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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군인의 원칙적 정신”과 "용광로 같은 포용정신“의 지휘관 ”
생애 전체를 전쟁터에서 보내고 국가의 생존 .전진. 번영의 원칙과 국가에 대한 충성. 개혁의지로 삶을 살았던 晩翠 이용문 장군. 학창 시절 외에는 평생을 전쟁터에서 국가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전투에 임하였고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헤 생명을 바치셨습니다.
역사 속에서는 국가의 모든 현상에 대해 무조건 순종하는 사람들과 부조리 잘못된 것에 대하여 개선과 개혁을 주장한 사람들의 두 유형 이 있습니다.
이용문 장군은 평생을 전쟁터에서 싸웠지만 건군 당시부터 전쟁 중에도 軍과 그 당시 정부의 잘못된 점에 대하여 개혁을 주장하면서 휴전을 끝까지 반대하다 전사하셨습니다.
국가수호의 원칙적인 참 군인의 길을 걸으면서도 개혁의 제창과 미래를 내다보는 탁월한 혜안, 용광로 같은 포용력의 정신으로 부하장병을 지휘하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냈습니다.
“전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기동력이 핵심”이라고 하면서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기갑연대를 창설하고 준비된 기갑병력으로 6.25 남침 전쟁에 대처하였으며, 국가안보에는 정보력이 핵심“이라고 주장하고 원칙적인 軍 정보업무 강화작업을 하셨습니다.
6.25남침 전쟁 직전에는 육군본부 정보국장으로 불철주야 국가안보 수호에 전력을 다하였고 당시 정권 상부에서 “정치인 동향 파악지시” 를 하자 “어찌 軍이정치인 동향 감시를 합니까, 北의 남침정보가 감지 되고 있는 상황에서 못합니다.” 라고 거부하여 참모학교 부교장으로 전보되었습니다.
6.25 전쟁이 개진되고 국군이 계속 후퇴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전투경험이 있는 지휘관들이 부족하여 당시 전투경험이 많은 이용문 장군을 수도 서울 사수지휘관으로 임명하게 되었고 6월 28일 서울 북부 방어에 투입되어 최후까지 수도서울을 사수하셨 습니다.
서울이 적에 함락된 후에도 후퇴하는 부하장병들을 결집하여 남산 에서 5일간 게릴라전을 전개하셨습니다. 敵 치하에서 3개월간, 9.28 수복 때가지 행상으로 변복하여 북괴군의 동향분석 활동 후 9.28 수복과 함께 9사단 부사단장, 육군본부 작전국장, 수도사단장을 역임하셨습니다.
작전국장 당시에도 “군인은 국가수호와 안보의 역사적 사명을 갖고 이 세상에 태어났다. 한반도에 있던 국가들은 안보가 취약하였을 때 멸망 하였다. 軍이 선각자적인 사명의식을 갖고 국민과 국가지킴이의 선각자 적 사명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 ”라고 유훈을 남겼으며, 자유당 국회의원의 동향에 대하여 軍을 동원하라는 지시에 대해 거절하면서 ”軍은 정치의 중립을 지켜야 한다. 그러나 정치를 잘 알아야 한다.
정치에 軍이 이용당해서는 아니 된다“라는 훈시를 남기셨습니다.
9사단 부사단장 시절 중공군의 공격으로 전투지경선이 노출되어 불가피 하게 철수를 하게 된 상황에서 최고 지휘관이 계급장을 떼어내자 이용문 장군은 지휘관 휘장을 붙이고 “나를 따르라 내 책임 하에 승리로 이끌겠다”고 하셨으며
이용문 장군이 총지휘를 하고 박정희 참모장이 밀착하여 보좌하는 가운데 진군하였고 총탄이 비 오듯 하는 가운데서도 軍의 국가발전과 개혁에 대한 사명감에 대하여 두 분께서 토론하는 장면을 보고 감동한 장병 (이양근 장군 등)들이 용기를 갖고 전투에 임하였고 이용문 장군의 실전에 기초한 질서 있는 작전지휘는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용문 장군은 1952년 7월부터 10월까지 휴전회담 중의 격전이었던 수도고지. 지형능선 전투에서 수도사단장으로서 중공군 12軍 예하 34사단과 35사단의 집요한 공격을 5차례에 걸쳐 공방전을 치루었고
3차전에서 敵 2,400여명을 사살하는 대전과를 거둬 피탈된 고지를 탈환함으로써 탁월한 통솔력과 과감한 전투정신을 인정받아 軍 최고 의 영예인 태극무공훈장(훈기 제 117호)에 추서되었습니다.
후일 5.16 당시, 이용문 장군의 주요 참모들이 그 핵심 주도자가 되어 5,000년 한민족 역사 속에서 5.16직후 5일 만에 박정희 최고회의 부장 실을 방문한 당시 서울법대생 이건개는 그 당시 국가위기 속에서 박정희 장군의 외모에서 풍기는 목숨을 건 “강력한 혁명의지의 死力의 氣”가 “구름 벽”을 만들어 박정희 장군의 모습을 볼 수 없었으나 김정자 여사 (이용문 장군 부인)께서 이용문 장군을 언급하자마자 얼굴 전체를 파안 하면서 웃음과 큰 미소를 띄어 이용문 장군의 용광로와 같은 포용력과 담대함을 가슴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용문 장군의 참 군인 정신은 조갑제 선생이 쓴 이용문장군의 자서전 , “젊은 거인의 초상”에서 “원칙적인 참 군인정신‘과 ”용광로 같은 포용 정신“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비록 1953년 6월24일 전투지휘 중 장렬히 전사하셨지만 삶과 생명의 존재는 영원하여 대한민국이 극히 어려운 시기와 죽음의 계곡에 이르게 되는 위기에 다시금 도움과 게시로 대한민국의 국운을 살리는 사명의 역할을 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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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3.5 이용문장군추모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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