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유도 구경
2018. 5. 금계
목포제일중학교 뒷산 이름이 ‘코끼리산’이다. 함께 근무하던 교사들의 모임이 ‘코끼리떼’다. 5월 11일, ‘코끼리떼’는 선유도로 가는 렌터카에 올랐다.
나는 왜 역마살이 끼어서 차창을 스쳐 가는 저 김제 부안 언저리의 들판만 보면 몸살이 나도록 기쁜가. 왜 수학여행 가는 학생처럼 마음이 들떠서 어쩔 줄 몰라 하는가.
드디어 새만금방조제에 접어들었다. 멀리 고군산열도가 보인다.
신시도로 꺾어 들어가자 고군산군도다. 예전에는 그저 지도에서만 아, 저런 곳이 있구나, 저기도 한 번 가보면 좋겠구나, 그림의 떡이었는데 겹겹이 포개진 섬들이 눈앞에 나타나자 가슴이 쿵쿵 뛴다. 군산에서 서남쪽으로 50킬로 떨어진 곳, 전에는 배를 타고 고생해야 들어갈 수 있었지만 이제는 새만금 방조제를 쌓고 신시도와 무녀도 사이, 무녀도와 선유도 사이에 다리가 놓여 천혜의 관광지를 손쉽게 구경할 수 있게 되었으니 감개가 무량하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고군산군도는 유인도 16개와 무인도 47개 도합 63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단다. 단도, 말도, 보농도, 명도, 광대도, 방축도, 횡경도, 계도, 야미도....... 신시도, 무녀도, 선유도, 장자도, 대장도, 흑도, 곶리도, 장구도, 무삼섬.......
코끼리떼는 신시도 숙소에 여장을 풀어놓고 선유도로 들어간다. 선유도, 얼마나 경치가 아름다웠으면 신선들이 노닐었을까.
원래는 산들이 첩첩 많이 모여서 선유도를 군산(群山)이라고 불렀는데 진포가 군산으로 개명하면서 고군산(古群山) 군도라 부르고 선유도라 불리게 되었단다.
선유도 망주봉(117m)를 보자 심장에 제세동기 충격을 맞은 듯 깜짝 놀랐다. 오메, 오메, 한국에도 이토록 징허게 멋진 산이 있었당가. 이국의 낯선 땅에 이른 듯 신선한 느낌이었다.
금요일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선유도에는 차량과 관광객이 붐볐다. 한쪽에서는 날이 갈수록 폭주할 관광객들을 위하여 도로공사가 한창이었다.
길가에 해당화가 예쁘게 피었다. 달리는 차 안에서 찍어서 흐릿하게 나왔다.
선유도, 바닷가 마을이 정겹다.
선유도 끄트머리 ‘밀려오는 파도소리 펜션’의 예쁜 색깔
‘밀려오는 파도소리 펜션’ 부근의 구비치는 해안선
망주봉의 뒤통수.
해 저물녘 선유도 백사장
선유도를 돌아다닐 수 있는 탈것 - 자전거, 오토바이, 삼륜차.
주 선생 말에 의하자면 삼륜차는 균형 잡기가 어려워 잘 뒤집힐 염려가 있단다.
선유도에서 바라다 보이는 장자도 대장봉(142m). 가보지는 않았지만 이탈리아의 어떤 섬이 저만큼 근사하게 생기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바다로 간 코끼리떼. 모두 11명인데 아직 박 선생과 안 선생이 오지 않았다.
코끼리떼 막내둥이 박 선생.
“어야, 자네 50 되면 함께 늙어가니까 나하고 벗하세.”
그랬는데 벌써 그도 환갑이 가까워진단다.
“어야, 50 넘었으니까 이제 나하고 말 트세.”
박 선생은 껄껄 웃으면서,
“그래도 그러면 안 되지라우.”
눈알을 부라린다.
선유도 해질녘. 저 멋스런 바다로 부서지는 수수한 햇빛을 바라보고 있는 한 아직 우리는 살아 있다.
‘찬양하라, 노래하라, 땅 위의 기쁨을.’
신시도 숙소에서 광어회를 즐기는, 진시황을 능가하는 호화찬란한 만찬.
참고로 이 민박집은 하룻밤 자고 (큰방 두 개에서) 세 끼 먹고 낚싯배 한 번 태워주는데 1인당 10만 원 (단 열 명 이상, 100만 원 넘겨야 한다는 조건)이란다.
서울에서 늦게 온 박 선생.
늦게 온 안 선생.
코끼리떼의 야간경기 인기종목 ‘이랴, 워’
숙소 주인이 낚싯배 선장이었다. 일곱 시에 부랴부랴 아침밥을 먹고 여덟 명이 낚시질을 떠났다. 부두로 나가는데 차 앞 유리에 빗방울이 달라붙었다.
누군가 고기 많이 낚는 즐거움을 이야기하자 내가 찬물을 끼얹었다.
“어야, 한용운 씨 시 제목이 뭔 줄 아는가? ‘알 수 없어요.’라네.”
낚싯배가 기다리는 나루터로 갔다. 흩날리는 가랑비에 흐릿하게 가린 채 멀고 가까운 곳으로 겹겹이 포개진 신시도 언저리의 나지막한 산들이 고군산 군도의 아기자기하고 애틋한 정경을 실감나게 보여주었다.
비만 내리면 괜찮은데 바람까지 거세게 불었다. 배는 제멋대로 뱅뱅 돌고 물살이 거세게 흘러 낚싯줄이 마구 뒤엉켰다. 도저히 낚시질을 이어나가기 어려운 형국이었다. 한 시간 남짓 헤매다가 결국 낚시질을 접고 선실로 들어갔다.
별 수 없이 터덜터덜 민박집 숙소로 돌아왔다.
이 날 조과는 우럭(조피볼락) 두 마리와 노래미(황석반어) 한 마리, 총 세 마리. 가운데 유 선생이 들고 서 있는 작은 노래미를 내가 낚았다. 그래도 물속에서 낚싯바늘을 따르르륵 잡아 흔드는 앙증맞은 녀석의 손맛이 오랜만인지라 무척 즐거웠다.
나는 예전에 고흥에서 붕장어를 하룻밤에 칠십 마리, 완도에서 상사리(참돔 새끼)를 하루에 칠십 마리나 잡아본 경험이 있다. 하지만 바다낚시 조황은 날마다 변화무쌍하여 예측하기 어렵다. 어떤 선장은 말했다.
“바다 날씨 좋은 것하고 여자 웃는 것은 믿지 말아야 써.”
빗방울이 조금씩 흩날리는 가운데 신시도 숙소에서 바라다보는 앞바다는 까마득히 애상에 잠겨 있다.
슬슬 떠날 채비를 꾸린다. 참 새롭고 산뜻하고 신비한 고군산군도(古群山群島) 1박2일 여행이었다.
새만금 방조제 준공과 연륙교 연도교로 교통이 편리해진 덕분에 새로운 관광지로 급부상한 환상적으로 아름다운 선유도를 아직 못 가보신 분들은 꼭 한 번 가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