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키치약'
이 치약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일곱 살 무렵, 그때는 대부분 소금으로 양치를 하던 시절이어서인지 치약 판촉을 위해 치약을 사면 사은품을 주곤 했었다.
어느 날, 치약을 팔러 온 외판원이 치약을 사면 치약 하나에 영화 초대권 한 장씩을 준다고 했다. 물론 일류 극장은 아니었지만... 그 당시 대 히트를 치던 윤복이라는 어느 불쌍한 소년의 일기를 영화화한 '저 하늘에도 슬픔이' 영화 초대권이었다.
영화를 좋아하시던 어머니, 아버지와 큰형을 제외한 우리 식구 수에 맞추어 치약을 사셨다. 어머니와 누나들과 작은형과 나, 다 같이 보러 간 흑백영화. 무대가 대구라 그런지 훨씬 친근감이 갔고...
내용은 엄마 없이 주정꾼 아버지와 사는 아이들의 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 양아치도하고 동냥도 하고... 그러면서도 열심히 서로 위하면서 살고... 이를 지켜보는 선생님. 배우는 신영균...
끝나고 우리 식구들은 너무 슬퍼서 영화관을 펑펑 울면서 나왔던 기억이 난다. 우리가 그렇게 살고 있지 않음에 행복감도 느끼면서...
어릴 적 본 영화였지만 벤허와 마찬가지로 몇몇 장면들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도 없었다.
국민학교 5학년 2학기가 시작된 지 며칠 안 된 날.
학교 가는 길에 만난 아~ 그 운명의 영화 포스터 '속 저 하늘에도 슬픔이'.
어릴 적 그 인상 깊던 장면들이 마구 떠오르면서 나는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보지?
방과 후 문방구에 표준전과를 사러 갔다.
새 전과 매대와는 별도로 문방구 앞 커다란 대바구니에는 그전 해에 다 못 판 헌 전과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보는 순간! 머리가 빨리 돌아가기 시작했다.
가격은 새 전과의 반액. 내용을 보니 달라진 것도 없다.
'ㅎㅎ 그래 이걸 사자... 남는 돈으로 영화를 보고... 그러고도 남는 돈을 잘 갈무리하면 또 한편 더 볼 수도 있을 거야'
'냄새를 잘 맡는 가람형이 눈치채면 어쩌지?'
'응, 뒷장 속지에 붙은 연도표시를 떼자. 그럼 형도 모를 거야'
혼자 북 치고 장구까지 친 다음 가방을 집에 던져놓고 완전 범죄를 꿈꾸면서 영화관으로 달려갔다.
영화는 실망시키지 않았다.
고등학생이 된 윤복이 형은 여전히 학교 잘 다니고 있었고... 집을 나갔던 엄마도 만나고... 동생들도 열심히 잘 산다는 내용.
세월이 흘러 흑백에서 칼라 영화로 바뀌었지만 예전의 감동이 그대로 살아났다.
저질러 놓은 죄는 까맣게 잊고 즐겁게 집으로 돌아왔다.
근데 집 분위기는 삼엄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어머니는 날 보시자마자 다그치기 시작하셨다. 이실직고하라고...
역시 가람형이었다. 엄마를 막내인 나에게 뺏기고 나서부터 나의 비리를 캐는 재미로 세상을 소일하며 사는 것 같던 머리 좋은 케쉬타포 같은 형. 결국 난 또 그 촉수에 걸리고 말았다. 형은 어머니 앞에서 조목조목 헌 전과인 이유를 잘도 설명했다. 논리도 정연하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꼴통을 부리는 방법밖에 없었다.
"이건 형이 뭐라든 절대 새 전과야!!!"
"호야 익이 데리고 그 전과를 샀다는 문방구에 갔다 온나."
어머니의 엄명이 내려졌지만 난 한가닥 구제의 가능성에 기대어 그때까지도 계속 우겼다. 근데 내가 고집을 부리면 잘 받아주시던 그 어머니는 어디 가셨는지 안 보이고, 목소리가 얼음장 같고 눈매는 매서운 낯선 어머니만 계셨다.
형과 같이 문방구로 향한 길을 걸었다.
형극의 길이었다...
문방구 아저씨는 나의 혹시나 하는 기대와는 달리 너무도 쉽게 내 죄를 명명백백하게 확인해 주셨다.
돌아오는 길, 가람형은 말이 없었고, 나는 마지막 회유에 돌입했다.
"히야. 니 내가 밉제. 난 히야 니 좋아하는데 히야는 와 이래 낼 괴롭히노."
"히야 니도 잘못 안 하고 살 수 있겠나? 그럴 때 나도 히야 편들어주께. 이번에는 모른 척 좀 해도고."
