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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방[3501]范成大-四時田園雜興六十首(사시전원잡흥육십수)
四時田園雜興六十首(사시전원잡흥육십수)
범성대(范成大)
송태종(宋太宗) 서공(瑞拱) 2년인 서기 989년에 태어나서
인종(仁宗) 황우(皇祐) 4년인 서기 1052년에 죽은 북송(北宋) 때의 정치인이자
학자에 문인이다. 자(字)는 치능(致能)이고 호(號)는 석호거사(石湖居士)다.
오현(吳縣, 지금의 강소성 소주시) 사람이다.
14세 때 모친을, 18세 때 부친을 여의고 10년간 출사를 하지 않다가
부친의 유지를 따르라는 권고에 따라 소흥(紹興) 24년(1154) 진사(進士)가 되었다.
처주지부(處州知府), 지정강부겸광남서도안무사(知靜江府兼廣南西道安撫使),
사천제치사(四川制置使) 등의 지방관을 역임했고 중앙에서는 이부원외랑(吏部員外郞),
예부원외랑(禮部員外郞), 중서사인(中書舍人), 참지정사(參知政事) 등의 관직을 맡았다.
효종(孝宗) 건도(乾道) 6년(1170) 금(金)에 사신으로 가서 개인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금의 군신 앞에서도 당당한 태도를 보여 조야(朝野)의 칭송을 받았으며
그 결과 건도 8년(1172) 그의 나이 53세 때 중대부참지정사[中大夫參知政事,
부재상(副宰相) 급]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비록 2개월간(4월 2일∼6월 11일)이었으며
실권은 가지지 못했으나 지방관에서 시작하여 참지정사의 자리에까지 오른 것은
대단한 업적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범성대를 부를 때 치능(致能, 또는 至能)과 함께 참정(參政)을 자주 사용했다. 만년에는 병을 핑계로 은퇴하여
그의 별장이 있던 고향 석호(石湖)에 은거했다가 몇 년 뒤 조정의 부름으로
다시 벼슬을 하기도 했다. 범성대는 지방 관리 생활을 하면서 백성을 위하여
여러 치적을 남겨 세금을 줄이기도 하고, 구제 활동을 펼치기도 했으며,
중앙에서는 언관(言官)의 직책을 맡고 온화하면서도 굽힘 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람들은 그를 주전파(主戰派) 속의 온화파(溫和派)라 불렀는데 그는
어떤 정치적 주장을 강력히 펼친 정치가였다기보다는 자신의 일을 적절히
완수한 행정 관리에 가까웠다. 그에게는 자신의 직책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강력한 대립이나 갈등은 찾아보기 힘들고 감정상의 기복 또한 보기 힘들다.
명확한 시대 상황이던 금나라와 송나라 사이의 문제도 개인이 아닌
관리로서의 범성대에게는 큰 변화를 가져오지 않았다.
육유(陸游), 양만리(楊萬里) 등과 함께 남송사대가(南宋四大家)로 불리는 그는
주로 시에 뛰어났으며 그중에서 전원시, 풍속시(風俗詩), 사회시(社會詩),
애국시(愛國詩), 기행시(紀行詩) 등이 유명하다.
특히 그의 전원시는 남송부터 청(淸)에 이르기까지
도연명을 능가하는 전원시의 모범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一. 춘일(春日)】
其一
柳花深巷午雞聲(유화심항오계성)
버들꽃 휘날리는 깊은 골목길에 들려오는 한낮의 닭 울음소리
桑葉尖新綠未成(상엽첨신록미성)
뾰쭉하게 새로 돋은 뽕 잎은 미처 자라기 전이다.
坐睡覺來無一事(좌수각래무일사)
앉은 채 졸다가 깨어나도 아무 일 일어나지 않고
滿窗晴日看蠶生(만창청일간잠생)
맑은 햇살 가득한 창을 통해 누에 크는 모습이 보인다.
其二
土膏欲動雨頻催(토고욕동우빈최)
땅에 기름기 돌려 할 때 봄비가 자주 내려
萬草千花一餉開(만초천화향개)
오만가지 화초가 순식간에 피었다.
舍後荒畦猶綠秀(사후황휴유록수)
집 뒤의 밭두둑에는 여전히 잡초가 무성한데
鄰家鞭筍過牆來(인가편순과장래)
이웃집 죽순이 담을 뚫고 넘어왔다.
