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내려다본 절해고도 여서도 풍경. 여서도는 완도와 제주도의 중간쯤 바다에 있다.
청산여수(靑山麗水). 산과 물이 푸르고 아름답다는 이 말은 청산도와 여서도에서 비롯한 말이다. 청산도가 산과 들, 바다가 온통 푸르고 아름다운 섬이라면 여서도는 물이 좋고, 바다가 투명한 섬으로 통한다. 한마디로 청산도는 산이 좋고, 여서도는 물이 좋은 곳이다. 옛날 사람들은 여서도를 일러 “여자가 애 배서(배어) 나오는 섬”이라고 했다. 옛날에는 여서도가 지금처럼 매일 배편이 있는 것도 아니고, 거친 바다 날씨에 따라 오랜 동안 섬에서 발이 묶일 때가 많았기 때문에 생긴 말이다.
여서도 인근 바다에 물고기처럼 지나가는 어선들.
또한 과거에는 제주도의 잠녀들이 여서도로 원정 물질을 오는 경우가 많았다. 한번 섬에 오면 잠녀들은 상당기간을 머물러야 했으니, 제주도 처녀 잠녀와 여서도 총각 어부가 눈이 맞지 말라는 법도 없었다. 실제로 여서도에는 제주도에서 시집왔다는 할머니들이 적지 않은 편이다. 여서도에 물질 왔다가 아예 여서도 사람으로 눌러앉은 셈이다. 이래저래 여서도는 오래 전부터 오가기가 쉽지 않은 낙도였고, 지금도 하루에 한번 배가 다니기는 하지만, 한번 가려면 3시간여의 뱃시간이 걸리는 뭍에서 꽤나 멀고, 불편한 섬에 속한다.
여서도 여서분교 오르는 길에 만난 섬 사람들.
완도항에서 출발하는 여서도행 철부선은 버스로 치면 완행이나 다를 바 없다. 철부선은 장도, 소모도, 대모도(모서리와 모동리를 다 들러 간다)를 차례로 들렀다 갈 뿐만 아니라 올 때는 청산도에서 15분 넘게 정박했다 간다. 그러나 여서도행 배편이 닿는 섬들이 도서민이 많은 섬들이 아니어서 대체로 배는 한산한 편이다. 내가 여서도행 배를 탄 날에도 평일이긴 했지만, 고작해야 손님이 열댓 명에 불과했다. 그나마 손님이 장도에 내리고, 소모도에 내리고, 대모도 모서리와 모동리에 내리고 보니 여서도행 손님은 고작 세 명만 남았다.
당집 언덕에서 바라본 여서도 마을 풍경(위). 물맛 좋기로 소문난 여서도의 공동우물(아래).
“여서도는 마지막 남은 청정지역이에요. 요즘엔 낚시꾼들이 더러 와서 물을 흐려놓고 있지만서두....” 배에서 만난 외항선원 출신의 말이다. 그는 오랜 동안 외항선을 타고 전세계를 떠돌다 5년 전 우연히 여서도에 왔다가 다른 것 다 제쳐두고 물이 좋아 여서도에 머물게 되었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바닷물만 좋은 것이 아니라 산에서 내려오는 계곡물과 계곡에서 솟아나는 샘물이 오히려 바닷물보다 좋다고 한다.
여서도의 명물, 돌담 골목과 밭돌담.
배안에서 만난 또 한 명의 할머니는 전직 해녀였다. “그럼 지금은 여서도에 해녀가 없나요?” 할머니에 따르면 아직도 여서도에는 3명의 해녀(완도에서는 해북녀라고도 한다)가 있다고 한다. 이즈음 해녀들은 문어도 잡고, 전복과 성게도 딴다. 해초로는 미역을 많이 딴다. 그러나 여서도에 남은 3명의 해녀는 거의 노인들이어서 여서도의 마지막 해녀가 될 것이 분명하다. 2시간 30분이나 걸리는 여서도 뱃길은 짙은 해무로 인해 여서도 선착장에 다 와서야 여서도의 맑은 바닷속과 산자락을 따라 고성같은 돌담을 두른 마을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여서도 섬마을에 핀 유채꽃.
