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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 과 목 : 서양중세철학
담당교수 : 김요한 교수님
제 출 자 : 영어영문학과 2학년 한동윤
제 출 일 : 2011. 9. 27. 화
신국론 제 1 권 3부 ~ 제 2권 2부
1. p201 지상의 선한 사물은 나그네처럼 사용하되 그것에 사로잡히지 않으며, 지상의 악에 의해서는 스스로 시험받거나 교정받을 따름이다.
-신은 그 분의 성질에 맞추어 모든 창조물을 선하게 만드셨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견해에 따르면 악이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선의 결핍이다. 즉, 선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세상의 이치에 맞게 자연스럽게 쓰여야할 것이다. 그러니 선한 사물을 필요 이상 탐내는 행위는 선의 결핍이니 악이며, 그 악은 자연스레 신의 시험에 든 것이며, 그 악은 선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교정을 받을 것이다.
2. p201 그 분이 역경으로 나를 흔들 적에는 나의 공덕을 재 보거나 죄를 벌하거나 현세의 해악을 경건하게 견딤으로써 영원한 상을 보전하게 하기 위함이다.
-그렇다. 우리가 역경을 겪는 이유는 신께서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인간을 더욱 강하게 만듦으로써 내세에 당신의 군대를 모으실 때에 기강을 바로 잡고 정신을 숭고이 하기 위해서이다. 신은 인간에게 항상 문제를 내주심으로써 우리의 선이 얼마나 높아지고 유지되어 가는지 측정하시고 악으로 떨어질 경우 우리의 기만을 벌하여 우리가 다시금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도록 함이다. 그러니 우리는 역경을 달게 받아 포기하지 않는 인간의 의지를 드러내며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3. p201 그 대신 그대들은 누구인가? 적어도 그대들의 신들에 관해 더불어 이야기함이 옳다면, 저들은 나의 하느님보다 얼마나 못한가! 나의 하느님은 “모든 신들 위에 계시다. 이방인의 신들은 모두 마귀지만 주님은 하늘을 만드셨다.”
-인간이 신에 대해 평가를 내리는 것이 합당한가?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느님과 다른 신들을 비교하고 대조하여 하느님을 옹호하고 있지만, 그 방법이 객관적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단지 이러한 어조는 나를 주장하기 위해 남을 깔아뭉개는 식으로 느껴질 뿐이다. 만약에 아우구스티누스가 진정한 성인이었다면 다른 신들을 굳이 해악한 존재로 치부할 필요 없이 단지 하느님의 영광과 그 분의 사랑과 능력을 철학적이고 논리적인 어조로 말하였어도 되었을 것이다. 그가 하느님을 높이기 위해 상관하지 않아도(무시해도) 되었을 다른 신들을 비하하는 방법은 다소 나의 눈에는 야만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4. p203 인류의 악덕들 가운데서도 바로 저 지배욕, 로마 백성 전체에게 유난히 노골적이던 이 탐욕이 소수의 세도가들을 사로잡아 승리하자 세도가들을 빼놓고는 제압당하고 쇠약해진 다른 모든 사람을 예속의 멍에로까지 탄압했다.
-악은 선의 결핍이다. 선의 결핍은 시냇물처럼 흘러 ‘악’이라는 이름이 정해지지 않은 어떤 공간을 채우면서 ‘악’을 충만하게 한다. 지배욕도 이러한 예에 속한다. 지배욕이란 것은 선에 속해있지 않지만 다른 어떤 부분에 속해 있을 것이다. 선의 결핍이지만 선을 제외한 어느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그러한 선의 결핍이 하얀 천에 먹물이 떨어져 천 대부분이 검게 변하듯이 로마의 세도가들을 휘어잡자 그들은 인간의 도성에서 최고의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선의 결핍으로 남을 고려하지 않았고 그들을 오히려 종속시키고 부려먹었을 것이다. 이러한 지배욕이라는 선의 결핍은 수많은 전쟁을 일으켰으며 인간을 파괴하였다. 그러니 지배욕이라는 선의 결핍은 자신을 위해 남을 사용하는 인간미 없는 것임으로, 인간에게 가장 해를 많이 끼치는 ‘악’인 동시에 우리가 피해야 할 행위이다.
