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은 우리 민족의 꽃씨와도 같다. 우리 민족이 가는 곳이면 어디서나 꽃을 피운다. 그리고 그곳의 토양에 맞게 다양한 내용의 노랫말에 녹아든다. 하지만 아리랑에는 늘 '아리랑 고개'가 등장한다.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라는 능동형이 있는가 하면,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라는 수동형도 있다.
우리 민족에게 아리랑 고개는 무엇일까.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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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는 산을 모태로 한다. 산이 유달리 많은 우리 나라는 옛날부터 산을 신성시하고 산에 대한 믿음 또한 강했다. 단군이 내려온 곳을 묘향산 또는 구월산이라 하고, 산 곳곳에 국사봉을 두어 산을 신성시하기도 했다. 또 기우제(祈雨祭)도 산에서 지낼 만큼 산은 절대적이고 신성한 곳이었다.
(오른쪽 사진은 화가 이인성의 아리랑 고개) 교통이 수월해지기 전까지 사람들은 신성한 산을 넘어 다니지 않으면 안되었다. 마을과 마을을 질러갈 수 있는 산을 '고개'라고 해서 부르고 산의 일부로 여겼다. 고개는 인적자원이나 물적자원이 넘나들고 군사적 관문 구실을 했기에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던 곳이기도 했다.
고개는 그 너머의 다른 미지의 세계로 가는 통로이기에 언제나 두려움과 기대감이 교차하는 곳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고개 마루에 서낭당을 세워 신성시했고, 장승을 세우거나 돌탑을 쌓아 마을의 경계이자 수호신으로 여기며 넘어갈 때 마다 안녕을 빌곤 했다.
우리 나라의 고개는 꼬불꼬불한 굽이가 많다. 그래선지 고개를 이야기 할때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는 뜻인 아홉수를 써 아홉 굽이, 아흔아홉굽이, 열두 고개라는 상징적인 수가 따른다.
아리랑 고개는 열두나 고갠데
넘어 갈 적 넘어 올 적 눈물이 나네
우리 조상들은 고개를 오르내리는 것을 인생에 비유했다. 아리랑 고개를 열두 고개로 표현하는 것도 시련과 고난의 연속인 인생을 표현한 것이다. 12수는 12지(十二支)와 일년 열두달을 상징하는 수로, 우리 민족이 저승에 이르기 위해 지나야 하는 열 두 대문을 상징하기도 한다. 열 두 대문은 지날 때마다 갖가지 시련이 있으며, 통과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으로 여겼다.
아리랑 고개는 왠 고갠가
넘어갈적 넘어올적 눈물이 난다 〈해주아리랑〉
괴나리 봇짐을 짊어지고서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월강곡〉
울며 넘던 피눈물의 아리랑 고개
한번가면 다시 못올 탄식의 고개 〈기쁨의 아리랑〉
아리아리랑 아리랑 고개는 혁명의 고개 〈혁명의 아리랑〉
쓰라린 가슴을 웅켜쥐고서
백두산 고개를 넘어 간다 〈영일 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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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의 삶 속에서 아리랑 고개는 좌절과 시련의 역사, 그리고 이를 극복한 역사를 드러내주고 있다. 아리랑 고개는 괴나리봇짐을 짊어지고 넘던 고개였고, 눈물을 뿌리며 넘던 고개이기도 했다. 백두산을 넘나들며, 두만강과 앞록강을 넘어 일제와 싸우는 투사들에게는 혁명의 고개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에는 실존의 고개이든 상징의 고개이든지 아리랑 고개가 많다. 또 일제강점기때는 이를 주제로 한 영화가 만들어져 민족의 염원을 상징적으로 그리기도 했다.
