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반니 보카치오(Giovanni Boccaccio, 1313년∼1375년)

조반니 보카치오(Giovanni Boccaccio, 1313년∼1375년)는 이탈리아의 소설가·시인이다.
그의 아버지는 상인으로서 환전상을 경영하였으며 그는 사생아로 체르탈도라는 고장에서 출생하였다. 피렌체에서 아버지의 업을 익히는 한편 초보적인 교육을 받았다. 14세 때에 장사를 배우기 위해 나폴리로 보내졌는데 보카치오는 “그 6년간은 시간 낭비 외에 얻은 바가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새로 6년간을 법학 연구에 보냈으나 별로 공부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문학에 대해서는 깊은 감격과 의욕을 가져 열심히 독학을 하였다. 당시 문예 부흥 운동이 한창이던 나폴리에서 그는 유쾌한 사교 모임에도 참여하고 친구도 사귀며 인문학자에 의해 고전 문학에 눈을 뜨게 되었다. 그런 가운데 한 여성에 대한 열렬한 연애 경험은 그의 청년기 문학 창조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럴 즈음 아버지의 파산과 죽음을 맞아 백방으로 직업을 구하다 피렌체 시 정부의 일자리를 얻게 되었다. 다행히도 그의 학식과 재능, 능변으로 교황이나 그 밖의 여러 영주에게 사절로 파견되는 행운이 있었다.
이 즈음 그에게 있어서 가장 뜻있고 줄거운 사건은 청년 시대로부터 만나고자 소원했던 페트라르카를 만나게 된 일이었다(1350년). 그의 만족과 기쁨은 비길 데가 없었으며 친교는 더욱더 두터워져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1362년 점쟁이가 말한 죽음의 예언을 믿은 그는 은둔 생활로 들어가 모처럼의 고전 연구를 그만두려 하였으나 페트라르카의 권유로 연구를 계속하였다. 그러나 노령과 빈곤, 질병에 시달린 나머지 나폴리에도 피렌체에도 흥미를 잃어 고국에 돌아가 숨어 살며 고전 연구에 몰두하였다. 특히 페트라르카의 죽음(1374)에 크게 충격을 받아 전년에 피렌체 정부의 요청에 의해 맡았던 《신곡》의 강의도 중단하였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생애를 마감하였다.
데카메론(Decameron, “Principe Galeotto”)은 이탈리아의 작가 지오반니 보카치오가 1350년경에 쓰기 시작하여 1353년에 집필을 마친 100편의 소설을 모은 책이다. 《데카메론》은 사랑에 관한 음탕한 이야기들로 유명한 중세의 우화적인 작품으로서 에로틱한 것부터 비극적인 것까지 잘 나타내고 있다. 또한 기지, 재담, 짓궂은 장난, 세속적인 비법 전수 등의 다른 화제도 이 소설집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이다. 《데카메론》은 오락적, 문학적 인기를 넘어서, 14세기의 삶에 관한 중요한 역사적 문서이기도 하다. 윌리엄 셰익스피어나 제프리 초서 같은 유명 작가들도 《데카메론》에서 차용해 왔다고 여겨진다.
이 작품의 표제는 “데카 헤메라이(deka hemerai)”. 즉, 열흘을 의미한다. 《데카메론》은 액자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보카치오는 흑사병을 묘사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보카치오는 피렌체에서만도 10만 명의 사람들이 흑사병에 희생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흑사병은 무서운 속도로 퍼져나갔으며,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피해를 더해가고 있었다. 그러나 시인은 이 작품 속에서 삶의 기쁨을 노래하려고 했다. 흑사병이 퍼진 피렌체를 탈출하여 2주 동안 피에솔레의 시골 마을의 별장으로 온 일곱 명의 젊은 여성들과 품행이 단정한 세 명의 남성들로 이루어진 한 무리를 소개한다.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열 명의 남녀는 각기 매일 한 가지씩의 이야기를 하면서 별장에서 시간을 보내자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본다. 모두 14일간이지만 일주일 중 하루는 가사를 위해서, 하루는 종교적인 이유로 이틀은 남겨 두었고, 그 날들은 작품 구조에서 빠진다. 이런 방식으로 모두 100편의 이야기가 열흘간에 걸쳐 나온다.