5. p205 신앙으로 마음을 정화하여 천상 사물과 천상을 초월한 사물을 향하도록 만들고, 겸손한 신앙심으로 인간 감정을 변화시켜 오만한 정령들의 지배에서 해방시키는 고상한 교리가 이민족들에게 아직 계시되지 않았던 까닭이다.
-교부에 따르면 로마에서는 공연축제로 신을 섬겼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은 공연에서 자신들을 정화시키고 신을 섬긴답시고 신을 모욕하는 행위를 하였다고 한다. 반면에 그리스도교에서는 신에게 예의를 갖춰 정갈하고 고상한 의식을 치렀다. 그런데 과연 그 ‘행위’ 자체에 의미가 들어있는 것일까? 그렇다고 생각한다. 로마인들은 자신들의 성적인 본능적 욕구를 따르며 그것을 신성화시켰는데 그러한 행위는 단지 인간의 도성의 물질적인 것이며 플라톤의 이론에 따르자면 물질은 ‘혼탁한’ 것이다. 본능이라는 것은 이성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동물과도 같은 상태이다. 서광사에서 발간된 케니의 ‘중세철학’이라는 서적에서는 이성이 없는 동물도, 무기체인 돌과 같은 존재도 선하다고 하였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이성을 가지도록 정해진 인간이 이성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그보다 낮은 수준으로 행동한다면 그것은 선의 결핍을 저지르는 것으로 즉, 악의 행위를 한다는 것이다. 곧 그리스도교에서는 이성을 향한 자유의지라는 인간의 감정을 통하여 하느님의 도성을 추구하고 신앙심을 키우는 교리가 제시되었지만, 신을 이성적으로 대하지 않았던 로마인들에게는 그러한 교리가 없었기에 그들은 마음을 정화시킬만한 능력이 없었다고 봐야할 것이다.
6. p211 그러므로 그들을 상대할 적에 하느님의 도성을 공격하는 반대자라도 참고 견딤으로써 그들을 결국 명시적으로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으로 맞이하는 것도 무익한 일로 여기지 말 것이다. 그와는 반대로 하느님의 도성이 세상에 순례하고 있는 한, 하느님의 도성은 성사의 유대로 자기에게 결합되어 있지만 성도들의 영원한 운명을 함께하지 못할 사람들도 거느리고 있음을 기억해 둘 것이다.
-교회에 대한 반감을 가진 사람들이 교회를 깔아뭉갤 겸 교회에 방문했다고 치자. 그렇게 교회에 참여하고 나서 하느님에 대해 욕설을 한다 치자. 물론 기분이 나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교회에 온 용기가 얼마나 가상한가! 그들과 같이 불순한 의도로 교회에 숨어든 호교론자(교회에 반대하는 자)나 또는 목숨이 두려워 교회로 피신한 로마인들의 경우에도 어떤 계기로 인해 신앙고백을 할 수도 있다. 인간에게는 다른 사람들을 단정 짓고 판단할 권위가 없기에 우리는 이교도라도 그들이 하느님을 평생 믿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하지만 또한 교회를 나간다고 하여도 하느님을 믿지 않는 경우가 있을 수 있으며 교회에 나간 호교론자라도 모두가 교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경우에는 그들이 하느님의 영원한 세계에 같이 가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 뿐이다.
7. p211 로마의 쇠퇴는 우리 종교가 그들이 섬기는 신들에게 제사 지내는 일을 금지한 탓이라고 그들은 주장한다. 그 제사들이 금지되기 이전에 무슨 해악이 얼마나 심했고, 그에 비해 로마 도성과 그 영향권에 속하는 속주들이 실제로 무슨 해악을 얼마나 심하게 겪었는지 충분할 만큼 상기해 보아야 한다.
