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의 길목 갠지스
김 난 석
인도를 찾아 나서기로 한 건 무굴 제국의 타지마할을 보려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제왕 사자 한이 죽은 왕비를 추모하기 위해 폭정을 휘둘러 세운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엔 투명한 대리석에 정교한 양각, 음각과 상감의 기교는 번들거릴망정 인도인들의 보편적 염원이나 정신세계가 어려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신비의 나라 인도를 찾아 나서기로 한 건 찬델라 왕국의 에로틱 조각상을 보려함도 아니었다. 그것은 인도에서 가장 성(sexual)스러운 것이라고는 하나 그들 정신의 성(聖)스러운 것과는 멀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인도를 인간의 원형이 살아 숨 쉬는 곳, 신을 향하는 정신세계의 본향쯤으로 생각한다. 그러기에 인도대륙을 찾아 가장 성스럽다는 곳을 찾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힌두교인들이 성지로 여기는 바라나시와 그곳을 관통하는 갠지스 강을 찾아가는 인천 국제공항 발(發) 비행기는 여덟 시간을 날아 델리 공항을 스치고도 다섯 시간을 더 날아서야 사르나트 공항에 내려앉았다. 오래된 대리석 때깔의 누런 옷을 걸친 사람들이 기웃거리며 저마다 예정된 손님을 맞기에 어수선했지만 하늘은 아무런 표정 없이 우윳빛일 뿐이었다. 저 희끄무레한 회색 뒤편에 인도의 신비가 숨겨있는 것인가? 알다가도 모른다는 인도의 땅에 드디어 첫발을 디딘 감회가 어려 왔다.
새벽 다섯 시, 바라나시의 숙소에서 갠지스 강을 찾아가는 길은 가히 엑소더스(exodus)였다. 버스와 승용차, 자전거 행렬 외에 인파가 뒤섞여 거대한 홍수를 이뤘다. 뿌연 매연이 어둠을 뒤덮고 금속성 경적소리가 귀를 때렸다. 순례자들이 미친 듯 도시를 탈출해 성스러운 강으로 강으로 그렇게 모여드는 것이었다.
결국 차를 저만큼 놔두고 걸어서 가보기로 했다. 여명이 밝아오면서 여기저기 성물(聖物) 쇠똥들이 눈에 띄었고 상가 건물의 셔터 앞이나 좌판대 위에는 담요를 뒤덮고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노숙자들이 이리저리 누워있었다. 그들은 성스러운 갠지스 강 가장 가까이에서 밤을 지새우고, 종당에는 생(生)까지 마감하는 것을 최대의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먼동도 트기 전, 강은 이미 찾아든 순례자와 여행객들로 북적댔다. 강물과 일출(日出)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을 찾기 위해 서성대거나 스스럼없이 옷을 벗고 몸을 적시기 위해 강물에 다가가는 사람들, 나뭇잎에 촛불을 얹어 강물에 띄우며 소원을 비는 사람들, 연신 카메라의 플래시를 터뜨리는 여행자들과 이들에게 토산품을 팔아보려 달려드는 현지 상인들이 서로 뒤엉켜 몸을 부딪었다. 비슈누 신의 화신이라는 소와 개들도 신의 은총으로 인간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를 구가하는 듯 인간들 사이를 어슬렁대며 북새통에 가세했다.
강변 가까이에 아무렇게나 마련된 화장터에는 밤새 타다 남은 시체가 하얀 연기에 휘감겨 마지막 재로 사위어갔고, 강물 저 멀리 아승기, 나유타를 지나 불가사의로 들어서는 항하사(恒河沙)의 모래언덕이 이승을 건너다보는 듯 어슴푸레했다.
드디어 일출이다. 이전에도 항하사의 모래 수만큼이나 되풀이하여 태양은 이렇게 떠올랐으리라. 인간의 영혼들도 그렇게 수없이 하얀 재에 실려 강물을 따라 가거나 항하사의 모래언덕에 가 닿았으리라.
