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과 스토리]
“아바이순대, 평양냉면 좋아하면 북한 좋아하는 거냐”
좌파 운동권의 진술거부 재판 전술 그대로 답습한 이석기 의원,
"정치 보복"이라며 검찰 신문에 또 묵비권 행사
내란음모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27일 법정에서 진행된 검찰의 피고인 신문 전체에 대해 답변을 거부했다. 이 의원은 검찰 수사 과정에서도 묵비권(진술거부권)을 행사했었다. 수원지법 형사12부(재판장 김정운) 심리로 열린 이 사건 43차 공판에서 검찰은 사건 이후 처음으로 이 의원에 대한 피고인 신문을 진행했다. 재판부는 형사소송법에 규정된 진술거부권을 고지한 뒤 검찰 신문을 진행했다.
9월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수원지방법원으로 들어서는 이석기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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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의원은 검사가 신문을 하기 전에 “이 사건은 처음부터 국정원의 날조 사건이어서 진술을 일체 거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며 진술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최근 검찰은 작년 의원회관 압수수색과 관련해 보좌관 2명을 포함해 5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는데, 도주 및 증거인멸 가능성이 없는데도 영장을 청구한 것은 명백한 정치 보복이고, 진술을 거부하는 건 이에 대한 항의의 뜻도 있다”고 말했다. 작년 8월 이 의원 자택과 국회 의원회관에 대한 국정원의 압수수색을 방해한 혐의로 이모 비서관 등 5명에 대해 검찰이 지난 23일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을 두고 한 말이었다.
검찰은 “영장 청구는 이 재판과 직접 관련이 없는데도 이를 이유로 진술을 거부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했으나, 이 의원은 검찰 신문에는 일절 답변하지 않았다. 이 의원의 침묵에도 검찰은 “현 정권과 미국을 타도하고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한다는 이념에 따라 활동했나” “북한 혁명가요를 불렀나” 등 준비한 신문사항 200개를 모두 질문했다. 3시간으로 할당된 신문 시간을 2시간으로 줄였다.
변호인 신문 때는 적극적으로 혐의 반박
“아바이순대, 평양냉면 좋아하면 북한 좋아하는 거냐”
하지만 이 의원은 검찰 신문이 끝난 뒤 진행된 변호인 신문 때는 자신의 범죄 혐의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박했다. 그는 혁명조직인 RO는 실체가 없는 조직이고, 비밀회합은 정세 강연이었을 뿐이라는 기존 변호인들 주장을 되풀이했다. 그는 “(작년 5월 회합 전쟁 발언은) 최악의 경우 미국에 의한 군사적 행동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는 측면에서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쓴 표현이며, 전쟁 발발 가능성을 막기 위해 물질적•기술적 준비를 해야 한다는 취지였다”고 말했다. 또 혁명동지가 제창에 대해서는 “국가보안법 운운 자체가 문명국가의 수치이고 시대착오적이다. 아바이순대, 평양•함흥냉면 좋아하면 북한을 좋아하는 것이냐”고 말했다. 변호인 신문은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의 남편인 심재환 변호사가 맡아 2시간가량 진행했다. 검찰 신문에 대한 이 의원의 묵비권 행사는 예견된 것이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공안사범들은 검찰 수사, 법정에서의 검찰 신문에 거의 예외 없이 묵비권을 행사해왔다. 조사 과정에서 자신의 혐의를 줄이고 법정에서 허점을 노출하지 않기 위한 재판 ‘전술’이다. 이 의원도 검찰 조사 과정에서 신문에 들어가기 전엔 검사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았지만 정식 신문에 들어가면 입을 닫은 것으로 알려졌다. “운동권의 묵비권 행사는 1982년 ‘법정투쟁지침’ 그대로 이어오고 있는 것” 좌파 운동권 출신들의 이 같은 묵비권 행사에는 그 뿌리가 있다고 법조계 인사들은 말한다. 검찰에서 공안사건을 많이 처리했던 고영주 변호사는 “1981년까지만 해도 공안사범들은 검찰에서 자신의 신념을 당당히 밝혔으나, 1982~83년 사이 ‘법정투쟁지침’이 나오면서 묵비권 행사로 돌아섰다”고 말했다. 그는 “법정투쟁지침의 골자는 수사 과정에서 묵비권을 행사하고, 법정에서도 공산주의라는 것을 절대 자백하지 말라는 것이었다”며 “그 때의 투쟁 전략을 지금 그대로 이어오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작년 9월 이석기 의원이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수원지방법원으로 가던 중 누군가 팔을 잡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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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무단으로 방북해 북한 인사들을 만나고 북한 선군정치와 주체사상을 찬양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구속기소된 한상렬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도 검찰 수사 과정과 법정에서 묵비권을 행사했다. 그는 검찰 수사 수사 과정에서 일상적인 대화를 하면서도 조사를 전제로 한 질문에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는 북한에서 “천안함 사건은 한·미동맹으로 주도권을 잃지 않으려는 미국과, 선거에 이용하고자 했던 이명박 정권의 합동사기극”이라고 발언했다. 2012년 통합진보당 당사 압수수색에 항의하며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청사에서 불법 시위를 벌인 대학생 당원 9명도 수사 과정에서 약속이나 한 듯 묵비권을 행사했다. 경찰이 이들의 이름을 알아내는 데만 꼬박 하루가 걸렸다고 한다. 이석기 의원이 대표로 있던 선거전략기획사 CNC(옛 CNP) 직원들도 2012년 6월 선거 홍보 비용을 부풀려 청구한 국고(國庫) 사기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진술을 거부했다. 2011년 북한의 지령을 받은 간첩단 ‘왕재산 사건’ 관련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한명숙 전 민주당 대표도 2010년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됐을 때 공판에서 검찰 신문에 묵비권을 행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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