-로마인들이 그들의 몰락을 그리스도교 때문이라고 하는데, 로마에서 그들이 섬기는 신들은 로마인들에게 아무것도 베풀지 않았다. 인간이 그리스, 로마 신들에게 제사를 하였을 때도 로마에는 해악이 넘쳤고 그 제사가 금지되었어도 마찬가지였다. 로마의 신들은 자기 백성에게 관심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그들은 그들의 신을 비난하기는커녕 그리스도교의 잘못으로 치부하는 것은 전혀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도 않고 명분으로도 적합하지 않다. 로마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로마에서 제사가 금지된 뒤에 그리스도교가 잘못이 있다고 치더라도, 그렇다면 그들이 제사를 지냈을 때 겪었던 해악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로 보아 로마인들은 말도 안 되는 논리를 가지고 그리스도를 비난하였음이 명백하며 그들은 충분히 그들의 모순된 논리를 생각해봐야했을 것이다.
8. p213 마지막으로는 아주 명백한 전거에 의해 논박을 당하고 잘못을 인정하고 난 뒤에도, 현생의 이익 때문이 아니라 사후에 올 생명 때문에 그런 신들을 섬겨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말을 하고 싶다.
-로마인들이 그리스도인들에게 명백하게 반박을 당하고 그리스도의 입장을 인정하고 나서도, 로마 신들을 섬기는 이유는 그들이 현세에서 몰락하여 현생의 이익을 잃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신들이 줄 생명 때문이라고 하면 또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가! 앞에서 말했듯이 로마의 신들은 그들이 제사를 보냈을 때도 아무런 은총을 베풀어 주지 않고 외면하거나 방관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신들이 그들이 죽어 사후 생명을 살 때 은총을 베풀 것이란 말인가? 그리스와 로마의 신들은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한 것과 같이 이성과 감성의 혼합체지만 성육신과는 달리 단지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진 인간에 불과하다. 그리 보면 그러한 신들은 단지 인간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꿈’을 가진 허구의 인물을 만든 존재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단지 우상숭배 대상일 뿐, 아무런 도움도 가져다주지 못한다.
9. p221 이따위 작자들이야말로 사악하기 이를 데 없고 무례하기 짝이 없는 자들로서, 수많은 위업으로 칭송이 자자하고 기념비적 문학을 통해 찬미받는 저 로마인들로부터 너무도 멀리 낙오된 종자들이며, 그야말로 로마인의 영광에 정면으로 상치되는 자들이라 하겠다.
-야만족에 의해 처녀를 뺏긴 여인들을 욕하는 자들이 자신의 종족이라는 것을 모르는 자들에게는 할 말이 없다. 그러한 야만족은 여인들의 육적인 순결 외에는 정신적인 순결과 정조를 빼앗지도 못했으면서 그녀들의 정조를 비하한다. 그들은 한 마디로 사악한 종자들이다. 또한 그 시대 시인들은 파렴치하고 무례한 졸작들을 공공연하게 공연하였는데, 그 당시 로마인들의 체면을 깎아먹은 주요 원인이 시인들에게 있다고 본다. 종교에 영향을 큰 영향을 미친 이 시인들에게 로마시민들은 오락거리 삼아 그러한 공연을 접하면서 로마인들은 그들의 지조를 잃어갔을 것이다. 그 당시에 명예를 중시하던 로마시민들의 영광에 시인들과 그러한 야만족들이 모든 것을 망쳐놓은 것이다. 하지만 지배욕이 강했던 로마인들의 성격을 보면 시민들 또한 그렇게 덕성이 있어보이진 않는다. 그들은 결국 같은 족속이며 그들의 야심을 채우기 위해 (그런 야만적인) 기념비적 문학을 쓰고 그런 공연을 했을 뿐이다.
10. p221 왜냐하면 로마의 함락에서 무너진 것이 돌과 목재였지만 이런 작자들의 삶에서는 성벽이 아니라 도덕의 방벽과 긍지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고대 로마 초기에 번성했던 로마인들은 그러한 명예욕, 지배욕 등과 같은 선의 결핍을 통해 초기 로마의 수고를 망쳐 놓았다. 그들은 몰락할 때 결과적으로는 그들의 목재와 기둥이 무너졌겠지만 그의 근본적인 원인은 이 구절에서 말했듯이 초기 로마 조상들의 도덕과 그들의 긍지가 이미 썩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의 욕망을 따르지 않고 하느님을 믿지 않더라도 하느님의 도성의 자세를 알고 실천했어야 했다.
