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로 회개
성경 말씀: 예레미야 31:15-22; 요한1서 1:5-10
요약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회개를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회개는 보통 사람들이 언급하는 회개와 다릅니다. 그들은 이전에 범한 죄나 잘못에 대해 회개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임하는 하나님 나라로 회개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삶으로부터 하나님 나라의 삶으로 회개를 알립니다.
복음의 회개
세례 요한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기 때문이라(마 3:2)”고 하면서 회개를 통한 죄 사함을 위해 세례 베풀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천국의 임함으로 회개를 말했지만, 그의 회개나 세례는 죄를 향했습니다. 그의 회개와 세례에 죄는 전제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고, 마귀에 의해 시험받은 후, 갈릴리에 가셔서,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고 하시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 선포하시면서 회개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을 이어 회개를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례 요한과 달리, 하나님 나라의 복음 선포와 함께 회개를 말씀하십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의 복음 선포를 준비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할 수 없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임함을 알리지만, 하나님 나라의 임함을 선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회개는 보통 회개와 구별됩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으로 회개입니다. 그러나 보통 회개는 죄나 잘못의 반성입니다. 따라서 죄나 잘못을 벗어나 더 이상 죄나 잘못을 범하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죄나 잘못을 범하지 않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나라로 하나님 함께의 좋은 소식이 전해지면, 회개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좋은 소식을 받아들임으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 나라로 사는 회개입니다. 그러나 그런 좋은 소식이 받아지지 않으면, 회개는 죄나 잘못을 범함에 대해서만 나옵니다. 죄나 잘못을 전제한 회개입니다.
죄는 명시적으로 율법의 규정의 범함을 뜻합니다. 율법의 규정은 개인으로 지켜집니다. 따라서 죄는 개인으로 말해집니다. 개인의 죄에 대해, 죄 사함을 위한 회개도 또한 개인의 일입니다. 개인은 이전 죄의 사함을 위해 회개합니다.
그러나 죄가 원래 다루어지려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자신의 충동에 빠져든 것이 고려되어야 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기 때문에, 율법이 주어집니다. 그리고 죄는 율법에 따라 말해집니다. 즉 죄는 하나님과 함께하지 못하는 삶으로 말해집니다.
율법을 지키거나 지키지 않는 것은 개인의 일입니다. 하나님과 함께하지 않는 사람은 개인으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율법은 개인들의 삶에 주어집니다. 따라서 율법에 의해 규정된 죄는 하나님과 함께하지 않은 근거에서 말해집니다. 이 때문에 죄 사함과 함께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근거에서 말해져야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심으로, 회개와 죄 사함의 뜻이 분명해집니다. 회개를 통한 죄 사함은 하나님 함께의 기쁜 소식을 믿음으로 이루어집니다. 즉 죄 사함의 회개는 하나님과 함께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살게 위한 죄 사함의 회개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심으로, 세례 요한에 의해 제기된 회개와 세례가 온전하게 됩니다. 복음에 근거한 회개와 세례가 됩니다. 그러나 요한은 복음을 선포할 수 없었습니다. 복음은 예수님으로 드러납니다. 예수님이 이야기됨으로 복음은 선포됩니다.
이루어지는 회개
회개는 복음 선포의 반응입니다. 죄를 전제하지 않습니다. 죄가 전제되면, 회개는 개인으로 다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충동은 개인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죄는 개인으로 의식됩니다. 즉 죄가 강조되면, 모든 것은 개인적으로 의식되게 됩니다.
개인이 죄를 개인으로 의식하기 때문에 회개한다고 말해지면, 그는 개인으로 머뭅니다. 회개하는 개인은 또한 개인으로 머뭅니다. 그리고 그는 회개한 후 개인으로 삽니다. 따라서 회개는 심경의 변화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는 회개 전과 후에 개인으로 머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의 선포 혹은 하나님 나라의 임함을 전제하는 회개가 다루어져야 됩니다. 하나님 함께로 하나님의 나라에 사는 회개입니다. 세상에 회개자들로 개인들로 머물지 않게 하는 회개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함께함으로, 개인들로 그들의 이전 삶은 죄로 고백됩니다.
회개는 구약에서 참회와 구별되어야 합니다. 구약에서 참회는 죄에 대해서입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회개는 구약에서 다루어지지 않습니다. 죄는 율법에 의해 명시되고, 죄의 의식은 참회로 이끕니다. 즉 참회는 죄의 의식의 결과입니다.
