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 한살이
김정례
한밤중에 산을 넘으며 메밀꽃 피어있는 모습에 숨이 막혀 왔다는 허생원의 말이 생각이라도 나는 것일까? 메밀꽃이 필 무렵이면 어디에 흐드러진 꽃을 볼 만한 곳이 있나 찾아보는 마음이 바쁘다. 다행히 요즘은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목마름을 채워줄 메밀꽃밭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더러는 메밀 수확만이 목적이지만 어부지리로 허생원이 본 그 황홀경의 꽃밭도 볼 수 있어서 일거양득인 셈이다. 고창의 학원농장도 가을이면 그 메밀꽃이 볼만하다 하여 지난가을에 다녀왔다. 그러나 우리가 찾아간 학원농장엔 메밀꽃 대신 해바라기 초록빛이 한창이었다. 진초록의 싱싱하고 너른 잎은 가을바람에 잘게 흔들렸고, 노란 꽃잎은 마치 꼭 쥐었던 손가락을 펼치듯 한 잎씩 수줍게 피어나고 있었다. 아직은 해바라기 노란빛이 절정은 아니었지만 짱짱한 가을 태양 아래서 당당한 주인공이었다. 상식적인 시간과는 무관하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또 하나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메밀꽃을 찾아 나선 길이었지만 뜻하지 않게 만난 해바라기와의 만남은 시간을 거스르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작열하는 태양을 받으며 서 있는 굵고 단단한 해바라기의 힘에 비하면 메밀꽃은 여리고 수줍다. 한 송이 한 송이가 화려하지는 않지만 연한 초록 잎과 어우러진 하얀 제 꽃말만큼이나 그리움이 이는 꽃이다. 그것도 한두 줌 피어있는 것이 아니라 밭고랑을 넘치게 피어있는 메밀꽃은 더욱 그렇다. 그 휘황한 메밀꽃 하얀 언덕을 기대하면서 시간 반이 넘게 달려간 농장언덕에 메밀꽃이 아닌 해바라기가 가득했다. 애써 찾은 메밀꽃은 한쪽 귀퉁이에서 가난하고 초라하게 흔적만 유지하고 있었다. 더구나 그 작은 공간으로 밀려난 것으로도 모자라 실망스런 발길을 얼마나 견뎌냈는지 꽃대는 꺾어지고 작은 꽃 속엔 이미 까만 씨가 여물어가고 있었다.
이곳 농장에서는 10월 말에 파종되어 겨우내 잔디처럼 푸르게 너른 밭을 지키던 보리가 이듬해 4월이 되면 연두색 까칠한 수염을 달고 팬다. 청보리는 15만 평의 넓은 언덕에서 마음껏 푸르게 넘실댐으로써 생기에 대한 갈증을 적셔주고, 유월 초순이면 노랗게 익어 수확된다. 곧 이어서 파종된 해바라기가 2개월이 지나면 샛노란 꽃으로 뜨거운 태양과 어우러져 언덕을 지킨다. 노란 설상화가 벌들을 불러들이고 씨앗을 익혀갈 즈음, 해바라기꽃의 화려함은 거기까지다. 씨앗의 수확이 아니라 꽃 자체가 목적인 해바라기는 가장 아름다울 때 베어지고 다음 주인공은 메밀꽃이다. 이렇게 심어진 메밀은 사흘이면 싹이 나고 삼십 일 후면 꽃이 피어서 구월 중순이면 넓디넓은 언덕이 온통 하얀 메밀꽃 천지로 해바라기의 잔상을 대신한다. 꽃의 수명이 열흘을 넘지 못하기 때문에, 열흘 정도의 간격을 두고 서너 번 파종을 해 하얀 메밀꽃의 눈부신 장관을 더 길게 유지한다는 농장언덕이다.
그러나 계획된 시기에 맞게 메밀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해바라기가 가장 아름다울 때 베어내야 한다는 아픔도 있다. 자칫 그 시기를 놓치면 연결된 시간의 고리들이 얽혀들지도 모른다. 소탐대실하지 않기 위해서 비켜나는 시간과 포기하는 시점을 적절하게 아울러야 한다. 그런데 올해는 해바라기가 유난히 곱고 아름다웠나 보다. 베어내기에 너무나 아름다운 해바라기꽃을 보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고, 이들을 위해 조금만조금만 하고 있는 사이에 정해놓은 질서가 살짝 흐트러졌다. 베어내는 시기는 조금 늦어졌고 그 틈에 해바라기는 제 씨앗을 채찍질했던가 보다. 여문 씨앗들은 해바라기가 베어져 흔들릴 때 땅에 떨어졌고, 때맞춰 파종된 메밀과 경쟁하듯 싹을 틔웠다. 두 식물은 한동안은 같은 공간에서 공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해바라기의 넓은 잎은 메밀의 공생을 허락하지 않았고 하늘을 차지했다. 커다란 이파리 아래서 이리저리 가루햇발이라도 찾던 메밀은 노랗게 말라갔고 해바라기는 더 씩씩하게 제 몸을 키워갔다. 그 아래서 메밀은 꽃은 커녕 제 존재조차도 말라 바스러져 버리고 노란 가을 해바라기만이 제철인 듯 그 땅의 주인이 되었다. 작은 망설임의 실기가 부른 혼돈이었다.
농장 옆 간이사진관 벽에 전시된 사진 속에는 메밀꽃이 환하다. 끝도 없이 넘쳐나는 메밀꽃 언덕은 작년의 모습을 찍어두었던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어느 곳의 모습인지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은 채 그저 화면 가득 황홀함뿐이다. 그리고 그 옆 빈 벽에 오늘 찍은 해바라기 밭의 우리 모습이 걸린다. 비록 저 메밀꽃의 황홀함을 보고자 했으나 보지 못한 채 만난 인연이었으나 그것은 우연이 만들어준 나름의 기회였다. 그러나 해바라기의 오늘은, 결코 우연만은 아니었을 것 같다. 어쩌면 해바라기는 씨앗을 맺을 기회를 놓칠 수도 있었지만, 망설임이 부른 사람의 실기를 제 한살이를 위한 기회로 만들었다. 누구에게는 실기인 것이 또 다른 누구에게는 적기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을 확인하는 지난가을의 경험이었다.
─반년간지 『시에티카』 2014년 · 상반기 제10호
김정례
전남 장성 출생. 2012년 『시에』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