11. p227 그렇다면 우리는, 자기 모친에게 바쳐질 신적 영예 가운데 저런 추행도 거행되었으면 하느냐고 그(스키피오)에게 물어보자.
-스키피오가 키벨레 여신의 신상을 받드는 대제관이었음을 감안할 때 만약 여신을 받드는 의식이 치러질 때 그러한 야만적인 추행이 행해졌다면 아마도 그는 자결을 하고 말았으리라. 인간들도 야만적으로 생각할 정도인데 그들의 신들이 보기에는 얼마나 버릇없는 짓거리일 것인가. 어머니와도 같은 존재인 키벨레 여신 앞에서 그러한 추한 행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거행<?>하는 모습을 보면 스키피오는 그들을 야만족이라고 생각하고 내쫓았을 것이다. 신에게는 그만한 영접을 해야 마땅하지만 그마저도 하지 않고 신들이 혐오스럽게 여기었을 행동을 그들 앞에서 했다면 나라도 당연히 두 눈을 뜨고 봐주지 못했을 것이다.
12. p235 그리스인들은 신들의 판단에 따라 시인들의 방종을 자유로 보았지만, 고대 로마인들은 시인들의 방종을 제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로마인들은 덕을 잃고 타락하긴 했지만 스키피오와 같은 대제관은 그리스인들이 행하는 일관성 즉, 이러한 희극을 법적으로 허용한 것에 대해 반감을 표출하였다. 하지만 로마인 자신들도 그와 같이 시인에 의해 추악한 공연을 해왔지 않는가? 나는 로마가 덕성이 있었다는 구절을 읽고 이제까지 그리스만 그런 추악한 공연을 한 줄 알았지만 로마도 그랬다는 것은 그들 간의 수준은 똑같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게 똑같은 짓을 한 족속들이 한 군데는 그러한 추악한 행사를 허용하고 다른 한 쪽은 시인들을 묵살시켜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은 정말이지 비겁하고 혐오스럽다. 똑같은 짓을 저지르고도 자기네는 그런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로마의 의식은 단지 자존심만 내세우고 자기들의 우월성만 보여주려는 것이지 그 이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13. p243 로마인들은 시인들에게 인간을 대상으로 해서는 멋대로 발언할 수 없도록 자유를 박탈했지만 신들에 대해서는 멋대로 발언하는 자유를 부여했으니 결국 신보다도 자신들을 더 중시한 셈이다.
-스키피오가 덕성이 있다고는 하지만 언제까지나 그 기준은 인간의 도성에 머무른다. 그들은 그들이 섬기는 신들에 대한 경외심 따위는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다! 신을 섬기는 대제관이라는 작자가 신들이 무서운 줄 모르고 그들의 신들에 대한 얘기를 조심해서 하도록 지시를 내리지는 못할망정 신들을 망신시키는 시인들을 의식에 법적으로 집어넣기도 했다. 하지만 인간에 대해서는 말을 조심해서 하게 하였으니 로마인들은 신을 우습게 봤거나, 스키피오가 신들은 인간의 일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허점을 간파하고 그랬을 수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신이 인간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은 신이 그들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즉 이 말은 그들은 신들에게 버림받은 존재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이 섬겼던 신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어떻게 인간의 감정을 가진 로마의 신들이 인간들이 자신들을 함부로 대하는데 가만히 있겠는가! 하지만 신들이 아무런 미동조차 하지 않은 것을 보면 로마의 신들은 없다고 봐야 할 것이며, 만약 신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렇다면 로마인들은 신을 우습게 본 것이 되며 신들은 무능력한 자들이 되는 것이다.
14. p249 이런 시적 허구나 경멸받아 마땅한 신들을 연기하는 배우는 오명을 뒤집어 쓰고 있는데도, 정작 창작자인 시인은 그런 허구로 영예를 얻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떻게 보면 불합리해 보인다. 어째서 작품의 ‘창조자’는 추대를 받고, 정작 그 작품을 ‘보여주는’ 사람들은 욕을 먹어야 하는 것인가? 나의 생각으로는 인간의 도성에 사는 보통 사람들은 본질을 보지 못하고 보이는 것만 본다고 말해야겠다. 즉, 관객들은 자신들이 보는 연극인들의 행동을 그 연극인들의 본질적인 행동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보이지 않는 시인은 영예를 얻는 것인가? 허구, 즉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신과 같은 존재로서 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시인들이 신이라면, 신은 그럼 어떤 존재란 말인가?
