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124 (수) 전두환 전 대통령… 자택서 지병으로 사망, 향년 90세
전두환 전 대통령이 11월 23일 향년 90세 일기로 사망했다. 지병을 앓아온 전두환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8시 40분께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숨졌다. 그는 자택에서 쓰러져 오전 8시 55분께 경찰과 소방에 신고됐으며 경찰은 오전 9시 12분께 사망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파악됐다. 임종 때 영부인만 옆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시신은 서울 신촌연세대세브란스 병원으로 이송됐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악성 혈액암인 다발성 골수종 확진 판정을 받고 투병중이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최근 건강 상태가 악화돼 세브란스병원에서 통원 치료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1931년 경남 합천에서 태어나 대구공업고등학교·육군사관학교를 11기로 졸업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청와대경호실 차장보, 국군보안사령관, 제10대 중앙정보부 부장, 국가보위입법회의 상임위원장, 육군대장 등을 지냈다. 이후 1980년 제11대 대한민국 대통령에 취임했다. 1981년 2월 개정된 새 헌법에 따라 12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한편 지난달 10월 26일 12·12 군사 쿠데타 동지 관계인 노태우 전 대통령이 별세한 데 이어 한 달도 되지 않아 전두환 전 대통령도 세상을 떠났다.
전두환 측 장례는 가족장으로… "전방 고지에 백골로 남고싶다"
고 전두환 전 대통령 유족을 대신한 민정기 전 청와대 공보비서관이 11월 23일 전씨 장례와 관련, "장례는 가족장으로 화장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정기 전 비서관은 이날 서울 연희동 전씨 자택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같이 밝혔다. 전씨는 이날 오전 8시 45분께 자택 화장실에서 쓰러져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전씨는 "북녘 땅이 바라다 보이는 전방의 어느 고지에 백골로라도 남아 있으면서 기어이 통일의 그날을 맞고싶다"라는 유언을 자신의 회고록에 남겼다.
민정기 전 비서관은 "(전씨가) 화장 후 전방 고지에 백골로 남아있고 싶다고 했는데 장지는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건 아니다"며 "화장 후 장지가 결정될 때까지는 연희동 모실 것"이라고 했다. 국가장법상 국가장은 전·현직 대통령이거나 대통령당선인, 국가 또는 사회에 현저한 공훈을 남겨 국민의 추앙을 받는 사람에 해당할 경우 국가장을 치를 수 있지만 전씨 장례는 예외일 가능성이 크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사실상 (전씨 국가장의)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고 말했다. 민정기 전 비서관은 이날 사망 경위에 대해 "(전씨가) 갑자기 운명을 했기 때문에 어디에 신고하고 할 여유가 없었다"며 "쓰러질 당시 옆에는 이순자 여사밖에 없었고, 밖에 있는 경호팀에 연락을 했다"고 밝혔다.
민정기 전 비서관은 "(전씨를) 뵌지 열흘 정도 됐는데, 그 전주에 비해 (상태가) 또 다르더라"라며 "그때(그 전주)만 해도 실내에서 거동에 불편이 없었는데 열흘 전에는 의자에 앉았다 할 때도 부축해야 일어나고, 걸음도 부축해야 걷더라"고 말했다. 전씨 시신은 이날 중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으로 이송될 예정이다. 현재 전씨 자택에는 장남 재국 씨, 차남 재용 씨가 이순자 여사와 함께 있으며 3남 재용 씨는 미국에서 귀국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 시구하던 날 "총알 날아온다"… 경호원으로 관중 채웠다
역대 대통령 중에 가장 스포츠를 좋아한 이가 전두환 전 대통령이다. 고인은 학창 시절 복싱 글러브를 목에 걸고 다닐 정도로 복싱을 좋아했다. 축구도 꽤 즐겼는데, 포지션은 골키퍼였다. 육사 시절에는 축구부 주장을 맡았다. 스포츠에 대한 애정은 1981년 제5공화국 출범 후, 한국 스포츠 부흥으로 이어졌다. 야구, 축구, 씨름 등 각종 스포츠의 프로화를 추진했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을 개최하고, 88년 서울올림픽 유치도 해냈다. 이에 앞서 1982년 체육부를 신설했는데, 초대 장관이 최측근인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이었다.
