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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傳心法要 제 24강] 여천 무비스님. 문수선원
2007.08. 10. - 1
7. 법은 무생 –4
전심법요 우리가 무슨 경전 무슨 어록을 공부하든지간에 항상 그 경전이 가지고 있는 주된 뜻을 놓치지 않아야 공부가 효과적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가 주인공이라고 하는 것, 그것 놓치면 엉뚱한 경계에 끄달리면서 헤매게 되고, 그러다보면 문제가 많이 생기고 문제가 생기면 고통을 받게 되고 그렇거든요.
그래서 어떤 삶을 살든지 간에 내가 이 세상에 주인이다. 라고 하는 것. 어떻게 보면 지극히 이기주의적인 것, 소위 애고라고 하는 거죠. 자기중심적인 그런 사고 같지마는 우리가 그렇게 사고하든 사고하지 않던, 어쩔 수 없이 내가 이 세상에 내가 주인이야.
가정으로 내가 만약에 없다라고 생각해 보세요. 뭐가 있는가?
그렇게 내가 애지중지 하고 가치 있다고 생각했고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뭐 부모처자가 되었든 가족이 되었든, 형제자매가 되었든, 그동안 쌓아놓은 업적이 되었든, 명예가 되었든, 뭐 재산이 되었든, 뭐가 되었든지 간에 그런 모든 것들은 부속물이야. 나라고 하는 존재의 부속물이라고. 부속물은 뭐 많이 있을 수도 있고 적게 있을 수도 있고 있다가 없기도 하고 없다가 있기도 하고 이제 그런 것이거든요.
영원히 내가 있는 한 변치 않는 것 하나는, 나 자신이 나의 주인공이다.
내가 모든 것을 책임져야 되고, 또 내가 모든 것을 이끌어가고 하는 것. 그건 어쩔 수 없는 거라고요. 그런 이치를 우리가 잘 아는 것. 이게 이제 우리가 불교공부를 하는 그런 보람이기도 합니다.
전심법요는 세상사는 데는 내가 주인이라고 하듯이, 전심법요의 주된 취지는 유전일심 갱무별법. 그런 말을 내가 여러 번 하는데, 또 우리가 전심법요를 공부할 때, 전심법요의 주된 정신이 뭔가? 이것 놓치면 안 되거든요.
특히 다른 경전하고 달리 전심법요는 아주 주제가 뚜렷합니다. 너무 확실하고 뚜렷해요. 제목이 그대로 전심법요 아닙니까? 심법, 마음의 도리, 마음의 이치를 전하는 아주 요긴한 가르침이라. 마음의 이치만을 전하는 거여. 끊임없이 진부하고 어떻게 생각하면 진부하게 생각이 들고 지루하게도 생각이 들지만은 이것 밖에 달리 없어. 그러니까 오직 일심법을 전하고 달리 다른 것이 없다. 이걸 이제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된다 하는 그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일정명이라고 하는 것. 이걸 하나의 밝은 구슬이다 뭐 일심이다 뭐다 여러 가지 이름으로 이야기 되는데, 여기서는 하나의 아주 정미롭게 밝은 것, 너무너무 참~ 투명한 것 너무 밝은 것. 그래서 정미로울 정 精자를 썼어요. 一精明, 그게 나눠져서 여섯 가지로 화합한다. 그랬죠. 안이비설신의 여섯 가지로 화합해가지고, 한 밝은 구슬이 눈으로 가면 보는 작용을 하고, 귀로 가면 듣는 작용을 하고, 혀로 가면 맛보는 작용을 하고, 뭐 온갖 작용을 다하는 거야. 이게 참 신통방통해. 팔만사천 신통을 다가지고 있는 거야 이게.
여기는 이제 근본적으로 여섯 가지를 이야기하고 있지만은 어디 여섯 가지 뿐이겠습니까? 뭐 할머니 만나면 할머니에 맞추어서 이야기하고, 할아버지 만나면 할아버지에 맞추어서 이야기 하고, 뭐 상황 따라서 오늘 우리가 잠에서 깨어나서 이 순간까지도 벌써 여러 수십 종류의 삶을 살아온 거라. 거기에 맞추어서. 이게 신통이 아니고 뭡니까? 참 기가 막힙니다.
그러면서 나라고 하는 것, 그것이 거기에 딱 중심이 있는 거야.
그러니까 그걸 늘 잃지 말고 흘러가거나 꺼들리지 않아야 돼.
이게 이제 뭐 다른 종교에서는 아주 훌륭한 위대한 신이 있다 해가지고는 전부 나 아닌 다른 어떤 존재가 이러고저러고 알아서 하는 것으로 지금같이 이렇게 과학이 발달되고 문명이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이론이 먹혀들거든요.
나는 불교 라디오나 불교TV 못지않게 다른 종교의 채널도 많이 듣습니다.
그래야 공부가 되지. 다른 사람들은 무슨 소리 하는가?
보면 지금도 참 이런 시대에 우리가 살면서 이와 같이 발전되고 이와 같이 다~ 들어나 버린. 뭐 비밀 하나 없을 이런 세상에 살면서도 아직도 이 세상의 중심이 무엇이고 뭐가 주인공이고 뭐가 세상을 좌지우지 한다 하는 것. 이걸 모르고, 나 아닌 다른 어떤 존재 실지로 있지도 않는 것, 단순하게 의식화 된 거예요.
있다있다 있다 생각하고 자꾸 있다있다 생각하니까 있는 것처럼 여겨져 가지고 거기에 이제 목을 매는 거야. 단 의식화된 존재일 뿐이다.
그런데 실제 하는 것도 아닌데다가 거기에다가 목을 매고 그렇게 한다고요.
그게 유치원생들에게는 참 편하고 좋지.
그런데 인지가 발달한 시대나 인지가 발달한 머리가 좀 돌아가는 사람들, 생각이 정상적인 사람들에게는 참 그게 그리고 철이든 사람들에게는 참 낮 뜨거운 가르침이거든 그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게 통한다고요.
그러니까 정법을 제대로 아는 사람.
정법이라고 하는 것은 바른 이치야, 바른 이치.
