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26일(금)
* 시작 기도
주님...
꿈속을 헤매다 죄악의 늪에 빠졌나이다.
이것이 나의 본성입니다.
꿈속에서라도 죄를 먹고 마시려는 이 죄인을 주의 심판의 칼로 처단하여 주소서.
그것을 피해 도망하지 않고 오히려 앉아서 그 재미를 누리려는 나는 죄인 중에 괴수입니다.
이는 내 마음이 오염되어 있는 증거입니다.
이런 나는 물고기가 물 없이 살려고 물을 뛰쳐나와 사는 것과 다를 바 없나이다.
주님, 나를 생수가 넘치는 그 물속에 던져 주시옵소서.
그곳에서만 내가 살 수 있사오니 마음껏 생명의 호흡을 하며 주를 노래하게 하소서.
꿈속에서라도 나의 죄를 주의 보혈로 씻어 주시고 주님의 거룩한 신부로 서기에 부족함이 없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 이 하루도 주의 날로 서기를 원하나이다.
주님의 십자가는 내가 져야할 십자가임을 믿사오니 오늘도 주의 십자가를 지고 걷는 이 길이 주님의 기쁨이요 또한 나의 기쁨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본문 / 마 26:36-46
제목 : 너희가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36.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37.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38.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할 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40.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42.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43.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피곤함일러라.
44. 또 그들을 두시고 나아가 세 번째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45.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46.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 나의 묵상
주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오늘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릴 것”이라고 하신다.
그것은 스가랴 13:7절, 즉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다 흩어지리라’는 말씀을 성취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죽임을 당한 주님께서 살아나신 후에는 갈릴리로 먼저 가실 것을 말씀하고 계신다.
베드로는 주님께 “모두가 주님을 버린다 할지라도 자기만은 결코 버리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한다.
하지만 주님의 대답은 더욱 구체적이다.
“오늘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 할 것”이라고 예언하신다.
주님의 이 말씀을 들은 베드로와 제자들의 반응은 이렇다.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주님은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에 가셔서 말씀하신다.
“내가 다른 곳에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에 있어라.”
그리고 베드로와 야고보 그리고 요한 이 셋을 데리고 좀 더 가실 때 몹시 고민하며 슬퍼하시면서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내 마음이 괴로워서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서 머무르면서 깨어 기도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들과 조금 더 떨어진 곳에서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시기를 “나의 아버지, 할 수만 있다면 제게서 이 잔을 지나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길 원합니다.”
한참을 기도하신 후에 세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그들이 자고 있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깨어서 기도할 수 없느냐? 너희가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서 기도하여라. 너희 안에 있는 영은 원하지만 육신이 약하구나.”
주님은 당신이 기도하시던 자리로 가셔서 두 번째 동일하게 기도하셨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다시 와 보니 역시 그들은 자고 있었다. 그들을 보니 그들은 너무 피곤하여 몹시 졸렸기 때문이다.
주님은 그들을 그대로 두시고 같은 자리로 가셔서 동일하게 세 번째 기도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오셔서 말씀하시기를 “아직도 자고 있고 쉬고 있느냐? 이것 봐라. 인자가 죄인들의 손에 넘겨질 때가 가까이 왔다. 이제 일어나서 함께 가자.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오고 있구나.”
주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하여 죄인들의 손에 넘겨질 때까지 제자들과 함께 계셨지만 제자들은 육신의 피곤함 때문에 잠에 취하여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다.
주님은 내일 아침이면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창세전부터 사랑을 받으신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버림받으시고 분리되실 것에 대한 영적 고통을 감당할 수 없어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엎드려 기도하시는데 제자들은 주님의 마음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육신의 정욕에 붙들려 자빠져 자고 있는 것이다.
3년 동안이나 동고동락했으면 주님의 눈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말씀을 들으면 무슨 뜻인지 알아차려야 할 제자들이, 그것도 수제자라는 베드로마저 말로는 절대로 버리지 않고 부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면서도 육신의 정욕을 이겨내지 못하고 널부러져 있다.
이것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의 모습이다.
제자들은 3년이지만, 나는 적어도 50년 넘게, 아니 본격적으로 신학을 시작한 때로부터 친다고 해도 최소 20년 이상이 되었다.
그런데 육신의 정욕을 이기지 못하고 여전히 넘어지고 자빠지면서 이리 깨지고 저리 깨지고 있는 형국이다.
정말 영은 그렇지 않은데, 나의 영은 주님과 가까이 하고 싶은데 육신의 약함이 나를 지배하여 넘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한편 주님은 하나님 아버지와의 분리됨으로 인하여 고통 속에 슬퍼하며 고민하고 계시는데 그 분리는 바로 나로 인한 분리요, 주님이 받으셔야 할 십자가의 잔은 바로 내가 지은 죄의 잔이다.
주님은 그동안 수도 없이 죄의 자리로 달려가던 나의 죄의 잔을 십자가에서 대신 받으셨다.
나의 머리로 생각했던 죄의 잔을 주님의 머리에 쓰신 가시관으로 받으셨다.
죄의 자리로 그렇게도 빨리 달려갔던 나의 발이 지은 죄의 잔을 주님은 발에 박히는 대못으로 받으셨다.
