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년 만에 섬집아기의 고향 방문
1946년 초 시인 한인현 선생은 고향 원산의 명사십리와 비슷한 송정에서 굴 따는 아낙네를 보면서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섬집아기’라는 시를 썼다. 그해 한글날인 10월 9일에 창작동요집 『문들레』로 펴냈고, 이후 1950년 노래로 만들어져 우리 국민들의 애창 동요가 되어 지금까지도 많이 불리고 있다.
송정 죽도공원에서 ‘섬집아기 시비건립 추진위원회’ 회원들과 추진위 김시한 회장(왼쪽 네 번째), 한인현 작가의 장남 한영일 씨(왼쪽 다섯 번째)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선생은 1969년 서울에서 돌아가셨고 다음 해인 1970년 자신이 교장으로 있었던 서울 은석초등학교에 노래비가 세워졌다(해운대라이프신문 606호 기사 참조).
http://omhl.co.kr/news/view.php?idx=1856
지난달 26일 서울에서 한선생의 장남인 영일 씨가 사단법인 송정동개발위원회(위원장 최대현) 초청으로 한인현 아동문학상을 주관하는 박상재 운영위원장과 함께 송정으로 찾아왔다. 최위원장을 비롯한 개발위원회 회원들과 송정 죽도공원 앞 섬집아기 시비(詩碑) 건립 예정지를 둘러보고 섬집아기 노래를 함께 불렀다.
이어서 시비 건립에 대해 논의했다. 영일 씨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시비를 송정 주민들이 만들겠다는 말에 너무 감사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한 달여 동안 옛날 일을 더듬어보니 첫 가사의 ‘섬그늘’은 은유적 표현으로 ‘굴밭’(송정 사투리로 ‘굴바치’)이라고 하며, 어릴 때 힘든 살림에 어머니가 바다에서 채취한 미역과 굴 등으로 반찬을 해 먹었다고도 했다.
최 위원장이 그간 섬집아기가 송정에서 작사된 사실을 알게 된 과정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고, 시비 건립위원회를 만들 것을 제안해 그 자리에서 회장과 부회장 등 집행부를 선출했고 모두들 박수로 동의했다. 최 위원장은 요즘 지자체별로 무분별하게 시비 혹은 노래비를 만들었는데 작사가나 작곡가와 협의 없이 만들어 낭패를 당하고 있다며, 영일 씨가 아버지의 시비를 송정에 세우는 것을 적극 돕겠다는 확인서를 작성했다.
지난 5일 송정동 여러 단체의 주민들이 모여 ‘섬집아기 시비 건립추진위원회’(회장 김시한)를 정식 구성하고 행정관청에 보낼 공증서류를 준비했다. 먼저 장남인 영일 씨에게 요청해 한인현 씨의 가족관계확인서를 뗐고, ‘한인현 글짓기 장학상 및 문학상’ 시상을 매년 하고 있는 한인현기념사업회가 ㈔송정동개발위원회의 시비 건립 및 부대사업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확약서를 보내왔다.
건립추진위원회는 ㈔송정동개발위원회가 주최하고 한인현기념사업회와 송정동마을기금관리위원회가 후원하기로 했다. 가까운 시일 내에 마을기금관리위원회에서 회의를 열어 일단 5천만 원의 예산을 조성해 건립 비용으로 쓰기로 했다고 한다. 이후 송정동 주민자치위원회 및 각 단체와 섬집아기 시비 건립을 바라는 분들의 동참으로 추진 단체와 위원을 모집하기로 했다. 이후 해운대구청에 공증 받은 서류를 제출해 시비 건립 예정지에 대한 구청의 장소 대여 등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한다.
/ 신병륜 편집위원 (섬집아기 시비건립 최초 제안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