그러나 회개는 죄의 의식과 무관합니다. 아무리 자신의 죄를 심각하게 의식하더라도 회개할 수 없습니다. 죄는 개인적으로 범해짐으로 개인적으로 의식됩니다. 그러나 회개는 개인적으로 이루어지세 되지 않습니다. 회개는 하나님 함께로 하나님 나라로 이루어집니다. 회개는 복음을 접함으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함께는 회개의 이루어짐의 좋은 소식으로 선포됩니다. 예수님으로 선포됩니다. 구약에서 들려질 수 없었던 좋은 소식입니다. 복음은 율법이나 예언의 연장이 아닌 그 이루어짐입니다. 즉 예수님은 율법을 주는 이들이나 예언자들의 한 분이 아니십니다.
구약의 삶은 아브라함의 후손인 개인들에 의해 세워진 세상 나라의 삶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언약의 백성으로 주장되지만, 그들은 개인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개인으로 지켜져야 할 율법이 주어졌습니다. 그들의 언약의 삶은 개인으로 의식되는 삶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과 함께하는 좋은 소식은 들려질 수 없습니다. 그들은 개인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소식은 개인들에게 들려질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함께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들려지게 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예수님 시대 복음이 유대인들에 의해 들려질 수 없었던 이유입니다. 그들은 단지 개인으로 복음을 의식했습니다. 율법의 강한 의식은 강한 개인의 의식을 시사했습니다. 율법은 어떻든 개인으로 의식됩니다. 개인으로 지켜지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은 그런 유대인들에게 회개를 들려주지만, 그는 개인의 의식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는 개인의 죄의 의식으로 회개를 말합니다. 그의 회개는 구약의 참회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복음으로 회개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새로 남의 회개
하나님과 함께하는 회개 혹은 하나님 나라에 회개는 영적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삶을 위한 회개입니다. 부모로부터 육신으로 태어난 사람들은 개인으로 세상에 삽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으로 하나님과 함께로 태어나는 이들은 하나님 나라에 삽니다.
육신으로 사는 개인이 하나님의 영으로 새로 태어나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이 회개입니다. 그러므로 회개는 개인의 삶의 종식을 뜻합니다. 개인은 어떻든 육신으로 홀로 삽니다. 육신으로 사는 한, 그는 개체적입니다. 육신의 개인들은 모임의 삶을 살지 모르지만, 함께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에 사는 이들은 하나님의 영에 의해 인도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로 삽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로 새로 나는 것이 회개입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과 함께 삽니다.
세례 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것은 영적으로 새로 태어남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성령님에 의해 인도되어서만 그리스도로 고백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으로 새로 태어납니다.
하나님이 영에 의해 인도되는 이들은 하나님과 함께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언약의 삶을 삽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세상 삶으로부터 언약의 삶으로 회개한 이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에 의해 인도되기 때문에, 개인으로 살지 않고 함께 삽니다.
회개는 개인들에게 이루어집니다. 회개는 개인들의 재량이 아닙니다. 개인들에게 회개의 이루어짐은 그들 개인성의 죽음을 뜻합니다. 회개된 이들은 개인성으로 살지 않고 영성으로 삽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라”는 표현은 명령이 아닌 선포나 권면입니다. 회개의 이루어짐의 알림입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영적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선포는 영적입니다. 선포된 하나님의 나라는 영적으로 이루어집니다. 복음은 영적으로 선포됨으로 구약의 연장선에 두어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복음은 새 언약입니다.
회개는 선포된 복음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회개는 세상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아닙니다. 회개가 현상으로 다루어지면, 종교적 의미를 갖습니다. 회개는 종교에 대한 개인의 현신의 의미입니다. 종교성은 개인성의 한 부분입니다. 개인이 종교인이 됩니다.
복음의 회개는 종교인이 되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함께의 언약의 삶은 종교적 삶이 아닙니다. 언약의 하나님 백성은 종교인들이 아닙니다. 즉 그리스도인들은 종교인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개인성을 유지하지 않습니다. 영성을 보입니다.
“회개하라”는 표현은 개인들을 향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개인들로 무얼 하게 하지 않습니다. 그 표현 자체가 복음 선포를 알립니다. 하나님의 영이 하나님과 함께하는 언약의 삶을 인도하는 것을 알립니다. 듣는 이들이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을 말함은 알림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를 아버지와 함께로 의식하게 하옵소서.
세상에 근거한 저희가 아닌
아버지와 함께하는 저희를 의식하게 하옵소서.
비록 세상에서 살지만,
세상에 몰입되지 않고
아버지께 돌아옴을 늘 기도하게 하옵소서.
세상에 사는 저희 삶이
세상에 이루는 자취가 아닌
아버지께 돌아오는 여정이게 하옵소서.
그렇게 아버지의 영이 저희를 인도하옵소서.
회개로 인도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