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7일 하마스(Hamas)의 기습을 허용한 이스라엘군은 아직까지 가자지구(Gaza Strip)에 대한 본격적인 지상작전을 시작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스라엘군이 지상작전을 수행한다면 가자지구 지하에 구축된 약 500km의 가자 메트로에서의 전투가 불가피할 것이기 때문이다. 보다 현실적으로 말해본다면 이스라엘군이 이곳으로 지상병력을 투입한다면 인질과 민간인을 포함한 적지 않은 희생이 전망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가자 메트로는 이스라엘군의 과감한 상황판단, 결심 및 대응을 억제하는 하마스 저항의 최후 보루이다.
<영상 1> 하마스가 구축한 가자 메트로 모습
역사적으로, 약자는 강자의 감시와 화력자산을 회피하기 위해 지하를 활용해왔다. 이와 같은 상황은 한반도에서도 발생했다. 6·25전쟁 당시 중공군은 현재의 DMZ에 다다르자 유엔군의 강력한 화력을 회피하기 위해 지하장성을 구축했다. 이 지하장성은 DMZ 북쪽에 15∼25km의 종심으로 서해에서 동해까지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고, 그 길이는 약 5,000km에 달한다. 이후 북한은 한미 연합군의 첨단화된 감시 및 화력자산을 회피하기 위해 ‘전 국토의 요새화’를 추진하여 북한의 주요 도시와 군사시설의 상당 부분은 지하화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대량살상무기(WMD)는 깊숙한 산악의 지하시설에 은·엄폐되어 있다. 게다가 산악지역의 주요 목 지점에 위치한 방어진지와 포병진지는 美 육군이 2020년 발간한 North Korean Tactics에서처럼 기본적으로 지하시설과 함께 요새화되어 있다. 즉, 현재 앞서 언급한 가자지구의 상황이 한반도에도 데자뷰되고 있는 것이다.
|
<위에서 바라본 모습> |
|
<위에서 바라본 모습(지하 투시)> |
|
<측면에서 바라본 모습> |
<그림 1> 북한군의 지탱점과 포병 갱도진지가 지하터널로 연결된 모습
* 출처 : US Army, NORTH KOREAN TACTICS(ATP 7-100.2), July 2020, pp. 4-38∼4-40.
그렇다면 이런 지하전투에 대한 해법은 없는 것일까? 美 육군은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2019년 Subterranean Operations라는 교범을 발간했다. 여기에는 전투원과 무인체계의 협업(Manned & Unmanned Teaming)을 바탕으로 지하전투에 관련된 싸우는 방법, 무기체계, 조직·편성 등이 제시되어 있다. 美 육군은 이 교범을 바탕으로 예하부대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종종 SNS에 공개하고 있는데, 주한 美 육군은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는 수단의 하나로써 지하작전 훈련을 활용하고 있다. 즉, 美 육군은 지하작전을 작전의 한 형태로 분류하여 새로운 전쟁에 대한 대비태세를 확립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림 2> 2023년 1월, DMZ 인근 지하시설에서 지하작전 훈련을 실시하고 있는 미 2사단 예하 장병들
* 출처 : https://www.nknews.org/2023/01/us-rok-forces-carry-out-anti-nuclear-weapon-drills-near-north-korean-border/
이런 美 육군보다 앞서 가시적인 성과를 달성한 사례도 있다. 그중 하나가 베트남 전쟁 시 주월 한국군 예하의 수도사단이 수행한 탐색작전과 터널전투이다. 당시 수도사단 예하부대들이 중대전술기지 중심의 민사·심리작전으로 지역 주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자 베트콩들은 자연스럽게 주민들과 분리되었다. 주민들은 게릴라들의 정보, 병력 및 보급의 원천인데, 주민들로부터 분리된 베트콩들은 점차 힘을 잃어갔고, 결국 전투력을 복원하면서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 산악지역의 근거지로 철수했다. 수어지교(水魚之交)의 관계가 끊겨 물(주민)과 물고기(베트콩)가 분리된 것이다.
수도사단은 이런 징후가 포착되면 곧바로 베트콩의 근거지를 소탕하기 위한 탐색격멸작전에 돌입했다. 그런데 문제는 작전지역 내에 흩어져 있는 마을들과 이곳들을 중심으로 복잡하게 구축된 지하터널(Cu Chi)이었다. 수도사단은 이와 같은 난제를 극복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전투수행방법을 적용했다.
<그림 3> 베트콩들이 구축한 구찌 터널 모습
* 출처 : https://www.cabinetmagazine.org/issues/30/pauser.php
우선, 작전지역 내 주민들을 소개시키기 위해 경비행기와 지포탄(紙砲彈)으로 전단지를 살포했고, 지상과 공중에서의 방송으로 베트콩들의 투항을 권고함으로써 이들을 심리적으로 압박했다. 이후 근거지를 포위하고 은·엄폐한 베트콩들을 동시에 탐색할 수 있도록 작전지역을 중대 단위로 할당했다. 작전지역을 순차적으로 소탕해나갈 경우 지형에 밝은 베트콩들의 철수 가능성이 높아져 실제적인 소탕이 제한되기 때문이었다.