강을 뒤로하고 돌아 나오는 골목길은 온통 신성으로 그득했다. 두 사람이 겨우 어깨를 비킬 좁은 길에 순례자들과 여행자들뿐 아니라 소나 개들이 가며 오며 몸을 부딪고, 갈림길마다 요가(yoga)를 유인하는 간판이 눈에 띄었다. 담벼락의 여기저기엔 시바와 코끼리의 신상이 조각되어 앉아있고 동고리에 노랑 인도 국화꽃을 담아 든 아녀자들은 신에게 헌화할 손님들을 불렀다.
물러서라는 듯한 선소리꾼의 외침에 눈을 돌려보니 들것에 시체를 얹은 일행이 강가로 내달았다. 곧 노천 화장터에서 강물로 씻기고 나서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한줌의 재로 변한 후 갠지스 강에 뿌려질 터였다.
일몰(日沒)에 가까운 갠지스 강은 또 다른 모습이었다. 확성기에서 힌두 음악이 흘러나오는 동안 강변을 따라 여러 개의 제단이 마련되고, 그 앞으로 참례자들이 차곡차곡 자리를 메운 뒤 제주들이 등장하자 하얀 분향 연기 속에 강물의 유구한 흐름을 기원하는 제의가 시작되었다. 인도의 인구 중 8 할을 차지한다는 힌두교인들은 8억 4천의 신을 모시고 살아간다고 했다. 그중 대표적인 신이 창조신 브라흐마와 관리신 비슈누요, 재창조를 위한 파괴의 신 시바이다.
강은 설산(雪山) 히말라야에서 발원하여 장장 이천오백 킬로미터의 갠지스 강변을 적시며 대양에 이른다. 히말라야는 그들에게 시바 신이 거처하는 영산(靈山)이요 하늘에서 제일 먼저 비가 내리는 성스러운 곳이기도 하다. 시바는 결국 성스러운 히말라야에서 성수를 내려 강에 흐르게 하고 만물을 생성 소멸시키면서 생명의 윤회를 주재하는 것이리라.
갠지스 강은 저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물결이 현상이라면 물은 근원이다. 물은 근원이며 본질이기에 생겼다 없어진다거나 깊고 얕음이 없으며 아름답다거나 추하다는 개념도 없다. 이와 달리 물결은 현상이며 실재이기에 시작이라거나 끝이 있고 높고 낮음이 있으며 잔잔하다거나 노도(怒濤) 같다는 감정이 있다. 물결은 물결임과 동시에 곧 물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현상은 바로 근원을 내포하는 것이며 근원은 현상을 있게 하는 바탕이기도 하다. 바로 이때 물결이라거나 현상 또는 실재를 응시하기보다 물이라거나 근원 또는 본질을 응시한다면 시작도 끝도 없는 무한에 다다르며 즐거움과 괴로움을 초월한 소위 열반이라거나 천국을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이 이에 이른다면 기쁨과 슬픔에 쉬이 흔들릴 일이 아니요 삶과 죽음에 깊이 집착할 일도 아니리라.
저들에게 갠지스 강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오늘의 강물은 어제 같이 흐르다가 하늘로 올라 히말라야에 내리고 다시 그 물은 정화되어 내일 또 이 강에 흐르려니, 지금도 그들은 육신과 유골을 갠지스 강에 적시고 띄워 삶과 죽음을 시바신의 파괴와 재창조의 권능에 맡기고 하늘과 산과 강을 거쳐 순환 변전하는 물의 현상에 따라 더 나은 환생을 꿈꾸리라. 그러면서도 그 근원에 머물러 유구히 흐르는 강물처럼 영겁을 살고자 기원하는 것은 아닐는지. 순간의 현상이 아닌 근원에 머물려는 사람들, 그들에게 갠지스 강은 바로 신화의 길목일 터였다.
