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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문화관광해설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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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후기 스크랩 안동 하회마을 -의성김씨 종택 이야기
목포 전영자 추천 0 조회 33 13.05.01 16:3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안동 의성 김씨 이야기임다.
  
 내앞에 살던 66세 백하 김대락(1845~1914)은 1910년 조선이 일본 식민지가 되자 그 해 12월24일 만삭인 손부와 손녀를 델고 서간도로 떠났어요.
식민지에서 애기 낳믄 자동으로 일본신민이 되야븐께 치욕스러서 그랬다요.
《백하일기》을 보면 유하현으로 가는 중에 1911.2.2 애기가 태어났고 23일에도 태어났다. 엄동설한에 난산을 했다. 버선과 신발이 얼고 손발이 얼어서 터졌다고.
증손자가 중국서 태어났으니 통쾌한께 '쾌당'이라 하고, 외증손은 고구려 고주몽 고장에서 태어났으니 '기몽'이라 이름지었다요.
그라고~, 백하의 행동을 보고 내앞 22가구 50여 명이 만주로 건너 갔다고 하요.

'갈매기의 꿈'에 조나단이란 그넘은 해변에 새우깡이나 받아먹고 노는 아이가 아녀요잉.
꿈을 찾아서 높이 멀리 날아뎅기죠.
그넘은 여러 갈매기를 걱정시키면서도
목적이 있응께 항로 수정을 안하거등요.

안동 의성 김씨네도 그랬?가 봐요.
그란디요~, 딸이 시집가믄 출가 외인이라고 신경끄고 살던 그 시절에 외손녀까지 델고 고생고생하셨다네요.

 

아래 지도에서 안동김씨 종택은 봉정사권역에 있습니다. 


 

 

 

 

 

학봉 김성일과 서애 유성룡은 퇴계 이황의 양대 제자이며,
학봉 김성일은 1590년 임란 직전에 조선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와서
"왜는 조선을 침공할 의사가 없습니다"라고 했었다.
김성일은 1593년 나주 부사로 부임하여 3년 간 지냈었다.
그가 나주에 최초로 세운 서원의 이름이 《대곡서원》이여요.(후에 경현서원으로 바뀜)
나주시 노안면 금성산 기슭에 세운 대곡서원은 호남의 선비문화와 영남 퇴계철학이 만나는 장이 된거지요.^^.
...
(호남지역은 누정 중심의 선비문화가 발달 됨)
*누정 ㅡ 문화가 발달했고요,
*서원 ㅡ 토론했던 주제가 철학이라요.
학봉은 나주 사직단 위판이 불에 타 그 책임을 지고 나주목사직에서 사직했다요. 
(정보 : 우리나라 최초 안경을 썼던 분이 학봉인디요. 1590년 일본에 다녀오면서 썼다네요.)

 

 

 **2013 하회마을 활용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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