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절곤 운동을 시작한 지 언 40년......
세월의 흔적이 묻어난 쌍절곤 운동의 역사는 곧 저의 인생이 되었습니다.
70년대 후반 고등학교 다닐 떄 시작한 쌍절곤 운동은
40여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쌍절곤의 비법은 운동의 마스타플랜이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 쌍절곤 훈련은 주로 대구의 앞산에서 하였는데
당시 자취방이 앞산 아래 있었고 앞산은 제 1 쌍절곤 연무장이 되었습니다.
신학을 할 때는 당시 자취방이 두류산 아래 있었는데
두루산은 제 2의 쌍절곤 연무장 되었습니다.
그 때 고등학생 다섯명을 제자로 거두어
두류산에서 쌍절곤 운동을 가르쳤습니다.
신학을 할 때 동기 중에 합기도 사범이 있었는데
도장의 활력을 위해서 요청을 받아 합기도 도장에서 단체로 쌍절곤을 가르쳤습니다.
그들 가운데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던 제자가
신학교에서 만나 신학을 하는 동안 깊은 우애를 나누었습니다.
또 부교역자로 사역할 때 중고등부 학생들 가운데 쌍절곤의 영향을 받았는데
그 가운데는 목사가 되어 돈독한 동료애를 나누었습니다.
군 생활 할 때도 당시 지역의 고등학생들이
쌍절곤 훈련하는 모습을 보고 찾아와 제자로 받아 쌍절곤을 가르쳤습니다.
그 후 팔공산에서 쌍절곤 훈련을 하였는데
새벽에 첫차를 타고 올라가 케이블카 스카이라운지까지 뛰어 올라갔습니다.
팔공산에서의 쌍절곤 훈련은
자칭 쌍절지존에 입문하는 관문이 되었습니다.
팔공산 시설지구에서 깔딱고개를 넘어 케이블카 스카이라운지까지 뛰어다니며 쌍절곤 훈련을 할 떄는
강호를 평정하는 무협의 주인공으로 쌍절신공을 시전하는 무달이 되었습니다.
제 3의 쌍절곤 연무장이 된 팔공산은
그 후 팔공산 치산계곡의 팔공폭포에서 수련하는 사진의 추억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팔공산에서 쌍절곤 수련을 할 때
평일에는 아침 저녁으로 학교 운동장에서 쌍절곤 수련을 하였습니다.
집에서 1분 거리의 초등학교 운동장은
제 4의 쌍절곤 연무장이 되어 심신을 단련하였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아파트 놀이터는
초등학교 운동장을 대신하는 제 5의 쌍절곤 연무장이 되었습니다.
주로 밤 10시가 넘어 아파트 놀이터에서 쌍절곤 수련을 하였는데
지나가는 젊은이들이 발길을 멈추고 쌍절곤 운동이 끝날 때까지 지켜보았습니다.
또한 강원도 산약초 산행을 할 때
강원도의 백두대간은 최고의 쌍절곤 연무장이 되었습니다.
강원도 산약초 산행을 할 때 오토바이 체인과 정글칼과 쌍절곤은
험한 산행의 무장이 되어 온갖 위험을 극복하고 호연지기를 얻는 동력이 되었습니다.
안전한 장소에서 쌍절곤 훈련을 하는 것보다
거친 산악을 뚫는 쌍절곤 훈련은 생존의 골든타임을 스스로 구원하는 극기였습니다.
쌍절곤으로 저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사실상 저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
요즘 비슬산 둘레길은 제 인생의 마지막 쌍절곤 연무장이 되어
새벽을 여는 활력이 되었습니다.
새벽 5시면 일어나 비슬산 둘레길에 몸을 싣고
쌍절곤 보법으로 걷고 뛰고 달리면서 쌍절지존의 무예를 즐기고 있습니다.
그 동안 쌍절곤 연무장이 되었던 앞산을 비롯하여 두류산과 팔공산과
초등학교 운동장과 아파트 놀이터와 강원도의 백두대간은 몸에 밴 쌍절곤의 지존이 되게 하였습니다.
이제 비슬산 둘레길은 쌍절곤 보법을 즐기는 무대가 되어
쌍절곤 천의무봉의 경지에 오를 발판이 되었습니다.
비슬산 둘레길의 손에 든 쌍절곤은 없습니다.
그러나 손에 감아 쥔 스포츠 타월은
쌍절곤을 대신하는 쌍절곤 운동의 정수가 아닐 수 없습니다.
걷고 뛰면서 순간적으로 점프를 하여 360도 회전하며
손에 감아 쥔 스포츠 타월이 허공을 가르며 선회하는 광경은 가히 천하무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빠르게 스텝을 밟으며 뛰다가 전광석화처럼 360도 회전하여 허공을 가르는 쌍절신공의 시전은
쌍절곤 실전 무예의 미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르막길을 걷기도 힘든데 몸을 회전시키며 뛰어가는 모습은
쌍절지존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지난 여름은 산모기와 전쟁을 벌였는데
산 위의 농장에 닭장이 있고 거름이 많아 새벽부터 산모기가 들끊었습니다.
