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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이 열리는 이야기나무] 받아쓰기 커닝 사건 |
글 : 송언 그림 : 박영미
받아쓰기 시간만 되면 나는 긴장합니다.
가슴은 콩닥콩닥 뛰고, 손끝은 파르르 떨리고, 등줄기에선 식은땀이 흐르고, 자꾸자꾸 오줌이 마렵습니다.
어제 엄마는 내 기를 팍 죽였습니다.
“수학도 못하는데 받아쓰기마저 못하면 되겠니?”
나는 ‘받아쓰기에서 꼭 100점 맞아야지’ 하고 다짐했습니다. 다른 때는 세 번 연습했는데 어제는 다섯 번 연습했습니다.
받아쓰기 시간입니다.
받아쓰기는 모두 열 문제입니다. 똑딱똑딱, 숨 막히게 시간이 흘러갑니다.
나는 차분하게 8번까지 받아쓰기를 했습니다. 두 문제만 잘 받아쓰면 100점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9번 문제를 부르자 가슴이 벌떡벌떡 뛰었습니다. 가슴이 벌떡벌떡 뛰자 머릿속이 캄캄해졌습니다. 어제 다섯 번이나 연습했는데 생각은 나지 않고 글자가 오락가락했습니다.
가슴은 콩닥콩닥 뛰고, 손끝은 파르르 떨리고, 이마에선 식은땀이 흐르고, 자꾸자꾸 오줌이 마려웠습니다.
내가 끙끙거리자 짝꿍 슬기가 슬쩍 쳐다봤습니다. 그때 나도 모르게 슬기 받아쓰기 공책을 보고 말았습니다. ‘번쩍’, 캄캄했던 머릿속에 불이 켜졌습니다.
마지막 10번 문제도 잘 받아썼습니다. 나는 받아쓰기 100점을 맞았습니다.
야호! 하늘을 날아갈 것처럼 기분이 좋을 줄 알았는데 안 그랬습니다. 후유! 슬기 받아쓰기 공책을 엿본 게 마음에 걸렸습니다.
아이코, 일이 벌어졌습니다. 공부가 끝나 집으로 가려고 할 때, 슬기가 벌떡 일어나 소리쳤습니다.
“선생님, 한솔이 커닝해서 100점 맞은 거예요!”
“그래?”
선생님이 화 난 얼굴로 날 불러냈습니다.
“한솔이, 앞으로 나와!”
고개를 숙인 채 나는 조촘조촘 앞으로 나갔습니다.
“커닝해서 100점 맞으면 뭐해, 양심을 속였잖아! 아이들 배웅하고 올 때까지, 여기 꼼짝 말고 서서 반성하고 있어!”
선생님은 아이들을 데리고 교실을 나갔습니다. 내 눈에서 또르르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단짝 친구 다예가 다가와 옆구리를 콕 찔렀습니다.
“한솔아, 너 정말 커닝했어?”
나는 살짝 다예 눈치를 살폈습니다. 다예가 생긋 웃었습니다.
“딱 한 문제. 갑자기 글자가 오락가락하잖아. ‘혼례식’인지 ‘홀예식’인지 모르겠는 거야. 그래서 내 짝꿍 공책 살짝 보고 썼어.”
“그러다가 슬기한테 들켰어?”
“응, 그렇지만 슬기가 일러바칠 줄 몰랐어. 나 이제 어떡하지? 선생님한테 혼나면 어떡해?”
“걱정하지 마. 내가 도와줄게. 나도 오늘 한 문제 틀렸는데 바로 그 문제야. 나는 ‘혼례식’을 ‘혼예식’이라고 썼거든. 치, 이제라도 정확히 받아쓰면 되는 거지 뭐.”
“어떻게?”
“받아쓰기 할 때 꼭 100점 맞아야 한다는 법 있니? 나중에 받아쓰기 100점 맞아도 그게 그거지. 안 그래?”
나는 다예 말이 알쏭달쏭했습니다. 다예 생각이 궁금했습니다.
