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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통 떡
향토성과 떡
삼면이 바다로 둘러 싸여 있는 우리나라는 남북으로 길게 뻗은 지형적인 특징과 사계절의 구분이 뚜렷하고 지역적으로 기후의 차이가 현저하여 각 고장마다 특색 있는 식품재료가 생산된다. 이러한 각 지역의 식품재료는 그 지방의 풍미를 대표하는 독특한 음식과 별미 떡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서울 · 경기도
쑥설기
떡의 종류가 많고 모양도 멋을 부려 화려하다. 특징 있는 떡으로는 흰 절편에 노랑 · 파랑 · 분홍물을 들인 색떡, 여주산병, 배피떡, 개성 우메기와 개성경단, 웃지지, 각색경단, 수수오가리, 설기(쑥버무리), 쑥갠떡, 밀범벅떡, 백령도김치떡, 개성조랭이떡, 강화근대떡, 개떡 등이 있다.
충청도
모듬백이
양반과 서민의 떡이 구분되어 있으며 해장떡, 모듬백이(쇠머리떡), 약편, 곤떡, 볍씨쑥버무리, 막편, 수수팥떡, 호박떡, 꽃난병, 호박송편, 장떡, 감자떡, 도토리떡, 칡개떡, 햇보리개떡 등이 있었으나, 요즘은 종류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강원도
감자녹말송편
산과 바다가 공존하는 지역으로, 재료도 다양하여 떡의 종류도 많았다. 영동과 영서지방의 떡은 조금씩 차이가 있다. 대표적인 떡은 감자시루떡, 감자떡, 감자녹말송편, 감자경단, 언감자떡, 감자부침, 감자투생이, 감자몽생이 등 감자로 만든 떡이 주류를 이루지만, 댑싸리떡, 메싹떡, 옥수수설기, 옥수수보리개떡, 옥수수칡잎떡, 옥수수시루떡, 팥소흑임자, 율무송편, 방울증편, 메밀총떡, 도토리송편, 무송편, 칡송편, 호박시루떡, 호박단자, 구름떡, 각색차조인절미, 수리취개피떡 등도 알려졌다.
전라도
매화꽃송편
곡식이 가장 많이 생산되어 음식 못지 않게 떡이 사치스럽고 맛 또한 각별스럽다. 보리떡, 밀기울떡, 구기자약떡, 고치떡, 콩대기떡, 웃지지, 차조기떡, 섭전, 주악, 감시리떡, 감고지떡, 감단자, 감인절미, 전주경단, 나복병, 수리취떡, 수리취개떡, 고치떡, 호박고지차시루편, 호박메시리떡, 풋호박떡, 복령떡, 송피떡, 삘기로 만든 삐삐떡(삘기송편), 해남경단, 매화꽃송편, 모시송편, 나복병 등이 널리 알려져 있으며, 특히 깨떡(깨시루떡)이 유명하다.
경상도
결명자찹쌀부꾸미
각 고장에 따라 떡이 달랐는데, 상주와 문경에는 밤, 대추, 감으로 만든 설기떡을 많이 해 먹었고, 경주의 제사떡이 유명하였다. 제사편으로 본편과 잔편을 포함하여 열다섯 종류의 떡을 고인다.
본편은 물을 내려서 각색고물, 거피팥고물, 녹두고물을 얹어 찌는 점이 재래의 편이나 떡과 같다. 잔편으로는 주악, 단자류, 잡과편 등 여러 가지 떡을 이용하는데 모시잎을 섞어 만든 모시잎송편은 전라도와 이 고장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 밖에 밀비지, 만경떡, 감단자, 망개떡, 송편꿀떡, 감자송편, 거창송편, 잡과병, 밀양경단, 유자잎인절미, 도토리찰시루떡, 호박범벅, 곶감호박오가리찰편, 곶감화전, 차노치, 결명자찹쌀부꾸미, 주걱떡, 쑥굴레, 쑥떡, 칡떡, 잣구리, 부편 등 특색 있는 떡 들이다.
제주도
오메기떡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이라 쌀보다 잡곡이 흔하다. 떡의 재료도 메밀, 조, 보리, 고구마가 많이 쓰였다. 다른 지방에 비해 떡 종류가 적고 쌀을 이용한 떡은 귀하게 여겨 제사 때만 썼다. 대표적인 떡으로 오메기떡, 도돔떡, 침떡(좁쌀시루떡), 차좁쌀떡, 속떡(쑥떡), 돌레떡(경단), 빙떡, 삐대기떡(감게떡), 조침떡, 감제침떡, 은절미, 솔변, 달떡, 절변, 상애떡(상화병), 중괴, 약괴, 우찍, 백시리, 조쌀시리 등이 있다.
황해도
연안인절미
전라도와 비슷한 지형적 특징으로 조를 떡의 재료로 많이 쓰며 잔치 메시루떡, 무설기떡, 오쟁이떡, 큰송편을 갖고 있으며, 연안인절미, 혼인절편, 수리취인절미, 징편(증편), 꿀물경단, 찹쌀부치기, 잡곡부치기, 좁쌀떡, 수레비떡, 장떡, 우기, 수수무살이, 닭알떡 등이 주로 즐겨먹는 떡이다.
평안도
놋티(놋치)
다른 지방에 비해 매우 큼직하고 소담스럽게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조개송편, 찰부꾸미, 놋티(놋치), 송기절편, 송기개피떡, 골미떡, 꼬장떡, 뽕떡, 무지개떡, 감자가루떡, 니도래미, 강냉이골무떡 등이 대표적인 떡이다.
함경도
찰떡인절미
우리나라에서 기온이 가장 낮은 고장으로 콩, 조, 강냉이, 수수, 피의 품질이 좋아 이들을 이용해 떡을 만든다. 모양은 떡에 맵시를 부리는 일이 드물어 소박하고 구수하다. 찰떡인절미, 기장인절미, 달떡, 오그랑떡, 찹쌀구비(구이), 구절떡, 감자찰떡, 가랍떡, 콩떡, 깻잎떡, 귀리절편, 괴명떡, 꼬장떡(곱장떡), 언감자떡이 함경도를 대표하는 떡이다.
통과의례와 떡
통과의례란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필연적으로 거치게 되는 몇 차례의 중요한 의례를 말한다. 이러한 중요한 의례에는 사람이 평생을 살아 가면서 꼭 겪고 넘어가야 하는 고비를 잘 넘기기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음식을 차려서 이 날을 기념했다.
1) 삼신상과 삼칠일
산모가 아기를 낳으려는 기미가 보이기 시작하면 윗목에 아기를 보호해 주는 삼신에게 안산하도록 기원하는 삼신상을 마련한다. 즉, 소반가운데 쌀을 수북이 쌓아놓고 그 위에 장곽을 걸치고 정화수 세 그릇을 담아 놓는다. 아기가 태어나서 스무 하루가 되는 삼칠일(三七日)이 되면 그동안 대문에 달아 놓았던 금줄을 걷고 외부인의 출입을 허용하고 산실의 모든 금기를 풀고 아이에게도 제대로 옷을 갖추어 입혔다. 이때 떡으로는 아무 것도 넣지 않은 순백색의 백설기를 준비하는데 이는 아이와 산모를 속세와 구별하여 산신(産神)의 보호 아래 둔다는 신성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래서 이때의 백설기는 집안에 모인 가족이나 가까운 이웃끼리만 나누어 먹고 밖으로는 내보내지 않았다.