15. p255 만일 로마인들이 삶의 율법을 자기네 신들한테서 받을 수 있었더라면 로마 창건 몇 해 후에 아테네인들로부터 솔론의 법을 빌리지 않았을 것이다.
-솔론에 대한 얘기는 넘어가도록 하겠다. 아무튼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만일 로마인들의 신들이 존재한다면, 그리고 그 신들이 로마인들을 아낀다면, 그들의 신들은 그들의 종과 백성들에게 마땅히 율법을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로마의 신들이 그들을 숭배하는 자들에게 율법 하나 주지 않고 손 딱 놓고 있었다는 것은 그 신들이 인간에게 냉정하거나, 인색하거나, 아니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 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 그 어떤 신이 자신의 백성들이 다른 나라나 다른 나라 (신들의) 율법을 빌려와 자신의 터에서 행하도록 허용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 만약 로마인들의 신이 그들에게 법을 주지 않았다는 것은 신들이 비열하거나 아니면 존재하지 않다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다.
16. p269 (또) 국가가 도덕적으로 타락하더라도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각자가 늘상 재산을 늘려가는 일, 날마다 아무리 낭비하더라도 꼬박 다시 채워지는 재산, 그 재산으로 누구나 강자라면 약자들을 자기한테 굴복시킬 수 있으면 그것이 우리한테는 훨씬 더 중요하다.
-개인이 모여 국가를 만든다고는 하지만, 그렇게 모인 국가의 보편적인 정서나 의식수준 등은 각 개인에게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그렇게 보면 그 당시 로마의 문화수준, 의식수준이 얼마나 개인주의적인지 알 수 있다. 국가의 타락이나 몰락은 자신들과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니 당연히 자신의 이익만 챙기기에 바쁘다. 그렇지만 그렇게 되면 국가는 운영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인간이 혼자 살아간다면 나약할 것이 다른 사람들과 뜻이 맞지 않더라도 부딪혀 살아가면 굳세지고 견고해지듯이 국가의 시민 개개인이 국가에 대한 불신만 할 것이 아니라 좀 더 헌신을 한다면 그들의 도시 카르타고는 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에 얼마나 국가의 관리들이 부정부패를 하였는지 알 수 있다. 국가관리가 부정부패를 하지 않고 선한 정치를 한다면 시민들은 당연히 그들의 이익이 보장받을 것이라 생각하고 기꺼이 도울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고 시민 개개인들이 모두 따로 논다는 것은 상위 계층으로부터 불신의 싹이 텄다는 것을 보여준다. 만약 상위 계급이 제대로 된 정치를 했다면 그들의 시민은 똘똘 뭉쳐 잘 지냈을 것이며 결국 카르타고는 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재산으로 강자가 약자를 굴복시킬 수 있다면 그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한 것을 보면 그 당시에 지배층이 어떻게 정치를 했는지 암시할 수 있다.
17. p281 그런데도 정령들은 자기 일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숭배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관심이 없었다.
-정령은 인간보다 낮은 등급의 영혼이라고 아우구스티누스는 말하고 있다. 그런데, 어째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을 말하면서 정령들을 일컫고 있는 것인가? 그는 로마의 신들이 인간에게 해를 준다는 입장에 서서 로마인들의 신들이 정령과 같은 수준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내가 위에서 언급했지만 로마인들은 단지 없는 신을 우상숭배하고 있었을 뿐이고 만약에 신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신들은 정령이었을 것이며, 인간에게 유익함을 주어야 할 존재인 신이 오히려 인간에게 해를 끼치고 있다면 그것은 당연히 정령이 아닐 것인가! 그런 정령들은 자기들의 일에만 관심이 있었고 자기들을 숭배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으며 그것을 당연히 여기고 숭배자들을 칭찬하고 보답해주지는 않을망정 인간에게 해를 끼칠 뿐이다.