우리 사람이 살아가고, 세상이 돌아가는데 대한 바른 이치지.
뭐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무슨 어떤 훌륭한 무슨 조사스님의 가르침이다. 라고 해서 그 권위 때문에 덮어놓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이게. 불교에 무슨 그런 권위 주장해가지고 절대적으로 그 사람 말이니까 옳다. 이런 것 없어요. 불교는.
불교 공부 많이 한 사람은 언제든지 불교의 가르침 보다 더 위대한 가르침이 있으면 언제든지 그쪽으로 따라갈 그런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라. 불교는.
불교는 그게 특색이에요. 의리 같은 것 없어요.
그것 의리를 마음에 지니지 말라고, 단마기금(鍛摩起金)이라는 말을 하잖아요. 단마기금.
옛날에 삼을, 저기 요즘도 삼 농사하데. 저번에 뉴스 나오는 것 보니까.
우리 어릴 때는 삼농사 많이 했어요. 그게 무슨 마약인줄 몰랐어. 우리는. 그것.
그때 마약 같은 것 모를 때지.
그런데 삼을 한 짐씩 짊어지고 이제 이웃 도시에다 갔다 팔려고 청년 두 사람이 짐을 지고 가다가, 부처님의 비유야.
정말 진리의 가르침 참 이치를 가르치는 곳이 있으면 언제든지 내 가르침 버리고 딴 데 가서 들어도 좋다. 그것을 추종해도 좋다하는 그런 이야기야.
그래 이제 여기도 오늘 이야기도 삼승이니 뭐 이런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에 말씀드리는 것인데. 삼 그것 한 짐 져봐야 얼마 되겠어요? 지금은 마약이니까 상당히 비싸겠지. 그래봤자 그게 철이나 동이나 은이나 금하고는 비교가 안 될 것 아니야?
두 사람이 삼을 한 짐 짊어지고 팔러 가다가 동이 한 무더기 나타났어.
그래서 어떤 청년은 상당히 먼 길을 왔는데 구리가 저게 삼보다는 비싸지마는 아이고 지금까지 지고 온 공이, 전공이 가석이라 그래요. 앞에 들인 공이 아깝기 때문에 삼에 대한 그런 애착이 있어서 에이 돈 좀 손해 보더라도 나는 삼지고 갈란다. 이런 사람이 하나 있고.
한 사람은 그까지 것 무슨 뭐 삼이 문제냐 어차피 나는 이익을 위해서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 이 삼을 짊어지고 간다. 이윤이 많은 것으로 따르자 이렇게 해가지고는 얼른 삼을 던져버리고 구리를 한 짐 짊어진 거야. 그러니까 값이 배로 나가지. 그래 가지고 또 한참 가다가 은이 나타났어. 은이 나타났는데 구리로 바꿔진 사람은 얼른 구리 버려버리고 은을 한 짐 졌는데. 삼을 지고 온 사람은 앞에 들인 공이 아깝다 해가지고 또 삼을 그대로 지고 가는 거야. 이게 의리야.
진리를 따르는 사람은 어차피 우리가 종교 안 믿어도 좋고 종교 공부 안 해도 먹고 사는데 종교를 따른다고 하는 것은 보다 나은 삶을 인생과 세상에 대한 바른 안목을 가지고 보다 나은 삶을 위해서 우리가 이런 공부를 하고 이런 시간을 들이는데, 뭔가 나은 가르침이 있으면 얼른 버리고 쫓아가야 된다고요.
관세음보살보다 지장보살이 기도가 세다면 얼른 지장보살 해야 되는 거야. 예컨대.
지장보살보다 옴마니반메훔이 더 세다고 누가 한다면 얼른 버리고 옴마니반메훔 해야 된다고요. 우리 불자들 그래 잘 하잖아요 또.
그래서 은을 짊어지고 은을 버리고 다시 가니까 또 금이 있어서 은을 얼른 버리고 금을 짊어지고 이 삼을 짊어지고 온 사람은 계속 삼을 지고 간다.
그래서 단마기금(鍛摩起金)이라 삼을 짊어지고 금을 버리는 그런 어리석은 사람이다.
우리 불자들은 마음이 어디에 구속되지 않고 자유로워야 돼.
당당해야 되고 자유로워야 되고 어디에도 걸리지 말아야 되고.
뭐 바로 이웃집에 더 훌륭한 가르침 정말 내 인생에 소중한 가르침이고 바른 가르침이라면 얼른 거기 쫓아가서 귀담아 듣고 그것을 내 살림살이로 할 줄 아는 그런 용기. 그건 뭐 의리를 배반했다 그런 것 거기다 개입시킬 필요 없다고요. 부처님 뜻 가르침을 제대로 몰라서 그런 거지. 그와 같이 올바른 가르침이라면 언제든지 쫒아갈 그런 자세를 가지고 있는 것, 이게 이제 우리 불자들로써는 꼭 지켜야할 그런 일입니다.
여기 이제 한 마음의 문제와 육화합의 문제, 또 육화합은 대표로 든 것이지만은 그 외 뭐 육식 육근 십팔계 이런 이야기가 쭉 나왔고, 뿐만 아니라 사실은 우리 마음이 모~든 것으로 쫓아다니면서 그렇게 화합을 할 줄 안다. 어울릴 줄 안다. 이거여.
어린아이 만나면 어린아이하고 어울리고, 노인 만나면 노인하고 어울리고, 이런 상황 저런 상황에 상황 따라서 다 어울릴 줄 아는 그런 그 자세. 본래 우리는 그렇게 되어있어. 이 일정명이라고 하는 것, 한 마음이라고 합시다. 그냥 일정명.
뭐든지 다 어울릴 수 있도록 되어있어.
요걸 이제 구슬로 표현하면 맑은 구슬이 있는데 오는 대로 갖다 비친다는 거야
마이크가 오면 그 구슬에는 마이크 반영하고, 컵이 오면 컵도 비쳐지고, 종이가 오면 종이가 비쳐지고, 김 씨가 오면 김 씨 비쳐지고, 박 씨가 오면 박 씨가 비쳐지고, 남자오면 남자가 비쳐지고, 여자 오면 여자가 비쳐지고 다 비쳐주도록 되어 있는 게 이 구슬의 성능이라. 본래 가진 성능이 그렇게 되어 있어. 우리 마음이 본래 그렇게 되어있는 거예요.