其三
高田二麥接山青(고전이맥접산청)
산등성이 밭의 보리와 밀은 푸른 산과 연이어있고
傍水低田綠未耕(방수저전록미경)
물가의 밭에는 푸른 풀 아직 갈지 못했다.
桃杏滿村春似錦(도기만촌춘사금)
복사꽃 살구꽃 가득한 비단 같은 봄 마을에
踏歌椎鼓過清明(답가추고과청명)
북치고 춤추고 노래하며 청명절을 보낸다.
其四
老盆初熟杜茅柴(노분초숙두모시)
낡은 질동이에 갓 익은 두모시
攜向田頭祭社來(휴향전두제사래)
밭으로 들고 와 지신께 제사 올린다.
巫媼莫嫌滋味薄(무온막혐자미박)
무당할멈이여, 술맛이 진하지 않다고 탓하지 말라!
旗亭官酒更多灰(기정관주갱다회)
술집의 관주(官酒)는 석회를 섞었단다.
其五
社下燒錢鼓似雷(사하소전고사뢰)
사당 앞에서 종이돈을 태우고 북소리는 벼락과 같은데
日斜扶得醉翁回(일사부득취옹회)
해 기울자 만취한 노인은 부축당해 돌아간다.
青枝滿地花狼藉(청지만지화랑자)
온 땅을 뒤 덮은 푸른 가지에 꽃도 낭자하다.
知是兒孫鬥草來(지시아손투초래)
아마도 어린 아이들이 풀싸움한 것이겠지.
其六
騎吹東來里巷喧(기취동래이항훤)
나팔 부는 기마병 동쪽에서 달려와 골목을 떠들썩하게 만들더니
行春車馬鬧如煙(행춘거마뇨여연)
봄시찰 나온 원님의 거마 행렬이 시끌벅적하게 먼지를 피운다.
系牛莫礙門前路(계우막애문전로)
문 앞에 소를 묶어 길을 막지 말고
移系門西系碡邊(이계문서계독변)
문의 서쪽의 돌고무래 옆에다 묶어 노시게
其七
寒食花枝插滿頭(한식화지삽만두)
한식날 꽃가지를 머리에 가득 꽂고
蒨裙青袂幾扁舟(천군청결기편주)
붉은 치마 푸른 소매 아낙네들 태운 편주는 몇 척인가?
一年一度遊山寺(일년일도유산사)
일년에 한번 씩 산사로 놀러가는데
不上靈岩即虎丘(불상영암즉호구)
영암산에 못 오르면 호구라도 간다네.
其八
郭里人家拜掃回(곽리인가배소회)
성곽 안의 사람들 성묘하고 집에 돌아가는데
新開醪酒薦青梅(신개요주천청매)
새로 거른 막걸리에 매실을 주더라.
日長路好城門近(일장로호성문근)
해 길고 좋은 길에 성문이 가까워오니
借我茅亭暖一杯(아차모정난일배)
우리 집 초가 정자에서 술 한 잔 데우자꾸나!
其九
步屧尋春有好懷(보섭심춘유호회)
나막신 신고 봄 찾아 나선 길에 기분이 좋아져서
雨餘蹄道水如杯(우여제도수여배)
비 온 뒤에 길에 찍힌 발굽은 물 담긴 잔과 같다.
隨人黃犬攙前去(수인황견참전거)
날 따르던 누렁이가 앞으로 뛰어 가더니
走到溪邊忽自回(주도계변홀자회)
개울 가에 이르러 갑자기 제 스스로 되돌아온다.
其十
種園得果廑賞勞(종원득과근상노)
밭에 씨 뿌려 얻은 과일도 노고에 비해 겨우 보상하는 정도인데
不奈兒童鳥雀搔(불나아동조작소)
애들하고 잡새들이 다치게 그냥 놔둘 수 없다.
已插棘針樊筍徑(이파극침번순경)
가시나무를 심어 죽순 밭에 울타리를 치고
更鋪漁綱蓋櫻桃(경포어강개앵도)
고기잡이 그물을 펼쳐서 앵두나무 덮었다.
其十一
吉日初開種稻包(길일초개종도포)
길일을 잡아 처음으로 볍씨 포대를 여니
南山雷動雨連宵(남산뇌동우연소)
남산에는 천둥치고 밤새 비가 내린다.
今年不欠秧田水(금년불흠앙전수)
올해는 못자리 물이 모자라지 않겠구나!
