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쟁이, 이즈미 세이찌
글쓴이:조장빈
이즈미 세이찌(泉晴一, 1915-1970, 인류학자)는 1930년 후반기부터 등반을 시작했는데, 그의 저서 『먼 산들(遙かな山やま)』의 <서울 근교의 산(リウル市近気の山やま)>에서 조선산악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여름 방학이 끝나고 경성에 돌아 오면, 나는 근교의 산을 닥치는 대로 등반을 시작했다. 경성은 좁은 분지에
있고, 주위의 산에는 화강암이 노출된 바위 봉우리가 많았다. 그
무렵에 조선 산악회가 결성되었는데, 회장은 경성제국대학 의학부의 나카무라(中村両造)교수이고 회원은 경성
대학 예과의 다케나카(竹中要) 박사, 동양 척식 주식회사의 下出繁雄씨와 조선 철도국의 이이야마 다츠오(飯山達雄)씨가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이 산악회는 정통 산악회이고 이이야마씨 이외에 다른 회원은 암벽 등반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경성 근교의 산마루는 암벽 등반의 좋은 겔린더였기 때문에 일본에서 스포츠 알피니즘의 파도가 밀려 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고 한다”주1)
이즈미세이치의 금강산 집선연봉 등반
중앙 S2봉을 선등하며 후퍼를 확보하고 있다. C2정상에서.
그도 이후에 조선산악회에 가입을 하는데, 창립 당시 크라이밍을 할 수 있었던 회원은 이이야마 이외에도 있었다. 임무, 이이야마와 친분이 있었던 그 시대 경성의 클라이머들은 주봉 초등이 초미의 관심사였다.
1930년을 전후한 클라이머들 중에, 시작은 임무가 했고 활성화한 이는 이이야마이지만 최고 난이도를 오를 수
있었던 클라이머는 이즈미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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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원문 夏休みが終って、京城に帰ってくると、私は、 近郊の山をかたっばしから登りはじめた。京城の町は、狭い盆地にあって、周囲の山やまには、花崗岩の露出した岩の峰がおおい。そのころ、ちょうど朝鮮山岳会が結成された。会長は中村両造教授(京城帝国大学医学部)で、會員には京城大学予科の竹中要博士、東洋拓殖株式会社の下出繁雄氏や朝鮮鉄道局の飯山達雄氏が名をつらねていた。この山岳会は正統派であって、飯山氏をのぞくと、ほかの会員は岩登りはやらなかった。しかし、京城近郊の山やまは、岩登りの絶好のゲレンデであったので、日本からスポーツ·アルビニズムのの 波が、 おしよせてくるのを止めることはできなかったのである
첫댓글 이즈미 세이치의 등반기록을 찾다보면 임무의 인수봉 등반 최초기록에 더 접근힌것같네요~~ 조선산악회 기록이 더 많았으면 좋겠네요^^
스키장의 슬로프를 일본에선 독일어에서 파생한 "게렌데"라는 용어를 쓴다고 한답니다. 등산의 연습장(암장의 코스 : XX길?)으로도 쓰나 봅니다.
네. 교수님.
토욜 화양동서 뵙겠습니다.
'먼 산들'이 상당히 번역되었나 봅니다.. 축하드립니다...~
먼산들의 한국 관련 글 대부분은 읽어보았지.
이전 김정태ㆍ손경석 선생님 초기 등산사 글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되더만.
@조장빈 '먼산들' 빨리 번역되어 나오길 빌겠습니다.
저에게도 유용한 자료가 될 것 같습니다...~
잠간 든 의문) 글의 하단 '주)원문'이라고 적어놓으셨는데요.
이 원문은 현재 인터넷에 워드파일로 제공되어 있지 않고 있을텐데요.
누군가 직접 타이핑한건지요. 아니면 원문을 워드로 기술적으로 변환시킨건지 궁금합니다...~
@등산박물관(김진덕)
번역에 대해서 말추렴해볼까 합니다. 심정적 지원과 관심의 표명이라 보아 주세요.
1) 원문 첫째줄 : '닥치는대로 노보리 하지메타'를 '닥치는대로 등반하기 시작했다.'라고 하셨는데, - 앞뒤맥락을 알지 못한터라 양해말씀과 함께 - '오르기 시작했다'가 적합할 듯 합니다. '등반'은 손과발을 이용하는 전문등반의 냄새가 강한 용어라서요.
2) 원문도중의 "이 산악회는 정통류의 산악회이고,이이야마씨 외에는 암벽등반을 하지 않았다.'--
여기서 '정통(류)'의 의미가 조금 의아해 할 수 있겠습니다.
제 짐작은 이렇습니다.
@등산박물관(김진덕) 주말에 읽었는데, 우리나라 책인데, 어느책인지 잘 기억아 안나네요...
일본산악회의 정체성에 대해 잠간 언급해 놓은 건데요.
확실하지 않아 안타까운데요.
대강을 말하자면 '일본산악회는 서구식 근대등반보다는 학술과 정관적(?)산행, 탐험(?)이 중심이었다'라는 식이었던 것 같습니다.
조선 산악회도 명망가들이 중심이었고 그들도 초창기 일본산악회와 비슷한 분위기였다고 추정됩니다.그들이 펴낸 '조선산악 1,2,3,4'권이 전문등반이 중심이 아니고, 학술서적 분위기가 강한게 이를 방증합니다.
이렇게 전제할때... 본문에 이어지는 '일본에서 스포츠 알피니즘이 몰려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라는 게 이해됩니다.
@등산박물관(김진덕) 해석 감사. 난 지난번 얘기했듯이 일어 몰라.
아참 그리고 '먼산들'이라는 제목에 대해서는 따로 포스팅해보겠습니다.
그려. 진덕이나 승혁 글 하나하나 큰 도움이 됩니다.ㅎ
좋은 주말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