일제 때 영화 <아리랑고개>홍보전단 아리랑 고개는 슬픔에서 기쁨으로, 좌절에서 극복으로, 어둠에서 밝음으로 넘어가는 인생의 분수령이라고 할 수 있다. 수많은 아리랑 가사를 보아도 "아리랑 고개로(를) 넘어간다"고 했지, 넘어보니 어떻더라는 내용은 없다. 우리 민족의 삶 속에서의 아리랑 고개는 결국 자신들이 처한 삶 속에서 꼭 넘어서야만 하는 현실과도 같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가거라
아리랑고개는 이전의 슬픔이나 탄식을 넘어 새로운 세계를 추구하는 약동의 분수령이기도 하다. 오늘의 삶 속에서도 아리랑 고개는 미지의 세계이자 불멸의 세계로 자리하고 있다.
글/진용선(정선아리랑연구소장)
아리랑을 아시는가?
아리랑을 아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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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의 일이다. 세계 곳곳의 토속민요를 찾아다니던 미국의 한 민요학자가 내가 살고있는 정선에 온 적이 있다.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민요가 아리랑이고 그 아리랑의 모태가 되는 정선아리랑을 찾아 왔다는 그의 설명에 나는 속으로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멀티미디어, 녹음장비 등이 발달해 다소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민요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그 고장에 가보지 않고서는 코끼리 다리 만지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내 경험으로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리랑에 대해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던 미국 학자는 내게 뼈 있는 한 마디를 던졌다. 서울에서 며칠 머무는 동안 대학생이나 삼십대 젊은이를 붙들고 물어 보아도 아리랑에 대해 제대로 설명을 해주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해외에서 사는 우리 나라 사람들이 틈만 나면 아리랑을 부르면서 즐거워하고 때론 눈물짓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아온 까닭에 한국에 가면 거리 곳곳에 아리랑이 흘러나오는 '아리랑의 나라' 쯤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리랑은 고사하고 서울 거리를 거닐면서도 자신이 생각하던 한국에 온 것 같지가 않아 못내 아쉬웠다고 했다.
아리랑에 대한 청소년들의 무관심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그가 만난 젊은이들이 하필이면 왜 아리랑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이었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까지 들었다. 그날 하루종일 나는 그 미국 학자와 함께 정선 땅 곳곳을 다니며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살아가는 모습과 더불어 아리랑을 실컷 듣게 해주었다. 시간이 갈수록 그 미국 학자는 마음 속 의문 부호로 남아있던 아리랑에 푹 빠져들었고 마침내 세상 어디에도 이렇게 길게 이어지는 민요는 들어본 적이 없다며 감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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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다소 상기되어 놀란 표정의 그 미국 학자와 헤어지고 난 후 며칠 동안 나는 머리 속에 우리 나라 아리랑에 대한 자화상을 그려보았다. 그러면서 우리는 아리랑을 너무 시시하고 경박스럽게 여기지는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기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리랑 하면 여자가 있는 '요정'쯤으로 생각했고, 담배나 본드 등의 이름으로 오르내리는 게 고작이었다. 좀 나아지긴 했어도 중·고등학생들에게 아리랑을 해보자고 하면 대부분은 등을 돌린다.
프랑스 사람들은 감격하면 모여서 국가인 '라 마르세예즈'를 큰 소리로 합창한다고 한다. 어떤 민족이던 간에 제일 처음 또는 마지막 장을 장식하는 노래는 대체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노래들이다. 그런 노래로 우리에겐 무엇이 있을까. 바로 아리랑이 아닌가.
국가로 불리는 애국가가 있기는 하지만 민족적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국민적인 색채가 강해 이념이 서로 다른 남북한 사람들이 함께 부르지는 못하는 노래다. 그러나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가서 발병난다."는 아리랑의 노랫말로 봐선 별것도 아니고 어설픈 것 같지만, 남북한 사람들은 물론 세계 도처의 한민족들도 다같이 부르면 목소리가 감동에 젖어 한줄기가 되곤 한다. 가락 구비 구비마다, 노랫말 깊숙한 곳에 우리만의 정서가 녹아 흐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아리랑은 우리 민족에게 마음의 고향과도 같은 노래라고 할 수 있다.