2) 백일
아기가 출생한지 백일이 되는 백일에는 지금까지 아이가 잘 자라준 것을 축하하고 앞으로도 잘 자라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때에 이르러서 비로소 출산한 가정에서는 조심하던 행동의 자유를 얻어 음식을 이웃과 나누었다. 특히, 백일 떡은 백집에 나누어 먹어야 아이가 무병장수하고 복을 받는다는 속설이 있어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이웃과 나누었다. 떡을 받은 집에서는 빈 그릇을 그대로 돌려 보내지 않고 무명실이나 쌀을 담아 보내는 미풍양속이 있는데 이는 아기의 장수와 건강을 기원하는 의미이다. 이때 떡으로는 백설기, 붉은찰수수경단, 오색송편을 준비한다.
백설기에는 아이가 희고 순진무구하게 자라라는 기원이 담겨져 있고, 붉은찰수수경단에는 아이의 생애에 있어 액을 미리 막아 준다는 의미로 귀신이 피한다는 붉은색을 썼다. 그래서 아이가 열 살이 될 때까지 생일마다 붉은찰수수경단을 만들어 먹었다. 오색송편은 아주 작고 예쁘게 만드는데 오행(五行), 오덕(五德), 오미(五味)와 마찬가지로 만물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라는 의미가 있다. 이때 송편을 두 종류로 만드는데 하나는 속을 꽉 차게 만든다. 이는 학문이 꽉 차서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뜻이고 또 하나는 속이 비게 만드는데 이는 뜻이나 마음을 넓게 가지고 살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
3) 돌
아이가 태어난 지 만 일년이 되는 첫돌에는 아이의 장수복록을 기원하며 찬란한 의복을 만들어 입히고 돌상을 잘 차린다. 이때의 떡으로는 인절미, 오색송편, 수수팥경단의 세 종류 외에도 백설기가 오른다. 백설기에는 신성함과 정결함을, 인절미는 끈기 있는 사람이 되라는 기원이, 오색송편은 우주만물과의 조화를, 수수경단에는 악귀를 물리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4) 책례(冊禮)
책례(冊禮)는 아이가 서당에서 어려운 책을 한 권씩 뗄 때마다 이를 축하하고 앞으로 더욱 학문에 정진하라는 격려의 의미로 행하는 의례이다. 이때는 작은 모양의 속이 꽉 찬 오색송편과 속을 비운 송편을 주로 만들었다. 속이 찬 송편은 학문적 성장을 촉구하는 뜻이 담겨 있고 속을 비운 송편은 마음과 뜻을 넓게 가져 바른 인성을 갖추기를 기원하는 겸손의 의미를 담고 있다.
5) 성년례(成年禮)
성년례(成年禮)는 아이가 자라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는 어른으로부터 독립하여 자기의 삶은 자기가 갈무리하라는 책임과 의무를 일깨워 주는 의례이다. 이날은 각종 떡과 약식을 포함한 많은 음식으로 성인이 된 것을 축하하였다.
6) 혼례(婚禮)
혼례(婚禮)는 이전까지 남남으로 살던 남녀가 한 몸을 이루어 부부가 되기 위해 올리는 성대한 의식이며 남녀가 부부의 인연을 맺는 일생 일대의 가장 중요한 행사 중 하나이다. 혼례에는 사례(四禮)라 하여 의혼(議婚), 납채(納采), 납폐(納幣), 친영(親迎)의 절차가 있는데, 여기에다 문명(問名), 납길(納吉)을 더하여 육례의 여섯 단계로 보기도 한다. 이 중 납채는 신랑집에서 신부집에 함을 보내는 절차로 납폐일에 신부집에서는 함이 들어올 시간에 맞추어 북쪽으로 향한 곳에 돗자리를 깐 다음 상을 놓는다. 그리고 상 위에 붉은색 보를 덮은 뒤 떡시루를 얹어 기다리다가 함이 들어오면 함을 시루 위에 놓고 북향재배(北向再拜)를 한 후 함을 연다. 바로 이때 사용되는 떡이 봉치떡이다. 봉치떡은 찹쌀 석 되, 팥 한 되로 찹쌀시루떡을 두 켜만 안치되 위 켠 중앙에 밤 한 개와 대추 일곱 개를 방사형으로 올린다. 봉치떡을 찹쌀로 하는 것은 부부의 금실이 찰떡처럼 화목하게 되라는 뜻이며, 떡을 두 켜로 올리는 것은 부부 한 쌍을 상징하는 것이다. 또 붉은팥 고물은 화를 피하는 벽화(僻禍)를, 밤 한 개는 딸을 대추 일곱 개는 아들 칠형제를 상징하여 자손이 번창하기를 기원하는 뜻이 담겨 있다.
달떡과 색떡 또한 혼례식에 반드시 사용되는 떡으로 혼례 의례상인 동뢰상(同牢床)에 올린다. 둥글게 빚은 흰절편인 달떡은 보름달처럼 밝게 비추고 둥글게 채우며 잘 살도록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달떡은 동뢰상 두 번째 줄에 스물 한 개씩 두 그릇을 올린다. 여러 가지 색물을 들여 만든 절편인 색편으로는 한 쌍의 부부를 의미하는 암수 닭 모양 또는 용 한 쌍을 만드는데 수탉(숫용)은 동쪽에, 암탉(암용)은 서쪽에 각각 배설하였다.
혼례 때에는 초례(醮禮)를 행한 신랑에게 신부집에서, 현구고례(見舅姑禮)를 행한 신부에게는 시부모가 각각 큰상을 내리는데, 여기에도 역시 여러 가지 떡이 오르게 된다. 신부집에서 신랑집에 보내는 이바지 음식으로도 떡을 많이 하였는데, 이때는 대개 인절미와 절편으로 만들어 동구리에 푸짐하게 담아 보냈다.
7) 회갑
나이 예순한 살이 되는 생일에는 회갑이라 하여 자손들이 연회를 베풀어 드리게 된다. 회갑(回甲)이라는 말은 곧 자기가 태어난 해로 돌아왔다는 뜻으로 '주년(周年)' 혹은 '환갑(還甲)'이라 하기도 하며, 화(華)자를 풀어 보면 열 십(十)자가 여섯에 일(一)이 하나 남으므로 숫자로 '예순하나'가 된다고 하여 '화갑(華甲)'이라 하기도 한다.