新漲看看拍小橋(신창간간박소교)
새로 불어난 물이 어느새 작은 다리에 부딪친다.
其十二
桑下春蔬綠滿畦(상하춘소녹만휴)
뽕나무 아래 봄나물은 온 밭이 초록인데
菘心青嫩芥苔肥(송심천눈개태비)
배추속은 부드럽고 겨자 줄기는 통통하다.
溪頭洗擇店頭賣(계두세택점두매)
개울에서 씻고 골라 시장에다 팔고는
日暮裹鹽沽酒歸(일모이염고주부)
소금을 꾸리고 술을 사서 해거름에 돌아온다.
【2. 만춘(晩春)】
其一
紫青蓴菜卷荷香(자청순채권하향)
붉고 푸른 부들은 연잎 향기를 말고 있고
玉雪芹芽拔薤長(옥설근아발해장)
매끄럽고 하얀 미나리 싹에 염교가 곧게 자랐다.
自擷溪毛充晚供(자힐계모충만공)
몸소 물가 채소를 따서 저녁 찬거리로 쓰려다
短篷風雨宿橫塘(단봉풍우숙횡당)
짧은 거룻배 비바람에 횡당에서 묵는다.
其二
湖蓮舊蕩藕新翻(호연구탕우신번)
호수의 오랜 연 밭엔 연뿌리가 새로 뒤집어졌고
小小荷錢沒漲痕(소소하전몰창흔)
동전처럼 작디작은 연잎은 불어난 물에 잠겼다.
斟酌梅天風浪緊(짐작매천풍랑긴)
매실이 익는 장마철 풍랑이 거세질 것을 염려하여
更從外水種蘆根(갱종외수종여근)
다시 바깥쪽 물에서부터 갈대 뿌리를 심는다.
其三
蝴蝶雙雙入菜花(호접쌍쌍입채화)
나비가 짝을 지어 채소 꽃으로 날아들 뿐
日長無客到田家(일장무객도전가)
긴긴 날 시골집에는 찾아오는 손님 한 명도 없다.
雞飛過籬犬吠竇(계비과리견패두)
닭이 날아서 울타리를 넘고 개가 짖어대니
知有行商來買茶(지유행상래매다)
차를 사려고 행상이 왔겠구나.
其四
湔裙水滿綠蘋洲(전군수만녹빈주)
푸른 개구리밥 섬의 강물이 넘치는 곳에서 옷을 씻는다는데
上巳微寒懶出遊(상사미한뢰출유)
삼짇날 으슬으슬 추워 게으름 피우다 놀러나가지 못했다.
薄暮蛙聲連曉鬧(박모와성연효뇨)
초저녁부터 울던 개구리소리 새벽까지 내내 시끄러우니
今年田稻十分秋(금년전도십분추)
올해는 벼농사 풍년 들겠다.
其五
新綠園林曉氣涼(신록원림효기량)
새롭게 초록빛으로 물은 정원 시원한 새벽안개 속에서
晨炊蚤出看移秧(신취조출간이앙)
새벽같이 아침을 지어먹고 모내기를 보러 나섰다.
百花飄盡桑麻小(백화표진상마소)
온갖 꽃들 바람에 날려 떨어졌고 뽕과 삼은 아직 어린데
來路風來阿魏香(내로풍래아위향)
길을 따라 바람이 아위(阿魏) 향을 전해온다.
其六
三旬蠶忌閉門中(삼순잠기폐문중)
삼십 일 동안 누에 놀랄까 조심하여 문을 걸고 잠그고
鄰曲都無步往蹤(인곡도무보왕종)
이웃과는 모두 왕래한 흔적도 없다.
猶是曉晴風露下(유시효청풍로하)
그래서 맑은 새벽이슬에 바람 부는 곳 아래에서
采桑時節暫相逢(채상시절잠상봉)
뽕잎 딸 때 잠깐 서로 만난다.
其七
汙萊一棱水周圍(우래일능수주위)
한 뼘의 거친 땅이 물에 둘러싸였는데
歲歲蝸廬沒半扉(세세화여몰반비)
해마다 조그만 오두막은 문짝이 반이나 물에 잠겼다.
不看茭青難護岸(불간교청난호안)
줄풀로는 물가 지켜 파도를 막지 못하는 법
小舟撐取葑田歸(소주탱취봉전귀)
작은 배를 저어 봉전으로 가 줄뿌리를 구해서 돌아온다.
