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20주년을 맞이하며.
지금도 아찔합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그러니까 2002년 1월5일은 우리의 결혼예배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당일 결혼을 위하여 보성 친가에서 광주로 오는 고속도로에서 당신은 큰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아직 그 흔적이 있다고 당신이 말했던 것처럼 매우 큰 사고였지요. 목격하지 못했으면서도 당신의 전하는 소식만으로도 얼마나 큰 사고였는지 짐작이 되었습니다. 그날 만약 당신이 그 사고로 하늘에 갔더라면 과연 내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당신은 서른 다섯, 나는 서른 넷, 정말 막차를 탄 결혼이었습니다. 지금에 와 생각해보면 당신도 결혼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고, 나 또한 결혼을 하기에는 늦된 사람이었지 싶습니다. 인격적인 미성숙함으로 가득차지 않았나, 지금에 와 생각하면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나는 성공이라는 욕망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욕망을 신앙적 가치로 잘 포장할 줄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만약 내가 나의 성공 욕망을 실현할만한 능력이 있었더라면 지금도 여전히 미성숙함 속에 있지 않을까 짐작해 봅니다. 그러나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아 나는 여러 번 실패를 경험해야 했고, 실패의 밑바닥에서 나의 찌질함과 한계, 비열함을 발견했습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이상적인 나의 겉모습을 벗고 주님을 만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가장 처절한 자리에서 주님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이때로부터 나의 배우자관이 달라졌습니다. 눈에 띄는 사람보다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이 좋았습니다. 당신은 내가 이렇게 전환의 시기를 건너서고야 만난 사람입니다. 물론 이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한번도 나의 시야에 들어온 적은 없었습니다. 당신의 매력은 아무 것도 아닌 자신을 인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허황된 것을 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드러나지 않지만 어느 한 곳에서 반드시 자신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 시야가 바뀌기 전까지 당신의 이런 장점들은 내 눈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인생 선배들은 당신을 알아보고 있더군요. 내가 알고 있던 많은 사람들로부터 좋은 형제라는 평을 들었습니다.
본격적으로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던 중에 "감사하라"는 마음이 주어졌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사인이라 여겼습니다. 당신이 나의 반려자라는 것에 대한. 어찌 생각해 보면 결혼을 해야만 했던 당시의 상황에서 아전인수격 해석이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이것이 결혼에 대한 사인인지, 비혼에 대한 사인인지 구별하지도 않고, 내가 편리한대로 해석한 것인가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당신과의 결혼을 후회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내가 지금까지 비혼자라면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까 라는 궁금증은 생깁니다.
하지만 여튼 결혼을 결정하고서부터 예상치 못한 감정 경험을 했는데, 이후로부터 그냥 당신이 좋아졌다는 것입니다. 얼굴에 잔뜩 포진한 여드름 모공 구멍도 가려지고,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습니다. 신기한 일이죠. 사람에 대한 감정이 이렇게 순식간에 확 바꿔질 수도 있다는 사실이.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마음인가 했습니다. 물론 그 당시 나는 퇴로가 없었어요. 당신을 선택하던지 비혼을 선택하던지 둘 중에 하나였으니까. 그러나 비혼을 선택할 용기는 없었기 때문에, 결혼의 결정이 안도감을 주면서 이런 감정 변화를 일으키지 않았나 싶습니다.
나는 우리의 결혼을 이렇게 시작했어요. 좋은 마음과 감사한 마음, 기적적인 일이라 여기는....그러나 사람에게는 지나친 기대를 하지 않는 맘으로. "사람은 사랑할 대상이지 의지할 대상이 아니다", 이것은 나의 일관성 있는 관계의 모토입니다. "충분히 사랑하고 기대하지 말자"라는 것이죠. 하지만 어떻게 이것이 말처럼 쉽게 되겠습니까?
당신과 나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이 다름을 너무나 뼈져리게 알아버린 날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일주일을 시름에 갇혀 있었습니다. 목감 집으로 이사해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입니다. 잦은 외국 출장과 장기 출장으로 독박육아에 홀로 양육의 짐을 짊어졌던 나의 수고, 당신이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는 동안 내가 이 가정을 지키기 위해, 또 아이들을 잘 키우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어떤 일들을 극복하며 살아야 했는지 하소연 했을 때, 당신은 내가 기대했던 말과 전혀 반대의 말로 나를 실망시켰습니다. 그러나 사실 나의 실망은 오로지 당신의 잘못이라기보다는 당신과 나의 삶의 방식의 다름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 다름이 많이 슬펐습니다. 영원히 만나지 못하겠구나, 마지막까지 평행선이겠구나,라는 자각은 결혼 이후 대부분을 아내로서, 엄마로서의 정체성으로 살아온 나의 존재감을 박탈당한 느낌이었습니다. 당신은 여자가 되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종류의 무존재감이 어떤 것인지 모를 수도 있겠습니다. 당신의 입장에서 예를 든다면 회사에서 하릴없이 월급만 받아먹으며 눈치 보는 사원이랄까? 가정이라는 공간이 온통 나를 차지하고 있는데, 그 공간에서 유일한 존재, 남편의 격려와 지지를 받지 못한다는 건 참 슬픈 일입니다.