수 년 전 축구, 탁구 등의 남북 단일팀 경기에서는 이념을 초월해 함께 어우러져 응원하면서 부른 노래가 아리랑이었고, 88 서울 올림픽 때는 올림픽 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관중들과 이를 지켜본 온 세계 사람들에게 한과 신바람이 어우러진 한국인의 진솔한 소리 아리랑으로 멋과 흥을 돋우었다.
한민족이 지구촌 어디에 있어도 아리랑은 힘의 원동력이 되곤 한다. 루드빌라 남이 모스크바의 프리마돈나가 되어도 그의 피 속에는 아리랑이 흐르고 있고, 일제의 강제 징용으로 사할린 땅과 중앙아시아 등지에서 살아가는 까레이스키들도 아리랑을 부르기만 하면 슬픔이 북받쳐 흐르는 눈물을 가릴 줄을 모른다.
재일동포들도 아리랑을 우리 민족의 노래로 여기며 월간지 <아리랑>을 만들어 하나의 구심점으로 잡았고, 일제의 수탈을 피해 압록강, 두만강을 건너 중국 땅에 정착한 조선족들도 아리랑을 부를 때마다 눈물을 흘렸고 아리랑이 그리워선지 월간지 <아리랑>을 만들고 거리에는 아리랑 이름을 딴 간판들을 걸어 아리랑을 가까이에 두고 살아간다.
쿠바의 사탕수수밭에 팔려간 한인들이 우리말을 거의 잊어버리고서도 기억을 더듬어 눈물로 부르던 노래가 아리랑이었고, 올해 세상을 떠난 미국의 작가 님 웨일즈가 중국 연안에서 만난 야심찬 조선인 투사 김산의 일대기를 <아리랑>으로 펴내고 옛 생각을 하며 부르던 노래 또한 아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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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이나 아프리카로 이주한 한인들도 물론 아리랑을 부르며 살아간다. 지난해 유럽에서 나는 아리랑을 부르며 눈시울 적시는 사람들을 보았다. 네덜란드 암스텔담의 몇 안되는 한인 식당에서 네덜란드에 입양된 스무 살 안팎의 젊은이들이 부르는 아리랑이었다. 한국어 가사의 발음이나 가락에는 서투른 데가 없지 않았지만 누가 들어도 쉽게 알 수 있는 아리랑이었다.
그날 저녁 나는 아리랑을 부르는 한국인 아니 유럽 청년들은 누구인가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60년대 말에서 70년 초에 걸쳐 태어나 생부모에게 버림받고 낯선 땅 유럽에 입양, 소외와 고독감에 빠진 어린 시절을 보내고, 철이 들면서 "나는 누구인가?"를 수없이 되뇌며 고민해온 젊은이들이 아닌가. 우리와는 다른 문화 속에서 20년을 넘게 성장했고 우리말도 아는 거라곤 몇 마디에 불과했지만 그런 입양 젊은이들의 모임 이름이 <아리랑>이고 그들이 부르는 노래가 아리랑이었다. 그리고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매월 태극무늬로 아리랑을 형상화한 (우리신문)을 만들어 한민족의 문화, 사상, 예절 등 '우리' 의식을 심어가고 있었다.
