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에는 아무 데도 가지 마라
3인조니 9인조니 하는 온갖 부정한 선거 방법을 동원하여, 정권 연장을 꾀하던 이승만 정권 말기 때의 일이다.
국민 무서운 줄을 전혀 모르고, 그처럼 날뛰던 당시 자유당 정부의 독재 권력에 분연히 항거한 최초의 학생 운동이, 바로 대구의 2․28 학생 의거다.
당시 2월 28일은 일요일이었는데, 야당 후보가 수성천변에서 선거 연설을 하는 날이었다. 이날 학생들이 여기에 참여할 것을 두렵게 여긴 당국은,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나무 심기를 빌미로 삼아, 학생들을 전원 등교시킬 것을 지시하였다.
이에 격분한 학생들이, 당일 날 독재정권 타도를 외치며 너도나도 거리로 뛰쳐나왔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2․28 학생 의거다. 내가 다니던 사범학교는 유독 이 데모에 빠졌는데, 그것은 위대한 교육자이신 김봉조 교장 선생님의 굳건한 교육 철학 때문이었다. 이 분은 초대 국회의원을 지내신 분으로 전교생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계신 분이었다.
2․28 전날, 전교생 조회가 있었는데, 교장 선생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요지의 훈화를 하시었다.
“내일은 일요일인데, 상부로부터 등교하라는 지시를 나도 받았지만, 일요일은 원래 쉬는 날이기 때문에 학교에 나올 필요가 없다. 시국이 이럴 때는 여당 연설회도 가지 말고, 야당 연설회도 가지 말고, 다만 학생의 본분인 공부하기에 전념하기 바란다.”
이 말씀에 따라 우리는 그날 학교에 나오지 않았고, 따라서 데모에도 참가하지 않았다.
서슬이 퍼렇던 독재 정권 시대에, 이렇게 말할 수 있으신 분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분의 용기 있는 지사적 풍모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높고 큰 분이시다.
그 당시 우리 학교에는 예술관이라 하여, 음악실, 미술실, 공작실을 겸비한 복합 건물이 있었다. 그 안에 50명의 학생들이 개별로 오르간 연습을 할 수 있도록, 오르간 1대씩을 비치한 50개의 방을 갖추고 있었다. 이곳은 24시간 개방되어 있어서, 오르간 연습을 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그 방에 들어가 연주를 할 수 있었다. 이렇게 멋대로 들락거리다 보니, 오르간 파손이 매우 심하여, 당시의 사정으론 그 수리비를 감당하는 데 여간 부담이 되지 않았다.
이를 시정 보완하기 위하여, 사용 시간과 방법을 제한하자는 의견이 선생님들 사이에 대두하게 되었는데, 이를 들은 교장 선생님께서는 늘 이런 말씀을 하셨다.
“오르간이 많이 부서지는 것은 우리 학생들이 그만큼 열심히 연주하기 때문이다. 수리비는 교장을 비롯한 선생님들의 수당을 조금씩 할애하여 메울 터이니, 학생들은 더욱 열심히 오르간 연습을 하기 바란다.”
우리들은 가슴이 찡하였다. 오르간을 파손하는 학생들을 꾸짖는 말씀은 한 마디도 하지 않으시고, 선생님들의 봉급을 깎아 수리비를 댄다고 하시다니! 옛날 동화에나 나올 이야기 같다. 오늘 이런 분을 본다면, 어리석다고 핀잔할 이가 적지 않을 것 같다.
한번은 실험실습비 사용에 대한 학생들의 불평과 의구심이 생겨서, 학생들이 조사단을 구성하여 경리 서류를 감사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때 교장 선생님께서는 서울에 출장 중이셨는데, 이러한 학교의 시끄러운 소식을 전해 듣고, 급히 학교로 내려오셔서 학생들을 모아 놓고는, ‘내가 있는 학교에서 그런 부정이 있을 수 없으니, 이를 믿고 학생들은 교실로 돌아가라.’는 말씀을 하시었다.
이 한 말씀에 학생들은 그 자리에서 분규를 중지하고, 교실로 돌아갔다. 평소 존경하던 교장 선생님의 말씀이라 너도나도 말없이 따랐던 것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존경스러운 마음이 더하고, 그러한 선생님 밑에서 가르침을 받은 것이 한없이 자랑스럽다.
세월이 흘러 나도 교장이 되었다. 말 한 마디에 학생들이 믿고 따르는 그런 교장에는 턱없이 미치지 못하니, 돌아보아 부끄럽기 짝이 없을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