그런 이치를 잘 알아야 되는 겁니다.
조사스님들은 뭐 복잡한 그런 경전에 교리적인 것 그런 것 언제 세월도 짧은데 언제 그런 것 이야기 할 겨를이 있나 해가지고, 근본 도리만을 주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가 공부하는 전심법요가 더욱 더 그래요.
如來現世하사 欲說一乘真法則
여래가 세상에 나타나서 일승진법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면 그 말이여.
일승진법이 요게 이제 오늘 우리 공부하는 전심법요의 주제가 심법, 마음의 이치를 전하는 가르치는 요점이거든요. 유전일심 갱무별법 그랬잖아요.
오직 일심법만 전하고 그 외에 다른 법이 없다. 이게 일승진법이야.
일승이 진법이고 진법이 일승이라.
그런데 그것만 가지고 중생들에게 이야기하기로 하면 문제가 많아 사실은 또. 지금은 여기 오셔서 이렇게 공부하신 분들은 뭐 나하고 인연만 하더라도 10년이 벌써 넘고, 걸러 질대로 다~ 걸러지고, 채로 치고 키로 까불고 뭐 별에 별짓을 다 해가지고, 다~ 다듬어질 대로 다듬어지고 걸러질 대로 걸러졌으니까, 이런 일승진법을 이야기해도 비방을 하지 않아. 여기 보면 여래가 세상에 오셔가지고 일승진법, 자기가 깨달은 최~고의 보석 같은 것을 이야기 하고 싶은데, 그게 사실 자기 마음에 드는 가르침이니까, 그런데,
衆生이 不信興謗하야
중생들이 그 좋은 진짜 가르침은 믿지 아니하고 비방만 일으키는 거야
비방만 일으키면 구업만 짓게 되니까
沒於苦海요
고통의 바다에 빠지게 된다 이거야
그러면 오히려 좋은 가르침을 줄려고 했다가 자비가 집벙거지가 되었다 이런 말이 있듯이. 오히려 상대에게 근기를 모르고 하는 소치가 되어서 상대에게 더 좋지 아니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이런 말이죠. 沒於苦海 라는 게.
그렇다고 해서
若都不說則
만약 아무 것도 말 하지 아니한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부처님이 태자의 지위로써 태자의 소임을 등졌죠. 버렸죠.
자기의 태자의 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했지. 얼마나 배은망덕하고 불효한 사람이 됩니까? 그렇게 하고 출가를 했다고요. 부모에게도 불효했고, 자식에게도 못할 짓했고, 야수다라 그 어여쁜 야수다라에게는 더 못할 짓하고 출가를 했잖아요.
그래 가지고 6년 고행 얼마나 고생을 했습니까? 얼마나 많은 스승을 찾아다니면서 공부했어요? 그 동안. 그 머리 총명한 양반이. 그렇게 공부 6년간 많이 해가지고. 진짜 자기가 좋~은 보물을 얻었다 이거야. 존재의 실상을 깨달았고 인생의 실상을 깨달았다 이거야.
이걸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면, 말할라니 중생들이 믿지를 않고 비방만 일으켜서 오히려 좋지 않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을 안 하니까,
墮慳貪하야
간탐에 떨어져. 내가 손해야.
내가 또 좋은걸 두고 금은보화를 그냥 산더미처럼 금정산보다 더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하나도 안 나눠준 게 되니까 이게 간탐죄에 떨어진 거여.
돈 놔두고 보시 잘 안하면 그것도 간탐죄에 떨어지고.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 안 가르쳐주면 그것도 간탐죄에 떨어지고,
법을 많이 알고 안 가르쳐주면 그것도 간탐죄에 떨어지는 거라.
그것 자기는 아무것도 안했는데 그것이 무슨 잘못이 되겠는가? 천만에.
가지고 있으면서 나누지 아니하면 간탐죄에 떨어져, 능력이 있으면서 남을 위해서 뭔가 베풀어야 돼. 자기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뭐든지 좋아, 뭐든지 좋다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남을 위해서 이렇게 베풀 줄 아는 자세. 안 베풀면 간탐죄에 떨어진다 이거야.
不為衆生이라하사
그래서 중생을 남을 위한 것이 못 돼.
남을 위하는 것이 못되면 야수다라를 버리고, 자식을 버리고, 부모를 버리고, 나라를 버리고, 출가해서 또 6년간 그 많은 스승들을 찾아다니면서 공부한, 그런 모든 것들을 다 등져버리는 것이 되니까 이게 보통일이 아닌 거야.
그래서 어떻게 할까? 부처님이 고민을 많이 했어요. 사실은. 그래 경전에 보면
천왕이 하늘에서 이러 이렇게 가르쳤다. 그래 이제 너무 당신이 깨달으신 그 최고의 수준 높은 다이아몬드와 같은 가르침은 우선 제쳐놓고, 그 다음에 또 근기에 맞는 방편을 좀 설해가지고, 차츰차츰 이제 뭐 칠성단에 실타래 갖다 얹어놓으면 수명 길어진다. 얼마나 좋아. 야 거 고소하잖아요. 별별 방편 수 만 가지 방편 많잖아 등등 한 예로써 말이야. 난 주지 안 하니까 이런 소리 마음대로 해서 참 좋아.
등불 켜면 은 아~ 지혜가 총명해진다. 그것도 뭐 아니 된 말은 아니야.