회갑연 때는 큰상을 차리는데 음식을 높이 고이므로 '고배상(高排床)' 또는 바라보는 상이라 하여 '망상(望床)'이라고도 한다. 혼례나 희수연(稀壽宴)에도 큰상을 차리는데, 한국의 상차림 중에서 가장 화려하고 성대한 것이다. 음식으로는 대개 과정류(果飣類), 생과실(生果實), 떡, 전과류(煎果類), 숙육편육류(熟肉片肉類), 전유어류(煎油魚類), 건어물류[乾魚物類, 육포류(肉脯類), 어포류(魚脯類)], 기타의 음식을 30㎝에서 60㎝ 정도까지 원통형으로 고이고 색을 맞추어 두세 줄로 배열한다.
떡은 갖은편이라 하여 백편, 꿀편, 승검초편을 만드는데, 만들어진 편은 직사각형으로 크게 썰어 네모진 편틀에 차곡차곡 높이 괸 후 화전이나 주악, 단자 등 웃기를 얹어 아름답게 장식한다. 또 인절미 등도 층층이 높이 괴어 주악, 부꾸미, 단자 등의 웃기를 얹는다. 예전에는 색떡으로 나무에 꽃이 핀 모양의 모조화를 만들어 장식하기도 하였다. 회갑연에서 사용했던 떡은 잔치가 끝난 후 서로 나누어 먹는다.
8) 제례와 떡
유식(儒式), 불식(佛式), 무식(巫式) 등 모든 제사에서 행해지는 젯상차림은 고대로부터 전래한 것을 바탕으로 하면서 고대부터 현재까지 거쳐오는 동안 알게 모르게 다른 문화와 결합된 상태로 변모해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떡은 젯상의 가장 중요한 물목 중의 하나였던 만큼 제례의 형식과 내용에 따라 그 종류와 모양새가 다 달랐다. 유교에서는 제례는 보통 자손들이 고인을 추모하며 올리는 의식이다. 이때도 떡은 중요한 음식의 하나로 녹두고물편, 꿀편, 거피팥고물편, 흑임자고물편 등 편류로 준비한다. 제사 당일 새벽에 정성스럽게 만들어낸 떡은 여러 개 포개어 고이고 위에 주악이나 단자를 웃기로 올린다.
떡의 역사
나진초도패총의 시루
(1) 상고시대(上古時代)
우리 민족은 언제부터 떡을 먹었을까? 우리나라의 떡은 삼국(三國 : 고구려, 신라, 백제)이 정립되기 이전에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추론이 지배적이다. 청동기시대의 유적인 나진초도패총에서 양쪽에 손잡이가 달리고 바닥에 구멍이 여러 개 난 시루가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갈판과 갈돌
이러한 추론을 뒷받침하는 사실로 우선 삼국시대 이전에 이미 쌀을 비롯한 피 · 기장 · 조 · 수수와 같은 곡물이 생산되고 있었고, 신석기시대의 유적지인 황해도 봉산 지탑리 유적에서 곡물의 껍질을 벗기거나 가루로 빻는데 쓰는 원시적 도구인 갈판과 갈돌이 발견되었다. 이로 미루어 보아 우리 민족은 일찌감치 삼국시대 이전부터 곡물을 가루로 만들어 시루에 찐 음식을 만들어 먹었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다.
빗살무늬 토기
따라서 우리나라의 떡은 시루의 역사와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으며, 아울러 곡물의 가루로 찐 시루떡이나 쌀을 찐 다음 절구에 쳐서 만든 인절미, 절편 등의 도병류가 상용되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우리 민족의 주된 먹거리의 조리형태를 상용도구와 연관지어 볼 때 죽이 먼저였으며 찐떡, 찐밥, 그리고 밥의 순서로 발달되었다고 본다. 이는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 토기에 이어 청동기시대의 시루 및 민무늬 토기가 사용되었고, 솥은 청동기, 초기 철기시대를 거치면서 사용되기 시작한 조리기구이기 때문이다.
민무늬 토기
한편 중국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 B.C. 480-222)의 문헌인 《주례(主禮)》를 보면 '자(瓷)'와 '분자(粉瓷)'라고 하여 곡물을 쪄서 문드러지게 치는 떡과 친 떡에 콩가루를 묻힌 떡을 소개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중국과 접경을 이루고 있으므로 당시의 떡은 그들의 떡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안악 제3호 고분벽화(부엌)
(2) 삼국 및 통일신라시대
권농시책과 함께 본격적인 농경시대가 전개되면서 쌀을 중심으로 한 곡물의 생산량이 증대되어 쌀 외의 곡물을 이용한 떡도 다양해졌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고구려 시대 무덤인 황해도 안악의 제3호 고분 벽화에는 시루에 무엇인가를 찌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한 아낙이 오른손에 큰 주걱을 든 채 왼손의 젓가락으로 떡을 찔러서 잘 익었는지 알아보는 듯한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와 더불어 삼국시대의 다른 여러 고분에서도 시루가 출토되기도 했고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의 문헌에도 떡에 관한 이야기가 많아 당시의 식생활에서 떡이 차지했던 비중을 짐작하게 한다.
《삼국사기(三國史記)》중 <신라본기>에 유리왕 원년(298) 왕자인 유리(儒理)와 탈해(脫解)의 왕위계승과 관련된 기록이 있는데, "탈해가 유리에게 왕위는 용렬한 삶이 감당할 바 못되며, 듣건대 성스럽고 지혜로운 사람은 이[치(齒)]가 많다고 하니 시험을 하여 결정하고자 하여 두 사람이 떡을 깨물어 본 결과 유리의 치아 수가 더 많아 왕위에 올랐다."고 하였다.
따라서 당시의 떡이 어떤 종류의 것이었는지 밝혀진 것이 없으나 깨물어서 잇자국이 선명하게 날 정도의 떡이라면 흰떡이나 인절미, 절편류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또 《삼국사기(三國史記)》중 <열전(列傳) 백결선생(百結先生)조>에 의하면 세모에 이웃에서 떡을 찧느라 방아소리가 들리자 가난하여 떡을 치지 못하는 아내의 안타까운 마음을 달래주기 위하여 거문고로 떡방아 소리를 내었다고 한다. 여기서 백결선생이 거문고로 떡방아 소리를 내었다고 한 것은 떡메로 떡을 치는 소리인 바, 흰떡이나 인절미와 같은 절편류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밖에 《삼국유사(三國遺事)》중 <가락국기(駕洛國記)>에 제향을 모실 때의 차림음식이 기록되어 있는데, "조정의 뜻을 받들어 세시마다 술, 감주, 떡, 밥, 차, 과실 등 여러 가지를 갖추어 제사를 지냈다"고 하였다. 이러한 사실들로 미루어 떡은 당시에 제사음식으로도 쓰였음을 알 수 있다. 비슷한 시기에 발해 사람들도 시루떡을 해 먹었음이 《영고탑기략(寧古搭紀略)》 <발해국지장편(渤海國志張篇)> 권17 식화고(食貨考)에 언급되어 있다.
