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내비게이션
박경임
그녀를 만나기 위해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했다. 예약하고 기다리는 동안 많은 갈등이 있었지만, 일주일이나 예약이 꽉 차 있다니 기대를 하게 되었고 먼저 10만 원을 입금했으니 포기할 수도 없어 잠실에서 송도까지 가게 되었다. 인천대교를 건너는데 하늘은 미세먼지와 농무로 앞이 안 보였다. 인천대교는 시원한 드라이브 코스인데 지금의 내 형편인 듯 다리 중간에 매달린 안개등을 보며 달려야 할 만큼 길은 앞이 안 보였다. 답답한 마음이 한숨으로 터져 나왔다. 앞을 모르고 처음 가는 길, 생전 처음 보는 여자를 만나러 가는 길에 내비게이션은 아주 또렷한 목소리로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그녀는 무당이다. 유튜브에서 그녀를 보고 내비게이션처럼 내 앞길을 열어주기를 기대하며 신점을 치는 그녀의 말에 끌려 지금 그를 만나러 가고 있다.
바다가 보이는 송도 21층에 자리한 그녀의 아파트 초인종을 누르고 길게 숨을 들이 쉬었다.
점 집을 처음 방문하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긴장이 되었다. 나는 이즈음 사무실 이전 문제로 많이 고민하고 있었고 계속 적자인 이 일을 이어가야 할 지에 대해서도 생각을 깊이 하는 중이었다. 문을 열어주는 그녀는 한가로운 실내복 차림이었다. 화면에서 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무당이었다. 실내로 들어가니 모셔놓은 신당의 모습이 현란할 뿐 다녀간 사람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일주일이나 예약이 밀려있었다면 대게는 응접실에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고 접수를 하거나 전화를 받는 사람이 별도로 있는데 이곳엔 그녀 혼자여서 물었더니 혼자 한다고 했다. 속았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그녀 앞에 다가앉았다. 유튜브 속에서 그녀는 당신의 인생을 바꾸어 주겠노라며 웃고 있었는데 마주 앉으니 헛웃음만 나왔다. 점 집을 다녀 본 경력이 있는지라 그래도 어느 정도의 실력인지는 대략 가늠이 되어 심드렁하게 현재의 고민을 말했더니, 그녀는 내 얼굴만 빤히 쳐다보다가 요즘 경기가 다 그러하니 조금 참아보라며 나이가 있어 건강이 우선이니 건강에 신경을 쓰란다. 이런 말을 듣자고 일주일이나 기다려 두 시간을 차를 몰고 온 내가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오늘 나는 되지도 않는 실력으로 복채나 노리는 나보다 불쌍한 중생에게 10만 원을 보시했구나 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내 사주팔자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나는 가끔 점을 보러 다닌다. 일이 잘 안 풀릴 때, 새롭게 결정할 일이 있을 때, 새해가 되어 한 해의 신수를 보게 될 때, 점 집에 가서 상담하곤 한다. 사실 점이란 것이 내가 결정해 놓은 것에 관한 확인이나, 안 되는 것에 대한 위로 정도가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내가 생각하는 점은 인생 내비게이션이라 생각한다.
오늘처럼 형편없는 무당을 만나는 일도 있지만 - 멀쩡한 대로를 두고 골목길로 안내하는 내비게이션처럼 - 내가 가보지 않은 길이나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해 고민할 때 약간의 게시를 얻으면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안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조심하라면 말이나 행동을 조심스럽게 가질 수 있어서 비가 맞을 일을 우산을 준비한 격이라 생각하기도 한다. 겪어 본 바에 의하면 사주팔자는 비껴 갈 수 없다는 것을 나이 들면서 더욱 느끼게 되는데 한 해 신수를 보면서 그해에 조심해야 할 것이나 사람과의 관계에서 닥칠 일을 알려주기도 하니 아주 끊기 힘든 유혹이다.