흐르네
흐르네
흘러서 가네
세월 물 되어
물 세월 되어
돌아가네
돌아가네
돌아서 가네
항하사 모래 톱
해탈된 육신 척척 개켜두고
돌아 돌아 가네
아승기의 별들 고이 내리면
사바의 인연
가만가만 가라앉히며
흐르네
흐르네
흘러서 가네
육탈된 영혼 물위에 싣고
살랑살랑 어르며
흘러 흘러 가네
흐르네
흐르네
흘러서 가네
이승 저승
이승 저승
흘러서 가네. / 졸시 ‘갠지스강 소묘(素描)’ 전문
(갠지스 강역 중 화장터가 있는 풍경이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푸른비님의 여러 편에 걸친 여행기를
인도의 정신 세계, 문명이
한편으로 묶어진 인도입니다.
화답해 주신 글,
다시 정리하며 읽기가 편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석촌님, 설날 잘 지내셔요.
만수무강 하셔요.
네에 고맙습니다.
설 지나고 한 번 뵈어요.
그 동안 소식이 궁금하던 차에
삶과 영혼을 재조명해 보는
인도 기행문으로
이리도 반가운 소식을 주시는군요!
새핸
더욱 건강하시고
복많이 받으세요~^^
네에 모렌도 공
이젠 카페의 원로 중의 원로 반열에 올랐으니
많은 의지가 됩니다.
누가요?
모렌도 공이요.
석촌님 의 글 솜씨에 잠시 이밤에 즐감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건필하세요.
그리고 즐거운 설명절 되세요.
고맙습니다.
네에 선배님..
평안하시지요?
올해도 건강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방편으로 설명하신 물과 물결의 비유에 성현들이 알려주고자 하셨던 지혜가 함축되어 있네요.
인도... 푸른비님의 인도 기행기 덕분에 이십년쯤 전, 일로 남쪽 타밀라두에 한주일 다녀왔던 기억들이 많이 떠올랐습니다.
정성 가득한 여행기에 지혜로운 답글이 화답하는 수필방, 배우고 따를 일들이 많아 참 좋습니다.
거기도 설 기분을 내는지 모르겠네요.
여기는 오늘부터 보름간 조심 모드로 들어가는데요..
평안하시기 바라요~
눈을 감고 글속에 저를 묻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설날 아침에 갠지스강변을 걷고 있는 제 모습에
사~~~알짝 미소를 머금어 봅니다
새해복많이 받으세요
갠지스강 분위기에 관심이 있으신 것 같네요.
고맙습니다.
갠지스 강에서의 힌두교 제례의식과 화장은 인도여행의 하이라이트이죠?
흘려서 가는 우리 삶이 도착하는 곳은 어디일까요?
석촌님의 압축된 인도여행기 감사합니다.
네에, 그런 것 같기도 하지만
인도는 참 신기하기만 해요.
잘 읽었습니다.
다시 새로운 날이 시작이되니
더욱 건강하시고 행복한 나날 되세요,
네에 올해도 평안하게 지냅시다..
올해에도 강녕하시고
건필하시기 바랍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네에 날씨가 포근한데
오후부터는 급강하 한다는 예보네요.
잘지내세요.^^
신화를 품은 갠지스 강의 풍경
깊은 사색에 잠기게 하는 이야기에
감동했습니다.
새해에도 지금처럼 늘 건강하시고
복 많이많이 받으옵소서.
네에 잘 지내지요?
새해 들었으니 이번 추위가 물러나면
차라도 한 잔 해요.
@석촌 옙^^ 선배님 따뜻한 봄날이 오면
수필방 정모 기대 만땅이예요.
@나무랑 ㅎㅎ
삭제된 댓글 입니다.
그랬군요.
연락했더라면 차라도 한잔
했을텐데요.
@석촌 딸.사위와 함께 있어서
개인시간이 안 났어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