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신용위기, 원자재 가격 상승, 유가 폭등 등 악재들이 연이어 터지면서 재테크 시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증시에선 이미 수많은 부상자(손실을 입은 투자자)와 미아(자금 회수를 고민하는 투자자)가 속출하고 있고, 안전지대로 여겨졌던 예·적금 시장에서도 물가 상승 ‘쓰나미’로 이재민(실질금리 마이너스로 고민하는 투자자)들이 넘쳐나고 있다. 혹독한 재테크 전선에서 투자자들이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금융전문가들은 금융 전문 지식과 경험으로 무장한 PB(자산관리전문가)를 그 해답으로 제시하고 있다.
자산관리전문가라 불리는 PB는 단순히 금융상품만 파는 사람이 아니다. 고객의 재무상황과 투자성향 심지어 가족관계, 건강상태 등까지 종합적으로 판단해 자산을 관리해주고 생활 전반을 돌봐주는 매니저다.
이 때문에 프라이빗뱅킹이 발달한 선진국에서는 PB를 ‘금융 주치의’ ‘재무 집사’라 표현할 정도다. 그만큼 PB에 대한 신뢰가 절대적이다.
정복기 삼성증권 PB연구소장은 “영국, 스위스, 미국 등 선진국의 웬만한 가정은 모든 금융거래를 PB를 통해 한다”며 “심지어 펀드 하나를 선택할 때도 PB와 상담 후 결정하는 것이 보통”이라고 말했다.
국내에 PB가 본격 도입된 것은 2000년부터. 하지만 선진국과 달리 PB에 대한 중요성은 별로 부각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역사가 짧은 탓도 있지만 재산을 남에게 맡기지 않는 한국적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돈은 스스로 굴려야 한다’는 강박관념 탓에 PB가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환경이 급변하면서 ‘한국식 스스로 자산관리법’은 점차 설 자리를 잃고 있다. 개인이 정보를 수집하고, 투자를 결정하는 것이 불가능한 시대가 된 것이다. 실제로 금융시장이 글로벌화하면서 금융권에서 출시되는 금융상품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올 들어 새롭게 출시된 펀드만 1017개(공모, 7월 24일 기준)에 달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혼자서는 금융상품에 대한 정보조차 제대로 파악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묻지만 투자’ 같은 쏠림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도 여기에 원인이 있다. 금융 전문가들이 PB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재룡 한국펀드연구소장은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잘못된 자산관리 방식 때문에 ‘묻지마 투자’가 난무하고 피해가 속출하는 것”이라며 “금융시장의 글로벌화, 금융상품의 고도화로 선진국형 자산관리인 PB가 매우 중요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PB라 하면 거액 자산가들의 전유물로 생각하곤 한다. 프라이빗뱅킹이 수십억원대 자산가들을 타깃으로 성장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최근에는 웬만한 중산층도 손쉽게 종합자산관리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금액 기준으로 은행·보험회사는 금융자산 1억원 이상, 증권회사는 1000만~3000만원 이상만 있으면 PB 고객이 될 수 있다.
국내 펀드시장의 대표주자인 미래에셋증권의 경우 금융자산 3000만원만 있으면 종합자산관리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국민은행은 PB 고객 기준이 금융자산 5억원 이상이지만 주거래 일반 고객도 3000만원만 있으면 영업점에서 PB 고객에 준하는 각종 서비스와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인터넷금융 활성화는 PB 대중화를 더욱 앞당기고 있다. 최근 경남은행은 인터넷을 통해 종합자산관리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사이버 PB 서비스’를 시작했다.
PB 고객 기준은 예금 평잔 1000만원 이상. 공간만 사이버로 옮겼을 뿐 서비스 내용은 똑같다. 콜센터 사이버 PB 전용상담과 은행 홈페이지를 통한 e-메일 상담, 채팅 상담 등 기존 PB센터와 동일한 1 대 1 자산관리가 제공된다.
일부 금융회사의 경우 특별한 PB 고객 기준 없이 종합자산관리 서비스를 진행하는 곳도 있다. 이들 회사는 지금 당장은 자산이 많지 않지만 신용이 우량하거나 소득이 일정한 고객 중심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정희경 우리은행 부부장은 “금융회사 간 고객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어 향후 PB 문턱은 더욱 낮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금융회사 간 PB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서비스도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재테크·세무 ·법률 등 기본적인 종합자산관리 서비스는 물론이고 자녀 교육, 결혼 중매, 인맥 관리, 고객 간 사업연계 등 다양한 부가서비스까지 진행하고 있다. PB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서비스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강광일 농협중앙회 강남PB센터 센터장은 “고객 자녀의 출산을 위해 유명한 산부인과를 알아보는 것부터 묏자리까지 대신 봐주러 다니는 것까지 서비스 하고 있다”며 “PB는 단순한 자산관리상담사가 아닌 고객의 행복을 설계하는 행복설계사이자 평생 동반자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