그 인연을 통해서 어느 정도 효과는 있어. 그냥 가는 곳 마다 한국에는 이건 유도 아니야. 대만에 불교 얼마나 성합니까? 제일 신심이 있는 국가는 진짜 대만입니다. 대만이 신심이 제일 있는 국가에요. 그런데 대만에 가니까 큰~ 대웅전에 앞문이 딱 하나 있고 우리는 문이 있는데 는 다 열수 있도록 해놓았거든요 법당 문을. 거기에는 앞문은 하나만 있어. 옆으로 문은 양쪽으로 3~4개씩 이렇게 있어 7칸짜리 같으면 3개씩 있고 9칸짜리는 4개씩 있고 앞문 하나만 놔두고도, 그런데 캄캄한데 막아 놓았어. 이것 왜 이렇게 있는가 싶어서 가보니까, 전부 거기에다 장등을 달아놓아서 장등을 수천만 개의 장등을 해가지고 이름을 써 붙여 가지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전부 그런데 가서 배워온 거야. 그래 가지고 전부 이런 등불을 밝히는 거야. 저러다가 불나면 어쩌려고 저러는가 걱정이 태산이더라고 가보니까. 세상에 그렇게 무당 같은 짓을 하고 있어. 그게 방편이야 방편. 그래 그런 방편이라도 써가지고 근데 지금은 방편시대가 아닌데,
지금도 그렇게 3000년이 지났는데도 방편을 그렇게 쓰고 있으니 방편이 필요한 근기가 있기는 있어. 있지만은 그것보다는 큰 고기 건져야지. 큰 고기. 그런 게 참 안타깝더라고. 대만이 불교가 성하고 신심 있고 우리나라는 식당에 스님들이 아무데나 들어가도 저거 장사하기 위해서 다 받아들여가지고 뭐 달라는 대로 다 잘 줘.
대만은 절대 그게 안 돼. 스님들이 가는 식당이 따로 있어 우리 한국스님들이 멋도 모르고 아무식당에나 들어가면 여기는 스님들이 오는 식당이 아닙니다. 하고 스님들이 가는 식당에 안내해 줘. 그런 정도로 신심이 있어. 대만에는 그런 계를 안 지킬래야 안 지킬 수 없도록 신도들이 딱 그렇게 해. 일부러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분위기가 다 그래 돼있어. 으례히 그렇게 살아. 그만 그런 정도로 신심이 있는 국가입니다 대만이. 그래 잘 살아요. 참~ 잘 살잖아요. 대만은. 그런데도 그렇게 기복적인 것 방편불교가 너무 성한거야. 그런 것 보니까 문제가 많다 싶고. 성운대사 설법도 내가 많이 들어보거든요. 책도 읽어보고 설법도 들어보고 하면, 별로 깊이가 없어. 그냥 대중성 있는 것 여러 사람에게 잘 먹히는 그런 상식적인 이야기. 그런 것 들이라고 주로. 그래서 부처님도 고민하다가
溥捨妙道하시고
묘도, 정말 아름다운 진리의 가르침, 요것은 두시고. 부사는 제쳐두고 이런 말이야
묘도를 제쳐놓고
遂設方便하사
드디어 방편을 설하사
說有三乘하며
삼승을 설했다
성문승, 연각승, 보살승, 이게 전부 방편이거든요.
삼승이 처음에는 삼승만 이야기를 했는데, 이것이 그냥 금방금방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가지고, 아까 이야기 했듯이 칠성단에 뭐 실을 올리면 명줄이 길어진다. 또 등불 거저 촛불 하나 밝히든지 아니면 호롱불 하나 법당 대웅전 법당에 위험을 무릅쓰고 그런 것 하나 밝히면 무슨 돌대가리가 총명하게 천재가 된다 한다든지 이런 식으로 방편이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 버린 거야. 그 나라 그 나라 따라서.
일본에는 또 웃기지도 않는 게, 무슨 지장보살을 왜 그렇게 많이 모셔놓았는지. 요만한 지장보살을 그냥 수천 수 만개를 모셔놓고 거기다가 또 지장보살 또 이제 옷이라고 해서 해놓고 또 그건 그 나름대로 방편이 있더라고요. 요즘은 또 세계가 하나 다보니까 지장기도 많이 하고 무슨 뭐 무슨 뭐 하고 하는 게 일본영향이 크고, 또 중국 영향도 크고 보니까 그래요.
그래 가지고 스님들이 그런 여행을 하고 돌아와서는 아유 나도 저렇게 해야 되겠다 해가지고 어떤 사람은 일본식으로 어떤 사람은 중국식으로 그냥 국적도 없어졌어. 완전 세계화 되었어 그래 가지고 방편들이 중국방편이 묻어 들어오고 일본방편이 묻어 들어오고 기존의 한국 방편이 묻어 들어오고 해가지고 방편을 설해가지고서
說有三乘하시며 했는데, 이놈의 삼승이 삼만 승도 되고 삼십 만승이 되고 삼억 승도 되고 삼억 가지 뭐 삼천억 가지도 더 돼. 그렇게 많이 불어났습니다.
요건 이제 근기 따라서 필요에 의한 가르침을 여러 가지를 나열하는데 이제 그렇게 돼요
乘有大小하며 得有淺深이
대승도 있고 소승도 있고. 얻는데도 덕이 있고 심이 있고 천이 있는 거라.
얻어 가는데도 불교에 들어와서 얻어 가는데도 깊은 게 있고 얕은 게 있고 그런 거지.
별별 소득이 다 있잖아요. 사람들 따라서. 절에 와서 등산만하고 가는 사람, 생수만 퍼가는 사람, 와서 절만 하고 가는 사람, 심지어 초 동가리 얻어가고 떡 하나 얻어가는 사람, 와서 복 짓고 가는 사람, 와서 봉사하고 복 짓고 가는 사람, 시주하고 복 짓고 가는 사람, 와서 절 해가지고 절을 많이 해가지고 자기 심적 수행을 쌓고 가는 사람. 별별 사람 다 있잖아.
그러니까 승에는 대승과 소승이 있고 뭐 별별 승이 다 있고,
얻는 데는 얇은 것도 있고 깊은 것도 있다.
또 이렇게 최상승의 공부를 하는 이런 전심법요, 문수선원 같은 이런데서 는 아주 최상승 공부 최첨단 최~명품 불교만 공부하고 가는 그런 곳도 있고.
皆非本法이라
그것은 다 근본법이 아니다.
방편으로써 얻어가는 것은 근본법이 아니다.
진짜 부처님의 마음속에 있는 그 법은 아니야.
