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가복음 1장 16-20절 어부들을 제자로 부르신 예수님
사람이 누군가를 추천한다거나 아니면 누군가를 고용할 때 그 사람을 쓰는 사람의 의도에 합당해야 합니다. 그것을 고용조건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회사에서는 십입사원을 모집하는데 수백대 일의 경쟁자가 몰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뽑히는 것은 겨우 몇사람 뿐입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의 제자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들은 특별했을까요? 적어도 예수님은 그들의 사회적 지위를 보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런 것을 생각하셨다면 어부들을 제자로 부르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들을 제자로 부르셨고 또 서민들에게 다가가기 좋은 사람들을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다른 제자들 역시 신분이 서민적이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지금 우리 나라의 교회들을 보아도 교회를 이용하려는 특권층의 사람들이 몰려드는 몇몇 교회를 제외하면 대부분 서민들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역사를 이루실 때 그 당시 사회의 엘리트들을 사용하실 때가 간혹 있었지만 대부분은 서민들을 택하셔서 서민들을 구원하시는데 초점을 맞추셨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들만큼 서민들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적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부자로 태어나서 부잣집에 살다가 주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았다면 서민들의 삶을 이해하기가 매우 어려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서민들은 서민들의 마음을 헤아리기가 쉽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만난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에게 맞게 전하기도 쉽습니다. 비슷한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비슷한 문화를 가진 사람들을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찾아가신 제자들도 그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수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따라다녔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병을 고치거나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고쳐달라고 간구했고 예수님은 그들의 병도 고쳐주시고 그들 안에 있는 귀신들도 내쫓으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것만을 위해서 오신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복음의 역사의 일부일 뿐만 아니라 진짜 임하게 될 하나님 날에 대한 예시에 불과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예시가 중요치 않은 것은 아닙니다. 다만 예수님이 고치시고 치료하시는 일은 완전한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될 것을 예시하는 것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완전한 하나님 나라가 있습니다. 그것을 어느 정도 경험하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들이 필요한데 그들이 바로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후에 예수님의 사도로써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과 하나님 나라의 임재를 선포할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그들을 따르는 무리들 속에서도 선별해내셨지만 직접 찾아가셔서 구원하시고 제자 삼으셨습니다. 오늘 만나는 베드로와 안드레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 형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 속에 간구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것이 표면으로 나오는 경우가 적습니다. 아주 믿을 만한 친구나 마음을 터놓고 대하는 사람이 아니면 마음 속에 숨겨져 있는 것이 잘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친구들의 경우는 다릅니다. 그들 마음 속에 숨겨진 것들을 표현합니다. 사이좋은 형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에 반해 예수님은 그들이 말하지 않아도 그들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을 아십니다. 그런데 그 바램을 이루는 방법은 제자들과 예수님 사이에 차이가 큽니다. 그 큰 차이를 예수님은 자신과 자신이 하시는 일을 보이시면서 말씀하심으로 인해 조금씩 바꾸어 나가십니다. 그러다가 예수님 자신이 떠나가시고 성령이 임하셨을 때에야 제자들은 예수님의 온전한 뜻을 깨닫고 그 삶에 헌신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마음 속에 있는 공통점은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언제 일어나는 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누가 이룰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제자들뿐만 아니라 온 이스라엘의 염원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의문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예수님은 베드로와 안드레,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을 제자로 삼으시기 위해 그들의 일터인 갈릴리바다로 찾아가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배 위에 앉으셔서 바닷가에 서 있는 사람들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는 텅빈 배에 물고기로 가득 채워지는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놀란 베드로에게는 물고기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일생동안 기다려왔던 메시야가 오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런 베드로 자신을 향해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하고 부르셨습니다.
베드로는 그 뜻이 무슨 뜻인지는 잘 몰랐지만 분명 자신의 인생을 바꾸실만한 부르심이라는 사실을 알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안드레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생업인 배와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이것은 대단한 결단입니다. 그런 결단할 만큼 그들은 예수님에게서 무엇인가를 보았습니다. 아마도 그 당시에는 이분이 그리스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나 그리스도일거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나라를 로마에서 건지시고 다윗의 왕국을 세우실 그리스도 말입니다. 이런 결단의 배후에 성령의 역사가 있습니다. 성령은 눈에 보이지 않게 역사하시지만 결과는 눈에 보이게 나타납니다.
이점은 요한과 야고보 형제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 역시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처럼 아버지와 배와 그물을 뒤로 하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런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하면서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처음 따랐던 것보다 더 많이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확신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0장 39-41절을 보면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가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그들이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 그를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여러분 역시 처음 예수님을 믿었을 때보다 더 예수님을 알게 되었습니까? 여러분들은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기 위해 무엇을 버리셨습니까? 그리고 무엇을 얻으셨습니까? 처음 믿을 때보다 예수님이 주님이시며 그리스도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들에게는 성령이 임재하신 것이 확실합니다. 성령은 보이지 않게 역사하시지만 그 증거는 눈에 보이게 나타나는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부르심을 확신하신다면 예수님을 따라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을 가십시오. 좁은 문, 좁은 길이 있고 고난과 환난이 여러분들을 기다린다 할지라도 그 길은 영생의 길이며 영원한 천국으로 들어가는 길이며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십자가가 여러분 앞에 놓여있다 할지라도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들을 통해 영광을 보이시고 또한 영광을 받으시길 기뻐하실 것입니다. 이 복이 여러분들 모두에게 임하게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