섬에 내리자마자 나는 미로와도 같은 돌담길을 되는대로 올라갔다. 여서도 돌담은 참 기막힐 정도로 구불구불하다. 여름철 태풍과 겨울철 삭풍이라는 자연의 재앙을 견디기 위해 어쩔 수 없는 낙도의 환경이 만들어낸 생활의 예술이 바로 돌담인 것이다. 그러나 애당초 이 돌담은 미학적인 관점보다는 기능적인 생각에서 비롯한 지극히 반미학적 구조물이다. 오로지 바람으로부터 집과 식구, 살림을 보호하고자 한 지극히 인간적인 의지가 오늘날 여서도의 돌담을 미학적인 삶의 예술로 만들어낸 셈이다.
마지막 여서분교 아이들. 2명이 전교생이었는데, 이중 한 명은 이미 졸업했다.
나는 미로와도 같은 돌담길을 따라 걷는 동안 어느 새 왔던 곳을 여러 번 와야 했고, 53가구에 이르는 마을을 샅샅이 둘러본다는 것이 해 지기 전에는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토록 복잡하고, 이토록 원형이 제대로 남은 돌담은 내가 다녀본 섬 가운데 으뜸이라 할 만하다.
쓸쓸하게 걸린 여서분교 팻말과 교실 앞의 앉은뱅이 걸상.
돌담길을 구불구불 돌아 올라간 마을의 꼭대기쯤에는 옛 모습이 제대로 남은 오래된 옛집도 만날 수 있다. 방문은 자물쇠로 잠겨 있어 사람이 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삭은 나무 기둥과 오래된 흙돌벽과 벌레 먹은 부엌의 판자문이 집의 오랜 세월과 내력을 말해준다. 마을에는 빈집이 허다하다. 그 중에는 옛날의 초가지붕이 삭을 대로 삭아서 바다 쪽으로 거의 쓰러질 듯 몸을 기울인 빈집도 있다.
여서도 포구에서 다시마 작업을 하는 사람들.
산에서 흘러내린 계곡가에는 맑은 물이 솟아나는 공동우물이 있다. 마을에서는 아직도 이 물을 식수로 쓰고, 우물가에 나와 빨래도 한다.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는 이 샘물은 참으로 오랜 동안 여서도 사람들의 생명수가 되어왔다. 마을의 맨 꼭대기에는 마을에서 ‘가장 넓은 공터에 가장 큰 집’이라 할 수 있는 청산초등학교 여서분교가 있다. 2005년까지 이곳에는 2명의 학생과 1명의 선생님이 있었다. 폐교처럼 남은 학교. 학교 울타리에 심은 동백은 꽃을 떨구고, 운동장을 빙 둘러선 벚꽃도 거의 다 졌다.
폐가로 남은 오래된 빈집. 이렇게 무너지고 쓰러져가는 것이 섬의 현실이다.
저녁이 다된 선창에는 저만치 매인 어선들마다 그물을 수리하는 어부들의 손길이 바쁘다. 물 맑은 바다는 그런 선창의 풍경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한쪽에서는 어선에서 방금 내린 다시마를 포구 바닥에 널어말리는 작업이 한창이다. 낚시꾼들은 등대 앞에 진을 치고 저녁놀을 배경으로 낚시에 빠져 있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나는 그저 한참이나 황혼 속에 빛나는 포구와 저물어가는 바다를 본다. 외롭고 적막하기만 하다.
첫댓글 아무리 아름답고 물좋은 섬이라 해도 사람이 많이 살지않아 허전한 곳이라는 마음. 초가집형체처럼 지키고 계신 어르신들의 안스러운 모습. 안타까워요. 잘 보았어요. 형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