그런 것 뭐 이익 줄려고 부처님이 그렇게 태자의 지위를 버리고 6년 고행해서 큰~ 도를 이루어서 수 천년동안 뭐 인류의 큰 승이다 큰 스승이다 그런 추앙 받는 것이 아니다 이거죠. 그걸 우리가 한 번쯤 생각해보면, 야 ~이거 참 정말 부처님의 올 곧은 진짜배기 법이 뭔가? 여기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돼 우리가.
故云 唯有一乘道요 餘二則非真이라하시니라
요건 이제 법화경에서 나온 소리죠.
오직 일승도만, 하나의 가르침만 있고, 餘二則 여의칙 나머지 둘, 셋, 넷, 다섯, 이렇게 온갖 것이 많이 중국방편, 일본방편, 한국방편, 뭐 또 시대가 흐름에 따라서 중생들 필요에 따라서 펼쳐진 그런 것 들은 전부 진짜는 아니다 이 말이지.
부처님의 참 마음은 그게 아니죠. 불교의 진수는 아니다.
금정산을 가는데 꼭 상봉만 가요 상봉은 물론 아니죠. 가다가 계곡에 쉬어도 금정산에 간 보람이 그 다름대로 있고, 뭐 잠깐 한 바퀴 돌아 와도 그 나름대로 보람도 있고 하지.
그렇듯이 불교라고 하는 거대한 산에는 누구든지 입새에만 들어와도 소득은 얻어가.
나름대로 다~ 소득은 얻어가. 소득은 얻어 가는데 그중에서도 지나 알짜배기를 얻어 가면 더 좋지요. 그래서 여기 짧은 글이지만은 여기 부처님의 일대 가르침의 모든 것이 다 요렇게 축약이 돼있어요. 조사스님들의 가르침이라고 하는 것은 전부를 다 알고 있는 입장에서 가르치기 때문에, 말은 간단해도 그 속에 들어있는 내용은 상당히 풍부하거든요. 보면 금방 우리 공부한 것만 해도 그렇죠. 이것 가지고 몇날 며칠을 공부해도 다 못하는 거예요 사실은
然이나
그러나
終未能顯一心法故로
마침내 그 많은 별별 가르침을 가르쳤지마는
마침내 능히 일심법, 한 마음의 도리를 능히 나타내지 못했기 때문에
그걸 나타내어야 이게 진짜인데
召迦葉同法座하사
그래서 가섭을 불러가지고 동법좌, 법좌를 같이했다
법을 듣는 자리를 같이 했다
別付一心하시니
따로 일심을 분부 해주었다. 주었으니,
離言說法이라
말을 떠난 설법이라고 한다.
이제 불교의 진수를 최종적으로 우리가 정리하면은 선불교라 그렇게 이야기 하죠.
불교가 발달하고 발달하고 발달해서 최종적으로 정리된 게 선불교 그래요.
선불교의 태두가 영산회상거염화. 영산회상에서 부처님이 꽃을 든 그 소식. 그것도 결국은 일심법을 보인 것이고. 그 다음에 사라쌍수곽시쌍부. 요건 마지막 것이지만.
그 중간에는 다자탑전분반좌. 요게 이제 여기서 말한 거예요.
법회를 이렇게 하려고 하는데 상수제자 가섭존자가 도착을 안했어.
법회는 시작이 되었다고. 꽉 차서 자리에는. 상수제자 가섭존자가 저기 들어오니까 부처님이 이리 오너라. 앉을 자리가 없잖아요. 앉을 자리가 없어. 이리 오너라, 이리 오너라, 해가지고 자기 자리를 나누었어. 이건 같은 의자라면 의자를 약간 물리고 이 자리에 같이 앉힌 거야. 이게 그 도리입니다. 召迦葉同法座 가섭을 불러서 법의 자리를 같이 했다.
이게 이제 다자탑이라고 하는 탑 앞에서 법문을 할 때 이야기입니다.
거기에 별부일심이라고 했잖아요.
따로 말은 그동안 많이 해서 언설로 가르쳤지만은 말 밖에, 말 말고 말 외에 따로 일심을 주었다. 전해주었다. 이심전심 그런 말도 있듯이 일심을 주었다.
늦게 온 사람에게 자리 전해주었는데, 자리를 나눠주었는데, 거기에 일심을 주었다.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가섭존자가 온 것도 일심이요. 자리 없다고 자기 자리를 반 나눠서 준 것도 거기에 일심이 마음이 있을 뿐이라. 그 외에 다른 것 아무 것도 없어.
꽃을 든 것도 마음이요. 꽃을 드는 것을 본 것도 마음이라. 그 외에 다른 것이 없어.
요것만이 진짜라고요. 이 아주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離言說法이라 그랬죠. 말을 떠난 설법이다.
우리가 답착비공(踏着鼻孔)이라 그런 말을 해요. 선가에서.
코 구멍을 밟아버렸다.
코 구멍은 사람이 처음에 생길 때, 코 구멍이 제일 먼저 생긴답니다.
모태에서 맨 처음 코 구멍이 생겨야 숨을 쉬니까.
그래서 자꾸 자꾸 몸이 이루어지는데, 비공이라고 그렇게 이제 하고, 우리가 원조를 비조라 이런 표현도 쓰고 이러잖아요. 그런데 코 구멍을 밟아버렸다. 이런 말을 선가에서 참 잘 써.
그건 이제 근본을 타파했다 이 뜻입니다. 근본을 보았다. 근본을 깨달았다. 이 뜻으로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또 사자는 교인하고 한노는 축괴라고.
사자에게 다가 흙덩이를 던지며는 사자는 흙덩어리 던지는 사람을 물러와.
똥개에게 다가 흙덩어리를 던지면 사람을 안 쳐다보고 흙덩어리 그게 지 때리려고 던진 흙덩어리인데도 불구하고, 그게 뭐 먹을 것 인양하고 킁킁하면서 흙덩어리를 쫓아간다. 이런 표현도 있다고요.
그럼 꽃을 들었다 그러면은. 꽃에 뭐가 있는 줄 아는 거야. 이게 똥개야.