(3) 고려시대
고려 초기에는 권농정책에 힘을 기울인 결과 곡물의 생산이 크게 늘어나 떡, 죽, 밥 등의 곡물 중심의 음식이 더욱 발달되었다. 또한 삼국시대에 전래된 불교는 고려시대에 이르러 최고의 번성기를 맞게 된다. 육식을 멀리하고 특히 차를 즐기는 음다풍속의 유행은 과정류와 함께 떡이 더욱 발전하는 계기를 만들어 이 시기에는 떡의 종류와 조리법이 매우 다양해진다.
《해동역사(海東繹史), 1765년》에 고려사람들이 밤설기떡인 율고(律糕)를 잘 만든다고 칭송한 중국인의 견문이 소개되고 있으며, 지금으로부터 1,500여 년 전 원(元)의 기록인 《거가필용(居家必用)》에도 '고려율고'라는 우리의 떡을 소개하고 있다.
또한 이수광의 《지봉유설, 1613》에 <송사(宋史)>를 인용하여 기록하기를 "고려에서는 상사일(上巳日, 음력 3월 3일)에 청애병(靑艾餅, 쑥떡)을 으뜸가는 음식으로 삼았다"고 한 것으로 보아, 이 당시에도 쌀가루에 쑥을 섞어 찐 쑥설기가 보편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 말기에 이르러서는 단자류와 전병(煎餠) 등 다양한 종류의 떡이 등장하였다. 고려 공양왕 때 목은(牧隱) 이색의 저서 《목은집(牧隱潗)》에 "유두일에는 수단(水團)을 만들었고, 찰수수로 전병을 부쳐 팥소를 싸서 만든 차전병이 매우 맛이 좋았다"고 하는 기록과 함께 점서(粘黍)라고 하는 찰기장으로 만든 송편도 등장한다.
이밖에 기주떡의 일종인 상화떡[상화병(霜花餅)]이 등장하는데, 상화떡[상화병(霜花餅)]은 밀가루를 발효시켜 팥소를 넣어 만든 것이 오늘날의 증편(蒸餅)과는 다르다. 《고려가요》에 "쌍화점에 쌍화 사러 가고 시딘/회회(回回)아비 내 손모글 주여이다/이 말씀이 이 점(店) 밖을 나명들명/다로러거더러죠고맛감 삿기 광대 네 말이라 흐리라"고 하였는바, 그 내용인 즉 "쌍화점에 갔더니 회교도인이 내 손목을 쥡디다. 이 소문이 상점 밖에 퍼지면 조그마한 새끼 광대(廣大) 네가 퍼뜨린 것 인 줄 알리라"하는 말이다.
사실 이 노래는 고려의 수도인 개성 부근에 유행되던 속요로서, 당시 고려에 와 있었던 아라비아 상인과 고려 여인과의 관계를 노래한 것이나, 그 내용에 있어 쌍화점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이미 당시에도 떡이 상품화되어 일반에 널리 보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
(4) 조선시대
전반적으로 농업기술과 음식의 조리 및 가공기술이 발달하여 식생활 문화가 향상되었고, 국시(國示)로 내걸었던 유교가 사회 깊숙이 뿌리를 내리면서 관혼상제 등의 의례와 세시행사가 관습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으며, 조과류와 함께 다양한 떡이 전통음식으로서 등장하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떡은 혼례 · 빈례 · 제례 등 각종 행사와 대 · 소 연회에 필수적인 음식으로 자리잡았으며, 이 같은 습속은 지금까지도 전통과 관습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초기의 단순하게 곡물가루를 쪄서 익혀 만드는 방법에서 벗어나 점차 다른 곡물을 배합하거나 부재료로 쓰는 소와 고물의 재료로 꽃이나 열매 · 뿌리 · 향신료를 이용하게 되었던 것이다.
음식디미방
즉 곡류는 물론이고 채소 · 과일 · 야생초 · 한약재 · 해조류 등을 주재료로 이용하였으며, 감미료로 조청 · 꿀 · 설탕 · 엿기름 등이 소와 고물로는 참깨 · 팥 · 밤 · 대추 · 계피 등이 이용되었으며, 치자 · 수리취 · 승검초 · 송기 · 쑥 · 연지 · 오미자 등이 착색소로 이용되면서 떡은 한층 화려해지고 모양도 다양해졌으며 맛 또한 독특해졌다.
조선시대의 떡을 기록한 문헌으로 《도문대작(屠門大爵), 1611》을 비롯하여 여러 종류의 다양한 조리서 즉 《음식디미방》 · 《음식보》 · 《증보산림경제》 · 《규합총서》 · 《임원십육지》 · 《동국세시기》 · 《음식방문》 · 《시의전서》 · 《부인필지》 · 《음식 만드는 법》 · 《군학회동》 · 《옹희잡지》 · 《주방문》 · 《술 빚는 법》 · 《요록》 ·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 · 《조선요리제법》 · 《시의방》 · 《조선세시기》 · 《간편조선요리제법》 · 《조선요리》 · 《우리나라 음식 만드는 법》 · 《이조궁중음식연회고》 · 《규곤요람》 · 《조선상식》 · 《성호사설》 · 《열양세시기》 · 《음식법》 등이 발간되어 떡 등의 음식 조리기술이 크게 발달하게 되었다.
음식디미방(본문 중)
조선시대의 떡을 만드는 기술이 얼마나 발달하였던지, 《규합총서(閨閤叢書), 1815》에 '석탄병(惜呑餠)'의 유래에 대해 적고 있는데, "맛이 차마 삼키기 안타까운 고로 석탄병이라 한다"고 소개하고 있다. 석탄병은 감설기떡으로 멥쌀가루에 감가루 · 설탕 · 밤 · 대추 · 잣 · 꿀 · 녹두 · 수시(水枾) · 계피 · 귤병을 섞어 고물을 얹어 찐 시루떡이다.
떡은 궁중과 반가를 중심으로 더욱 사치스럽게 발전하여 조선시대 음식관련 조리서에 등장하는 떡의 종류만 해도 무려 198가지에 이르고, 떡을 만드는 데 사용된 재료의 가지 수도 95가지나 된다.
특히 궁중에서는 사치의 정도가 더욱 심하여 각색메시루떡, 각색차시루떡, 각색조악, 화전, 각색단자 등을 높이 1자 8치로 높게 고여서 연회에 사용하였다고 하는 기록을 볼 수 있어 당시 조선 후기를 휩쓸었던 사치 풍조가 떡에도 반영되었음을 엿볼 수 있다.