“날, 어떻게 도와줄 건데?”
“좋은 생각이 있어. 이리 와 봐.”
다예는 나를 선생님 책상 앞으로 잡아끌었습니다. 선생님 책상 위엔 받아쓰기 문제가 놓여 있었습니다.
받아쓰기 문제를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짚으며,
“다시 받아쓰기 하면 잘할 수 있지?”
하고 다예가 물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선생님이 돌아왔습니다. 선생님은 의자에 앉자마자 야단부터 쳤습니다.
나는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다예가 선생님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오대산 산신령 친구 선생님, 설마 한솔이가 커닝을 했겠어요?”
우리 선생님은 머리도 하얗고, 수염도 하얘서 꼭 산신령 친구 같습니다. 선생님은 오대산 산신령과 무척 친하다고 합니다.
선생님이 다예에게 물었습니다.
“그게 뭔 소리니?”
“한솔이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줘 보세요. 그럼 한솔이가 커닝했는지 안 했는지 알 수 있잖아요.”
선생님이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한 번 더 기회를 주자고?”
“네, 선생님. 한솔이는 커닝 안 했을지도 몰라요.”
“한솔이가 커닝 안 했다는 증거라도 있니?”
“어제 한솔이가 받아쓰기 연습 많이 했대요. 한솔이 실력은 제가 알아요. 자, 보실래요?”
다예가 내 손에 분필을 쥐어 준 뒤, 선생님 책상에 있는 받아쓰기 문제를 척 집어 들었습니다. 다예가 받아쓰기 문제를 불렀습니다.
“고모와 함께 민속촌에 갔습니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 칠판에 답을 적었습니다. 한 글자도 안 틀리고 정확히 답을 적었습니다. 선생님도 칠판에 적은 답을 보고 고개를 끄덕끄덕했습니다.
다예가 선생님 귀에 대고 속삭였습니다.
“선생님, 한솔이 커닝 안 한 것 같죠? 그렇지만 한 문제만 더 시켜 보세요. 이번엔 선생님이 직접 문제를 내 보세요.”
그러고는 살짝 선생님을 치켜세웠습니다.
“좀 어려운 문제를 고르세요, 알았죠?”
선생님이 고개를 이리 갸웃 저리 갸웃 하였습니다. 그러자 다예가 손가락을 뻗어 한 문제를 콕 찍었습니다. 선생님이 귀신에게 홀린 사람처럼 다예가 콕 찍은 문제를 불렀습니다.
“전통 혼례식.”
나는 기다렸다는 듯 칠판에 답을 적었습니다. 아주 정확하게. 다예가 짝짝짝 박수를 치며 말했습니다. “혼례식은 어려운 글자라 애들이 많이 틀리거든요. 저도 이 문제를 틀려서 오늘 90점 맞았어요. 그런데 한솔이는 정확하게 받아썼잖아요. 그러니까 커닝한 게 절대로 아닐 거예요. 오대산 산신령 친구 선생님, 제 말이 맞죠?”
선생님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습니다.
“다예 말이 맞다! 한솔이는 절대로, 절대로 커닝하지 않았을 거야. 내일 아이들한테 선생님이 말해 주마. 선생님과 다시 받아쓰기를 했는데 한솔이가 당당하게 100점 맞았다고. 요 녀석들…, 이제 안심하고 집에 가거라.”
“오대산 산신령 친구 선생님, 고맙습니다.”
다예와 나는 어깨동무하고 교실을 나섰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다리가 후들거렸습니다. 날 도와준 다예가 고마웠습니다. 하지만 선생님 눈을 속인 일은 가시처럼 목에 걸렸습니다. 나는 다예 귀에 대고 속삭였습니다.
“다예야, 정말 고마워, 하지만 다음엔 커닝하지 않을 거야. 목이 너무 칼칼해.”
다예가 나를 향해 생긋 웃어 보였습니다.* |
첫댓글 착하네 ㅋ
그래너보단착하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