"히야 엄마가 이 사실을 알마 얼매나 기가 막히고 마음 아푸겠노. 히야 니 엄마가 속상하마 존나?"
"내가 정말 잘못했다. 히야도 알제 '저 하늘에도 슬픔이'. 그 영화 속편한다 해서 나도 모르게 나쁜 짓했다. 영화만 보고 다른 데는 돈 안 썼다."
"히야. 엄마한테 새 전과라 해라 응~. 엄마는 히야 말은 믿어 줄 거다"
가람형의 대답은,
"익아. 엄마한테는 사실대로 말할란다. 대신 니 영화 보고 싶어서 그랬고, 전과 내용은 별다른 거 없다고 해주께"
집으로 돌아가는 길 입안은 바싹 마르고 아!!! 그놈의 영화! 냅다 도망가 버릴까... 생각만 많았다.
집에 오니, 어머니는 저녁을 준비하고 계셨다.
가람형이 어머니에게 사실대로 말하고...
난 너무 부끄럽고 자존심이 상해서,
'그래 처분대로 하지 뭐... 나도 모르겠다. 다신 그런 짓 안 한다. 살려만 주면 정말 다시는 내 양심을 속이는 그런 짓은 말아야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익이도 그만 씻고 밥 먹어라" 어머니 말씀.
'어!!! 이럴 수가? 저녁은 먹이고 혼내시려나 보다.'
둥그런 두리상에는 누나와 형들이 미리 앉았고... 이미 일어난 일을 다 알고 있을 그들은 아무도 나에게 말 걸어오지 않았다.
라디오 연속극을 듣고 잠들 때까지 나에 대한 체벌은 미루어졌다. 늘 자던 어머니 옆 내 자리를 형에게 양보하며 난 눈치껏 구석에 가서 누웠다.
"익아. 이리 온나" 엄마 목소리.
눈치 보며 슬금슬금 엄마 옆자리로 이동.
날 꼭 안으시며 어머니가 나지막이 말씀하셨다.
"익이 오늘 마음고생 마이 했제. 다신 그런 짓 하지 마래이. 다음에 또 그런 짓하면 엄마가 니 쪼차내뿐다."
그 목소리를 끝으로 그날이 끝이 났다.
덕분에 그 이후로 책값을 가지고 장난친 적은 맹세코 단 한 번도 없었다.
별이 되신 어머니는 아실 것이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입이 마를 정도로 속은 바싹 탔고 눈치가 많이 보이긴 했는데... 무섭진 않았어요. ㅎㅎ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해피엔딩 이라 다행입니다
저 땜에 마음 졸이셨나요? ㅎ
감사합니다.
덕분에 해피엔딩 했습니다.
엄지 척!
글 정말로 고맙습니다.
'저 하늘에도 슬픔'
저도 압니다.
위 글을 읽으면서 살짝 눈물이 납니다.
정말로 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그 어머니... 별이 되셨군요.
삶의 글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셨군요.
글
또 기다립니다.
잘 읽어주시고 공감해주셔서
제가 많이 고맙습니다.
골목마다, 담벼락에 붙어있던
광고지를 본 기억이 새삼 떠 오릅니다.
마음자리님은 기억이 정말 좋습니다.
주인공 아이, 윤복이를 아직도 기억하시니까요.
저는 어릴 때 본 영화가
이 덕화의 아버지 이예춘씨가 생각나지 않아서...
검색했거든요.
악역에만 나오시던 이예춘씨가
착한 뱃사공으로 나오는 영화인데 '서쪽나라로?'
학교에서(여중시절) 단체관람이었습니다.
눈물 많이 흘렸어요.
저도 이예춘씨를 좋아합니다.
흑백영화 시대에 토속적인 역할이나 악역을 잘 소화하신 큰 배우셨지요.
머리 굴리는 막내.
모두 예뻐 하셨네요.ㅎㅎ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형,누나,형제 많은 집에서 사랑도
많이 받으셨습니다.
게슈타포 형님은 요즘 안 보이시던데
슬쩍 등장 하시면 엄청 반가워들 하실겁니다.
ㅎㅎ 막내라 말씀처럼 사랑 많이
받으며 자랐지요.
당시엔 형들과 누나들이 저를 놀린다고 잘 삐치곤 했었는데, 돌아보면 늘 큰 사랑 속에 살았음을 알 수 있었지요.
가람형은 곧 돌아올 겁니다.
저하늘에도 슬픔이 있을까요?
주인공의 이 일기의 글이 영화제목이 되었습니다
가난한집에서 어렵게 자수성가 했지만 38살이라는 짧은 생애를 마친 윤복씨가 안타까웟습니다
충성
윤복이 형이 다녔던 고등학교가 능인고등학교였는데, 제가 다닌 영선국민학교 바로 옆이었습니다. 등교하다보면 영화 촬영팀들이 영화를 찍고 있어서 궁금했었는데, 알고보니 바로 '저 하늘에도 슬픔이' 속편 영화 촬영이었더군요.
