하여가고 교회는 더욱 왕성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여 세워져가는 부흥이 계속된 것입니다. 오늘날도 수많은 방해와 반대가 교회와 성도들인 우리에게 닥쳐올지라도 우리가 기꺼이 주님을 바라보고 순종과 믿음과 기도로써 싸운다면 주님은 그 놀라운 권능으로 천사와 천군들을 동원해서 일하실 것입니다. 한평생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의 말씀들을 사랑하며 순종하며 고난 중에도 가장 위대한 능력의 수단인 기도의 무릎으로 싸웁시다. 우리가 무릎을 꿇을 때에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지속적으로 겸손을 지켜갈 때에 주님은 우리를 통하여 그의 놀라운 영광을 드러낼 것입니다. 교회는 왕성하게 그의 말씀으로 세상을 이겨갈 것입니다. 이 은혜가 우리에게도 넘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