스포츠를 순수하게 좋아했던 것만은 아니다.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컸던 국민들의 관심사를 돌리기 위해, 스포츠를 이용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프로야구 출범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고교야구 열기를 발판삼아 1982년 한국프로야구가 개막했다. 서울, 부산, 대구, 인천, 대구, 광주 등 연고제로 시작된 프로야구를 엄청난 인기를 누리면서 현재의 프로 스포츠로 자리매김했다.
1982년 3월 27일 서울 동대문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개막전 MBC 청룡과 삼성 라이온즈 경기에서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시구했다. 정장에 넥타이를 매고, 검정 구두를 신고 그라운드에 나와 공을 던졌다. 연습을 많이 해서 스트라이크존에 정확하게 공을 던졌다. 당시 관중은 3만여명에 이르렀다. 그중에 상당수가 경호원이었다. 1980년 광주 민주화 항쟁 여파로 인해서였다. 어디선가 총알이 날아올 수도 있다는 우려에 의자가 없는 콘크리트 바닥에 관중을 전부 앉으라고 했다. 시구할 때 앞에 서 있던 심판도 경호원이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시구만 하고 경기를 다 보지 않았다고 한다.
야구보다 축구를 더 좋아했다. 특히 83년 6월 멕시코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서 4강 신화를 이룬 박종환 전 대표팀 감독과 인연이 깊다. 박종환 전 감독은 "청와대로 들어갈 때는 검문도 받지 않았고, 명절 때마다 200만원씩 보내줬다"고 전했다. 직접 축구를 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은 축구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자랑했다고 한다. 박종환 전 감독이 국가대표 감독이 돼 A매치를 치를 때, 전두환 씨가 중계방송을 보다가 휴식시간에 전화를 걸어 작전 지시를 내렸다는 일화도 있다.
1983년 5월 8일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프로축구 첫 경기 시축자도 전두환 전 대통령이었다. 프로스포츠 열풍을 타고 전통문화인 씨름도 1983년 프로화했다. 당시 씨름 TV 중계 시청률은 최고 65%였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이만기, 이준희, 이봉걸 등 씨름 스타가 배출됐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씨름 결승 시간이 미뤄지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아시안게임, 올림픽을 유치하면서 엘리트 스포츠 발전에도 기여했다.
선수들이 훈련하는 태릉선수촌에 자주 가서 격려했고, 국제대회에서 높은 성적을 거두면 축전을 보냈다. 전두환 정권에서 대통령 축전 문화가 처음 생겼다. 배드민턴 사랑도 유별났다. 백담사에 있을 때 본격적으로 배드민턴을 시작했다. 국내에서 열리는 코리아오픈 대회 때는 열일 제쳐두고 경기장을 찾을 정도였다. 재임 기간에는 배드민턴 선수들을 청와대에 초청해 시범 경기를 지켜보고, 퇴임 후에는 연희동에서 동호인들과 배드민턴을 했다. 노년에는 골프도 꽤 좋아한 것으로 알려졌다.
故 전두환 전 대통령(1931~2021) 연보
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오전 8시40분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사망했다.
다음은 전 전 대통령의 출생에서부터 사망까지 연보.
▲1931년 1월 18일=경남 합천군 율곡면 내천리 출생
▲1951년=육군사관학교 11기 입학
▲1955년=육군 소위 임관
▲1959년=이순자 여사와 결혼(슬하에 3남 1녀 둠)
▲1961년=육사 생도들의 5·16 군사쿠데타 지지 시위 주도
▲1963년=중앙정보부 총무국 인사과장. 육군본부 인사참모부 인사과장
▲1967년=수도경비사령부 제30대대장
▲1969년=육사 11기 중 첫 대령 진급
▲1970년=육군 제9보병사단(백마부대) 29연대장으로 월남전 참전
▲1973년=육군 준장 진급
▲1976년=청와대 대통령경호실 작전차장보
▲1977년=육군소장 진급
▲1978년=육군 제1사단장. 북한 제3땅굴 발견해 ‘5·16 민족상’ 수상
▲1979년=국군 보안사령부 사령관.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으로 10·26 사태 수사. 수도권 지역 무장병력 6천명
동원 육군본부·국방부·수경사·특전사 등 점거해 정승화 계엄사령관 체포하는 등 12·12 군사반란 주도
▲1980년=전국에 비상계엄령 선포. 3김(김영삼·김종필·김대중) 가택 연금 또는 구속. 전국 대학에 휴교령. 국회 봉쇄.