其八
茅針香軟漸包茸(모침향연점포용)
삘기 연한 향기는 점점 자욱하게 짙어지고
蓬櫑甘酸半染紅(봉뢰감산반염홍)
새콤달콤 복분자는 이제 반쯤 붉어졌다.
采采歸來兒女笑(채채귀래아여소)
이리 따고 저리 따서 한바구니 채워 돌아오는 걸
아이들이 보고 웃는데
杖頭高掛小筠籠(장두고괘소균농)
지팡이 끝에 작은 대나무 바구니 높게도 걸렸다.
其九
海雨江風浪作堆(해우강풍랑작퇴)
바다에 비 내리고 강에 바람 불어 파도가 쌓이더니
時新魚菜逐春回(시신어채축춘회)
제철의 신선한 생선과 채소가 봄을 따라 돌아왔다.
荻芽抽筍河魨上(적아추순하둔상)
물억새 싹이나고 복어가 올라오며
楝子開花石首來(동자개화석수래)
소태나무 꽃이 피고 석수어가 나온다.
其十
穀雨如絲復似塵(곡우여사복사진)
곡우날 내리는 비는 실처럼 가늘고 먼지처럼 부슬거리는데
煮瓶浮蠟正嘗新(저병부렵정상신)
병 데우니 술에 거품 뜨지만 정말 신선하다.
牡丹破萼櫻桃熟(복단파악앵도숙)
모란이 봉우리를 터뜨리고 앵두꽃이 만발하니
未許飛花減卻春(미허지화감극춘)
꽃잎 날려 봄 덜어내는 걸 아직 허락하지 않는다.
其十一
雨後山家起較遲(우후산가기교지)
비 내린 뒤 산속 집이라 조금 늦게 일어나니
天窗曉色半熹微(천창효색반희미)
지붕창으로 보이는 아침 빛이 반쯤 희미하다.
老翁欹枕聽鶯囀(노옹의침청앵전)
늙은이는 베개에 기대 꾀꼬리 지저귐을 듣는데
童子開門放燕飛(동자개문방연비)
아이는 문을 열고 제비 쫓아 날린다.
其十二
烏鳥投林過客稀(오조투림가객희)
까마귀들 숲으로 돌아간 뒤에 지나는 길손 없고
前山煙暝到柴扉(전산연명도시비)
앞산의 저녁 안개 사립문에 이르렀다.
小童一棹舟如葉(소동일도투여엽)
아이가 노 젓는 배는 나무잎처럼 흔들리고
獨自編闌鴨陣歸(독자편란압진귀)
스스로 열을 지은 오리들은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
【三. 하일(夏日)】
其一
梅子金黃杏子肥매자금황행자비)
황금빛으로 익은 매실과 토실토실 살찌는 살구
麥花雪白菜花稀(맥화설백채화희)
보리꽃은 눈처럼 하안데 채소꽃은 거의 다 져버렸다.
日長籬落無人過(일장이락무인과)
해 길어진 울타리엔 지나는 사람 없고
惟有蜻蜓蛺蝶飛(유유청전협접비)
잠자리와 호랑나비만 날아다닌다.
其二
五月江吳麥秀寒(오월강오맥수한)
음력 5월 강남의 오나라 땅에는 맥수한이 들어
移秧披絮尚衣單(이앙피서상의단)
모내기 나가려고 걸친 솜옷도 오히려 얇다.
稻根科斗行如塊(도근과두행여괴)
벼 뿌리엔 올챙이들 덩어리져 모여들고
田水今年一尺寬(전수금년일척관)
올해는 논물이 한 자도 넘는다.
其三
二麥俱秋斗百錢(이맥구추두백전)
보리와 밀을 모두 추수해서 한 말에 백전을 받으니
田家喚作小豐年(전가한작소풍년)
농가에서는 외치기를 작은 풍년이라고 한다.
餅爐飯甑無饑色(병로반병무기색)
떡 화로 밥 시루엔 굶주린 기색 없고
接到西風熟稻天(접도서풍숙도천)
서풍을 맞이하니 벼를 익히는 날씨다.
其四
百沸繰湯雪湧波(백비조탕설용파)
고치 캐낼 물 백 번을 끓이니 거품은 눈처럼 끓어 오르고
繰車嘈囋雨鳴蓑(조거초찬우명사)
명주물레 덜그럭덜그럭 도롱이에 비 떨어지는 소리 낸다.