초년에 고생 많이 한 만큼 중년이나 노년을 다복하게 보냈으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네요.
어릴 때 밉지 않을 정도의 귀여운 개구진 일을 많이 하셔서
어머님께서 키우는 재미가 있으셨을 것 같습니다.
가람형의 질투도 너무 귀엽습니다.
선생님이 교과서의 줄거리 요약해오라 숙제 내주시면
'표준전과' 뒤져 베껴쓰고 엉터리로 숙제를 해가기도 했습니다.
표준전과는 정말 해결사 같은 책이었지요.
늘 마음자리님 기억력에 감탄합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전과 없이 숙제 잘해가기는 쉽지 않았지요. ㅎㅎ 어릴 적 저는 말이 많진 않았지만, 잔머리는 많이 굴리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ㅎㅎ
기억력이 참 좋습니다.
저 하늘에도 슬픔이, 너무나 당시 유명한 여러사람 심금을
울린 영화였지요 ㅎ 저도 내용이 가물가물 합니다만
기억에 새롭습니다.
재미있는 어린시절 추억담 잘 읽었습니다. 건강하세요.
기억 속엔 그때의 느낌과 제가 했던 생각들이 비교적 생생하게 저장되어 있습니다.
글로 쓰다보니 쓸데없는 사족이 붙어 마치 제가 기억을 잘하는 것처럼 보여질 수도 있겠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겨운 단편소설 한편 읽었습니다
그런데 특별한 기억력을 가졌어요
그동안의 글 몇편 추려서 다가오는 봄 신춘문예 응모해보세요
감사합니다.
전 그냥 이곳에서 어울려 글 쓰는 것으로
충분히 행복합니다. ㅎㅎ
초등학교때 단체로 저하늘에도 슬픔이..
흑백영화를 보았읍니다.
몇년전에 유툽에서 검색을 하여보니
그영화가 올려져 있어서 옛생각 하며 다시
보았지요.
초등학교 6학년때 꿈에서도 갖고 싶었던
동아전과.동아수련장 받아들고 밤새 들여다
보던 생각 납니다.
잘 읽었습니다.
워낙 그 영화가 유명했었던가 봅니다.
전과와 수련장, 공부 좀 하는 아이들의 필수품이었지요. ㅎ
단체로 그 영화를 본것 같아요!
아니 그보다도 그 제목과 이윤복의 스토리가 뚜렷하게
각인되어 있긴합니다.
어린시절 영화에 대한 그 열정을 조금더 살려주었다면
어쩌면~
마음자리님은 스틸버그 이상의 명 감독이 될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군요!
ㅎㅎ 아이들 성장영화라면 잘 만들 수도 있었겠다 싶네요.
아쉬움까지는 아닙니다. ㅎ
ㅎㅎ정말 기억력이 대단하시군요.
저 하늘에도 슬픔이....
저도 그 영화 보면서 펑펑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누나들과 형들 다 같이 모이면 어릴 때 이야기를 자주 공유하고 나누다보니 더 생생하게 오래 기억되나 봅니다. 슬픔 속에 피어나는 아이들의 삶에 대한 애착 이야기라 사회적 공감이 컸던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꼴통, 그게 니체의 정신이 아닌가 합니다.
한없이 순종적이기만 했던 저는 그러질 못했는데
그래서 진취적이지 못했던 것 같아요..
'무엇이 중헌디! ' 를 생각하게 하기도 하고요.
석촌대형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건강하시지요?
돌아보면 철없이 저지른 일들이
참 많았습니다. 덕분에 추억 글 쓸 소재는 많아졌어요. ㅎㅎ
그 영화가 나왔을 때는
한 참 바쁘게 다닐 때인 것 같았습니다.
제목도 알고,내용도 대충 알고 있었으나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언젠가
그때 그사람?인지
TV프로에서 보았는데
결과도 씁쓸하고,
가난에서 벗어나지를 못한 것 같더군요.
예나 지금이나
사회안전망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설 연휴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많은 고생을 하셨고, 간암인가 간경화로 돌아가셨다 들었습니다.
삶은 참 다양한 형태로 영위되지만 궁극적으론 머물다 가는 단순한 한가지로 귀결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엄마 옆자리를 형에게 양보하고
눈치껏 구석탱이로 가서 자길
참 잘했어요
그 때 그 시절 실감나는 글
잘 읽었습니다 ㆍ
.
지금
영화
벌지 대전투 보고 있는 중에요
막내가 귀염도 받지만 눈치도 빤해서... ㅎㅎ
벌지 대전투, 2차 대전 기갑전투 대작을 보고 계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