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불교계의 거목 월주스님이 입적후 4년만에 영랑호 보광사에 모셔졌다. 보광사는 17일 월주스님의 부도탑을 경내 언덕에 세웠다고 밝혔다.월주 스님 부도탑은 자연석 위에 연화를 그려 넣고 사리구와 지물을 봉안해 탑을 세웠다.
앞면에는 봉황속에 ‘태공당 월주대종사지탑’ 이라고 서예가 지운 김귀조씨 쓴 글씨로 존경과 추모를 담았고 뒷면에는 스님의 붓글씨 ‘세계일화(世界一花)를 집자해 새겼다.
크지 않은 아담한 사이즈의 부도탑은 자기에 엄격하고 중생에 후덕한 스님의 소박하고 근실한 삶의 자세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부도탑이 위치한 곳은 보광사 개산 400주년 기념 사적비가 세워진 곳으로 앞쪽으로 보광사 출발점인 금강산 신선봉의 영험한 봉우리가 시야에 들어오는 절집의 핵심자리다.부도탑을 세우기 전날 때마침 폭설이 내려 월주스님의 보광사 도착을 마치 축복해 주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부도탑을 세운 보광사 회주 석문스님은 “ ‘세계일화’ 글만 보관하다가 월주 스님을 모시게 돼 기쁘고 마음이 편하다. 스님이 추구한 나눔 정신은 늘 귀감이다.이제 늘 함께하고 있음을 부도탑을 통해서 다시 확인하게 돼 좋다”고 말했다.
석문스님은 글로벌 어린이 구호단체인 굿월드뱅크를 운영하면서 월주스님의 공동체 나눔과 깨달음의 사회화 정신을 계승 구현하고 있다.
2021년 열반에 드신 월주 스님은 한국불교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수행 ,종무행정,사회활동등 다방면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스님의 한평생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나눔과 사회적 참여였다. 그는 산중에 은둔하는 불교를 넘어서 세상속에서 불법을 비추면서 요익중생(饒益衆生)을 실천했다.
그러면서도 수행정진으로 불교의 초석을 다지고 불교개혁에 참 목소리를 내면서 시대를 선도한 현대 한국 불교의 불세출의 지도자였다.나라와 백성의 고통을 해결하고, 세계인류의 공생(共生)을 실현하고자 한 순간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승려가 산중에만 머물며 세상 아픔을 외면하면 안된다”는 게 월주스님의 신조였고 일생 이 뜻을 실천했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무력진압 후 조계종 총무원장 자격으로 광주에 내려가 희생자를 추모하고 다친 시민들을 위로했고 외환위기때는 ’실업극복 국민운동본부’를 만들어 활동했고 2003년 국제개발구호단체인 ‘지구촌공생회’를 설립 전세계로 나갔다. 월주스님의 행보를 통해 수행에만 머물던 한국불교의 외연이 한 차원 넓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한불교조계종 재17대,28대 총무원장을 역임하셨으며, (사)지구촌공생회 대표이사, (사)함께일하는 재단 이사장, 나눔의 집 이사장, 금산사·실상사 조실을 지내셨다.
이런 안팎의 공로로 대한민국 국민훈장무궁화장, 만해대상(평화부문·실천부문), 미얀마 사따마 조디까다자(성자) 최고 작위를 받았으며 저서로는 <보살사상(화갑론 문집)>, <보살정론>, <인도성지순례기>, <보살사상경구선집(편저)>, <도심집>, <토끼뿔 거북털> 등이 있다.
실천을 통해 평화구현을 염원했던 월주스님이 400년 고찰 보광사에 부도탑으로 함께 하는 것은 구국의승과 한국전쟁 5용사를 모시고 이웃들과 나눔을 실천하는 시민의 절집 보광사에 크나큰 정신적 지주역할을 할 것이란 기대가 있다.
신창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