그러나 한편 이 슬픔은 오롯이 나의 몫이기도 합니다. 나의 결핍으로 인한 슬픔이기도 하니까요. 끊임없이 나의 결핍의 잣대로 당신의 방식을 재단하고 판단했던 나의 미성숙함이 원인이기도 합니다. 결핍을 나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나와 마주하는 일이 필요했습니다. 당신의 기질은 나와 많이 다릅니다. 당신의 기질을 나의 결핍으로 해석하는 안경을 벗기까지 내적 싸움이 있었습니다. 훈련이 필요한 과정입니다.
당신도 기억할 것입니다. 밤새 내내 내가 꺼이꺼이 통곡을 하며 울었던 그 날을. 슬퍼하고 슬퍼하고 슬퍼하다 그 슬픔의 끝에서야 나와 다른 당신을 받아들였습니다.
다음은 내가 기록해둔 메모입니다.
"시부모님을 섬기는 일에 대해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를 들었다. 남편의 진의는 나는 너에게 기대가 컸다,라는 뜻이었다.
지금껏 기념일이랍시고 선물을 받아본 기억이 없다. 남편은 궁한 이들에게는 씀씀이가 넉넉해도 자신에게는 인색하다. 그에게 아내, 나는 또 하나의 자신이구나,라고 해석이 되었다. 마을 교육 공동체를 열심히 운영하는 나에게 돈도 안되는 일을 뭘 그리 열심히 하냐고 타박한다. 그 때는 발끈했지만 내 아내가 고생하니 안쓰럽다,는 진의의 다른 표현이었음을 안다.
아들들을 죽을 똥 살 똥 키웠지만 수고했다, 고맙다라는 인정을 받아본 적이 없다. 남편은 본인이 죽을 똥 살 똥 그 더욱 사막의 나라에서 6개월, 4개월, 2개월을 지내고 와도 고생했다, 힘들었다, 불평이나 하소연을 한 적이 없다. 감당해야 하는 일은 누구에게 인정받거나 지지받을 필요 없이 묵묵하게 해내는 게 맞는 사람이다. 그러니 독박육아, 양육을 맡은 아내에게 뭐 그리 새삼스레 고마워할 일인가? 부부로 만난 순간부터 그렇게 서로 제 할 일을 하며 살 것이라, 나는 내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묵묵하게 해내겠다는 의지의 다른 표현이었음을.......
나의 결핍이 지워진 그 곳, 잘못된 해석이 제거된 곳이라야만 상대의 진의가 보이는 것이다. 사랑은 존재의 인정과 격려에서 느낄 수도 있겠지만 진짜 큰 사랑이 느껴지는 지점은 결함이 받아들여지는 것이지 싶다. 그는 인정과 격려는 부족했지만 나의 결함을 받아들이는 데는 익숙했다. 특유의 참을성으로. 하여 나는 나의 왜곡되기 쉬운 해석을 버리는 연습을 한다. 나의 안경으로가 아닌 그의 타고난 모습을 날 것으로 해석하는 연습, 이해의 연습.
살다보면 본성을 따른 그의 사랑법이 나의 필요를 채우지 않아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를 사랑하겠는가,라는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 그 질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를 사랑하겠노라"고 답할 수 있다면 그 때가 터닝 포인트. 내가 그대가 되고 그대가 내가 되는 '나와 너'가 '우리'가 되는 지점이지 싶다."
지금과 비교하면 30대 풋풋했던 신혼이었습니다. 당신이나 나나 살아내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서로를 품어내느라 애도 많았습니다. 이제 지천명을 넘어서는 50대의 중반에서 우리는 20년 살아온 세월만큼 20년 더 살아갈지, 아니면 더 오래 30년을 살아가게 될지 모를 일입니다. 남자와 여자로 만났지만 이제는 그야말로 동지와 반려자로 살아갈 날들입니다.
우리의 질곡들이 다른 이들을 조금이나마 도울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우리 가정이 예배의 처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먹고 살아가는 일도 중요하나 가치롭게 살아가는 일도 귀하다는 걸 명심하고 싶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는 넓은 길 보다는 주님을 따르는 좁은 길을 함께 걷고 싶습니다. 건강하게 살아요. 그리고 정말 당신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책임이 주는 불안으로 현재를 저당 잡히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고 싶어도 못할 때는 금방 오고 맙니다. 할 수 있을 때,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그런 인생으로 살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