대표적인 문헌으로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 1670》에는 석이편법 · 밤설기법 · 전화법 · 빈잡법 · 잡과법 · 상화법 · 증편법 · 섭산산법 등 8가지 떡 만드는 방법이 수록되어 있고, 《규합총서, 1815》에는 석탄병 · 백설기 · 혼돈병 · 복령조화고 · 도행병 · 무떡 · 신과병 · 토란병 · 송기떡 · 서여향병 · 석이병 · 상화 · 밤조악 · 대추조악 등 27종의 떡 이름과 만드는 법이 기록되어 있다. 근대 조리서 중 가장 많은 떡이 기록된 조리서는 1924년 출판된 《조상무쌍신식요리제법》이다. 떡의 종류 중 찌는 떡이 37종, 치는 떡이 19종, 삶는 떡이 7종, 지지는 떡이 16종, 떡 곰팡이 안 나는 법 등으로 약 80여 종에 이른다.
(5) 근대 이후
19세기 말로 접어들면서 유구한 역사와 전통성, 토착적 성격을 간직해 오던 우리나라의 떡은 한일합병과 이후 36년 간의 일제 강점기 그리고 6·25전쟁 등 급격한 사회변화와 함께 물밀듯이 밀려들어온 서양의 빵에 의해 밀려나기도 했지만 그 문화는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 지금은 생활환경의 변화로 떡은 집에서 만들기 보다는 떡집이나 떡방앗간 같은 전문업소에 맡기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다양하게 만들던 떡의 종류가 전문업소에서 주로 생산되는 몇 가지로 축소되고 있으니 여간 염려스럽지 않다.
떡의 분류
만드는 방법에 따라 시루에 쪄서 완성한 찐 떡, 찐 다음 안반이나 절구를 이용하여 쳐서 완성한 친 떡, 기름에 지져서 완성한 지진 떡, 반죽을 삶아 건져 낸 삶은 떡 등 크게 네 종류로 나눈다.
1) 찌는 떡(蒸餠)
다른 말로 시루떡이라고도 하며 우리 떡 중 가장 기본으로 그 종류가 100여 종에 이른다. 멥쌀이나 찹쌀을 물에 담갔다가 가루로 만들어 시루에 안친 뒤 김을 올려 익히며, 찌는 방법에 따라 다시 설기떡(무리떡), 켜떡, 빚는 떡, 부풀려서 찌는 떡으로 구분한다. 설기떡은 찌는 떡의 가장 기본으로, 멥쌀가루를 물이나 꿀물 또는 시럽 등으로 내리고 이를 다시 체에 쳐서 적당히 수분과 공기를 혼입시켜 균질화한 다음 시루에 사뿐히 안쳐 찐다. 쌀가루를 물이나 꿀물, 시럽 등으로 내리는 과정은 쌀의 전분이 쉽게 호화될 수 있도록 수분함량을 조절하는 것이며 쌀가루 입자가 고르게 됨으로써 고르게 증숙되고 결과적으로 설기떡에 약간의 탄력이 생겨 부드러움의 정도가 조절될 수 있다. 이때 만일 수분이 지나치거나 설탕이 많아지면 떡의 조직이 유연성을 지니지 못하고 질기게 된다.
《성호사설(星湖僿說), 1763년경》에 "지금도 설기를 숭상한다. 가례에 쓰는 '자고'가 이것이다. 또는 멥쌀가루에 습기를 준 다음, 시루에 넣어 떡이 되도록 오래 익힌다. 이것이 백설기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설기떡은 백설기를 기본으로 콩시루떡 · 무시루떡 · 잡과병 · 도행병 · 율고 · 행병 · 도병 · 국화병 · 괴엽병 · 애병 · 적증병 · 상자병 · 산삼병 · 석탄병 등이 있다.
켜떡은 멥쌀이나 찹쌀가루를 시루에 고물로 얹어가며 켜켜이 안쳐 찐 떡이다. 고사떡과 같이 켜를 두둑하게 안친 것을 속칭 '시루떡'이라 하고 백편 · 꿀편 · 신감초편과 같이 켜를 얇게 안친 것을 속칭 '편'이라 한다. 켜를 얇게 안친 여러 가지 편은 대체로 의례용이고 시루떡 · 각색떡은 어느 경우에나 찹쌀가루인 경우는 멥쌀가루보다 얇게 안쳐서 쉽게 익도록 한다. 주재료가 찹쌀이냐 멥쌀이냐에 따라 찰시루떡과 메시루떡으로 나누며, 또 고물을 얹느냐 얹지 않느냐에 따라 찰시루떡은 찰시루켜떡과 찰시루편, 메시루떡은 메시루켜떡과 메시루편으로 구분된다.
켜떡에는 물호박떡 · 상추떡 · 느티떡 · 백편 · 꿀편 · 승검초편 · 석이편 · 찰시루떡 · 두텁떡 · 깨찰편 · 녹두찰편 · 꿀찬편 등이 있다. 찌는 떡의 주재료로는 멥쌀과 찹쌀이 있고 멥쌀을 섞는 방법에 따라 팥 · 콩 · 녹두 · 깨 · 밀 · 녹말 등의 잡곡 및 두류가 이용된다. 부재료로는 밤 · 대추 · 잣 · 감 · 호두 · 복숭아 · 살구 등의 과일 및 견과류가 쓰이고, 기타 향미성 식품인 당귀잎 · 석이버섯 · 무 · 쑥 · 채소 · 후추 · 술이 이용되며 감미료로 꿀 · 설탕시럽 등이 쓰인다.
다음으로는 빚어 찌는 떡으로 송편과 같이 모양을 빚어 찐 것, 두텁떡과 같이 모양을 형성해 가면서 찐 것 등이다. 끝으로 부풀려서 찌는 떡을 들 수 있는데, 예컨대 술을 넣어 묽게 반죽하여 쪄내는 증편이나 술을 넣어 되게 반죽하여 부풀려서 찌는 상화가 여기에 속한다.
2) 치는 떡(摀餠)
치는 떡은 곡물을 탈각해서 곡립 상태나 가루 상태로 만들어서 시루에 찐 다음, 절구나 안반 등에 놓고 친 것으로 인절미류, 절편류, 단자류, 가래떡류, 개피떡류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치는 떡은 주재료에 따라 찹쌀도병과 멥쌀도병으로 구분하는데 찹쌀도병의 대표적인 떡으로는 인절미류를 들 수 있다. 표면에 묻히는 고물의 종류에 따라 이를 다시 콩인절미, 팥인절미, 깨인절미 등으로 부른다. 또한 찐 찹쌀을 안반에 놓고 칠 때 섞는 부재료에 따라 쑥인절미, 수리취인절미 등으로 불리어진다. 절편류는 떡가래를 빚어서 알맞은 크기로 잘라 떡살로 문양을 내어 만든 것을 의미한다.
또한 단자류는 찹쌀가루에 물을 주어 찌거나, 익반죽을 하여 반대기를 만들어 끓는 물에 삶아 꽈리가 일도록 쳐서 적당한 크기로 빚거나 썰어서 고물을 묻힌 떡이다. 따라서 떡에 들어가는 재료에 따라 석이단자 · 쑥단자 · 각색단자 · 도행단자 · 유자단자 · 토란단자 · 밤단자 · 건시단자 등으로 불린다. 개피떡은 절편 덩어리를 얇게 밀어 팥소를 넣고 접은 다음 반달 모양으로 찍어 공기가 들어가게 만든 떡으로 <이조궁중음식연회고>에서는 갑피병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3) 지지는 떡(煎餠)
지지는 떡은 찹쌀가루를 익반죽하여 모양을 만들어 기름에 지진 떡으로 화전류 · 주악류 · 부꾸미류, 산승류, 전병류 등이 있다.