桑姑盆手交相賀(상고분수교상)
뽕잎 따던 여인들 실을 짓고는 서로 축하해 주니
綿繭無多絲繭多(면견무사사견다)
솜고치는 많지 않고 실고치가 많다고 한다.
其五
小婦連宵上絹機(소부연소상견기)
어린 색시 밤을 새워 명주 베틀에 매달려도
大耆催稅急於飛(대기최세급어비)
큰 영감님 세금 독촉은 하늘을 나는 것보다도 빠르다.
今年幸甚蠶桑熟(금년행심잠상숙)
올해는 운이 매우 좋아 누에와 뽕잎이 잘 자라서
留得黃絲織夏衣(유득황사직하의)
누런 실 남겼으니 여름옷은 짜겠지.
其六
下田戽水出江流(하전호수출강류)
아래 쪽 논에선 물을 길어 강류로 내보내고
高壟翻江逆上溝(고농번강역상구)
높은 쪽 밭에서는 강물을 거꾸로 위쪽 도랑으로 거슬러 보낸다.
地勢不齊人力盡(지세불제인역진)
지세는 고르지 않고 사람의 힘도 다 했는데
丁男長在踏車頭(정남장재답거두)
장정은 오래도록 수차 위에 서있다.
其七
晝出耘田夜績麻(주출운전야적마)
낮에는 김매기 밤에는 길쌈
村莊兒女各當家(촌장여아각당가)
촌구석의 여아나 남아는 모두가 가장
童孫未解供耕織(동손미해공경직)
너무 어려 밭 못 갈고 길쌈 못해도
也傍桑陰學種瓜(야방상음학종과)
뽕나무 그늘 옆에서 오이 심기 배운다.
其八
槐葉初勻日氣涼(괴엽초균일기량)
홰나무 잎이 이제 빽빽해져 대낮 열기도 서늘하니
蔥蔥鼠耳翠成雙(총총서이취성쌍)
무성한 홰나무 잎 쌍쌍이 푸르구나.
三公只得三株看(삼공지득삼주간)
삼공은 다만 세 그루 나무만을 볼 수 있었지만
閑客清陰滿北窗(한객청음만북창)
한가로운 나그네는 북쪽 창에 가득한 맑고 시원한 바람 씌운다.
其九
黃塵行客汗如漿(황진행객한여장)
자욱한 먼지 속에 땀을 비오 듯 흘리며 가는 나그네
少住儂家漱井香(소주농가수정향)
내 집에 잠깐 머물며 단물 마시고 세수하게 한 뒤
借與門前磐石坐(차여문전반석좌)
내친 김에 집 앞 너럭바위에 함께 앉으니
柳陰亭午正風涼(유음정오정풍량)
한낮의 버드나무 그늘 바람도 정말 시원하구나!
其十
千頃芙蕖放棹嬉(천경부거방도희)
천경의 끝없이 넓은 연꽃 밭에서 노를 저으며 노니다가
花深迷路晚忘歸(화심미로만망귀)
깊숙한 꽃 속에서 길을 잃고 늦도록 돌아갈 걸 잊었다.
家人暗識船行處(가인암식선행처)
집안사람이 어둠 속에 내 배 간 곳 알았는지
時有驚忙小鴨飛(시유경망소압비)
문득 놀란 낙은 오리 바삐 날아오른다.
其十一采
采菱辛苦廢犁鉏(채릉신고폐이서)
마름 따기도 힘이 들고, 쟁기질 호미질도 그만 두었다.
血指流丹鬼質枯(혈지유단귀질호)
피멍 든 손가락엔 붉은 피가 흐르고
내 몸은 귀신처럼 말라만 간다.
無力買田聊種水(무력매전요종수)
밭을 살 힘도 없어 그저 물에라도 심었더니
近來湖面亦收租(근래호면역수조)
요즘은 호수 위에다도 세금을 매긴다.
其十二
蜩螗千萬沸斜陽(조당천만미사양)
매미 천만 마리 해거름에 끓듯이 울어대고
蛙黽無邊聒夜長(와민무변괄야장)
개구리 맹꽁이 어디라 할 것 없이 긴긴밤 내내 떠든다.
不把癡聾相對治(불파치농상대치)
바보와 귀머거리로 상대하지 않는다면
夢魂爭得到藜床(몽혼쟁득도여상)
꿈속에서라도 어떻게 명아주 침상에 이르리오.