열 명이 각자 자기가 이야기를 할 차례가 될 때 왕 또는 여왕의 호칭을 부여받는다. 이러한 권능은 그 날의 이야기의 주제를 고르는 데에까지 미친다. 이틀을 제외하고는 각 날들에는 각각의 주제들이 있다. 예컨대 운명의 힘, 인간의 의지력, 비극적으로 끝맺는 사랑, 행복한 결말이 있는 사랑, 목숨을 건 영리한 대답, 남자를 속이는 여자의 속임수, 사람들의 속임수, 미덕 등이다. 다만, 디오네오는 날마다 열 번째의 이야기를 하는데 그는 그의 재치에 따라 자기가 원하는 주제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또한 각 날들에는 소개와 맺음 글이 있는데, 여기서는 이야기 이외의 일상 활동을 묘사함으로써 이야기의 액자 구조를 계속 연결하고 있다. 이 액자 구조 이야기의 막간에는 이탈리아 민요의 필사(筆寫)도 꽤 많이 들어 있다. 보카치오가 전에 얘기한 요소들을 변형하거나 뒤바꾼 대로, 하루 또는 여러 날의 이야기들은 상호작용을 하는데 이는 곧 《데카메론》이 단지 여러 이야기들을 하나로 모아놓은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전체로서의 하나의 이야기라는 결과를 가져온다.
사회이야기 : 열 명의 화자(話者)가 실존의 인물인가 하는 문제는 잠시 제쳐두고라도 보카치오가 묘사한 인물들은 살과 피를 지닌 인간이며, 결코 점잔만 빼고 있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이야기의 기본적인 플롯은 성직자의 성적 욕망과 탐욕을 비웃는 것, 이탈리아 사회에서 새롭게 부를 축적한 상인 계급과 귀족 간의 갈등, 여행하는 상인의 위험과 모험, 속는 자와 속이는 자, 순례자와 성자, 탐욕가와 방탕아, 동경의 대상인 여성들과 사랑에 굶주린 기사, 도적과 영웅, 어리석은 자와 왕, 교황과 수도사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단편들은 그의 창작은 아니었다. 그는 통속적인 이탈리아의 이야기, 프랑스의 파블리오, 동양의 동화 등을 모으고 그것을 환골탈태하여 《천일야화》와 비슷한 형태로 손질한 것이다.
교회에 대한 조소 : 등장인물들의 입을 통해서 보카치오는 금욕과 순결, 참회 등을 조소했으며, 수도사, 수녀, 주교, 수녀원장들을 농락했다. 그에게는 종교나 축성물 모두가 성스러운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그는 “지극히 신성하고 귀중한 기념물, 즉 대천사 가브리엘이 나자렛에서 하느님의 계시를 전하기 위해 성모 마리아의 방에 왔을 때 잃은 한 짝의 날개”를 우스개거리로 만들었다. 또한 유대인 아브라함을 기독교로 개종시켰는데, 이는 성직자들이 그 부도덕과 탐욕스러움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을 보면 기독교는 분명히 신으로부터 유래하는 것이 틀림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유대인 멜키세데크의 이야기 : 유대인 멜키세데크의 이야기 속에는 진실이 있다. 멜키세데크는 바빌론의 술탄인 살라딘에게서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가운데 어느 것이 가장 훌륭한가에 대해 질문받았을 때 "어느 민족이나 그 유산, 즉 진정한 율법이 있으며, 그 계율에 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하고 있다. 보카치오는 "여자가 일단 두 명의 남자를 갖게 되면, 백 명의 악마가 달려들더라도 그녀가 백 명의 남자와 관계를 맺는 것을 막을 수 없다"라든가, 또는 애매한 표현이기는 하되, 여성의 지칠 줄 모르는 욕망을 지적하여 사람들의 인기를 얻게 된 “좋은 구멍은 꿰뚫리고 싶어한다”라는 경구를 사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