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전야
음력 윤달은 삼사 년 주기 한 달씩 덤으로 붙는다. 올봄 윤삼월이 있었던 관계로 여름 이후 절후가 늦게 진행되고 있다. 오월 단오는 유월 하순이었고 칠월 칠석은 어제였다. 추석도 양력으로는 구월 마지막 날이다. 예년 같으면 고향을 찾아 벌초 성묘를 해야 할 무렵이었다만 큰조카와 조율하길 다음 주말로 정했다. 늦여름과 초가을이 백병전을 치루는 팔월 넷째 주말은 여유가 있었다.
지난 초여름 으레 장마가 오는가 싶더니만 어느새 가고 말았다. 예년보다 강수량도 적었고 장마기간도 짧았다. 그러다보니 장마 끝나고 닥친 폭염으로 여름나기가 무척 힘들었다. 봄 가뭄도 심했는데 장마철 강수량이 부족했으니 농업용수 확보가 어려웠다. 농사는 하늘이 도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지역이 있다. 좁은 국토지만 비가 내린 양이 지역별로 달라 넘치거나 모자라 애를 먹는다.
삼십 도를 훨씬 웃도는 날씨가 초여름보다 더한 가을비로 주춤해졌다. 정작 장마철 비보다 더 추적축적 내리는 비는 대지의 열기를 식혀주어 좋았다. 그런데 우리 지역과 달리 다른 곳에선 가을장마로 크고 작은 비 피해가 속출했다. 도시 저지대가 물에 잠기고 농촌도 애써 가꾼 농작물이 휩쓸려갔다. 마음 졸이던 에너지 관리 부서는 서늘해진 날씨로 전력소비가 줄어드니 한숨을 돌리지 싶다.
올해 들어 우리나라에 직접 영향을 끼친 태풍은 없었다, 그런데 며칠 전 오키나와 아래서 형성된 볼라벤 진로가 우리나라로 향한다는 기상예보다. 우리나라를 할퀴고 간 대형 태풍으론 내가 태어났던 해 사라가 있다. 추석날 아침 통영으로 상륙하여 포항으로 빠져나간 사라는 영남지방에 엄청난 피해를 안겼다. 당시 엉성한 정보통신 체계로 인적 물적 피해는 제대로 파악조차 못한 실정이었다.
사라 이후 대형 태풍으론 서울 월드컵 이듬해 매미다. 공교롭게도 매미도 사라와 마찬가지로 추석에 찾아왔다. 그해 추석 전날 밤 마산 월영동에는 해일이 일어 멀리감치 떨어진 부둣가 쌓아둔 원목이 댓거리까지 덮쳤다. 그때 지하상가에 있던 여러 젊은이들이 바깥으로 나오지 못하고 세상을 뜬 안타까운 일이 생겼다. 꽃다운 젊은이의 넋을 위로하는 빗돌이 마산 연안부두 곁에 세워져 있다.
이번 대형 태풍 예상 진로는 제주도를 비켜 서해안을 따라 올라온단다. 알려진 대로 태풍은 진행 방향 오른쪽에서 입는 피해가 심각하다. 예상대로라면 이번 태풍은 우리나라 전역이 풍수해 영향권을 벗어날 수 없다. 연근해 수산물 양식장은 물론 수확기 과일을 비롯한 결실기 농작물에 큰 피해가 예상된다. 도시는 주택과 산업 전반 미치는 피해가 클 것이다. 무엇보다 인명 피해가 없어야 한다.
나는 한갓 민초에 지나지 않는다. 한 잎 풀잎이니 바람 앞에 납죽 엎드려 몸을 낮출 수밖에 없다. 농사를 짓기 않기에 살펴 돌볼 작물이 없다. 집 바깥 펴거나 던져놓은 시설물이라곤 등산용 지팡이도 하나 없다. 그래도 태풍이 다가오면 주변이나 이웃에 신경 쓸 일이 많다. 어떡하든 도농 가리지 않고 비바람으로 인한 피해가 적었으면 한다. 이런 생각을 떠올리면서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섰다.
팔월 마지막 주 토요일 평소면 출근 시각, 집 앞에서 210번을 타고 가다 도청사거리에서 150번으로 갈아탔다. 시내버스는 남산터미널을 지나 공단배후도로를 따라 갔다. 양곡 주택지를 지나 신촌삼거리를 거쳤다. 장복터널 못 미쳐 목장마을이다. 목장마을 앞에 오봉사가 있다. 나는 오봉사 입구에 내려 마창대교 접속도로 교각 밑으로 갔다. 교각 아래 인부 서넛이 배수로를 정비하고 있었다.
마창대교 교각 곁 편백나무 숲으로 들었다. 편백나무 산림욕장은 장성이나 남해가 알려졌다. 우리 지역은 진북 금산에 꽤 넓은 편백나무 숲이 있다. 진해 시민회관 뒤 장복산 기슭도 가 볼만하다. 명서동 뒷산 태복산도 좋다. 교육단지 뒤 창원과학관 옆에도 있다. 천주산 기슭에도 있다. 피톤치드는 아침나절이 더 좋단다. 내일모레 태풍이 닥친다는데 하늘은 푸르고 나뭇가지는 고요하기만하다. 12.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