【四. 추일(秋日)】
其一
杞菊垂珠滴露紅(기국수주적로홍)
구기자와 국화는 구슬을 드리워 붉은 이슬 떨어뜨리고
兩蛩相應語莎叢(양공상응어사총)
귀뚜라미 한 쌍은 풀숲에서 서로 이야기 한다.
蟲絲罥盡黃葵葉(충사견진황규엽)
거미줄은 닥풀 잎을 칭칭 얽었고
寂曆高花側晚風(적력고화측만풍)
키 큰 꽃은 적막하게 저녁 바람을 비켜섰다.
其二
朱門巧夕沸歡聲(주문교석비환성)
부자집엔 칠석날 기쁜 소리 들끓지만
田舍黃昏靜掩扃(전사황혼정암경)
해질녘 농가는 문 닫히고 고요하다.
男解牽牛女能織(남해견우여능직)
남자는 소 부리고 여자는 베틀 짜는데
不須徼福渡河星(불수요복도하성)
은하수를 건너 복을 부를 일 있겠는가?
其三
橘蠹如蠶入化機(귤두여잡입화기)
누에 같은 귤벌레 번데기가 되려고
枝間垂繭似蓑衣(지간수견사쇠의)
실을 뽑아 고치가 되니 도롱이 옷 같다.
忽然蛻作多花蝶(홀연대작다화접)
문득 허물 벗은 꽃나비 많은데
翅粉才乾便學飛(시분재건편학비)
날개 가루 금방 말라서 곧 나는 법을 배운다.
其四
靜看簷蛛結網低(정간첨주결망저)
조용히 바라보니 처마 밑 거미가 거미줄을 낮게 치고는
無端妨礙小蟲飛(무단방애소충비)
까닭 없이 작은 벌레들 날아다니는 것을 방해한다.
蜻蜒倒掛蜂兒窘(청연도괘봉아군)
잠자리 거꾸로 걸리고 벌은 고생하니
催喚山童爲解圍(최한산동위해위)
산마을 아이에게 소리쳐 묶인 것 풀어주라 재촉한다.
其五
垂成穡事苦艱難(수성장사고간난)
거의 다 된 추수 일이 괴롭고도 어려우니
忌雨嫌風更怯寒(기우혐풍갱겁한)
비도 밉고 바람도 싫지만 추위가 훨씬 겁난다.
牋訴天公休掠剩(전소천공휴략잉)
편지 태워 상제님께 하소연하니 남은 곡식 뺏어가지 마세요.
半賞私債半輸官(반상사채반수관)
반은 사채 갚고 반은 세금 내야합니다.
其六
秋來只怕雨垂垂(추래지포우수수)
가을이 되면 다만 비 내리는 일만 걱정되고
甲子無雲萬事宜(갑자무운만사의)
갑자 일에 구름이 없으니 만사가 잘될 것이다.
獲稻畢工隨曬穀(획도필공수여곡)
벼 베기를 마치면 볕에다 곡식을 말릴 터
直須晴到入倉時(직수청도입창시)
곧장 창고에 들어갈 때까지 날씨가 맑아야 할 텐데.
其七
中秋全景屬潛夫(중우전경속잠부)
한가위의 풍경은 모두 전원에 머물고 있는 내 차지
棹入空明看太湖(도입공명간태호)
노저어 달빛 아래 맑은 태호를 보러 들어간다.
身外水天銀一色(신외수천은일색)
내 몸 빼고는 물과 하늘이 온통 은빛인데
城中有此月明無(성중유차월명무)
성 안에서 이 달과 같은 찬탄함이 있으려나?
其八
新築場泥鏡面平(신출장니경면평)
거울처럼 평평한 새로 만든 타작마당,
家家打稻趁霜晴(가가타도진상청)
서리 내려 맑은 날 집집마다 타작이다.
笑歌聲里輕雷動(소가성리경뇌동)
웃음소리 노래소리 시끌벅적 즐거워
一夜連枷響到明(일야연가향도명)밤새워 도리깨질 소리 날 밝도록 이어진다.
其九
租船滿載候開倉(조선만재후개창)
세공품 배에 가득 싣고 창고 열리기를 기다리는 세곡선
粒粒如珠白似霜(입립여주백사상)
진주같은 쌀알이 백설처럼 새하얗다.