화전(花煎)류는 익반죽한 찹쌀가루를 동글넓적하게 만든 뒤, 꽃잎을 붙여 기름에 지진 떡으로, 계절에 따라 봄에는 진달래전(두견화전) · 배꽃전, 초여름에는 장미꽃전, 가을에는 국화꽃전 · 맨드라미꽃전 등이 있다. 화전에 대한 문헌의 기록을 보면, 화전은 전화병, 유전병이라 하여 《도문대작》에 처음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 1670》, 《주방문(酒方文), 1600년대 말》에서는 찹쌀가루에 메밀을 섞었으나, 《증보산림경제, 1766》이후의 문헌에는 찹쌀가루만으로 만들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1849》에서는 녹두가루를 사용하였으며, 두견화 · 장미화 · 국화 등의 꽃과 꿀, 기름 등을 사용하였다.
주악류는 찹쌀을 익반죽하여 깨, 곶감, 유자청건지 등으로 만든 소를 넣고, 조약돌 모양처럼 빚어 기름에 튀긴 떡으로, 승검초주악 · 은행주악 · 대추주악 · 석이주악 등이 있다. 주악의 어원은 각서의 가짜라 하여 조각이라 하였으며 다시 각(角)의 음이 악(岳)이 되어 조악(造岳)이 되고 지금의 주악이라고 하였다.
부꾸미류는 찹쌀 · 찰수수 등을 물에 불렸다가 갈아서 익반죽하여 빚어 지진 뒤, 소를 넣고 반달처럼 접은 떡으로 찹쌀부꾸미 · 수수부꾸미 · 결명자부꾸미 등이 있다.
산승류는 찹쌀가루에 꿀을 넣고 익반죽한 뒤 세 뿔 모양으로 빚어 기름에 지진 떡으로 《음식디미방》, 《시의전서》등에 그 만드는 법이 기록되어 있으며 주로 웃기떡으로 쓰인다.
전병류는 꽃전, 주악류, 부꾸미, 산승류 이외에도 기름에 지지는 떡을 총칭하며 토란병, 서여향병, 메밀총떡, 빙떡, 섭산삼병, 빙자병 등이 있으며 《도문대작》에서는 자병(煮餅)으로 기록되어 있다.
4) 삶는 떡(湯餠)
삶는 떡은 경단류를 말하며 찹쌀을 반죽하여 빚거나 더러는 구멍떡으로 만들어서 끓는 물에 삶아 건져서 고물을 묻힌 것으로 가장 손쉽게 만들 수 있다. 경단류는 문헌인 《요록(要綠), 1680년경》에 '경단병'이란 이름으로 처음 기록되어 있으며, "찹쌀가루로 떡을 만들어 삶아 익힌 뒤 꿀물에 담갔다가 꺼내어 그릇에 담아 다시 그 위에 꿀을 더한다."고 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경단은 《음식방문(飮食方文), 1800년대 중엽》과 《시의전서, 1800년대 말엽》등에도 나타나 있으며, 고물을 묻히는 방법에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기본적인 방법은 거의 같다. 삶는 떡류의 주재료는 찹쌀이며 잡곡 및 두류로 메밀 · 마 · 콩 · 팥 · 깨 등이 쓰인다. 부재료로는 감 · 밤 · 호두 등의 과일 및 견과류가 쓰이고, 기타 향미 성분으로는 생강 · 계피 · 정향 등이 쓰인다.
떡 만드는 도구
1) 곡식 도정 도구
외다리 디딜방아
(1) 방아
곡물을 절구에 넣고 찧거나 빻는 기구나 설비이다. 그 종류는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하여 발로 디디어 찧는 디딜방아, 물의 힘을 이용하는 물레방아, 그리고 소나 말 등 가축의 힘을 이용하는 연자방아 등이 있다. 지방에 따라 디딜방애, 딸각방아, 발방아, 돈방아, 드딤방아, 드딜방아, 손방아 등으로 부른다.
제주도에는 남방애라 하여 큰 두레판 가운데에 앉은뱅이 돌절구가 있었는데 여기에는 나무로 만든 절굿공이가 쓰였다. 이는 돌확의 가장 가장자리가 넓어 많은 양의 곡물을 한 번에 찧을 수가 있으며 절구공이에 빗맞아 튀어 나온 곡식도 가장자리가 넓은 울타리가 높아 밖으로 튀어 나가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2) 절구와 절굿공이
절구는 떡가루를 만들거나 고수레떡을 만들어 칠 때 쓴다. 우묵하게 판 확 속에 재료를 넣고 공이를 짓찧는 기구로 주로 나무나 돌로 만든다. 나무절구는 오래 쓰는 동안 바닥이 닳기 때문에 미리 굵은 쇠징을 빈틈 없이 박아서 보호하기도 한다. 나무절구에는 나무로 만든 절굿공이, 돌절구에는 무쇠나 돌로 만든 절굿공이가 쓰인다. 절굿공이의 모양은 위아래가 동글되 손잡이 부분인 가운데 부분이 잘룩하게 패여 잡기가 쉽게 되어 있다.
(3) 키
찧어낸 곡식을 담아 까불러 겨나 티끌을 걸러 내는 기구로 주로 고리버들을 엮어서 만든다. 앞은 넓고 편편하고 뒤는 좁고 우묵하여 곡식을 앞부분에 놓고 까부르면, 가벼운 것은 날아 가거나 앞에 남고 무거운 것은 뒤로 모여 나눌 수 있게 되어 있다. 특히 적은 양의 알곡을 털어 낼 때 유용하다. 곡식을 키에 넣어 추켜 뜨리는 것을 '나비질한다' 또는 '까분다'고 하는 것이나, 여자들끼리 모여 앉아 재잘거리는 것을 '찧고 까분다'라고 하는 것이 모두 여기서 유래했다.
돌확과 돌공이
(4) 돌확(확돌)
고추, 마늘, 생강 등의 양념이나 적은 양의 곡식을 찧는데 사용하며 소금을 빻기도 한다. 자연석을 우묵하게 파거나 번번하고 넓적하게 판 것과 오지로 만들어 자배기 모양의 그릇 안쪽을 우둘두둘하게 구워낸 것 등이 있다.
2) 재료 다루는 도구
(1) 이남박(인함박)
안쪽으로 같은 간격의 턱이 지게 한 나무박으로 쌀 등의 곡물을 씻을 때 쓰는 용구이다. 그릇 안에 턱이 있어서 곡물을 으깨어 씻기가 편리하고 곡물을 일 때 돌도 잘 분리된다.