18. p283 우선, 만일 사실이 저렇다면 그들은 그리스도교에 시비를 걸 명목이 없다. 왜냐하면 그들의 조상들이 자기들의 타락한 습속으로 그 많고도 올망졸망한 신들을 로마 도성의 제단으로부터 파리떼 내쫓듯 쫓아버렸기 때문에, 그 일로 자기네 신들이 그들을 버리고 떠난 까닭이다.
-그렇다. 로마인들은 그들의 신들을 존중하지 않았다. 오히려 망신을 주었을 뿐이다. 그렇게 하여 그들은 그들의 신들을 거지를 내쫓듯이 내버렸고, 그에 신들이 떠났기 때문에 로마인들에게는 그리스도교에 그들이 망한 책임을 전가할 명목이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들의 신을 스스로 내쫓은 것이 어떻게 그리스도의 책임이라는 말인가?
19. p289 이것은 우리가 지상 행복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기 위함이니 지상행복은 마리우스같은 악인들에게도 흔히 허락되는 까닭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지상 행복을 무슨 악처럼 여기지도 않기 위함이니, 정령들이 미워함에도 불구하고, 경건하고 선량한 사람들, 한 분인 참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들에게서도 탁월하게 지상 행복이 베풀어짐을 우리가 볼 것이기 때문이다.
-마리우스가 로마 도성으로 군대를 끌고 잔학한 짓을 한 악인이라도, 만약 그가 지상의 행복에 너무 연연해하지 않는다면 그는 구원<?>받을 수 있다. 그렇다고 지상 행복을 혐오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는 말을 한다. 지상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어야 천상에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20. p291 내가 여러 차례 말했고, 성서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져 있으며, 사실 자체가 적시하고 있듯이, 정령들이 이런 수작을 하는 까닭은 그런 조짐들을 보여줌으로써 자기들이 신으로 여김받고 숭배받기 위함으로 여겨진다.
-신과 정령은 다르지만, 정령들의 목적을 여기에서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정령들은 신과 같은 대접을 받기 위해 인간들에게 헛된 조짐을 보여줌으로써 인간들로 하여금 그들을 숭배하게 한다. 하지만 그러한 정령들은 하느님께서 심판하실 때 최악의 죄목으로 고발을 당할 것이라고 한다. 당연하다. 신을 자칭하며 오만하게 신을 모욕하는 행위는 신으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21. p293 다만 이 점을 유의하시라! 구세주를 모독하고, 정령들의 지배에서 신도들의 의지를 해방하는 분을 모독하는 자들이 과연 어떤 신들에게 복속하고 싶어하냐는 아주 중요한 문제라는 점이다.
-정령이 신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데, 신이 들렸을 때 그 신들린 자가 구세주에게 복속하고 싶어하는지, 정령에게 복속하고 싶어하는지는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여기서 그가 승리가 술라의 것이라고 말한 것을 보면 그는 정령에게 굴복했다. 정령이 나중에 그들에게 남긴 것은 파멸뿐이었다. 선한 정령인지 악한 정령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정령이 신을 자칭해서 술라에게 승리가 그의 것이라고 함부로 말한 것을 보면 악한 정령이라고 생각된다. 신들린 자가 하느님을 바랐다면 그의 입에서는 죄를 삼가라는 말이 나왔을 것이다.
22. p293 신들이 예언한 그 승리로 인해 술라는 분에 넘치는 야욕으로 날뛰었고, 순조로운 성공으로 턱없이 부풀어 올랐다가 추락함으로써 그는 원수들을 육신적으로 파괴한 것보다도 더 심하게 자기 자신이 도덕적으로 파멸하는 결과를 빚었던 것이다.
