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속사적 성경묵상 ● (셋째 해_10월 1일)
<시편 19편> “자연계시와 특별계시인 하나님이 말씀”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해는 그 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그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 온기에서 피하여 숨은 자 없도다.....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또 주의 종이 이로 경계를 받고 이를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또 주의 종으로 고범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시19:1-14)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롬1:19,20)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롬7:7-9)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요16:7,8)
『시편 19편은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즉 전반부(1-6절)에서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 세계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노래하며 그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는 한편, 후반부(7-14절)에서는 율법, 즉 하나님의 말씀의 완전성과 유익에 대해 노래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먼저 하늘과 궁창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면서 그것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낸다고 말합니다. 2절에서 날은 다음 날에게 말하고 밤은 또 다음 밤에게 지식을 전한다고 한 것은 밤이나 낮이나 하나님의 피조세계는 끊임없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권능과 지혜를 나타내고 있다는 말입니다. 즉 시인은 믿음의 눈과 귀를 가진 자들에게는 온 땅과 하늘에 충만한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으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얻게 됨을 말한 것으로서, 이것을 신학적으로는 자연계시, 또는 일반계시라고 합니다(롬1:20 참고).
특별히 시인은 하나님의 걸작품으로 태양을 의인화하여 시간의 질서를 따라 운행하는 해의 모습을 강한 장사와 기쁨으로 충만한 신랑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운행하는 해의 온기로 인해 모든 생물들이 생명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음을 노래함으로써, 자연 세계 안에 충만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노래합니다.
그런데 이처럼 자연계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묵상하던 시인은 갑자기 율법, 즉 하나님의 말씀으로 주제를 옮겨갑니다. 이것은 자연세계들을 통해서도 하나님을 알 수 있지만, 그런 자연계시만으로는 하나님을 온전히 아는 데 부족함을 인식하고, 특별계시인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묵상으로 옮겨진 것을 의미합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칭하는 여러 가지 용어들을 사용하여 율법이 주는 유익들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눈을 열어 참된 지식을 알게 함을 노래합니다. 그러면서 이러한 완전한 율법의 가치와 유익은 많은 정금보다 더 큰 것이며 그 맛은 송이꿀보다 더 단 것으로서, 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경계를 받고 지키는 사람에게 주님께서 주시는 상이 크다고 노래합니다.
이어서 시인은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라고 반문을 하는데, 이것은 인간들은 스스로 자신의 죄악과 허물을 깨달을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즉 자연계시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게는 해 주지만, 인간이 얼마나 타락한 죄인인가에 대해서는 깨닫게 해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특별계시인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성령의 조명(빛)을 받게 될 때 인간들은 비로소 자신의 죄인 됨을 깨닫게 되며 하나님의 구원을 요청하게 됨을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시인은 결론으로서 자기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시며, 고범죄를 짓지 말게 해 달라고 간구하는데, 이것은 늘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을 돌아봄으로써 자신의 죄악과 허물을 깨달아 혹시라도 숨겨놓은 죄악이 없게 되기를 구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처럼 하나님 말씀 앞에서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사람의 마음의 묵상과 그 입술의 기도야말로 하나님께 열납될 수 있는 참된 제물과 같음을 고백하면서 이 시편을 끝맺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참으로 아는 자란 곧 말씀을 통하여 자신이 심각한 죄인임을 깨달은 사람인 것을 기억합시다.』
● 오늘의 기도 ●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의 죄와 허물들을 온전히 깨닫고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더욱 의지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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