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태양 빛이 따갑다. 선크림을 잊고 지낸 지 오래다. 좀 발라야 하는데 생각이 따르지 않는다.
최후의 만찬에 따가운 시선이 보인다.
예수께서 자신을 공회에 넘겨줄 자는 대접에 손을 넣는 자라 하셨는데
주님 손 스친 유다가 모른 채, “저는 아는지요?” 능청 떤다.
예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따갑다.
반면 베드로는 세 번째 주님을 부인하고 멀리 주님 눈 마주쳤을 때,
복받쳐 오르는 죄송함과 죄책감에 대성통곡한다.
‘스침’에 회피와 ‘마주침’에 회개는
이 떡은 나의 살이요.
이 음료는 나의 피니 받아 마시라!
십자가 차이 일 것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은 십자가의 사랑이 회피가 아닌 회개로 이끈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무너질 수 있다.
무너짐에 다시 일어나는 것이 예수의 사랑이다.
여전히 마귀의 따가운 시선이 노려 본다 할지라도,
나의 나 된 것은 나의 행위나 노력이 아닌
그리스도의 사랑이다.
그 사랑이 나를 살게 한다.
친구 목사에게 건축 영상을 보내주었다.
영상을 보고 마음 아픈가 보다.
아무것도 아닌데,
오히려 감사하고 기쁘다.
구원받은 것도 감사한데,
주의 일을 하고, 교회 건축하니 너무 감사하다.
앞으로 선교를 위해 쓰임 받을 건물을 생각하니
할 일이 많아 감사하다.
따가운 날씨에도 주의 사랑은 흐른다.
그 은혜를 가슴에 새기며
오늘도 감사하며 살아야겠다.
할렐루야!
(마태복음 26:17-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