집단의 이익보다 자기 이익 우선의 미이즘(Me-ism)에서 성장한 이들이 한국 전통사회의 위이즘(We-ism)을 어떻게 깨달은 것일까. '나의 집', '나의 어머니' 등 '나'라고 하는 사유와 고립 속에서 작은 탑을 세우려는 소외당한 핏줄의 눈물겨운 삶이 '우리'라는 고유와 연대로 자리잡지 않았나 생각해 보았다. 이들에게 자신의 뿌리를 확인케 한 것은 다름 아닌 아리랑이었다. 이들을 생각하며 떠올릴 때마다 나는 정선에 왔던 미국 민요학자가 만났던 젊은이들을 그려보곤 한다. 랩이니 레게니 해서 해괴한 몸짓으로 열광하는 텔레비젼 속의 청소년들을 보면서 그저 하나의 문화현상으로만 보기에는 우리 민요 아리랑이 너무나 왜소하게 보인다. 그러나 나는 우리 민족의 가슴 속 깊이 하나같이 아리랑이 흐르고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아리랑은 우리가 지켜야할 우리의 민요이다. 아무리 청소년들이 괴성을 지르고 열광하는 노래라해도 한 때 반짝할 뿐 아리랑 만큼 오랜 역사 속에서 한민족의 슬픔과 기쁨을 두루 담아 이어져온 노래는 없다. 아리랑을 부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신바람에 살아가는 곳곳에서 아리랑을 부를 때 아리랑의 공간은 무한대로 넓어진다.
아리랑은 우리 문화를 표상하는 가장 확실한 도구이다. 우리는 힘겹고 고된 삶 속에서도 아리랑 고개를 넘은 우리 민족의 아리랑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아리랑이 우리들 가슴 속에서 살아 움직일 때 큰 힘으로 내일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글 / 진용선(정선아리랑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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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 1위 / 아리랑 (Arirang)/유진박
이태전인가 해외의 유수한 작곡가들이 중심으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 선정대
회" 에서 아리랑이 82%의 압도적 인 지지를 얻어 1위로 선정 되었다는 AP통신의 보
도다. 선정 과정 중 한국인은 단 한 명도 없었기에 이들은 놀라는 눈치였으며...
모두 처음 듣는 곡으로 선정위원들은 듣는 도중 몇 번씩 말로는 표현 할 수 없는 감동
을 받았다고 한다.
<선정위원들의 평>
"아리랑 은 한국이라는 나라를 나에게 깨우쳐 줬다"
"듣는 도중 몇번씩 흥이 났다"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감동적이다"
한국인이 아닌 사람이 들어도 보편적으로 느껴지는 자연스럽고도 따스하고
그리고 정감이 가득 묻어나는 이 선율 은 기교도 없고 과장도 없지만
따스하고도 포근하며 마치 잠결에 토닥여 주는 어머니 손길같은 음률은
대한민국 사람들의 심성 그 자체겠지요.
이들 모두 처음 듣는 곡들 이었으며 한국 유명 전자바이올리니스트 유진박 이
전자 바이올린으로 연주했다.
사실 아리랑을 그저 우리 민요들 중의 한 곡 정도로만 알고 있는 이들이 많지만
아리랑을 좀더 깊이 이해하게 되면 아리랑은 그 흔한 민요들 중의 하나가 아니라는 것
을 알게될 것이다.
아리랑에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인가 특별한 힘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단군신화와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중국의 에벵키족( 아무르강 상류쪽
에 기거하는 소수민족 )의 어휘사전엔 놀랍게도 아리랑과 쓰리랑에 대한 어휘가 실려
있다고 하는데,
아리랑은 "영접하다" "맞이하다" "참다" " 인내하다" 등의 뜻과 의미가 있고,
쓰리랑은 "잠에서 깨어나다" "술, 마취등에서 깨어나다" 등의 의미가 있다고 한다.
이하 생략..........
아리랑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으로 뽑은 해외의 작곡가들은 아리랑에 담겨있는
사연을 짐작이나 하고 있을까?
아마도 아름다운 선율로 치자면 아리랑보다 아름다운 곡들도 많이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리랑을 압도적으로 지지한 것은 아리랑에는 그 무엇인가 그들의 가슴을
움직였기 때문일 것이다.
음악을 안다는 것은 영혼을 아는 것이라던가.....
그러고 보니 작곡가들이야말로 음악을 아는 이들이 아닌가!
그들이 우리민족의 가장 내밀한 노래인 아리랑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 1위로 뽑
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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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회장님 감사 합니다.행복 하세요.
아리랑 노래 감동받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