여하시불이닛고?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간시궐이니라. 똥 막대기니라. 이렇게 대답을 했잖아요.
그러면은 똥 막대기가 뭐 뜻이 있는 양으로 이렇게 똥개는 쫒아가는 거야.
그런데 사자는 어떻게 하겠어요?
똥 막대기니라 라고 대답하는 그 놈을 보는 거야. 그게 근본이니까.
똥막대기라고 대답을 했든, 나무토막이라고 대답을 했든, 법당에 앉아있는 등상불이라고 대답을 했든, 저 걸어가는 사람이라고 했든, 뭐라고 대답을 했든 아무 상관없어.
대답한 그 놈이 진짜거든. 대답한 그 놈이 진짜야. 그게 답착기공이라. 근본을 밟아버렸다. 근본을 타파했다. 고게 이제 사자는 교인이라. 사자는 사람을 무는 거야. 우리는 전부 똥개가 되어가지고는, 간시궐이다 하면, 간시궐에 뭐가 있느냐?
또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이렇게 하면 뜰 앞에 잣나무 이니라. 그랬다고.
돌아가는 선풍기 이니라 이럴 수도 있어. 나를 찍고 있는 카메라이니라. 이렇게 말 할 수도 있는 거야. 그러면은 무슨 선풍기에 뭐가 있는가 싶어 가지고 선풍기에 푹 빠져버리는 거야. 그건 똥개야. 이 사람은 선풍기라고 대답할 수도 있고, 손가락을 들 수도 있고, 꽃을 들 수도 있고, 카메라라고 할 수도 있고, 안경을 들어 보일 수도 있고, 내 마음 내키는 대로야.
그 뭐 가위를 몇 번 울리든 그건 엿장수 마음이야. 엿 장사 손에 달린 거야. 세 번 울리니까 저건 무슨 뜻 인고? 이러고. 어제는 세 번 울리더니 오늘은 다섯 번 울린다. 저건 또 무슨 뜻 인고? 전부 우리 중생들이 성인들이 뭐라고 뭐라고 하면은 말 쫓아가기 바빠 가지고, 똥개 노릇하느라고 말 쫓아가기 바쁜 거야.
이래 가지고 불교를 제대로 못 듣는 거야. 불교를 제대로 못 깨치는 거라.
여러분들이 여기에 왔든, 아니면 범어사에 올라갔든, 통도사로 갔든, 아니면 저기 어디 바다에 무슨 피서하러 갔든, 간 그 놈이 주인공이야. 어디를 갔던 상관없어. 이건.
오늘 이 순간에 어디에 갔든 아무 상관없어. 간 그 놈만 놓치지 아니하고 요게 나다. 라고 하는 것만 알면 굳이 여기 안 와도 상관없어. 여기 와야만 내가 아니라고. 어디가도. 하다못해 뭐 친구들하고 시원한 바닷가에 가서 수영을 해도 그건 나야. 그것 잘 챙기면 끝이라고요. 그게 근본이거든. 답착비공(踏着鼻孔)이라.
그러면은 여기 와서 내 말에 끄달려버리면 똥개야.
근데 수영하러 바닷가에 가서도 자기 자신 隨處作主수처작주, 어디 갔던지 간에 내 주인공 놓치지 아니하고 내다. 나는 나 다고 하는 의식만 제대로 챙기고 있으면 이건 이제 사자야. 사자는 교인이라. 사자는 사람을 무는 거야. 근본을 무는 거야.
오늘 불교 이야기 사실 근본 바닥까지 다 털어내 가지고 지금 이야기 하는 거야. 이거.
그동안 우리 공부해온 게 다 그런 것이지만.
그러면 가섭존자가 저기서 들어오니까, 가섭존자 자리 없으니까, 이리 와 불렀다고.
그래 가지고 불렀으니까 왔고, 자리에 앉았어. 거기에 뭐 있습니까?
그냥 그 사람이 있을 뿐이야. 가섭존자, 저 훌륭한 제자이니까 뭔가 둘이 꿍꿍이속이 있는가 보다. 똥개는 이렇게 생각하는 거라. 뭐 둘이 꿍꿍이속이 있겠지. 저 부처님하고 최고 제자 가섭존자하고니까 뭔가 비밀이 있겠지. 사실 비밀이지. 그것은.
뭐 특별한 꿍꿍이속이 있는 그냥 그렇게 생각하는 거라. 그것 생각할 것 없어.
그냥 그대로야. 가섭이 있고 부처가 있을 뿐이야. 보는 내가 있을 뿐이고.
누굴 불러 앉혀도 똑 같아. 누굴 불러 앉혀도 똑 같다고.
너무 거기에 속을 필요가 없다고요. 부처님이 꽃이 있으니까 꽃을 들었지. 가까이 꽃이 있으니까 꽃을 들었지. 안경 있었으면 안경을 들었을 거야.
뭘 들었든 부처님이 이렇게 동작을 해서 부처님의 모습을, 그걸 마음이라고 하든지 보여주는 것. 이 것 뿐이라고.
그리고 보는 것. 꽃을 들어서 꽃을 보든, 안경을 들어서 안경을 보든, 보는 것. 그 것 뿐이야. 그것 외에 뭐가 있습니까? 지금.
내가 말하는 것 하고. 여러분들이 듣는 것 하고. 이 사실 외에 뭐가 있습니까?
내가 노래를 불렀든, 전심법요를 이야기 하든, 화엄경을 이야기 하든, 뭔 이야기 하든, 그건 따라 갈 필요가 없어. 아~ 말하는 놈이 있다. 듣는 놈이 있다. 요것 하나 가르쳐주자고 하는 게 전심법요예요. 그게 주인공이라. 그것만이 진실이라.
唯有一乘道요 餘二則非真이라
오직 일승도가 있을 뿐이고 나머지는 다 가짜다.
이런 도리를 선불교 이렇게 하고 선도 이렇게 이제 표현을 합니다. 선법이다 이렇게 표현하는 거죠.
此一枝法이
이 한 가지의 법이
今別行하니
지금에 따로 행한다.