(2) 조리(조래미)
댓가지를 국자 모양으로 결어서 물에 담근 곡식을 조금씩 일어 떠내는 용구이다. 쌀을 씻을 때 그릇바닥에 처진 쌀에는 자연 모래가 많이 섞여 있기 마련인데, 이것을 차근차근 다른 그릇이나 이남박에 번갈아 쏟아 일궈 처진 돌을 가려 낸다.
(3) 맷돌과 맷방석
주로 곡식을 갈아서 가루로 만들 때나 물에 불린 곡식 등을 갈 때에 쓰는 기구이다. 곰보처럼 얽은 둥글넓적한 두 개의 돌을 아래 위로 겹쳐 놓은 모양새이다. 윗돌에는 암쇠라 하여 구멍이 뚫려 있고 아래짝은 수쇠라 하여 가운데 뾰족한 중쇠가 꽂혀 있어 위짝과 맞물려 돌아가도록 되어 있다. 위짝에 손잡이인 맷손이 달려 있는데 보통 기역자로 만들어 윗돌을 파서 박기도 하고 칡이나 대로 테를 메우고 거기에 꽂아서 쓰기도 한다.
맷돌질을 할 때는 맷돌 아래짝을 커다란 함지에 고정시켜 놓고 위짝의 중심주에 있는 구멍을 중쇠에 끼워 맞추고 한 사람 또는 두 사람이 마주 앉아 간다. 한 사람은 갈 것을 넣으며 돌릴 때 호흡을 제대로 맞추어야만 맷돌질이 쉽고 고르게 잘 된다.
맷방석은 멍석보다는 작고 둥글며 위쪽 가장자리에 약간 높게 된 부분, 즉 전이 있는 방석으로 맷돌로 곡식을 갈 때 밑에 깔아 가루를 받거나 곡식을 널 때 쓰인다.
(4) 고석(古石)매
단단한 현무암으로 만든 맷돌로 다른 돌로 만들면 서로 맞닿는 면이 닿아 매끄러워지므로 가끔 정으로 쪼아 표면을 거칠게 만들어 주어야 하는데 고석매는 그럴 필요가 없다.
(5) 매판
물에 불린 콩이나 곡식을 맷돌에 넣고 갈 때 갈려서 흘러내리는 재료들을 한 곳으로 모이게 한 나무그릇으로 맷돌을 올려놓는 기구이다. Y자 모양으로 갈라진 넓고 두툼한 나무에 세 개의 발을 달고 가랑이 부분에 맷돌 크기만 한 홈을 파놓았다.
(6) 풀맷돌
고운 돌로 조그맣게 만든 맷돌로 밑짝은 아예 매판에 붙여 만든다. 곱게 갈리기 때문에 풀맷돌이라고 한다. 풀매는 보통 맷돌보다 더 곱게 갈 수 있는 맷돌이다. 모시와 명주에 풀을 먹일 때는 불린 쌀을 풀맷돌에 곱게 갈아서 가라앉혀 밭쳐서 말려 두고 썼다. 받침이 함께 붙어 있고 아랫돌이 윗돌보다 훨씬 넓으며 그 주위에 홈이 파여 있어 갈린 것이 저절로 흘러내리게 되어 있다.
(7) 맷지게
한꺼번에 많은 양의 곡식을 갈아야 할 때 아주 큰 맷돌의 맷손에 T자형의 지게를 걸고 곡식을 먹이는 사람의 주도하에 억센 일꾼 여럿이서 맷지게를 앞뒤로 밀고 당기면서 가는 장치이다.
(8) 떡보
흰떡이나 인절미 등을 안반에 놓고 칠 때 흩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찐 가루나 쌀을 싸는 보자기를 말한다.
(9) 체와 쳇다리
절구나 맷돌에서 낸 가루를 일정한 곱기로 쳐내기 위한 기구로 고운체, 도드미체, 깁체, 어레미체 등 체의 굵기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다. 흔히 얇은 송판을 휘어서 만든 체를 쳇바퀴라 하는데 이 쳇바퀴 안쪽에 아들바퀴를 끼우고 그 사이에 쳇불을 끼운다. 쳇불을 말총, 명주실, 철사 등으로 그물처럼 엮어 만든 것인데 어떤 재료로 어떻게 짜느냐에 따라 체의 종류가 달라진다. 말총이나 나일론으로 올을 곱게 짜면 고운체가 되고 명주실로 짜면 깁체가 된다. 고운 철사로 올이 성기게 짜면 도드미가 되고 그보다 발이 굵게 나오도록 설피게 만든 것을 어레미라고 한다.
한편, 쳇다리는 물에 불린 곡식 등을 갈 때 맷돌 밑에 받쳐서 갈려 나오는 재료들이 떨어지게 하거나 재료를 거를 때 그릇 위에 걸쳐 체를 올려 놓는 기구로 삼각형 또는 사다리꼴로 되어 있다. 떡을 만들 때는 쌀을 빻은 뒤 쌀가루를 내릴 때 사용한다.
3) 익히는 도구
(1) 번철
화전이나 주악 등 기름에 지지는 떡을 만들 때 쓰이는 철판이다. 번철은 무쇠로 만들었는데, 예전에는 가마솥 뚜겅을 번철 대신 쓰기도 하였다. 요즘의 프라이팬에 손잡이가 달려 있듯이 양쪽에 쪽자리가 달려 있어 쉽게 옮길 수 있게 되어 있다.
(2) 시루
주로 떡 종류를 익혀 내기 위해서 솥 위에 올려 김을 통하게 하는 용기로 바닥에 몇 개의 구멍이 뚫려 있다. 안에 넣는 재료가 쏟아지지 않게 시루 밑을 깔며, 짚으로 두껍게 결은 방석 모양의 덮개를 덮는데 이것을 시룻방석이라고 한다. 또 시루와 솥이 닿는 부분은 수증기가 새는 것을 막기 위해 밀가루를 뭉쳐서 바르는데 이것을 시룻번이라고 한다.
조리의 성질상 질그릇으로 구운 것을 쓰나 당집 같은 데서는 쉽사리 깨지지 않는 놋시루를 쓰기도 한다. 시루 중에서도 특히 작은 것을 옹시루라고 한다.
(3) 찜통
대나무로 만든 찜통은 뚜껑과 찜기로 이루어져 있어 시루 대신 떡가루를 놓아 찔 수 있고 긴 양철통에 물을 넣어 끓여 솥 대신 사용한다. 찜기에 한지나 젖은 베보자기를 깔고 고물을 놓고 쌀가루나 떡가루를 놓고 다시 고물을 올려 뚜껑을 닫아 양철통 위에 얹어 찐다. 떡을 찔때는 한 번에 많이 하지 않고 쌀가루 5~6컵 정도로 한켜를 안쳐 찔 수 있다. 양철통이 깊어 물을 많이 부어 찔 수 있으며 시루처럼 시룻번을 붙이지 않아 도중에 물이 부족하면 얼마든지 보충할 수 있으며 또한 떡 밑에 물이 차지 않아 좋다.