한 번은 친구와 함께 신점을 보는 곳에 갔는데 무당인 그녀는 지나간 일은 접어두고 미래만 말해준다고 했다. 친구 이름을 적자마자 메모지 한쪽에 유방암이라 썼다. 우리는 얼굴을 마주보며 피식 웃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만만한 얼굴로 빨리 병원 가봐서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심각하지는 않으니 걱정하지 말고 빨리 병원 가서 검사해 보라 했다. 혼비백산한 친구는 설마 하는 심정으로 병원에 가서 검사했고 놀랍게도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그녀 말대로 다행히 순한 암이라 수술이 어렵지 않았다지만 아직 항암치료 중이다. 만약 무당을 찾아가지 않았으면 병을 키워서 더 힘들게 항암을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소름이 돋았다.
나는 사무실 터에 터줏대감이 없어 잡신들이 모여들어 방해가 많아 일의 성사가 이루어지기 힘들다고 했다. 그래서 노력을 해도 좋은 결과를 볼 수가 없어 힘이 든다고 사무실을 옮기는 것이 좋다 했다. 기분 탓인지 정말 터줏대감 때문인지 옮긴 사무실은 오는 사람마다 기운이 좋아 보인다고 하니 앞으로 돈 벌 일만 남아 있다.
신라에서는 첨성대에서 별을 보며 미래를 점치기도 했고, 조선 시대에는 관상감을 두어 음양 오행에 관해 연구하였다니 인간의 미래에 대한 궁금증은 나만의 일은 아닌 것 같다. 새해가 시작될 때 모두 재미로나마 토정비결을 보기도 하는데 요즘엔 스마트폰에 점을 치는 앱이 있어 젊은이들도 많은 관심을 가지며 하루에 점을 보는 앱에 접속하는 수가 20만 건이나 된다고 한다. 유일신을 주장하는 기독교인들의 절반 정도가 점을 본다고 하니 단순한 호기심은 아닌 듯하며 실제로 내가 점을 보러 간 어떤 집에서 어디로 가서 목회를 시작해야 신도를 많이모을 수 있냐고 물어보러 온 목사님을 본 일도 있다. 사람마다 타고난 팔자가 있어서 노력한다고 다 이룰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을 느끼곤 한다.
생년월일이 같다고 다 운명이 같은 것이 아니고 내가 가진 부모, 집안, 조상 이런 것들이 어우러져서 나의 운명을 결정짓는다고 한다. 부모가 반 팔자라는 말도 있듯이 내 사주가 아무리 좋아도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나 능력이 안 된다면 성공으로 가기는 힘든 것이라는 말이다. 태조 이성계가 반란으로 조선을 세우고 자기와 같은 생년월일의 사람이 있어 왕위를 넘보게 될까 봐 전국을 뒤져 생년월일이 같은 사람을 찾아 제거하려 하였으나 그가 자기의 백성보다 많은 수의 벌을 거느린 양봉업자이어서 살려두었다는 일화도 있다.
점을 치는 사람들의 종류도 아주 다양하다. 주역이나 명리학을 연구하여 점을 치는 철학관, 관상, 수상, 족상 등으로 점을 치는 사람, 신내림을 하여 점을 치는 무당, 박수무당 그리고 그림책으로 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던 당 사주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미래를 읽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겪어본 바에 의하면 점을 치는 사람들도 전문 분야가 있어서, 자기가 원하는 점을 잘 보는 사람을 찾는 것이 관건이라 여겨진다. 병을 잘 읽는 사람에게 바람난 남편을 찾아달라고 찾아간들 답을 얻기가 힘들다는 말이다. 그래도 여기저기서 일관되게 말해주는 것이 나의 타고난 팔자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태어나서 부산까지 가야 하는 운명이라면 어디서 누구를 만나고 어떤 노력을 하느냐에 따라 비행기를 타고 갈지. 버스를 타고 갈지, 걸어가야 할 지가 달라질 뿐이지 부산까지 가야 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상한 무당을 만나 내 기대가 사라지긴 했지만, 오늘보다 내일이 항상 나아진다고 말해주었던 점사들의 말을 위안 삼아 힘든 시절을 견뎌왔는지 모른다. 사실 나는 어제 보다 항상 오늘이 좋다. 점에 너무 연연하여 할 일을 안 하고 팔자타령을 하는 것은 안 되지만 나는 내일에 기대를 걸며 연무가 가득한 인천대교를 건너왔다.
2019.3서울문학 시등단
2021.6 한국산문등단
21.7 세명일보 시 우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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