교외별전 해가지고, 교학을 중심으로 해서 공부하는 파가 있고
또 마음 찾는 선불교파가 따로 있지. 그래서 금별행이라.
지금 따로따로 행하고 있다. 선종이 있고 교종이 있고 여러 가지가 있죠.
若能契悟者는
만약 능히 이 도리를 알아차리는 사람은
便至佛地矣니라
곧 부처의 지위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내가 이야기 난 김에 다해 버리지.
우리 선가에서 아주 유명한 시가 하나 있는데, 그게 소염시라. 아주 재미있는 시여.
이게 이제, 이 시는 오조 법연선사라고 하는 이가 어떤 거사 진제영이라고 하는 거사에게 다가 선불교 선불교 그거 참 궁금하거든요. 옛날에 당나라 송나라 때 한참 불교가 꽃피우고 특히 선불교가 꽃 피울 때 이것 뭐 구태여 감춰놓고 뭐 안 가르치고 할 이유가 없는 거야. 우리가 알 수 있는데 까지 한 번 알아보자. 이렇게 된 시절에. 진제영이라고 하는 아주 높은 벼슬을 가진 사람이 오조 법연선사에게 이제 그런 것을 물었어.
말 밖에 이 도리를, 말 밖에 있는 도리인 것만은 사실인데,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될 것인가? 그래서 그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설명을 하는데, 원오 극근선사가 그 설명하는 소리를 옆에서 듣고 깨달았어. 깨달았어.
그 시야. 그게 뭔 시 인고하니. 한 마디로 참 옛날 선사들은 멋있어.
아름다운 그 맵시 그림으로 그리려해도 그리지 못하리니
깊고 깊은 규방에서 애만 태운다.
자주자주 소옥을 부르지만 소옥에겐 일이 없고
오직 님께 제 소리를 알리려는 뜻이라네.
뚱단지 같은 소리인데. 요건 이제 옛날에 당나라 때 안녹산이라고 하는 장군이 있었어.
나중에 난을 일으켜가지고 현종 때인데, 양귀비가 현종에게 애첩이잖아요.
그런데 왕의 애첩이 어떻게 외간 남자하고 눈을 맞출 수 있나 말이야.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니라고 이게. 그런데 그런 사건이 벌어진 거야.
안녹산이라고 하는 큰 장군으로 유명한 장군으로 나라도 지키고 하는 큰 이름 있는 벼슬을 가진 사람이긴 하지만은 그런 사람하고 양다리 걸쳐서 연애를 하는 거야. 양귀비가.
그런데 임금은 이제 애첩이니까 어쩌다 한 번씩 오고, 그러니 둘이 임금 몰래 정을 통하긴 통해야 되겠는데 이게 이제 길이 막막한 거야. 궁중에 전부 눈뿐인데.
그런데 애첩의 종이 소옥이야. 작은 소, 옥이라는 옥자.
그래 가지고 자기 방에서 자기 사는 처소가 있을 것 아니야. 궁 안에 넓은 궁 안에 있는데, 거기서 소옥아 소옥아 하고 소리를 크게 지르는 거야. 소옥이 쫒아가도 소옥 이에게는 관심이 없어. 계속 소옥아 소옥아 하고 부르는 거라. 그 소리가 담밖에 넘어가 가지고 안녹산이가 알아듣고, 나 혼자 있으니 얼른 담 뛰어 넘어오시오. 이 뜻인 거야.
그래 여기 원시는 그래요.
一段風光畵不成 洞房深處陳予情 頻呼小玉元無事 只要檀郞認得聲
일단풍광화불성 동방심처진여정 빈호소옥원무사 지요단랑인득성
일단풍광화불성이라. 아름다운 그 맵시 그림으로 그리려 해도 그리지 못하리니
동방심처진여정이라. 깊고 깊은 규방에서 애만 태운다.
얼마나 애타겠어요. 왕은 소용없고 저 힘 좋은 안녹산장군에게만 마음이 가 있는 거야.
빈호소옥원무사라. 자주자주 소옥아 소옥아 하는데 는 아무 뜻이 없어.
아무 일이 없어. 볼일이 없어. 몸종은. 아무리 딴 사람이 들으면 지 몸종이니까 부르는가 보다. 이렇게 알아듣잖아요. 진짜 알아듣는 사람은 저 담 넘어 숨어있는 안녹산이야.
지요단랑인득성이라. 다만 오직 님께 제 소리를 알리려는 뜻이라네.
소리가 담 넘어가서 숨어 있는 안녹산이가 얼른 알아듣고 쫓아오기를 바라는 그 뜻이라.
무라. 무라. 개가 불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다. 계속 없다. 없다. 이렇게 하는데.
없다 하든지, 간시궐이라 하든지, 정전백수좌라 하든지, 이 뭣고? 라고 하든지, 뭐라 하든지 거기에는 별 의미 없어. 꽃을 들었든지, 안경을 들었든지, 뭘 들었든지, 거기에는 별의미가 없어.
답착비공. 사자교인. 사자는 사람을 물어야 돼.
소옥아라고 불렀지마는, 고건 정전백수좌. 이런 말이거든.
정전백수좌는 별 의미 없어. 정전백수좌라고 하는 그 놈이 문제야. 그 놈.
소옥아 하는 소옥이라고 하는 말은 별 의미가 없다고. 부르는 그 사람이 문제야.
그 당사자. 주인공이 문제라고. 그걸 알아야 돼. 답착비공해야 돼.
그걸 알아채야 해. 얼른 담 뛰어 넘어가지고 일이 벌어지는데. 이게 그걸 못 알아들으면. 아이고, 몸종 부르는가 보다. 왜 불렀을꼬? 기침이 나서 불렀나? 아니면, 물 떠오라고 불렀나? 뭐 차 딸리려고 불렀나? 이러고 자빠졌는 거야. 그게 이제 똥개야. 말 쫓아가는 거야, 말 쫓아가면 그렇게 된다고. 이해되겠죠? 이제. 뭘 부르든지 부르는 그 사람. 그걸 알아차려야 돼.
답착비공이라 근본을 타파하다. 콧구멍을 밟아버렸다 이 말이야.