죄를 짓는데 크게 한 몫 했던 나의 손으로 지은 죄, 죄를 만지고 죄 속에 깊이 넣었던 이 손으로 지은 죄의 잔을 주님의 손에 박힌 대못으로 받으신 것이다.
나의 영은 주님을 닮은 듯하였으나 거짓되고 부패하여 내 마음으로 지었던 모든 죄에 대한 쓴 잔을 주님은 가슴을 찔리는 창으로 받으셨다.
무엇보다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채찍질을 당하시면서 그의 온 몸의 살점이 뚝뚝 떨어지며 찢기신 것은 나의 온 몸으로 짓는 죄의 잔을 대신하기 위함이었다.
나의 입술로 지은 죄의 잔은 침뱉음을 당하시면서 받으셨고, 주님을 부끄러워하고, 주님이 주신 고난을 수치스럽게 생각하면서 온갖 무화과 옷으로 가리고 포장했던 죄는 주님이 십자가 그 높은 곳에 달리시면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알몸으로 달리신 그 수치로 대신하셨다.
나의 입으로 온갖 변명과 욕설, 악한 말들과 죄를 먹고 마셨던 죄는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당신의 입으로 변명하지 않고 그 입을 열지 않으셨다.
할 말이 없으셔서가 아니라 나의 입으로 지은 모든 죄를 대신하시기 위함이다.
주님께서 극도의 고통 속에서 제자들에게 함께 기도할 것을 원하셨지만 세상모르고 잠에 취하여 멍 때리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속으로 한심하고 어이없다고 얼마나 비아냥거리고 수군수군 댔었는가?
남들을 뒷담화로 헐뜯고 비아냥거리던 나의 입술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보면서 비아냥거리던 사람들, 대제사장 서기관 그리고 장로들과 다름없었다.
(마 27:39-42)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이르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나는 정말 단 하루 아니 잠시도 제자들과 같이 죄의 잠, 허물의 잠에서 깨어있지 못하였다.
항상 육신, 즉 옛 사람인 아담 안에 있는 본성이 나의 영을 짓누르고 죄의 몸을 지배하여 죄로 달려가곤 하였다.
나는 죽어 마땅한 자요 죽기에만 합당한 자다.
하여 날 위하여, 나의 죄를 대신하여 지신 주님의 십자가에 이제는 내가 나를 못 박는다.
죄의 세력에 지배당하여 날마다 넘어지고 쓰러지는 나의 옛 사람을 주님이 달리신 그 십자가에 주님과 함께 못 박고 주님과 연합한다.
주님은 아버지와 분리되고 찢어지셨으나 나는 나의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고 주님과 하나로 연합한다.
죄의 몸이요 죽을 몸을 지배하며 내 안에 존재하는 옛 사람은 화인 맞은 양심과도 같이 지금도 얼마나 뻔뻔하게 살아 있는지 모른다.
그 옛 사람을 십자가에 날마다 못 박아 죽여도 그것은 또 살아나 나를 죄의 자리로 끌고 간다.
나는 그래서 하루살이다.
하루하루 주의 은혜로 살아가는 영적 하루살이다.
내가 뭐 대단한 것처럼 착각할 때도 나는 하루살이라는 것을 인식하며 겸손한 자리로 내려간다.
창세전 가장 높은 자리에 계셨던 주님은 가장 낮은 이 땅에 내려 오셨고, 수치와 부끄러움 그리고 죄와 허물의 가장 높은 자리인 십자가에 오르셔서 나의 모든 죄와 허물 그리고 수치과 부끄러움을 대신하셨다.
한없이 죄스러워서 고개를 들 수 없다.
그러나 나는 거기에만 머물러 있지 않는다.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주님의 뜻도 모르고 날뛰는 천방지축이었지만 그들이 성령을 받고서는 그들의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고 주를 위하여 드리는 사도가 되었던 것처럼, 날 구원하신 주를 위하여 나도 나의 생명을 바쳐 드린다.
나의 생명은 나의 것이 아니라 이미 주님의 것이기 때문에 주님께 받은 것을 도로 주님께 돌려 드림이 마땅하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내가 어떠하든 상황에 매몰되지 않고 주님께 나아갈 수 있음이 은혜임을 고백하며 감사하나이다.
죄에 빠졌을지라도 다시 일어나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음은 바로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요 파레시아(담대함) 때문입니다.
이 담대함은 성령 안에서 주님이 주신 믿음으로 가능하나이다.
주님...
비록 뻔뻔한 옛 사람이 내 안에 존재하나 오늘도 다시 한 번 십자가에 못 박고 주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며 춤추기 원하나이다.
세상의 쾌락과 연락을 벗어버리고 오직 주의 십자가의 옷, 보혈의 옷을 입고 주님과 함께 영생의 약속을 노래하며 춤을 추나이다.
십자가는 참혹하고 험악하나 주님이 지신 십자가에 새 생명이 있음을 아오니 주의 십자가를 사랑하며 날마다 나도 그 십자가 지고 주를 따르겠나이다.
죄 없으신 주님이 흘리신, 그 귀한 보배 피가 선명한 그 십자가는, 영원히 내가 사랑할 자리입니다.
그 십자가를 통하여 주의 영광을 보나이다.
못 자국 난 주님의 손과 발, 창 자국 난 주의 심장을 통하여 주의 은혜를 보오니 주여, 이 종을 외면하지 마시고 받아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