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에 의한 유대인 학살(홀로코스트, Holocaust)은 광신도나 반사회적 성격장애자가 아닌
상부의 명령에 순응한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자행되었음을 말하는 개념이다.
히틀러 치하의 독일에서 학살된 유대인은 600만 명에 이르는데, 당시 독일 사회 전체가
인종차별주의에 동조하는 분위기였다.
미국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가 집필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나오는 구절에서 유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Karl Adolf Eichmann)의 재판 과정을
담은 책이다.
저자 아렌트는 독일 태생의 유대인 철학사상가로, 히틀러 정권 출범 후 반(反)
나치 운동을 벌이다가 1941년 미국으로 망명했다.
한나 아렌트
아렌트는 1960년에 독일의 나치스 친위대 장교였던 아돌프 아이히만이 체포되자 미국의 잡지
《뉴요커》의 특파원 자격으로 재판을 참관하고, 이 기록을 1963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Eichmann in Jerusalem : A Report on the Banality of Evil)》으로 발표했다.
아이히만의 재판을 담당한 판사들
이때 제시한 개념이 ‘악의 평범성’이다.
아렌트는 유대인 말살을 저지른 아이히만은 그저 자신
의 직무를 성실히 수행한 것이었으며 악의 근원은 평범한 곳에 있다고 주장했다.
아이히만의 사례로 확인할 수 있는 악의 평범성이란?
1960년 아이히만이 체포되었을 당시 사람들은 그가 포악한 성정을 가진 악인일 것이라고 추
측했다.
그러나 반대로 지극히 평범하고 가정적인 사람이라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아이히만
을 검진한 정신과 의사들 역시 아이히만이 매우 ‘정상’이어서 오히려 자신들이 이상해진 것 같
다고 말할 정도였다.
1961년 재판을 받고 있는 아이히만
아이히만은 히틀러 직속으로 소위 유대인 문제를 해결하는 총책임자 힘러(Heinrich Himmler)
의 지시를 가장 효율적으로 해결하는 부하였다.
나치의 지도자, 히틀러
아이히만은 2층 건물을 통째로 사용했는데, 아침에 유대인들이 오면 1층에서 재산을 빼앗는
서류를 작성했다.
낮에 2층을 나서는 유대인들은 약간의 돈과 비자, 여권만을 받아 해외 이주
또는 강제 추방을 당하는 운명에 처했다.
재판 과정에서 아이히만은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고 오히려 월급을
받으면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것이라고 진술했다.
그는 내적인 갈
등 없이 관료주의의 효율을 위해 기술적으로 임무를 수행했을 뿐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볼 수 있는 악의 평범성은?
2014년 윤 일병이 선임병들에게 한 달여간 폭행 및 가혹 행위를 당해 사망한 사건이 이에 해
당한다.
당시 초급간부였던 유 하사는 가혹행위를 방관하고 오히려 폭행에 가담했다.
또한 선
임병의 지시를 받은 이 일병은 폭행에 동조하고 증거 인멸을 시도했다.
이 사건이 외부로 알려진 후 폭행의 주범이었던 이모 병장이 평소 조용하고 얌전한 성격이었
다는 주장이 있어 더 화제가 되기도 했다.
상명하복의 문화가 존재하는 군대에서 선임의 반인
륜적인 지시에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따르기 시작하면 누구나 쉽게 ‘악의 평범성’에
빠질 수 있는 것이다.
비슷한 사례인 밀그램 실험(Milgram Experiment)을 살펴보면…
1961년 미국의 예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이 실시한 실험으
로,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권위에 대해 복종하게 되는가를 보여 주었다.
밀그램 실험 참가자들을 모집하는 광고
밀그램은 교사 역할의 피험자에게 학생들이 단어암기 과제에서 틀릴 때마다 정신을 차리고
학습을 잘할 수 있도록 한 번에 15볼트씩의 전기 충격을 주도록 지시했다.
학생 역할은 배우
가 맡아 전기 충격을 받는 것처럼 연기를 했는데, 놀랍게도 피험자의 65%가 최고 450볼트까
지 전압을 올린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었다.
즉, 굉장히 설득력 있는 지시가 주어지면 이성적인 사람이라도 도덕적인 측면을 무시하고 명
령에 따라 얼마든지 가학적인 행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