계엄군과 공수특전여단 광주 투입, 5·18광주민주화운동 무력 진압.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상 임위원장.
삼청교육대 설치. 육군 대장 진급 뒤 예편. 민주공화당·신민당 등 강제해산. 대통령 간선제 및 7 년 단임제 골자로 한
8차 개헌 실행. 통일주체국민회의에 의한 간접선거로 11대 대통령 선거 당선. 대통령 취임
▲1981년=민주정의당 입당, 초대 총재로 추대. 대통령선거인단에 의한 간접선거로 제12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
대통령 취임
▲1982년=한국프로야구 창설. 국풍 81 개최
▲1983년=아웅산 테러 사건으로 공식·비공식 수행원 17명 사망
▲1984년=홍수 피해 북한에 식량지원
▲1985년= ‘남북이산가족 고향방문단 및 예술공연단’으로 첫 이산가족 상봉 성사
▲1986년=3저 호황(원유가격 하락·달러 가치의 하락·국제금리 하락)으로 무역수지 흑자 전환.
서울 아시안게임 개최
▲1987년=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 발생. 4·13 호헌조치. 이한열 열사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사망.
6월 민주항쟁 전국 확산.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표가 6·29 선언 발표해 직선제 개헌 요구 수용
▲1988년=대통령 퇴임. 백담사 첩거. 민주정의당 탈당
▲1989년=국회 ‘5공 비리 청문회’ 참석
▲1990년=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 복귀
▲1994년=5·18광주민주화운동 피해자들이 내란 및 내란목적살인 혐의로 고소
▲1995년=검찰,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며 불기소 처분. 헌법재판소, 불기소 처분 취소.
검찰,‘12·12 및 5·18특별수사본부’ 설치 후 재수사 개시. 사전구속영장 발부돼 안양교도소에 구속 수감
▲1996년=5·18 사건에서의 내란죄·내란목적살인죄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 1심에서 사형과 2259억원 추징금 선고.
항소 후 2심에서 무기징역 감형과 추징금 2205억원 선고
▲1997년=대법원 2심 선고 확정. 특별사면 후 석방
▲2003년=법원 재산 명시 명령에 ‘예금자산 29만원’ 기재. 검찰, 진돗개 2마리, TV·냉장고·피아노 등 경매 처분
▲2004년=이순자씨, 추징금 200억원 대납
▲2006년=세무 당국을 상대로 80억원대 증여세 부과 취소소송 제기
▲2013년=대검찰청, 고액 벌과금 집행팀 마련. 서울중앙지검에 전씨 미납 추징금 1672억원 집행을 위한 전담 팀 구성.
‘전두환 추징법’(공무원범죄에 관한 몰수 특별법 일부개정안) 국회 통과. 전씨 추징금 환수 시효 2020년 10월로 연장
▲2017년=회고록 출간. 조비오 신부 유족 등이 사자 명예훼손 혐의 형사고소. 광주지법 전두환 회고록
출판 · 배포금지 결정. 회고록 5·18 일부 내용 삭제 재출간
▲2018년=알츠하이머 진단 사실 공개하며 첫 공판 불출석
▲2019년=광주지법 형사재판 3차 공판, 이순자 여사와 함께 출석
▲2020년 11월 30일=사자명예훼손 혐의,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유죄판결
▲2021년 8월 9일=사자명예훼손 혐의 항소심 재판 출석
▲2021년 11월 23일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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