不惜兩鍾輸一斛(불석양종수일곡)
두 종에 한 곡(斛) 어치 세금을 아낌없이 내지만
尚贏糠核飽兒郎(상영강핵포아랑)
겨 속의 싸라기 아직 남아 애들 배는 채울 수 있다네
其十
菽粟瓶罌貯滿家(숙율평앵저만가)
콩 항아리 좁쌀 항아리 집에 가득 쌓아두니
天教將醉作生涯(천교장취작생애)
하늘은 술에 취해 인생을 보내란다.
不知新滴堪篘未(부지신적감추미)
용수에 새 술 방울 모였나 모르겠네.
今歲重陽有菊花(금세중양유국화)
올해도 중양절에 국화가 피었다네
其十一
細搗棖虀賣鱠魚(세도정제매회어)
등자 가늘게 차려놓고 생선회를 사오니
西風吹上四腮鱸(서풍취상사시로)
가을바람이 불어 네아가미농어가 올라왔다.
雪松酥膩千絲縷(설송수이천사루)
눈처럼 산뜻하고 부드러우면 기름진 천 가닥 비단실 같은 그 맛
除卻松江到處無(제극송강도처무)
송강이 아니라면 어디에도 없다네.
其十二
新霜徹曉報秋深(신상철효보추심)
새벽 내내 서리가 새로 내려 가을이 깊었음을 알리니
染盡青林作纈林(염진청림작힐림)
푸르던 숲 온통 알록달록 물들었다.
惟有橘園風景異(유유귤원풍경이)
오로지 귤 밭만은 풍경이 남달라서
碧叢叢里萬黃金(벽총총리만황금)
촘촘한 푸른 옥 속에 수없이 황금이 빛난다.
【五. 동일(冬日)】
其一
斜日低山片月高(사일저산편월고)
석양이 산 아래로 내려가고 반달이 높이 오르자
睡餘行藥繞江郊(수여행약요강교)
비로소 잠에서 깨어 더디 약을 먹고는
약기운 잘 돌라고 교외의 강가를 거닌다.
霜風搗盡千林葉(상풍도진천림엽)
뼈를 시리는 찬바람이 온 수풀의 이파리를 떨어뜨려서
閑倚筇枝數鸛巢(한의공지수관소)
한가로이 대지팡이에 기대어 황새 둥지 수를 센다.
其二
炙背簷前日似烘(자배첨전일사홍)
처마 앞에서 등을 쪼이니 햇볕이 모닥불 같아
暖醺醺後困蒙蒙(난훈훈후곤몽몽)
훈훈하고 따뜻하여 몽롱하게 졸린다.
過門走馬何官職(과문주마하관직)
말 달리며 문을 지나는 저이는 뭐하는 관리일까
側帽籠鞭戰北風(측모농편전북풍)
모자 비스듬한데 옷으로 채찍 싸쥐고는 북풍과 전쟁을 벌인다.
其三
屋上添高一把茅(옥상첨고일파모)
띠를 한 줌 더해서 지붕을 높게 하고
密泥房壁似僧寮(밀니방벽사승요)
빽빽하게 진흙으로 승방처럼 방 벽 바른다.
從教屋外陰風吼(종교옥외음풍후)
아무리 집 밖에서 겨울바람 울어대도
臥聽籬頭響玉簫(와청이두향옥소)
누워서 듣노라니 대나무 울타리에서 옥퉁소 연주 전해온다.
其四
松節然膏當燭籠(송절연고당촉농)
소나무 옹이에 기름 불태우면 촛불 등만큼 되는데
凝煙如墨暗房櫳(응연여묵암방농)
엉긴 연기는 먹물처럼 방 안을 어둡게 한다.
晚來拭淨南窗紙(만래식쟁남창지)
저물녘에 남쪽 창의 종이를 깨끗이 닦으니
便覺斜陽一倍紅(편각사양일배홍)
불현 듯 석양이 두 배나 붉어졌다.
其五
乾高寅缺築牛宮(건고인결축우궁)
맑은 하늘 차가운 날씨에 동북쪽 낮은 곳에 외양간 짓고는
巵酒豚蹄酹土公(치주돈제뇌토공)
잔에 술 따르고 돼지다리 차려놓고 토공신께 제사 지낸다.
牯牸無瘟犢兒長(고자무온독아장)
수소, 암소 병 없고 송아지도 잘 자라서
明年添種越城東(명년첨종월성동)
내년엔 월성 동쪽에도 씨를 더 뿌리게 해주십시오.
