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보는 전쟁사]
<7> 적벽대전 1편-거대한 전쟁의 시작, 2편-최후의 결전(Red Cliff)
 
동남풍, 연환계, 화공작전…
풍수지리를 이용하라!
 
감독: 오우삼/출연: 양조위, 금성무, 장풍의
역사는 중국 삼국시대를 ‘군웅이 할거하는 시대’라고 쓰고 있다. 기원전 210년 진(秦)나라의 시황제가 죽자,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난다. 고조(유방)가 항우를 격파하고, 전한에 이어 후한이 세워지고, 3세기에 조조(曹操) ·손권(孫權)·유비(劉備)등이 위(魏)·오(吳)·촉(蜀) 세 나라를 건국한다
적은 병력으로 대군 조조를 이긴 전투
이후에도 천하 통일을 위한 끊임없는 전쟁이 일어난다. 이 가운데 후한(後漢) 말 208년에 후베이(湖北)성 자위(嘉魚)현의 북동쪽, 양쯔(揚子)강 남안에 있는 적벽에서 벌어진 전투가 적벽대전(赤壁大戰)이다. 화북(華北)을 통일한 조조가 대군을 이끌고 손권과 유비의 연합군과 싸운 전투다.
당시 조조가 공격하자 손권은 주유를 대도독으로 삼아 3만 병사를 거느리고 양쯔강을 거슬러 올라가 하구(夏口)에서 유비의 군대와 합세했다.
그런 다음 유비와 손권의 연합군은 서쪽으로 더 올라가 적벽에 이르러 양쯔강 남쪽에 군대를 주둔시켰다. 이때 조조의 군대는 양쯔강 북쪽에 진을 치고 있었다. 양쯔강을 사이에 두고 사활을 건 수전(水戰)이 시작된 것이다. 결국 조조가 이 싸움에서 패해 천하 통일은 뒤로 미뤄지고 위·오·촉 삼국으로 정립된다. 세계 전쟁사는 ‘적벽대전은 적은 병력으로 대군을 이긴 전투 중 하나’로 기록하고 있다.
적벽대전 상당 부분 그대로 재현
영화 ‘적벽대전’ 1, 2편은 중국 대륙이 위·오·촉 삼국으로 분할되는 데 분수령이 된 적벽대전을 다루고 있다. 영화는 약간의 허구를 빼고는 역사 적벽대전을 상당 부분 그대로 재현하면서 전쟁의 스펙터클을 보여준다.
영화는 정사(正史)의 기록이 짧고 모호해 적벽대전의 전모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들고, 명나라 인물 나관중이 집필한 소설 『삼국지연의』를 기본으로 했기에 허구는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는 위·촉·오 3국이 대립하던 서기 208년, 위의 조조(장풍의)가 후한의 황제 헌제에게 촉의 유비를 공격할 것을 주장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중국 북쪽을 장악한 조조가 천하 통일을 위해 형주(荊州: 湖南省)를 향해 남하하려는 것이다.
한편 조조에게 쫓긴 유비는 손권과 연합해 보려고 하지만 손권은 조조를 의식해 전쟁을 피한다. 이때 유비의 책사인 제갈량(금성무)이 손권의 책사인 주유(양조위)를 만나 설득해 촉·오 연합군이 결성된다. 유비와 손권이 손을 잡았다는 것에 분노한 조조는 대군을 이끌고 공격하지만 적벽에서 크게 패한다.
바람, 불, 물과의 전쟁 서양 전쟁영화에선 볼 수 없는 장면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적벽에서의 수전이다. 제갈량의 동남풍, 병사들의 이탈과 뱃멀미를 막기 위한 조조의 연환계(連環計: 배들을 쇠사슬로 한데 묶은 다음 배 위에 넓은 판자를 까는 것), 이에 맞서 주유의 장수 황개(黃盖)가 위장 귀순에 이어 펼치는 화공(火攻) 등 풍수지리를 이용한 전술 전략을 잘 보여준다. 결국 조조는 연환계가 오히려 화근이 돼 주유의 화공작전에 당한다.
이 같은 바람, 불, 물 등 자연현상을 이용한 전술 전략은 ‘트로이’ 등 고대 서양의 전쟁영화에선 찾아볼 수 없는 장면들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조조가 주유의 여자 소교 때문에 전쟁을 시작했다거나(소교는 조조의 공격 시기를 놓치게 하는 팜므 파탈 역할을 한다), 조조의 참모 장간이 주유를 만나 정세를 염탐한다거나, 짚을 실은 배를 보내 조조 군의 화살을 모두 가져오게 하는 것, 손권 여동생의 첩자 행위 등의 설정은 다 영화적인 허구들이다.
오우삼 감독, 전쟁의 스펙터클 선사
1, 2편을 합쳐 4시간 반이 넘는 영화엔 영웅이 많이 나온다.
주유를 비롯해 조조, 제갈량, 손권, 유비, 장비, 관우 등이 무인의 기개와 기예에 가까운 검술을 보여주며 전쟁의 스펙터클을 선사한다.
감독은 주윤발 주연의 ‘영웅본색’ ‘첩혈쌍웅’ 등과 할리우드 액션 스릴러 ‘페이스 오프’ ‘미션 임파서블 2’를 연출한 홍콩 누아르의 전설, 오우삼 (吳宇森, John Woo)이다.
적벽대전에서 주유는 이기고 조조는 졌다. 군사적으로만 보면 조조가 이길 수 있는 전쟁이었다. 주유는 서두르지 않고 정세를 분석하고 제갈량과 참모들의 얘기를 경청했다. 반면 조조는 허세였다.
화북을 장악하고 대군을 가진 조조는 급했다. 대군이지만 투지가 없는 정복민이 많았고 남방의 풍토병에 시달리고 있는 병사들을 소홀히 했다. 자신을 과신했고 적을 얕잡아 본 것이다.
적벽대전 이후 삼국 간의 전쟁 소용돌이 속에 촉은 위에 망하고, 위는 사마(司馬) 씨 일족에게 나라를 빼앗겨 280년에 진(晋)이 건국된다. 또 진은 오를 정복해 중국을 통일한다. 이로써 삼국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