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OB 맥주 광고, 당시 컬러TV의 보급은 맥주의 황금색과 거품을 그대로 표현해 맥주의 점유율을 올리는데 영향을 끼쳤다는 평이다.
맥주는 해방 이후에도 꾸준히 고급 품목에 속했다. 주세만 해도 160%로 주요 세수원 중 하나일 만큼 존재감도 특별했다. 최고의 추석 선물로도 꼽혔다. 맥주 TV 광고는 승마, 조정, 테니스 등 고급 스포츠와 늘 함께했다.
한국 맥주는 초창기 크라운 맥주와 OB 맥주가 주도했다. 1950년대까지 크라운 맥주가 OB 맥주보다 점유율이 높았다. 하지만 크라운 맥주는 무리한 대리점 확장으로 부도가 나고, 1960년대에 한일은행의 관리 대상이 됐다.
부산의 대선발효(현 대선주조)가 인수하면서 시장 점유율을 40%까지 이끌었다. 나머지 60%는 OB 맥주가 차지했다. 결국 이때까지만 해도 OB 맥주와 크라운 맥주가 맥주 시장 전체를 차지하는 양강 구도였다.
1975년에 맥주 시장에 도전장을 내는 회사가 하나 생긴다. 독일의 이젠벡(Isebeck) 맥주와 기술 제휴로 만들어진 한독(이젠벡) 맥주다. 한독 맥주는 바로 15%의 점유율을 기록하는 등 선풍을 일으킨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 이젠벡 맥주의 “이제부터는 이젠벡입니다”라는 광고 문구였다. ‘OB 맥주나 크라운 맥주는 이제는 너무 많이 마셨으니 새로운 것을 즐기라’는, 당시로는 도발적인 내용이었다.
이에 OB 맥주도 대응하는 문구를 만든다. “친구는 역시 옛 친구, 맥주는 역시 OB”이다. 옛 친구와 같은 맥주가 최고라는 뜻이며, 다른 맥주를 마시는 것을 은근히 친구를 저버리는 듯한 느낌을 전했다.
이후 한독 맥주는 무리한 정부 관료들에 대한 로비와 주권 위조 등으로 결국 2년 만에 대표가 구속되는 등 파산에 이른다. 결국 크라운 맥주에 인수합병된다. 이로써 한국의 맥주 시장은 다시 양강 구도로 흘러가게 된다.
1970년대까지 한국의 대표 술은 소주도 맥주도 아닌, 막걸리였다. 특히 1974년도에는 막걸리가 총 주류 출고량의 74% 이상을 가져가면서 국민 술로 여겨진다. 하지만 막걸리는 관리의 어려움, 적은 자본으로 인한 마케팅의 부재 등으로 인기가 시든다.
여기에 1980년대 보급된 컬러 TV에서 맥주의 황금색과 거품이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그러면서 OB 맥주는 강력한 마케팅을 진행하는데, 기존의 고급술의 이미지에서 회식으로 즐기는 광고를 선보인다. 업무가 끝나면 모두 시원한 맥주를 마시러 가는 풍경을 연출한 것이다.
이를 통해 OB 맥주는 고급 시장에서 누구나 다 마실 수 있는 거대한 대중 시장으로 본격 진출한다. 반면 크라운 맥주는 여전히 고급 이미지를 풍기며 즐기는 콘셉트를 유지한다. 옛것을 버리지 못하는 모습으로 이어가는 것이었다.
결국 1980년대 말에는 OB 맥주는 80%, 크라운 맥주는 20%의 점유율을 가졌고, 서울에서는 아예 OB 맥주가 90%를 차지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당시 OB 맥주는 크라운 맥주를 제치고 시장 점유율 100%를 만들 수 있었으나, 독과점법에 저촉되는 것을 우려해 일부러 크라운 맥주에게 약간의 시장을 양보했다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1991년, 한국 맥주 역사에 엄청난 지각변동을 일으킨 두산전자의 낙동강 페놀 사건이 터진다. OB 맥주의 전성시대가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명욱 주류문화칼럼니스트&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