-사람은 자기의 성공을 확신하게 될 때부터 분에 넘치는 짓을 한다. 하지만 쉽게 이룬 것은 쉽게 잃듯이,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잃고 그에 더해 자신까지 잃게 된다는 점이다.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을 보라. 쉽게 얻은 재물일수록 흥청망청 써서 재산을 다 잃지만, 재산을 잃을 뿐만 아니라 빚까지 지고 희망을 잃어버리는, 자신을 파멸시키는 짓을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정령들이 그렇게 예언을 했는데, 그렇게 예언을 한 존재가 정령이 아니라 신일지라 할지라도 인간은 자신을 지지하는 말에 대해 겸손함을 잃지 말고 겸손하고 주의깊이 행동해야 할 것이다.
23. p295 저 악령들은 스스로 악한 본보기를 보임으로써 오히려 저런 죄악에다 신성한 권위를 부여하려고 아주 치밀하게 계교를 쓰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악한 정령들이 스스로 악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그들을 신으로 여기는 인간들이 그들의 행실을 보고, 신들도 악한 짓을 하는데 그게 용납된다면 인간도 그들의 행동을 의심없이 받아들일 것이다. 정말 사악하지 않은가! 인간들이 보기에도 어리석은 짓을 정령들이 하여 인간들을 타락하게 만든다는 사실이 말이다. 인간은 정령이 인간보다 못한 존재라는 것을 상기하고 있어야한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정령들의 꾐에 넘어가지 않고 선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24. p297 그리스도는 최선의 습속을 이루려고 타락한 습속에 대항하여 끊임없이 계율을 내리고 있는 데 비해, 저들의 신들은 자기를 섬기는 백성과 더불어 공화국이 멸망하는데도 불구하고, 저런 계율을 내려서 공화국을 위해 손을 쓴 바가 아무것도 없다.
-로마인들이 그들의 신들을 탓하진 않고 그리스도교의 탓으로 돌리는데, 그렇다면 어째서 로마인들은 그들의 신을 생각해보지는 않는가? 그들의 신이 그들에게 무엇이라도 은혜를 베풀어준 적이 있는가? 로마인들은 잘 되면 모두 자기들 탓이고 안 되면 모두 신의 탓으로 돌리는 것인가? 그렇다고 해서 자기들의 신을 탓하는 것도 아니고 그리스도를 탓하다니, 말이 되지 않는다. 그리스도는 세상에 내려오시어 모세 시대에 있던 십계명까지 뜯어고쳐가며 인간들에게 더 적합한 계율을 내려주고 계속하여 내려주시는 반면에, 로마의 신들은 그리스도교의 계율과도 같이 자신들을 섬기라는 말 한 마디 없이 그들의 백성을 무방비 상태로 방치해 놓았다. 그렇게 방치했던 자신들의 신을 원망하기는커녕 그리스도교에 그러한 책임을 전가한 것은, 아마도 그들이 그들의 신을 단죄자로 생각했기 때문일까? 그들은 신을 경외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신들이 자신들이 어떻게 말 한 번 잘못하고 행실 한 번 잘못하면 벌을 주는 그런 신으로 생각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은 그리스도교에 그들이 망한 책임을 전가할 필요 자체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25. p279 차라리 저 신들이 정말 떠나버렸더라면, 로마인들은 비록 제 욕망에 불타 시민전쟁에 휩싸였더라도 신들의 충동질을 받아 움직일 적보다 훨씬 양순하게 행동했을 것이 틀림없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아우구스티누스는 로마의 신들을 단지 정령들로 여겼다. 그렇기에 모범을 보이지 않고 단지 인간들의 욕망을 부추기고 그들을 악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바에야 로마인들이 망하기 전에 떠났다면, 신들이 그들에게 충동질을 주거나 그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로마인들이 그들의 신을 따라하지 않아 훨씬 온순해졌을 것임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로마가 망하지 않았을까? 신들을 경배하지도 않는 로마인들이 신들이 있든지 없든지 상관을 하고 살았을까? 나는 그들이 신이 있든 없었든 그들은 그들의 탐욕에 빠져 스스로 멸할 운명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하고 싶다.
26. p305 저런 신들을 상대로 해서는 향락으로 즐겁게 해주는 편이 절제로 신들을 화나게 하는 편보다 더 낫다는 투였다. 흉측한 짓으로는 신들을 달래는데 도덕으로는 신들과 적대관계를 맺게 되며 그럴 바에는 전자가 더 낫다는 투였다.