(4) 질밥통
밥을 담거나 약식을 할 때 양념을 하여 재웠다가 중탕을 할 때 쓰인다. 또 감자녹말이나 칡녹말 등을 가라앉힐 때 좋다.
4) 모양 내는 도구
(1) 안반(떡판)과 떡메
안반은 정초에 시식으로 먹는 흰떡이나 인절미를 치기 위한 기구로 보통 두꺼운 통나무 널빤지로 만든다. 떡을 찧는 부분을 움푹하게 파내어 떡이 밖으로 나오지 않고 공이에 먹이기 쉽게 한 안반도 있다. 경기도 ∙ 중부지방에서는 안반을 떡판이라 하고 그 밖의 지방에서는 안반이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다. 떡을 찧는 공이를 떡메라고 부르는데, 지름이 20㎝ 정도 되는 통나무 토막에 자루를 끼운 것이다. 쌀가루에 물을 주어 찐 고수레 떡을 쪄 안반에 놓고 떡메로 장정들이 힘있게 치고, 아낙네들은 떡이 고루 쳐지도록 손에 소금물을 묻혀 가며 섞어 준다. 멥쌀로 떡을 해서 친 것은 가래떡이고 찹쌀을 익혀 치면 인절미가 되는데, 이때 떡을 잘 쳐야만 쫄깃하게 된다.
(2) 떡살
떡살은 떡본, 또는 떡손이라고도 한다. 떡살의 형태는 거개 도장모양으로 손잡이를 잡고 꼭 누르게 된 것으로 누르는 면에 문양이 있어서 절편에 찍으면 문양이 아름답게 남는다. 떡살의 문양은 주로 부귀수복(富貴壽福)을 기원하는 뜻을 담고 있는 길상무늬를 비롯해, 장수와 해로를 뜻하는 국수무늬나 태극무늬, 빗살무늬 등 그 종류가 다양하다. 대개 단단한 나무인 참나무, 감나무, 박달나무 등으로 만들며 간혹 사기, 백자, 오지 같은 것으로 만들어 쓰는 경우도 있다.
떡살의 무늬는 일반적으로 가문에 따라 정해지며 이것은 또한 그 집안의 상징적인 무늬로 통용되어 왔다. 떡살이 어느 집안에서 통용되게 되면 좀처럼 그 문양을 바꾸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집안에서 빌리려 해도 응하지 않는다. 옛날에는 어떤 모양으로든지 한 번 정해진 떡살을 어쩌다가 부득이한 일로 그 무늬를 바꾸려고 하면 그 문중의 승낙을 받아야 비로소 가능했다.
(3) 밀방망이와 밀판
가루반죽을 밀어서 얇고 넓게 펴는 데 사용하는 도구의 하나이다. 개피떡 등을 만들 때 반죽을 일정한 두께로 넓게 미는 데 사용한다. 즉 밀판 위에 반죽을 놓고 밀방망이로 밀면 전면이 고르고 얇게 밀어진다. 밀방망이는 지름이 4~6㎝정도의 굵기로 하며 길이는 밀판에 맞추어 만든다. 밀판은 가루반죽을 밀어서 얇고 넓게 펴는 데 쓰는 나무로 만든 판이다. 밀판은 대개 통나무판으로 두께는 약 8~10㎝, 너비는 50㎝, 길이는 80~90㎝ 정도로 만들고 밑에 다리를 낮게 붙이기도 한다. 밀판은 나무가 두꺼울수록 뒤틀림이 없어 밀거나 썰 때에 편리하고 또 오래 두고 쓸 수 있다. 밀방망이로 밀거나 민 것을 썰 때는 밀판에 가루를 뿌려서 붙지 않게 한다.
5) 담는 도구
(1) 광주리
광주리는 중국의 '광아르'에서 온 말로 채로 결은 넓고 큰 그릇이다.
(2) 소쿠리
댓가지를 걸어 반구형으로 만든 용기이다. 물기가 잘 빠지고 공기가 통한다는 장점이 있어 익혀 낸 음식을 담거나 떡쌀을 씻어 건져 놓을 때 알맞다.
(3) 채반
채반이란 명칭은 사리채로 결었다고 하여 붙여진 것으로 채나 댓가지를 고아주리처럼 곁되전을 발딱 젖혀서 편편하게 한 그릇이다. 기름에 지진 떡을 펼쳐 놓아 기름이 빠지게 하고 또 빨리 식히는 데 쓰인다. 재료를 널어 말리거나 물기를 뺄 때도 쓴다.
(4) 석작과 동구리
석작은 댓가지를 결어 만든 것이고 동구리는 버들가지로 엮은 상자로, 떡이나 강정 등을 담을 때 쓰인다.
(5) 멱동구리
짚으로 둥글고 울이 깊게 결어 만든 그릇으로 곡식이나 채소 따위를 담는데 쓴다. 일명 떡구리, 둥구리, 둥구먹, 둘게미, 둥구마리, 두꾸머리라고도 한다. 말굽쇠 모양의 굽은 나무를 넣어서 손잡이로 삼기도 하였다.
(6) 목판과 함지박
떡이나 과일 등의 음식을 담거나 운반할 때 쓰는 그릇으로 나무판으로 모나게 짰다고 하여 모판이라고도 한다. 대개 소나무로 만들었으며 사각형, 팔각형 등 여러 가지 모양에 크기도 10㎝에서 1.2m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합으로 된 것도 있어 여러 개를 포개어 쓰기로 하며, 잔치나 제사를 지낸 다음 여러 사람과 나눠 먹는 음식인 반기를 돌릴 때에는 모판에 유지를 깔고 떡을 비롯한 여러 가지 음식을 몫몫이 담아 주기도 한다.
통나무를 쪼개 내어 안을 파서 큰 바가지 같이 만든 그릇으로 만드는 방법과 모양에 따라 귀함지 ∙ 도내함지 ∙ 모함지 등이 있다. 함지박의 용도는 곡식 등의 식품류는 물론이고 떡가루를 버무리거나 반죽할 때, 떡이나 한과 등을 담아 운반할 때에도 사용한다.
(7) 바가지
주로 곡물, 물, 장 등을 푸거나 담을 때 쓰는 부엌용구로 쓰인다. 재질에 따라 박바가지와 나무바가지가 있는데 바가지 중 가장 큰 것은 물바가지로 쓰이고 1되나 5홉 되는 용량의 바가지는 쌀바가지로 쓴다. 용 또한 호리병 모양의 박을 쪼개서 만든 조랑박바가지는 손잡이 부분이 있고 크기가 작아 주로 간장바가지로 쓰인다.
6) 계량 도구
(1) 되와 말
곡식의 분량을 측정하는 것으로 되는 승(升)이라 한다. 즉 1되는 10홉이며 이를 대두(大升)라 하고, 이의 반(半)되는 분량을 소두(小升)라 한다. 말은 되의 10배이며 모양은 입방체 또는 직육면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