其六
放船開看雪山晴(방선개간설산청)
배 띄우고 덮게 열어 맑게 개인 설산 바라보니
風定奇寒晚更凝(풍정기한만갱응)
바람은 잔잔한데 추어지더니 저녁 되자 다시 얼음이 언다
坐聽一篙珠玉碎(좌청일호주옥쇄)
노 한 번 젓자 옥구슬 부서지는 소리
不知湖面已成冰(부지호면이성빙)
호수 표면이 이미 얼어버린 걸 몰랐구나.
其七
撥雪挑來踏地菘(발설도래잡지숭)
눈을 헤쳐 야생배추를 어깨에 메어오니
味如蜜藕更肥醲(미여밀우갱피농)
맛은 꿀에 절인 연뿌리 같지만 더욱 기름지고 진하다.
朱門肉食無風味(주문육식무풍미)
붉은 대문 부잣집의 고기 음식에는 풍미가 없으니
只作尋常菜把供(지작심상채파공)
다만 그저 채소나 받아먹는다.
其八
榾柮無煙雪夜長(골돌무연설야장)
섶나무는 연기나지 않고 눈 내리는 밤은 길기만 한데
地爐煨酒暖如湯(지로외주난여탕)
질화로에 데운 술은 끓인 물처럼 뜨끈하다.
莫嗔老婦無盤飣(막진노부무반정)
늙은 아내는 소반에 안주 없다고 탓하지 말라며
笑指灰中芋栗香(소지회중우율향)
웃으며 재 속에 들어있는 토란과 밤을 가리킨다.
其九
煮酒春前臘後蒸(저주춘전엽후증)
봄 되기 전에 술을 만들고 납일 다음에 끓이니
一年長饗甕頭清(일년장향옹두청)
한 해 내내 늘 새로 익은 술을 즐긴다.
廛居何似山居樂(전거하이산거락)
도시살이 어떻게 산에 사는 즐거움과 비슷하리오?
秫米新來禁入城(출미신래금입성)
찹쌀이 새로 와서 성으로 향하는 발길을 잡는다.
其十
黃紙蠲租白紙催(황지견조백지최)
황지로 탕감했다가 백지로 다시 세금을 재촉하기 위해
皂衣旁午下鄉來(백의방오하향래)
검은 옷의 관리가 뻔질나게 시골구석을 방문한다.
長官頭腦冬烘甚(장관두뇌동홍심)
현령께서는 머리가 무척이나 아프실 듯
乞汝青錢買酒回(걸여청전매주회)
동전 몇 닢 드릴테니 술이나 한 잔 들고 가시오.
其十一
探梅公子款柴門(탐매공자관시문)
매화를 찾아온 공자가 우리 사립문을 두드리나
枝北枝南總未春(지북지남총미춘)
북쪽 가지 남쪽 가지 아직 꽃이 피지 않았다.
忽見小桃紅似錦(홀견소도홍사금)
갑자기 비단처럼 붉게 물든 작은 복숭아를 보더니
卻疑儂是武陵人(극의농시무릉인)
도리어 내가 무릉 사람이라고 여기더라.
其十二
村巷冬年見俗情(촌항동년견속정)
동짓날 시골 골목에 마을 인정 드러나니
鄰翁講禮拜柴荊(인옹강례배시형)
이웃 노인장이 예를 차려 사립문 앞에서 인사를 한다.
長衫布縷如霜雪(장삼포루여상설)
삼베 장삼이 서리와 눈처럼 하얀데
雲是家機自織成(운시가기자직성)
자기 집 베틀에서 직접 짜서 만들었다 말한다.
《사시전원잡흥(큰글씨책 발간)》에서 전재
옮긴이 서용준
서용준은 서울대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중문과대학원 석사학위를 취득했으며 2008년에 박사학위를 취득할 예정이다. 서울대, 숙명여대, 동국대, 사원대 등에서 중국문학, 중국어 등을 강의했다. 석사학위 논문은 《범성대전원시연구》였고 박사학위(예정) 논문은 《이백시의 화자에 대한 연구》다. 주된 연구 분야는 당대와 송대의 시가이며 그 외에 중국 고대의 문학이론과 소설에 대한 논문을 썼다. 최군에는 시인의 개인적인 기억이 한시의 내용에 반영되는 방식에 대한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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