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e kho, vāseṭṭha, pañca kāmaguṇā ariyassa vinaye andūtipi vuccanti, bandhanantipi vuccanti. Ime kho vāseṭṭha pañca kāmaguṇe tevijjā brāhmaṇā gadhitā mucchitā ajjhopannā anādīnavadassāvino anissaraṇapaññā paribhuñjanti. Te vata, vāseṭṭha, tevijjā brāhmaṇā ye dhammā brāhmaṇakārakā, te dhamme pahāya vattamānā, ye dhammā abrāhmaṇakārakā, te dhamme samādāya vattamānā pañca kāmaguṇe gadhitā mucchitā ajjhopannā anādīnavadassāvino anissaraṇapaññā paribhuñjantā kāmandubandhanabaddhā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brahmānaṃ sahabyūpagā bhavissantī’’ti, netaṃ ṭhānaṃ vijjati.
‘‘Ime kho, vāseṭṭha, pañca kāmaguṇā ariyassa vinaye andūtipi vuccanti, bandhanantipi vuccanti.
“바쎗타여, 이와 같이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의 대상은 고귀한 계율에서 사슬이라고 불리고 족쇄라고 불립니다.
와셋타여, 이것이 다섯 가닥의 감각적 욕망이 있나니 성스러운 율에서는 이것을 사슬이라고도 부르고 얽매임이라고도 부른다.
Ime kho vāseṭṭha pañca kāmaguṇe tevijjā brāhmaṇā gadhitā mucchitā ajjhopannā anādīnavadassāvino anissaraṇapaññā paribhuñjanti.
바쎗타여, 세 가지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이 이러한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의 대상에 묶이고 홀리고 탐닉하고 위험을 보지 못하고 여읨의 지혜가 없이 그것들을 즐깁니다.
와셋타여, 삼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은 이러한 다섯 가닥의 감각적 욕망에 묶이고 홀리고 푹 빠져서 위험을 보지 못하고 벗어남에 무지하여 그것을 즐기고 있다.”
Te vata, vāseṭṭha, tevijjā brāhmaṇā ye dhammā brāhmaṇakārakā, te dhamme pahāya vattamānā, ye dhammā abrāhmaṇakārakā, te dhamme samādāya vattamānā
바쎗타여, 그들 세 가지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이 바라문이 실천하는 원리가 있는데, 그러한 원리를 버리고 바라문이 아닌 자가 실천하는 원리를 획득하여 행하면서
28.“와셋타여, 삼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은 바라문들이 행하는 법들을 버려 버리고 바라문들이 행하지 않는 법들을 받아 지니면서
pañca kāmaguṇe gadhitā mucchitā ajjhopannā anādīnavadassāvino anissaraṇapaññā paribhuñjantā kāmandubandhanabaddhā
이러한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의 대상에 묶이고 홀리고 탐닉하고 위험을 보지 못하고 여읨의 지혜가 없이 그것들을 즐긴다면,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의 사슬에 매여
다섯 가닥의 감각적 욕망에 묶이고 홀리고 푹 빠져서 위험을 보지 못하고 벗어남에 무지하여 그것을 즐기면서 감각적 욕망의 사슬과 얽매임에 묶여 있다가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brahmānaṃ sahabyūpagā bhavissantī’’ti, netaṃ ṭhānaṃ vijjati.
몸이 파괴되어 죽은 뒤에 하느님과 함께 살게 된다.”는 것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범천의 일원이 될 것이라는, 이런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