수없이 달려드는 모기떼는
손에 감아 쥔 수건이 허공을 갈라 추풍낙엽이 되었습니다.
가벼운 수건이지만 쌍절신공이 시전되면
일격필살의 위력이 있습니다.
한번은 귓가에 모기떼 소리가 윙윙 거려 무심코 목덜미로 수건을 날렸는데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든지 목을 감싸안고 주저앉았습니다.
비록 수건이지만 누구라도 일격을 감당할 할 수 없고
일격을 체험할려면 죽음을 각오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비슬산 둘레길을 수 놓은 쌍절곤 보법과 그 신공은
매일 새벽을 여는 연무장이 되어 쌍절지존의 길을 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비슬산 둘레길의 용오름길에는 여섯개의 폭포가 있는데
그 폭포 아래는 평평하고 넓은 바위가 있어 쌍절곤 수련에 안성마춤이었습니다.
카메라와 함께 하는 베낭 안의 스테인레스강 쌍절곤은
첫번째 용문폭포를 지나서 용수폭포와 용추 폭포 아래서 빛을 발합니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폭포아래 넓은 바위에서 쌍절곤 훈련을 하면
쌍절지존의 무예는 더욱 일신우일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비슬산 둘레길을 매일 걷다보면
아직 세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는 비슬산 기슭의 동네 뒤길이지만 걷기의 달인들이 발견됩니다.
요즘은 코로나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새벽을 여는 비슬산 둘레길을 오가는 사람들과 거의 대부분 인사를 합니다.
83세의 어르신은 매일 새벽마다 아직 길이 어두울 때 집에서 출발하여
목표지점의 산위에서 만나 인사를 합니다.
오늘은 어르신을 만나 건강 진단을 한다면서 지팡이를 내려놓게하고
엄지와 검지 사이의 합곡점을 꾹 눌렀는데 엄지손가락이 쑥 들어갔습니다.
제가 힘껏 눌렀기 때문에 대부분 고통스런 비명을 질러야 하는데
어르신은 늙어서 감각이 없어 아프지 않다고만 하였습니다.
깜짝 놀라 어르신의 장이 아주 튼튼하다면서
몇 가지 질문을 하였습니다.
빈 속에도 속쓰리지 않지요? 그래.
위나 장이 좋지 않아 병원에 간적이 없지요? 그래.
아침을 꼭 챙겨드시지요, 그래.
그러면서 어르신은 대학병원에서 장 검사를 하였는데
의사가 평소 무엇을 드셨기에 장이 이렇게도 좋고 튼실합니까?그러더라고 하였습니다.
정말 장이 좋고 튼튼하다면서
건강하고 장수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요즘은 새벽에 어르신을 만나 대화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는데
알고 보니 제 고향의 어르신을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은 세 번째 다리에서 물을 마시고 있었는데
반대편으로 아주머니 한분이 내려오길레 인사를 하고
이 시간에 산에서 내려오실려면 집에서 몇 시에 출발하였는지 물어 보았습니다.
아주머니는 집에서 4시 20분에 늘 출발하여
순환도로를 통하여 산행하다가 비슬산 둘레길로 내려온다고 하였습니다.
정말 산행의 고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른 새벽에 산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대화를 하다보면
산행의 달인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모두가 달인이었습니다.
어느 날은 부부 어르신에게 인사를 하였는데
너무나 반가와 하며 먼저 인사를 해줘서 고맙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오늘도 텃밭의 주인을 만나 인사를 하였는데
풋고추를 한봉지 가득 주었습니다.
집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늘하던 대로 뛰어 올랐는데
계단 위의 운동기구에서 운동하는 사람들이 풋고추가 가득 든 비닐 봉지를 보고
다들 인사를 하며 부러워하였습니다.
운동으로 매일 만나는 사람들은 서로가 잘 알지 못하지만
낯설지 않는 이웃이 되어 운동과 건강으로 공감대를 형성하며 이심전심으로 통하였습니다.
어느 날은 자전거를 옆에 두고 공원의 운동기구에서 운동을 하는 아주머니와 인사를 나누며
자전거 라이딩의 건강한 모습을 사진찍고 샆다고 하였더니 흔쾌히 응해 주었습니다.
건강과 운동으로 만나는 사람들은 낯설지 않는 이웃사촌이 되어
코로나의 비상사태에도 불구하고 건강 운동으로 공감의 문화로 하나되었습니다.
항상 계단을 뛰어오르듯이
이제는 비슬산 둘레길의 가파른 오르막을 보면 숨이 턱밑에 차오르도록 뛰어오릅니다.
참으로 비슬산 둘레길은 야생의 사진을 즐기는 텃밭이요,
최고의 쌍절곤 연무장이 되어 쌍절지존의 길을 걷게 하고 있습니다.