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해도에서
물난리에 여행이라
그리 가볍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있다기에
장맛비 속에 북해도에 갔네
(1)
남쪽 해안 노보리베츠로 가는 길 변에는
푸른 나무숲에 이름 모를 하얀 꽃들이
나그네들을 반기는 듯 비를 맞으며
누이들인 양 곱게 피어 있었네
한참을 달려가니 산골짜기에
운무가 피어오르듯 간헐온천이
끓어 오르는데 이를 노보리베츠
(登別)지옥의 계곡이라고 하네
아마 지옥이 끓는 가마솥 같은
모습인가 보다.
저녁쯤 계란(鷄卵) 썩는 향이
풍기는 희뿌연 호텔 온천물에서
온몸의 피부세포도 숨을 쉬는 듯
나그네의 피로를 씻었네
(2)
어느 나라이든 역사는 이야기로
볼거리가 넘치는가 봐
이곳도 침략자인 본토 에도시대의
노보리베츠 시대촌(時代村)이 있네
옛 배움터인 학교와 저잣거리가 분주하고
이곳을 지키던 높은 망루, 민초(民草)들이
살아가던 좁은 공간의 가옥과 우물가에서
여인네들의 환담, 머리 깎는 모습이 보이네
아담하게 꾸려진 정원 한가운데는 연못이
자리하고, 물 위에는 수련들이 때를 만난 듯
빨간 정자와 어울려 수려하도록 하얗게 피어
모네의 수련 그림 배경인 양 느껴지네
(3)
서쪽 바닷가인 오타루(小樽)에는
청어잡이가 한창이던 때
운하가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아침과 야경이 아름답다고 한다.
크루즈를 타고 절경을 즐기기도
하고 옛 기찻길도 걸어도 좋을 듯.
그곳엔 오르골(orgel, 음악상자) 전문관과
유리제품을 전시, 판매하는 곳도 성황이다.
그리고 온천마을 죠잔케이(定山渓)의
유럽식 풍경의 ‘하얀 연인의 초콜릿 공원’
(白い恋人パーク)도 볼거리의 하나이다.
(4)
유안진의 시 ‘들꽃 언덕에서’는
값비싼 화초는 사람이 키우고
값없는 들꽃은 하나님이 키우시는 것과
들꽃 향기는 하늘의 향기인 것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이곳 북쪽의 후라노(富良野)
언덕에는 사람들 손으로 예쁘게 키운
꽃들이 있다. 그들이 펼치는 보라색 향연을
보러 온 인파가 꽃들의 물결에 따라 출렁인다.
역시 사람이 키워서 값비싼 모양이다.
온 언덕이 보라색 라벤더 향기로 덮이어
장관을 이룬다. 언덕 아래로는 온갖 색깔의
꽃들이 줄을 이어 군락을 펼치니 하나님이
키우시는 꽃들은 있을 자리가 없어지는 듯하다.
후라노 가까이 있는 비에이(美瑛)에는
시키사이노오카(四季彩の丘)가 있어 사계절의
아름다운 색조로 언덕 화원을 장식한다.
꽃 다음으로 절경은 도카치다케(十勝岳) 화산
분화로 만들어진 푸른 연못(青い池)이다.
계절에 따라 바람에 따라 푸른 물감의 풍경을
사뭇 다르게 만들어가는 신비는 수몰된 자작나무
기둥의 처연한 모습 그리고 주위 숲과 어울려
짙음과 옅음을 자아내는 푸른 색조는 가히
하늘의 풍광 이데아(Idea) 이다.
주위로는 영상에 등장하는 쪽매붙임(Patchwork)의
길에는 형형색색의 꾸며진 자연이 나란히 서 있고
하얀 메밀꽃 들판 길에는 이름있는 나무들이 짙푸르게
나그네를 반긴다.
(5)
이제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삿포로 눈축제가 열리는 오도리공원(大通公園)에서
한가로이 산책하며 녹지대와 꾸며진 꽃들에 작별
인사를 나눈다.
2023.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