-플로라 여신을 섬기는 축제에 외설스런 연극과 검투경기가 행해진다는 자체가 이상치 않은가? 플로라 여신은 꽃을 따는 젊은 여성인데 어째서 검투경기가 나온다는 말인가? 또 외설스런 연극은 왜 나오는가? 플로라 여신을 섬기는 축제가 그 신의 특징 자체가 다르다. 플로라 여신이 꽃을 땄다면 그에 맞게 좀 더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꽃을 따서 신들을 즐겁게 해주어야 정상인데, 외설적인 연극을 통해 여신을 모독하는 것이 신들을 달래주는 일인가? 그리고 외설적인 행위를 여신이 하였다면 조금은 이해가 되지만, 그것을 증명할 길이 어디 있는가? 그리고 여신이 그런 야한 짓을 하였다 하더라도 그것을 자기보다 비천한 인간들에게 흉내 내어진다는 것 자체가 이미 그 신에게는 모욕일 수 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절제로 신들을 화나게 하는 편이 나으며, 그런 흉측한 짓으로는 결코 신들을 달랠 수 없다. 차라리 신들의 도덕에 맞서 인간이 선하게 살아 신들과 적대관계를 맺는 것이 차라리 낫다.
27. p305 다시 말하거니와, 참된 종교라면 저따위 정령들을 무마시키는 파렴치한 행위를 극력 반대하고 혐오해야 마땅했다.
-참된 종교라면 신들을 존중하고 경외할 줄 알아야하지만 그들이 섬기는 정령들을 즐겁게 해준답시고 파렴치한 행위를 하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다. 그들은 그러한 혐오스러운 행위를 통해 신들을 모독하였으니 그것은 참된 종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28. p305 교회에서는 모든 사람 면전에서, 약간 높은 강단으로부터 거룩한 성서와 정의의 가르침이 울려오는데, 그것을 실행하는 사람들은 상을 받기 위해 듣고 실행하지 않는 사람들은 벌받기 위해 듣는 셈이다.
-신의 말을 실행하는 자는 상을 받고 그렇지 않은 자들은 벌을 받는다고 하지만, 실행을 하지 않았더라도 로마인들과 같은 사람들도 갑작스런 변화를 통해 바뀔 수 있고 신 아래 두려워 그들의 기존 태도가 바뀔 수 있을 것이다. 로마인들도 그러니 다신숭배를 포기하고 한분이신 하느님을 섬기며 그들의 인식을 바꿔야 할 것이다.
29. p307 우리는 그대를 바로 그런 나라로 초대하며 그 시민들의 대열에 그대가 합류하기를 권유하는 바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로마인들이 그들이 섬겨야 할 마땅한 신이 없다고 말을 하며 그리스도교로 개종할 것을 권유한다. 하지만 그 합류는 로마인들이 그들의 정신과 태도를 바꾸기 전까지는 꽤 힘들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다. 그러니 힘들더라도 다신숭배를 포기하고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하는 일마다 잘 될 것이다.
30. p309 설령 저들이 무슨 권한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육신의 선익 때문에 그들을 숭배하기보다도 차라리 우리는 육신의 선익을 멸시해야 마땅할 것이다. 또 우리에게 닥치는 영원한 선익을 그자들이 시샘하는 마당에 어차피 저들을 숭배한다 하더라도 저들 덕택에 우리가 거기에 도달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많은 인간들은 육신의 선익에 대해 좋은 것만 누리고 해악은 당하기 싫어한다. 그리고 정령들이 그럴지라도 하느님이 계신 한 정령들에게 그러한 선익과 해악을 줄 권한은 정령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그런 선익을 위해 정령들을 숭배하지 말아야 한다. 고난이 닥칠수록 신은 그를 더욱 강하게 하기 위해 그렇게 힘들게 하시기에, 육신이 고난을 당하더라도 그것을 그렇게 대단치 않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위에서와 봤듯이 정령들이 인간에게 속임수만 쓴 뒤에 파멸만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알지 않았는가! 그러니 우리는 정령을 섬기지 말고 한분이신 하느님을 섬기면서 신의 나라를 꿈꿔야 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