근본생명을 그냥 깨뜨려버렸다 이 뜻이거든요. 참 기가 막힌 도리지.
부처님이나 조사스님들이 별별 말을 많이 해. 천칠백 공안이라고 그러잖아. 천 칠백공안. 별별 말을 많이 했지만은 그게 뭐겠어요? 말하는 놈이 있을 뿐이야. 듣는 놈이 있고. 그 둘 뿐이야. 그것도 하나지 사실은. 말하는 놈이 듣는 놈이고 듣는 놈이 말하는 놈이지. 그 사실만이 진실이라. 뭐라고 말을 했던. 그것은 아무 의미 없어요.
임제스님이 황벽스님에게 가서 불법이 뭡니까?
불법이 뭐긴 뭐라. 묻는 네놈이 지금 묻는 이 사실이 불법이지.
요것만 진실이니까. 요것만 진짜니까. 뭐 팔만대장경에 뭐라고 뭐라고 해놓았다. 그건 책에 있는 거고. 지금은 너하고 나하고 앉아가지고 불법은 네가 묻는 그 사실만이 불법이야.
그래 가지고 냅다 주장자를 가지고 20방망이 후려쳤잖아요. 이것만이 진실이다. 확실하게 보여주려고. 손가락만 세워도 돼 사실은. 힘이 넘쳤던가봐. 황벽스님은. 근질근질 하던 차에 옳다 잘 되었다 하고 후려친 거야. 아주 확실하게 보여주는 거지.
때리는 그 놈이 있을 뿐이야. 한 대 때려도 좋고. 열 대 때려도 좋고. 손가락 세워도 좋고. 어떤 방편이든지 그건 다 방편일 뿐이니까. 그냥 보여주는 그것. 들어내 보이는 그것이 진실. 이 뿐이야. 그것만 진실이거든요. 그 외 것은 전부 가짜입니다. 다 방편이고. 묻는 그 놈이 진짜야. 그게 불법이고. 불법이라면 불법이라고. 굳이 이름 하니까 그렇지
불법이라면 그게 불법이고. 도라면 그게 도고. 진실이라면 그게 진실이라. 그 외에 없어요. 이건 최첨단불교, 최고급불교, 최~명품불교, 최첨단, 최~명품이요. 그것 알아야 돼요. 그것 알기는 알고 배우는지 모르겠다. 내. 진짜야. 아무나 이런 소리 못해요. 어디 저 법문 아무리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켜놓고 들어봐요. 이런 법문 나오나.
아주 중요한 이야기지요.
여기 왜냐하면, 세존이 세상에 오셔가지고 일승진법을 설하고자 한즉, 중생이 안 믿어.
여기는 이제 믿을만한 사람들만 모였으니까 일승진법을 이야기 한거지요 사실은.
그러고 도로 비방만 해서 고해에 떨어지게 하고. 만약에 아무것도 말하지 아니하면 은 자기가 공을 많이 들여 가지고 한 공부인데, 그 공부를 가르쳐주지 아니하고 가면 간탐죄에 떨어져서 중생을 위하는 길이 아니야. 그래서 할 수 없이 진짜 묘도는 덮어놓고 제쳐두고 방편을 설해가지고서 이런 저런 방편을 하다보니까. 방편이 수 억 만 개로 늘어났는데, 그것은 진짜 본법은 아니다. 본래의 도리는, 가르침은 아니다.
그래서 유유일승도요. 일승도만 오직 있고, 여의즉비진이라 나머지 둘이나 셋이 있으면 그것은 진짜가 아니다.
사실 선에서 우리가 무엇을 묻고 무엇을 어떻게 답하고 천칠백 가지 공안이 있고 뭐가 그래봤자 묻는 사람이 있고 답하는 사람이 있다. 묻는 사람을 들어내고 답하는 사람을 들어내는 그 사실 뿐이야. 불법을 물었고 방망이로 때렸고, 또 조사서래의가 뭐냐? 하면은 정전백수좌라했던 부처가 뭐냐 했는데 간시궐이라 했던 뭐라고 했던 간에 그저 묻는 사람이 있고, 그 묻는 사람을 들어냈고, 뭐라고 대답을 했던 그 답하는 것을 답하는 그 사람을 들어낸 것. 그것 뿐 이에요. 그것만 진짜야. 그게 진실이라고요. 그 외는 아무것도 건질 것이 없어. 꼭 건질 것은 그 묻는 사람에게는 묻는 그 사람. 답하는 사람에게는 답하는 그 사람이 여기에 지금 존재할 뿐이라.
그래서 옛날에 마조스님 제자 대주스님이라고 아주 훌륭한 스님이 있었는데, 그 스님이 처음에 마조스님에게 와서 인사를 하니까, 네가 여기까지 멀리 뭐 하러 왔느냐? 불법을 배우러왔습니다. 그래? 자기의 보물을 제쳐두고 멀리까지 뭘 피곤하고 힘들게 여기까지 왔느냐? 그렇게 대답을 했어요. 그러니까 대주스님이 있다가, 무엇이 나의 보물입니까? 네가 나에게 질문하는 게 그게 보물이야. 이랬다고요. 그렇게 곳곳에 답을 다 해놓았어 사실은. 곳곳에 답을 다 해놓았어.
니 보물 놔두고 왜 이렇게 멀리 고생해서 여기까지 왔느냐?
무엇이 나의 보물입니까?
네가 나에게 질문하는 그게 보물이야. 질문하는 그놈이 보물이야.
그건 누가 뺏어갈 수도 없어. 훔쳐갈 수도 없어. 그건 오직 니 꺼야.
내 보물은 내가 니인데 대답해준, 요게 내 보물이야. 이거면 다야.
이걸 부처라고도 하고, 조사라고도 하고, 이걸 보살이라고도 하고, 이걸 뭐 일승이라고도 하고, 별별 이름을 다 팔만사천 이름을 붙여서 그렇게 부르느니라. 그렇게 했어요.
공부 다 했지요? 불교공부. 허~허
오늘 어찌 이렇게 좋은 이야기가 나왔나 모르겠네.
오늘 전심법요 공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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