이어서 각 중대는 각자의 작전지역으로 신속하게 기동한 후 탐색작전을 시작했다. 하지만 수도사단 예하 중대들은 쉽게 구찌 터널의 실체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이들은 탐색작전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할당받은 지역을 샅샅이 훑고 또 훑었다. 야간에도 철수하지 않고 각자의 작전지역에서 원형으로 된 전술기지를 편성하고 주변에 국지경계부대를 배치했다. 베트콩들이 야간을 이용하여 기습하거나 작전지역을 이탈하는 것을 원천봉쇄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Search & Stay’ 방식의 탐색은 전술(前述)한 투항을 권고하는 심리전과 함께 지속되었고, 소개된 주민들과 베트콩 포로들로부터 획득한 정보가 더해지자 근거지에 형성된 지하세계는 서서히 그 실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구찌 터널 속에 은·엄폐한 베트콩들을 격멸하기 위한 소탕작전의 여건이 조성된 것이다. 하지만 곧바로 구찌 터널 내부를 소탕할 수가 없었다. 지형을 알 수 없는 구찌 터널 내부에는 베트콩들이 설치한 덫, 부비트랩, 급조폭발물 등이 즐비할 것으로 예상되어 인명 피해가 불가피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수도사단 예하 1연대 3대대(재구대대)는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터널전투 수행방법을 ‘재구3-1호 작전(1966. 4. 20)’에서 선보였다. 재구대대 예하 11중대는 우선 식별된 터널 입구에 유색연막을 피운 후 분무기(Compressor)로 유색연막이 터널 안으로 유입되도록 했다. 잠시 후 터널 입구와 떨어진 여러 곳에서 유색연막이 흘러나왔다. 이곳들은 지하의 구찌 터널과 연결된 숨통(환기구)이거나 은·엄폐된 지하통로였다. 11중대 3소대는 터널 입구 서쪽을, 화기소대는 동쪽을 신속히 포위하고, 환기구와 지하통로 입구를 철판으로 틀어막고 그 주변에 매복했다.
<그림 4> 터널 안으로 유색연막 등을 확산시키는 분무기 ‘Mity Mite’
* 출처 : https://s3-ap-southeast-2.amazonaws.com/awm-media/collection/P01595.011/screen/3930123.JPG
잠시 후 지하의 베트콩들은 철판으로 틀어막은 서쪽과 동쪽의 터널 입구로 탈출을 시도했다. 이에 서쪽의 3소대는 분무기를 이용하여 유색연막 등을 추가적으로 터널 안으로 확산시켰고, 이어서 3소대 예하 분대들은 교대전진으로 서쪽 터널을 소탕하기 시작했다. 반대편 동쪽의 화기소대도 3소대와 같은 방법으로 터널 안의 베트콩들을 소탕해나갔다. 이처럼 3소대와 화기소대가 시간차를 두고 공격한 것은 터널 내부에서 상호 오인사격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터널 내부의 베트콩들은 최초 유색연막을 피운 터널 입구로 탈출을 시도했고, 그곳에서 매복하고 있던 2소대와 치열한 교전 끝에 격멸되었다. 이와 같은 11중대의 터널전투 전투수행방법은 최소의 전투 손실로 최대의 전투 효과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 입증되어 곧바로 주월 한국군의 터널전투 관용전술로 채택되었다.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인들을 소개시키면서 공군력으로 하마스의 가자 메트로를 연일 타격하고 있다. 그리고 하마스의 전투준비를 방해할 목적으로 소규모 기갑 및 기계화부대를 투입하여 요란작전을 전개하고 있다. 또한, 특수부대들은 인질 구출과 하마스 지도부를 제거하기 위한 작전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유·무인 복합전투체계로 무장한 지하전투 전문 특수부대인 야할롬(Yahalom)의 예행연습 영상도 공개되었다. 이것들은 강공으로 지하 소탕작전을 전개하기 위한 여건 조성일 수도 있다.
<영상 2> 이스라엘 지하전투 전문부대 야할롬(Yahalom) 훈련 영상
하지만 가자지구는 서울시 반 만한 크기에 약 240만 명이 거주하던 곳으로 인구와 건물의 밀도도 대단히 높은 지역이다. 이로 인해, 팔레스타인인들이 모두 소개되지 않는 이상 민간피해는 발생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와 같은 공군과 지상군의 작전으로 적지 않은 팔레스타인인 사상자가 발생했고, 하마스는 이를 SNS에 실시간 공개함으로써 국제사회를 자극하여 이스라엘군의 행동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다. 어쩌면 이스라엘군이 본격적인 지상작전을 시행하지 않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가자지구 지하에는 하마스의 저항 거점이 드넓게 형성되어 소탕작전 시 인명 피해가 불가피하고, 이로 인해 작전의 장기화를 초래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도전(Challenge)에 직면한 이스라엘군에게 앞서 제시한 주월 한국군의 탐색작전과 터널전투 사례는 다음과 같은 시의적절한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다. 첫째, 가자지구 안의 팔레스타인인들을 최대한 소개시키고 투항을 권고하는 심리전을 병행한다면 이들과 수어지교 관계에 있는 하마스의 전투력은 급격히 저하될 수 있다. 둘째, 이스라엘 지상군이 소부대 단위로 가자지구를 분할하여 동시에 점령한 후 주·야간 탐색작전을 반복적으로 전개한다면 하마스의 지상활동을 통제할 수 있다. 셋째, 유색연막이나 CO2 농도 측정 센서를 무인체계에 장착하여 활용한다면 가자 메트로의 실체를 파악하여 지하전투를 수행하는 아군의 생존성을 강화하면서 전투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그림 5> CO₂센서를 이용하여 측정한 도시의 CO₂농도
* 출처 : https://news.asu.edu/sites/default/files/hestiaimage1_0.jpeg
역사가 반복되듯이 전쟁과 전투수행방법도 반복된다. 따라서 앞서 언급한 주월 한국군의 탐색작전과 터널전투 수행방법은 곧 약 500km에 달하는 가자 메트로에서 결전을 준비하고 있는 하마스를 상대해야 하는 이스라엘군에게 앞선 역사, 전쟁, 또는 전투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선택은 이스라엘군의 몫이다.
장차 한반도에서는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